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경은 없다
김대식.방명걸 지음 / 올리브(M&B)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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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경수술이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 일이 있었습니다. 갓난아기였던 브루스는 포경 수술 도중 의사의 실수로 페니스를 잃어버렸고, 부모의 뜻에 의해 여자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는 결국 자신의 성 정체성에 괴로워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만약 브루스의 부모가 포경수술만 시키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브루스처럼 극단적인 사례는 아니더라도, 포경수술로 인해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브루스처럼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포경수술로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렸습니다. 바로 대한민국 남자들입니다.

다른 선진국과 다르게 미국은 유독 포경 수술의 비율이 높았습니다. 19세기 미국인들은 자위행위가 수십, 수백가지 병의 근원이라고 생각해 자위행위를 금기시했습니다. 이런 만병의 근원 자위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포경 수술을 이용했습니다. 미국의 포경 수술은 성에 대한 공포를 배경으로 성을 최대한 억압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포경 수술을 통해 자위행위를 금지시킨다면, 그것을 통해 요실금, 정신 이상, 두통, 간질, 영양 장애, 결핵, 당뇨병, 심장병 등 수백가지의 질병을 막을 수 있다는 믿음이 19세기 미국인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런 비과학적 미신은 미국인들이 포경 수술을 많이 받는데 영향을 미쳤고,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영향을 받은 나라들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늘날 포경 수술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곳은 아프리카, 중동, 미국, 필리핀, 그리고 한국입니다. 주로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들, 유대인들, 그리고 미국 영향권의 나라들입니다.

병사들의 성 접촉을 차단하기 위해 포경수술을 권유하기도 했다. -《현대인의 탄생》p.210

포경 수술은 해방 이후 미군에 의해 들어왔습니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미군의 군정이 시작되면서 미군들이 받고 있던 포경 수술은 빠르게 대한민국에 전파되었습니다. 당시 미군과 일하는 한국인들은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있는 오피니언 리더들이었고, 이들이 미국인들처럼 포경 수술을 받은 뒤 우쭐거리며 자랑하자 주변 사람들도 덩달아 포경 수술을 받았을 것이라고 저자들은 추측합니다. 포경 수술은 현대성을 지닌 신체, 선진국의 문물로 승격화된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시민들 뿐만 아니라 의사들이 지닌 포경에 대한 인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선진국은 포경을 하고 후진국은 하지 않는다는 오해를 가지고 있었고, 그 선진국의 상징이 미국이었습니다. 미국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와 산업화, 박정희 정권의 잘살아보세 정신이 융합한 결과 과학을 밀어내고 편견이 승리했습니다. 오늘날 학업에 뜻이 없는 학생들까지도 맹목적으로 대학교에 보낸 결과 80%가 넘는 광적인 대학 진학률이 나타나는 것처럼, 한국인들은 포경수술에도 광적으로 열광했습니다. 경쟁이 생존과 직결되는 사회에서 "남들이 다 하니까" 뒤쳐질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포경 수술은 할례입니다. 할례는 여성의 성적 쾌락을 막기 위해 성기의 일부를 자르고, 남자에겐 포경을 합니다. 포경을 하면 귀두의 천연색이 변화하고, 성기의 길이와 둘레를 감소시킵니다. 포경에 대한 연구 조사 결과 자연 그대로의 남성이 조루도 훨씬 적고 여성들의 반응에 더 민감하며 더 큰 성적 만족을 주었다고 합니다. 성교 시간은 자연 그대로인 남성은 평균적으로 14.9분인데 반해 포경 수술을 한 남성은 평균 10.7분이었습니다. 여성들이 성교 중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는 확률도 포경 수술을 한 남성과 했을 때 더 낮았습니다. 포경 수술은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성적 쾌감을 현저하게 감소시킵니다. 이런 연구 결과는 포경 수술이 인간의 성적 쾌락을 억제시킨다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는 매우 효과적인 수술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유대인들은 포경 수술이 정력을 감소시키며, 섹스는 적게 할수록 종교적으로 좋다고 믿었기 때문에 포경 수술을 권장합니다.

