페미니즘 위대한 역설 - 프랑스 여성참정권 투쟁이 던진 세 가지 쟁점 여성.개인.시민
조앤 W. 스콧 지음, 공임순.이화진.최영석 옮김 / 앨피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자유, 평등, 박애의 삼색기를 휘날리며 구체제를 무너뜨린 프랑스 혁명은 1789년이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당시 니콜라 드 콩도르세와 올랭프 드 구주 등의 여성들은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여성이 참정권을 얻은 것은 150여년이나 지난 1944년이었습니다. 1902년 호주, 1906년 핀란드, 1913년 노르웨이를 시작으로 덴마크, 캐나다, 러시아, 독일, 영국, 미국 등의 나라가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했지만, 민주주의의 상징과 같은 혁명을 일으킨 프랑스는 오히려 여성의 참정권을 주는 것에 강한 반발이 있었고, 다른 나라보다 늦었습니다. 북한이 1946년, 한국이 1948년인 것을 감안하면, 프랑스에서 여성 참정권이 인정받게 된 역사는 역설적입니다. 자유, 평등, 박애의 순간에 여성은 없었습니다.

저자 조앤 W. 스콧은 프랑스 혁명기에 페미니즘을 외친 다섯 명의 여성의 삶을 되짚어보며 그녀들의 삶이, 주장이, 그리고 페미니즘이 왜 역설적이었는지를 말합니다. 올랭프 드 구즈, 잔 드로앵, 위베르틴 오클레르, 마들렌 펠티에, 루이제 바이스, 그리고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은 구즈의 말처럼 '해결하기 쉬운 문제는 주지 않고 오로지 역설만을 던지는 여성'들이었습니다. 역설은 부정하기 힘든 추론 과정을 거쳐서, 받아들이기 힘든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녀들의 목소리, 페미니즘이 요구하는 것들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고, 그녀들, 그리고 페미니즘은 '개인'에게 당혹을, 때로는 분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연단에 오를 권리도 있다."고 말한 구즈는,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습니다.

페미니즘의 역설은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여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페미니즘의 최대 화두는 여성의 정치참여권이었으며, 여성을 정치적으로 배제하는 사회에 저항하는 담론으로서 정치에서 '성적 차이를 제거'하려는 페미니즘이 여성의 편에 서서 '성적 차이를 생산'해내는 것입니다. 페미니즘은 남녀평등을 외치지만, 남녀평등을 위해 여성주의가 됩니다. 스콧은 페미니즘을 이해하기 위해 여성을,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데서 그치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그녀가 이야기하는 곳은 더 광범위한 것입니다. 페미니즘이 왜 역설만을 던지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선 페미니즘을 넘어서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사상의 영역을 들여다봐야한다고 말합니다.

과거 왕과 귀족이 지배하던 시절에 인간은 같은 존재가 아니였습니다. 부자와 거지, 귀족과 농노, 인간의 가치는 엄연히 달랐습니다. 하지만 계몽주의, 그리고 혁명은 이러한 구도를 제거해야 했고, 타자의 다양성을 버리고 만인이 동등하다는 추상성을 지닌 '개인'을 탄생시킵니다. 모든 개인은 존중받아야 하며, 같은 한 표의 권리를 가지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추상적 개인들이 동등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선 공통점이 필요했고, 신체에 주목했습니다. 권리를 가질 주체를 만들기 위해선 가지지 못할 주체 또한 만들어야 했습니다. 신체적 차이는 피부색, 성적 차이로 구별되었습니다. 흑인이 배제되었고, 여성이 배제되었습니다. 동등한 개인들, 그들은 백인들, 그리고 남자들이었습니다.

모든 사람, 개인은 동등해졌지만, 그곳에 여자는 없었습니다. 현대사회를 만든 사상의 역설은 사회의 역설을 만들었고, 페미니즘의 주장은 역설이 되었습니다. 남자와 동등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만국의 여성들이여, 단결하라" 를 외쳐야 했고, 여성의 강조라는 역설이야말로 페미니즘의 정치적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은 자신들의 역설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또는 이용해가며 투쟁해왔습니다. 그 결과 여성의 참정권은 점차 확대되었고, 지금도 확대되고 있습니다.

스콧은 여성 배제의 원인으로 지목되어왔던 성적차이는 여성 배제의 효과였으며, 여성성이나 남성성이란 개념은 보편적인 사회적 성이 아니라 역사적, 정치적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성이 참정권을 가지게 된지도 수십년이 흘렀지만, 페미니스트들은 여전히 역설을 던지는 존재들이며, 동시에 역설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스콧의 분석대로라면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가 지닌 역설을, 불합리함을, 바꿔야 하지만 귀찮은 무언가를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정치의 영역에서 남녀가 완전히 평등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프랑스에서 남녀동수법이 제정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비례대표 여성할당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각 정당은 상징적인 차원에서 비례대표 1번의 자리를 여성에게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아직도 불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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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7-27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서프러제트] 읽었는데, 서프러제트가 영국의 참정권 이야기라면 소개해주신 책은 프랑스의 것이군요. 덕분에 알지 못했던 좋은 책 담아갑니다.

착선 2016-07-28 12:44   좋아요 0 | URL
찾아보니 영화도 있네요. 서프러제트 한번 봐봐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