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 결혼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가
리 배지트 지음, 김현경.한빛나 옮김 / 민음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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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 동안 결혼이라는 제도는 다양한 형태로 지속되어 왔습니다. 일부일처제,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 정략결혼, 데릴사위제 등 많은 사회에서 결혼은 그 사회의 문화, 시스템을 반영합니다. 오늘날 사회 문화는 과거와 다르며, 결혼 역시 이러한 변화에 맞춰나가고 있습니다. 결혼의 변화 중 가장 세계적으로 중요한 이슈는 동성결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성결혼 찬반에 관한 논쟁은 세계 어느 곳에 가더라도 뜨겁습니다. 찬성쪽에 동성애자만 있는 것도 아니며, 반대쪽에 종교인이나 보수주의자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동성결혼 허용이 평등으로의 길이라는 의견도 있으며, 결혼이라는 시스템, 더 나아가 국가 기반을 흔들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변화는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1989년 덴마크, 1993년 노르웨이, 1994년 스웨덴, 1996년 아이슬란드, 2001년의 네덜란드 같은 국가에서 동성결혼의 문을 열기 시작했으며, 가장 최근에 있었던 상징적인 사건은 2015년 6월에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허용되며 무지개빛 조명으로 장식된 백악관의 사진일 것입니다. 저자 리 배지트는 동성결혼이 왜 허용되어야 하는지, 혹은 왜 허용되서는 안 되는지를 묻지 않습니다. 과연 어떻게 사회를 바꿨는지를 묻습니다. 리 배지트가 책을 쓸 당시엔 미국 몇몇개 주가 허용과 반대를 둘러싼 변화가 시작되는 중이였습니다. 미국보다 일찍 변화가 시작된 서유럽의 사회를 연구하며, 동성결혼이 만들어낸 변화를 추적합니다.

동성결혼의 허용이 기존의 결혼제도를 파괴했거나 약화시켰는지에 대한 저자의 답변은 "NO" 입니다. 동성결혼 허용 이전에 이미 기존의 결혼제도는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순결에 관한 인식, 남녀 지위에 관한 문제, 자식 선택권 등 결혼의 많은 부분에서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으며,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혼전순결하는 사람은 오히려 소수가 되었고, 남자는 밖에서 일하고 여자는 집안일하는 구도는 구시대적이다못해 없애야 할 문화로 인지되어가고 있습니다. 결혼이 꼭 자녀출산과 이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결혼 요소는 낡은 제도이고 구식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런 인식변화가 서구사회의 전유물인 것은 아니지만, 동성 파트너를 인정하는 국가일수록 결혼이 구시대적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으로 퍼져 있습니다.

결혼에 대한 인식 변화는 사회적 의무에서 개인의 선택으로 변화하는 것을 말해줍니다. 자녀를 가지는 것도 선택이며, 부부가 어떤 일을 할지도 선택입니다. 결혼은 파트너에 대한 헌신이라는 중요한 핵심은 남아 있습니다. 남편의 역할, 혹은 부인의 역할이라는 전통적 결혼관은 동성커플뿐만 아니라 이성커플에게도 버림받고 있습니다. 동성결혼의 허용은 이러한 변화가 이미 시작된 뒤에 나타난 결과의 하나입니다. 레즈비언 커플에게 누가 남편인지 물어볼 필요도, 자녀는 어떻게 할건지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동성결혼은 이미 사회적 결혼이 요구하는 조건을 충분히 만족시킵니다.

동성 결혼을 둘러싼 문화 전쟁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논쟁 자체가 결혼의 중대성을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점점 더 많은 독신자들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동성결혼은 오히려 결혼제도를 수호하는 면모를 보입니다. 통계적으로 레즈비언 커플의 3분의 1, 게이 커플의 6분의 1이 자녀 양육에 참여합니다. 연구결과는 동성애 부모의 양육은 이성애 부모의 양육과 차이점이 없다고 말합니다. 동성결혼은 그 자체로 특별하며, 결혼의 가치를 더 부가시켜줍니다. 이성커플의 결혼은 대다수의 결혼방식이기 때문에 결혼의 가치에 있어서 아무런 특별함을 주기 힘들지만, 선택함으로서 맺어지는 동성결혼은 결혼의 가치, 사회가 요구하는 파트너와의 헌신, 결혼에 대한 인식을 다시금 되살려줍니다.

동성 커플에게 결혼 접근권을 부여하는 것은 경제학자들이 파레토 개선 정책이라고 부르는 것의 고전적 예시다. 즉 동성 커플에게 결혼을 개방함으로써, 누군가는 경제적으로 혜택을 볼지언정 아무도 경제적으로 손해를 보지 않는다. - p.325


동성결혼은 결혼시스템의 적이 아닙니다. 동성 커플이 결혼 개념을 변화시키거나 뒤엎으려면 반드시 먼저 결혼한 동성 커플들이 결혼 개념에 중대한 차이를 드러내거나 표현해야 하지만, 오히려 결혼제도에 동화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동성커플이나 이성 커플이나 결혼의 선택에 있어서는 동일합니다. 결혼은 헌신과 자녀, 경제적 파트너십, 가족과의 유대에 관한 일이며, 결혼을 하는 이유는 관계에 대한 헌신과 함께하겠다는 의지의 표명, 그 헌신을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표현, 현재 혹은 장래 자녀들의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 공동의 경제생활을 영위하고 현실적인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입니다.

동성결혼이 허용된 나라들도 손쉽게 변화가 이루어지진 않았습니다. 사회적 변화, 동성애 커뮤니티의 수많은 논쟁, 정치적 변화 등을 거쳐 왔습니다. 여자는 순결해야 하며, 남편은 돈벌고 여자는 집안일하는 결혼제도를 지키고 싶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동성결혼은 하나의 변화의 상징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막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결혼은 이미 변화했고, 변화하고 있으며, 동성결혼 허용은 그러한 결혼이 무너진다는 징조를 보여 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한 네델란드 동성커플의 부모가 보여주는 변화는 결혼의 최우선 가치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자신의 딸이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는 사실이 걱정되었던 부모는, 주변 사람들이 축하해준다는 사실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자녀의 결혼을 축복해 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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