포경 수술 받은 인구 내에서는 환자와 그들 부모 모두 구두로 얻은 정보 외에는 포경 수술에 관한 사전 지식이 거의 없었다. 이에 비해 포경 수술을 안 받은 아이들이나 부모는 포경 수술에 대한 지식이 훨씬 풍부했다. 흥미롭게도 포경 수술을 받지 않은 남자아이들은 정보를 압도적으로 인터넷에서 얻은 것에 반해, 포경 수술을 받은 남자아이들은 신문에 정보를 의지하고 있었다. - p.43

포경 수술은 시민들의 성적 쾌락을 억제시키는데 있어서 음란물 규제보다 효과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포경 수술 비율은 점차 감소하고 있습니다. 2000년만 하더라도 14~16세의 88.4%가, 17~19세의 95.2%가 포경 수술을 한 반면, 2011년엔 14~16세의 56.4%가, 17~19세의 74.4%만이 포경 수술을 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이 추세대로라면 현재 20~30대 남성들이 잃어버렸던, 더 크고 두껍고 매끈한 페니스를 한국 남자들이 되찾을 것으로 보입니다. 영국 비뇨기과 학회지에 실린 논문『아들의 포경 수술에 대한 한국 부모의 지식과 태도』은 한국의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포경 수술이나 포피에 대한 일반적인 믿음이 최근 의학적 지식과 매우 다르다는 것을 언급하며, 포경 수술을 함에 있어서 의학적 지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여전히 포경 수술을 권장하는 의사들도 있습니다. 좋은 돈벌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인이 되서도 귀두와 포피가 분리되지 않는 현상을 가리켜 포경이라고 합니다. 이 현상은 100명 중에 1명 꼴로 나타나는데, 현재는 비외과적인 치료로도 대부분 치료가 가능합니다. 즉 포경은 어렸을 때 받을 필요가 없으며, 성인이 되서 필요하더라도 칼을 대지 않고 대부분 해결이 가능한 현상입니다. 필요할 때만 꺼내 쓰는 귀두와 포피의 구조는, 눈과 눈꺼풀과 비슷합니다. 눈을 쓰기 위해 눈꺼풀을 절제하지 않는 것처럼, 포피도 불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남자들이 일시에 포경 수술을 한 덕분에, 포경 수술 전후 성관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대한민국은 최고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한국 남자들, 그리고 그 남자들과 관계를 맺는 여자들의 성적 쾌락을 희생시킨 덕분에, 포경 수술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은 부정적이라는 실험 결과를 대량으로 도출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과학의 학술 발전에 대한민국이 지대한 기여를 한 점을 외국인들은 감사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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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탑 2015-04-17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포경이 그런 거였군요. 처음 알았네요 . 기독교 문화가 유대문화를 전 세계적으로 유포시킨 가장 적절한 사례라는 생간이 들었습니다. 책 한번 사보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2020-06-19 0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봐서 나쁘다고 하는군요 수술은 선택이고 또한 해방이후 이랬을 것이다라고 추측한다고 써있는데 그랬다로 팩트로 받게 되는분들도 계실 수 있겠네요.문화 환경 건강문제 등을 이용해서 반대하고자하는 어떤걸 녹여낸듯한 느낌이 드네요.
 
그 청년은 왜 군대 가서 돌아오지 못했나 - 살해당한 인권과 죽음의 배후를 추적하는 휴먼 스릴러
김종대.임태훈 지음 / 나무와숲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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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있었던 28사단 폭행치사 사건은 군대의 실상을 재조명한 사건이었습니다. 4개월에 걸친 집단폭력 끝에 맞아죽은 28사단 윤 일병이 당한 가혹행위 사례가 공개되면서 시민들은 크게 분노했습니다. 인터뷰에서 조한진씨가 말한 "군대 가서 참으면 윤 일병 되는 거고 못 참으면 임 병장 되는 현실에서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군대 보내겠습니까?" 라는 말은 군대에 대한 본질적인 불신이 담겨 있습니다. 윤 일병에겐 안타깝게도, 국방부 관계자들에겐 다행스럽게도, 그 후 별다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사건은 집단폭행에 가세한 개인에게 썩은 사과라는 판결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아부 그라이브 사례처럼, 싱싱한 사과도 썩게 만드는 곳이 군대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80년대만 하더라도 군대는 철저한 계급, 직책을 바탕으로 개인이 집단을 처벌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수가 다수를 폭력으로 다스린다는 것은 아무리 철저한 상하관계를 지닌 군대라 하더라도 위험부담이 따르는 구조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군대는 더 효율적으로 변화했습니다. 지금은 집단이 개인을 처벌하는 구조입니다. 이렇게 하나의 약자를 희생시키는 구조를 도입함으로서 전체 질서를 더 합리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희생자가 꼭 약자일 필요는 없습니다. 윤 일병의 경우 입대 전엔 대학교 과 대표를 할 정도로 대인관계가 원만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부대의 질서에 의해서 약자로 만들어졌습니다. 윤 일병의 사례는, 자신의 결함이 없더라도 누구라도 약자가 되고 희생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개인이 집단을 처벌하던, 집단이 개인을 처벌하던 간에 폭력을 통한 질서 유지는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군대는 원래 폭력이 용인되는 곳이라는 사회적 학습, 그리고 구타 가해자를 신고한 사람이 오히려 영창에 가게 되는 상황을 목격하면서 폭력은 인정받습니다. 폭력이 인정받는 순간 폭력은 소통의 수단이 되며 악행을 하는 것이 자신의 생존방식이 됩니다. 군대에서의 폭력은 "국방의 의무 축하해. 드디어 멋진남자 되는거야. 정신좀 차리겠구나." 라는 광고 멘트처럼, 신성한 임무와 진짜 사나이라는 이데올로기와 연결되며 폭력의 합리화를 이끌어냅니다. 윤 일병의 사례는 멋진 남자, 정신을 차리기 위한 집단적 과정 속에서 일어났던 사고에 지나지 않게되는 것입니다.

이지메는 그때그때 모두의 기분이 동해서 생겨난 옳은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결되어 있는 한, 그런 행위는 계속해서 해야 한다. 설령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해도 자신들 나름의 질서에 따랐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지메의 구조》p.40

가해자는 자기 변명에 불과한 도덕적 불가피성의 논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사건이 처음 알려질 당시만 하더라도 당당했습니다.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에서 오히려 가해자들이 적반하장식으로 나오고, 사건의 원인을 밀양 경찰과 주민들이 집단강간을 자행한 가해자들이 아니라 피해자의 탓으로 돌린 것도 사회 구조 속에서 그들이 옳았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는 연약했고, 여자였고, 경쟁에서 밀린 존재였으며, 부유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약자였고, 약자는 탄압받아 마땅한 존재였습니다.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이는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막스 피카르트의 말처럼, 우리 안에 히틀러가 있습니다.

군대는 사회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군대 내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기반은, 군대 밖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한 인간을 불량품으로 규정하고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고 외면하고 배제하고 분리하는 구조 논리는 학교에서, 사회에서 학습될 수 있으며 윤 일병의 가해자들은 군대에서 그대로 답습했습니다. 인간을 통제와 복종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인간관은 학교에서 학습되었고, 군대를 전역한 이후에 직장에서도 재현됩니다. 어린 학생들이 학교에서 인권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이나, 대학생들이 학교 내에서 단체기합 등을 통해 군대식으로 군기를 잡는 행동은 본질적으로 군대의 환경과 동일합니다. 군대 뿐만 아니라 사회 어느 곳이던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는 곳이라면 폭력이 발현될 수 있습니다. 인권이 무시되는 사회, 소수 약자와 피해자에게 가혹한 사회는 폭력을 용인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긍정하며, 이런 사상은 군대는 폭력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군대의 본질이라는 굴절되고 왜곡된 군대관의 기반이 됩니다.

많은 사학재단을 가지고 있는 보수 기독교계나 고용인으로서의 기업들에게 차별금지법은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법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같은 보수적인 정치적 성향의 군 수뇌부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다수의 시민들이 반인권적이고 차별적인 의식을 가진 군대시스템 속에서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관점에 적응되고 동화된 뒤 사회로 돌려보내지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사회에서도 다양성을 부정하고 소수자 차별적인 언행을 이어가기 쉽습니다. 교회와 기업 그리고 군대는 차별과 혐오를 재생산하는 구조적 공범자들입니다. - pp.125~126

군대에서의 폭력을 긍정하거나, 필요악으로 보는 사람들은 군대의 특수성을 지적합니다. 군대는 상황에 따라서 적과 싸우는 집단이기 때문에 전투력 유지를 위해 폭력을 통해서라도 군기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인권적인 생활환경이 전쟁시 전투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선진국의 경우 전투나 훈련 상황에서는 엄정한 군기가 작동하되, 사적인 영역에서는 자율과 개인의 영역을 존중합니다. 닫힌 환경 속에서도 스트레스를 해소시킬 방안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군대는 전투에서나 필요한 명령과 복종 관계를 사적인 생활까지 유지시킵니다. 24시간 내내 강압된 환경은 동료를 전우가 아닌 적으로 만듭니다. 군대에서 원하는 것은 적군을 죽이기 위함이지, 전우를 죽이기 위함은 아닙니다. 병사들이 말하는 "우리의 주적은 간부"라는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닙니다.

전쟁이 났을 때 병사들에게 실탄이 주어진다면, 그 실탄을 적에게 쏠 것인지 평소 자신을 괴롭히던 선임을 쏠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전투력은 서로 신뢰하는 믿음 속에서 단합된 힘을 통해 나오는 것이지, 폭력으로 세워진 상하관계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에, 저자들은 선진국의 군대처럼 공적인 생활과 사적인 생활을 분리해 열린 병영을 만들고 군인들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자들은 예비역 장성모임인 성우회와 재향군인회가 병영문화 혁신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예비역 장성들은 군대에서 인권을 존중한다는 것은 '약한 군대'를 만들 것이며 군대를 와해할 것이라 주장하며 개혁을 반대합니다. 그 주장대로 이명박 정권때 '강한 군대'를 주창하며 군인 예절과 훈육을 중시하고 병영문화 개선에 소홀히 한 결과 군대의 사건사고는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병사들끼리 폭행하며 야만스러움을 표출하는 것이 진짜 사나이로 보이고 강한 군인으로 보일 지는 몰라도, 적에게 강한 군대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군대에 인권을 도입하는 것은 너무 이른 일일지도 모릅니다.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자는 학생인권조례를 도입하는 것만도 많은 반발이 있었고, 조례가 시행중인 곳보다 아닌곳이 아직 더 많습니다. 학생들의 두발 자유, 종교의 자유, 체벌금지 등 지극히 당연한 요구들은 어른들에 의해서 규제되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학생들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 두려운지도 모릅니다.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어른들 역시 자신들의 인권을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토머스 페인은《상식》에서 인권은 인간의 당연한 '상식'이라고 주장하며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 대혁명에 사상적 기반을 제공해 현대 민주주의 체제를 완성했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 인권은 아직 '상식'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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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 애쓰모글루 외 지음, 최완규 옮김, 장경덕 감수 / 시공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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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경제학자 제이슨 디베커와 브래들리 하임 연구진은 1987년부터 2009년에 걸친 세금 환급 자료를 조사한 결과를 내놓았다. 그들이 연구한 가구는 시간이 흐르면서 가계 소득의 차이가 커졌음에도, 가장 부유한 가구에서 가장 가난한 가구의 순위는 해가 지나도 거의 재편되는 일이 없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밑바닥과 중간에 있는 사람들은 생애 내내 같은 지위에 머물러있는 경우가 많으며, 그들의 가정 역시 세대가 바뀌어도 같은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것은 경제나 사회의 건강에 좋지 않은 일이다.

격차가 풍요를 줄인다면, 더욱 바람직하지 못할 것이다. 불평등과 그 결과가 어떤 식으로든 기술 발전을 가로막는다면, 우리는 새 기계시대의 온갖 잠재적인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불평등이 성장을 억제할 수 있다.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을 펴냈다.

권력, 번영, 가난의 기원을 밝혀내기 위해 수백 년에 걸친 역사를 흝었다.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은 지리도, 천연자원도, 문화도 그것들의 진정한 기원이 아니라고 말한다. 민주주의, 재산권, 법의 지배 같은 제도야말로 진정한 기원이라는 것이다. 번영을 낳는 포괄적인 제도, 가난을 낳는 착취 제도, 즉 확고부동한 엘리트층에게 충성하기 위해 게임의 규칙과 경제를 왜곡시키는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번영은 혁신에 의존하며 모두를 위한 공평한 경쟁의 장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혁신 잠재력을 낭비하게 된다. 즉 우리는 또 다른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이 어디서 나올지 알지 못하며, 그것을 창조할 인물이 어쩌다 학교에 들어가지 못해 대학에 진학할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이 실현될 가능성은 크게 줄어든다. 미국은 대체로 혁신과 투자에 보상해왔기에, 지난 200년 동안 수많은 혁신과 경제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것은 진공 상태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엘리트나 다른 편협한 집단이 정치권력을 독점하여 그것을 사회 전체를 희생시키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것을 막는 특정한 정치 제도의 집합이 그것을 뒷받침했다.

우려할 점은 바로 이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은 더한 정치적 불평등을 낳을 것이고, 정치권력을 더 많이 틀어쥐는 이들은 그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조치를 취하고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면서 더 많은 경제적 이득을 얻을 것이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악순환이며, 지금 우리는 그 악순환의 한가운데에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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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가난 (반양장) - 새로운 빈곤, 오래된 과제
김수현.손병돈.이현주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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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국이 70년대부터 고도 성장기를 거쳐 많은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곤층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빈부격차는 더욱 심화되고 있으며 빈곤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사회의 모습이 달라질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책에서도 지적하듯이 새로운 빈곤의 정의를 선택해야 한다는 의견이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른바 절대적 빈곤선에서 상대적 빈곤선으로의 이동입니다. 지금의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절대빈곤의 개념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의견은 계속 제기되었고 그로 인해 새로운 대안으로 상대적 빈곤을 중시하는 의견 또한 많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개념에 반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상대적 빈곤선의 개념에 반대하는 의견의 경우 기준이 상대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바라봐선 빈곤층은 영원히 존재한다는 의견과, 가난은 개인의 책임이기 때문에 사회가 돌봐줄 필요가 없으며 사회가 돌봐주더라도 최소한의 육체적인 생존만을 책임지면 된다는 의견입니다. 그에 반대 상대적 빈곤선의 개념을 찬성하는 의견의 경우 기준의 비교대상은 최상위 부자와 비교하는 개념이 아니며 단순히 육체적 보장만이 아닌 사회구성원 다수가 누리는 혜택의 경우 그 혜택까지 보장해줘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또한 상대적 빈곤선을 주장하는 의견의 경우 빈곤은 개인의 결함이라기 보다는 사회적 결함의 경우가 더 크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대적 빈곤선의 개념의 대두에는 1990년대를 기점으로 빈곤개념의 변화를 들 수 있습니다. 외환위기 전의 경우 빈곤한 사람들은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이였고, 일자리만 있다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사회는 급변했고, 빈곤층의 모습이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일자리가 있고 일을 해도 빈곤층에서 벗어날 수 없는 워킹푸어(working poor)의 비율이 급속하게 늘기 시작했고 일자리의 비정규직화, 빈부격차의 증가 등은 빈곤선의 개념과 빈곤의 책임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의견을 제시하게 했습니다.

빈곤이 누구의 결함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합니다. 개인의 결함이라 보는 의견은 전통적인 시각으로, 일을 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들은 가난한 것이 당연하다는 고전 노동윤리에 그 기반을 하고 있습니다. 그에 반대 사회적 결함이라 보는 경우 시장이 글로벌화되었고 사회변화가 개인이 따라갈 수 없을 지경이 되었기 때문에 개인적 결함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입니다. 예를들어 우리나라의 고도성장기를 책임졌던 주력 산업들의 경우 지금은 경쟁력을 잃고 외국제품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때 주력 산업에 종사했던 근로자들은 공장의 해외이전, 산업경쟁력 약화로 무더기로 직장을 잃고 빈곤층이 되었는데 그 책임을 개인 근로자들에게 돌릴 수 있느냐는 의견입니다.

책에서는 전통적인 빈곤계층인 노인문제, 노숙자문제, 결혼이주여성, 탈북자, 주거빈곤자들의 경우를 예로 들며 기존의 제도로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으며 빈곤정책의 개선점이 필요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노인빈곤층의 경우 기존의 제도는 구시대적 가정중심의 제도로 되어있어 가족이 일정수준의 소득이 있을 경우 부양 여부와 상관없이 지원해주지 않고 있으며 젊었을때의 빈곤이 노인이 돼서도 계속 유지되는 확률이 대단히 높은 점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지원액수도 부족하고 그마저도 받을 수 있는 노인이 적기 때문에 노인이 돼서도 일을 해야 하지만, 얻을수 있는 일자리의 경우 대단히 힘들고 보수도 적은 일이라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노숙자의 경우 현행제도는 단순히 길거리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에 한해 노숙자라 규정하고 임시숙소 등을 제공해주고 있지만, 노숙자의 정의를 더 넓힐 필요가 있음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최저가의 고시원에서 사는 사람들, PC방이나 만화방에서 잠을 청하는 경우에도 노숙자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경우 각종 범죄에 노출되어 있지만 그에 대한 해결책이 전무한 실정입니다. 영국의 경우 마음편히 잠을 잘 여건이 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의 경우를 노숙자라 칭하고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외국사람으로서 한국인과 결혼한 결혼이주자의 경우 대부분은 한국남자와 결혼한 결혼이주여성입니다. 이런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매우 높은 확률로 빈곤층이 되는데, 결혼한 한국남자가 결혼정보를 위조하는 경우도 많을뿐더러 애초에 빈곤층인 상황에서 결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빈곤층이 될 경우에 빈곤층지원을 받지도 못하는데, 현행법상 2년이 지나야 한국인으로 인정해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런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높은 확률로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부부강간이란 판결이 처음 적용되기도 했습니다. 탈북자의 경우에도 높은 확률로 빈곤층이 되고 있는데 사회적 인식과 사회적응이 부족한 것을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습니다. 하지만 탈북자의 사회적응 교육지원이 미비하다는 평이 많고 초기 정착지원금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주거빈곤의 경우 현행 주거시스템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데 이른바 월세 시스템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주거비용이 더 드는 시스템은 빈곤 대물림 현상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재개발 제도도 빈곤층의 경우 내쫓기는 일과 다름이 없으며 서울내에 빈곤층을 위한 공간이 계속적으로 감소 추세에 있습니다. 이는 빈곤층 밀집 지역의 해체로 이어지는데 이른바 달동네로 불리우는 빈곤층 밀집 지역은 빈곤층들의 정신적 안정감을 주는 역할을 해왔고 어려운 사람들끼리 돕고 사는 기능을 수행했지만 이러한 공간의 감소는 빈곤층을 서울에서 밀어내고 있습니다. 서울과 비서울의 경제적 격차는 더욱 심화되어 한번 서울에서 벗어나게 되면 다시는 들어오기 힘든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워킹푸어는 21세기들어 빈곤층에서 가장 비중있는 부분입니다. 현재 일본의 경우 전체노동자의 33%가 워킹푸어에 포함되어 있고 한국의 경우 소득중위값의 50%미만으로 정의된 상대빈곤을 기준으로 전체 빈곤가구의 50%이상이 취업가구이며, 취업가구의 13%가 빈곤상태에 있습니다. 이러한 일하는 빈곤층의 경우 신자유주의 시장이 대두되며 비정규직의 비중이 급속히 늘기 시작했고, 사회안전망 부족, 노동의 규제완화, 노동자파견법 개정(일본의 예)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워킹푸어의 경우 빈곤의 진입과 탈출이 활발하여 취업가구의 20%이 지난 3년간 적어도 1회 이상 빈곤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의 전체 노동자의 최대 30%가 빈곤을 경험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4인가족의 경우 주 소득원 1명이 비정규직일 경우 현행법 기준으로 최저생계비에 못미치는 빈곤층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워킹푸어가 말해주는 것은 빈곤해결에 경제성장이 꼭 답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경기가 회복되고 기업들은 매출액을 매번 경신하고 있지만 그 이익은 사회에 제대로 돌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갈수록 주요 노동력은 비정규직이 되어가고 있지만 정규직 노동력을 줄여 비용을 절감하면서 국제 경쟁력을 강화했다는 것이 사회에 득인지 독인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빈곤가구의 교육비 지출은 일반가구의 50%수준이고, 이러한 교육투자의 차이는 빈곤의 세대간 재생산을 초래할 수 있음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빈곤율은 취업자수가 적거나 가구주의 학력이 낮을 때, 여성일 때, 생산직일 때, 임시 혹은 일용직일 때, 영세사업자일수록 높으며 이는 취업의 질도 빈곤을 결정하는 주된 요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출 기준의 절대빈곤율은 주거비를 제외하면 포함한 경우보다 상당히 높으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최저생계비에 주거비가 적절하게 반영되어 있지 않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국가 개입에 따른 빈곤율 감소효과는 비취업가구에서는 14.5%로 비교적 높지만 임금 및 비임금근로자 가구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으므로 근로빈곤계층에 대한 조세 및 사회보험제도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재정정책의 소득분배 개선효과는 약 4.3%로 다른 OECD국가의 37.9%에 비해 매우 낮으며 현행 소득세 제도는 소득재분배 효과가 매우 미흡하여 근로소득보전세제를 실시할 필요가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에 살아가면서 갑작스레 찾아오는 병, 느닷없는 해고, 각종 재난과 재해 등과 같이 예측할 수 없는 일 등으로 누구나 빈곤층이 될 수 있습니다. 일본 쓰나미사태의 교훈 중 하나도 개인의 안전망도 존재할 수 없으며 그러한 최소한의 안전망을 보장해 주는 것이 중요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일본 워킹푸어 노동자의 말을 빌어 우리 사회가 열심히 일하는 근로 빈곤층에게 지금 당장 더 나은 삶을 보장해줄 수 없다면 적어도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것, 그것이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이 아니냐고 책은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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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맨 프로젝트 - 신자유주의를 농락하는 유쾌한 전략
앤디 비클바움.마이크 버나노.밥 스펀크마이어 지음, 정인환 옮김 / 빨간머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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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유머로 풍자하는 것은 인류가 역사를 기록했을 당시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유머를 유머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다 보니, 블랙 코미디를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위험에 노출됩니다. KBS의 코미디 프로그램『개그 콘서트』에서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진행된 '사마귀 유치원' 코너는 시궁창같은 대한민국 현실을 풍자한 블랙 코미디로 당시 꽤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러나 "선거 유세 때 평소에 잘 안가던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할머니들과 악수만 해주면 되고요. 평소 먹지 않았던 국밥을 한번에 먹으면 돼요." 라고 국회의원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당시 국회의원인 강용석씨는 개그맨 최효종씨를 형사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프랑스에서 있었던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 사건은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권위가 충돌하며 국제적인 이슈를 불러왔습니다. 여전히 유머를 유머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권력가일수록, 권위적일수록 자신에 대한 풍자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런 권력자들을 풍자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것입니다. 지네브 엘 라주아가 말한 것처럼, 엄청난 자금과 권력, 내부적인 독선을 가질 수 있는 종교를 공격하지 못한다면, 토론과 풍자 잡지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켄트 플래너리와 조이스 마커스는《불평등의 창조》에서 공동체 사회에 있어서 권력가를 견제하고 건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풍자, 유머라는 것을 말한 바 있습니다.

권력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한 풍자는 계속됩니다. 저자 앤디 비클바움, 마이크 버나노, 밥 스펀크마이어는 탁월한 유머꾼들입니다. 이들은 노동절 공식 휴일 켐페인과 저작권법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젊은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 선거에 조지 부시 후보가 출마한 것을 보고, 권력에 대한 풍자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 선거 부시 공화당 후보의 공식 웹사이트 주소는 GeorgeWBush.com 였는데, 부시 후보의 공식 사이트와 헷갈릴만한 GWBush.com 를 만들어 부시 후보의 공약을 풍자했습니다. 자신을 환경을 소중히 여기는 생태 주지사이자 교육에 관심이 많은 교육 대통령이 되겠다는 부시 후보의 주장에 대해 환경을 어찌나 소중히 하시는지 부시 후보가 주지사로 재임한 기간 동안 텍사스 주가 미국에서 가장 오염된 지역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부시 후보가 공개석상에서 불평을 토로할 정도로 이들의 활약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들은 부시 후보의 풍자를 계기로 더 큰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다음 목표는 세계무역기구 WTO였습니다. 이들의 활약을 본 사람이 GATT.org를 건네줬는데,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GATT와 GATT를 관리, 집행하기 위한 기구로 출범한 WTO를 헷갈리는 사람들이 있을거라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이들은 사이트를 이용해 세계무역기구가 다국적 기업의 사업만을 중시하고 힘이 약한 나라의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 원하는 작물을 재배할 권리, 사회적 서비스를 유지할 권리, 환경을 보호할 권리, 특정 식품을 먹을 또는 먹지 않을 권리, 충분한 양의 깨끗한 물을 마실 권리를 무시하고 있다며 반대운동을 시작했습니다.

WTO.org를 흉내낸 GATT.org는 보통 사람이 조금만 읽어본다면 실제 WTO가 썼을리 없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의 거대 기업들, 높으신 분들, 학자들이 GATT.org에 WTO에 관한 질문들과 안부 메시지, 회의에 참석해달라는 메일들을 보냈습니다. 이 초청을 계기로 저자들은 학술회의, TV 생방송 토론, 국제무역회의, 대학교 강의에서 WTO 파견 인사로 행세하며 WTO가 하는 행동들을 노골적으로 풍자합니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유권자의 투표권을 기업에게 파는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노예제를 찬성했으며, 기계로 노동자들을 통제하자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폐해를 연상케하는 강의를 한다면 지독한 비판을 받거나 가짜라고 의심받고 감옥 신세를 지게 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끼리 하는 얘깁니다만, 세계은행이 공해산업을 저개발국가로 이전하는 것에 대해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독성 폐기물을 임금 수준이 열악한 국가로 보내는 것의 경제적 논리는 사실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인구가 많지 않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오염도도 대단히 낮습니다. - p.172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폐해에 대한 이들의 가짜 강의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 와서야 반발에 직면하게 됩니다. 다국적 기업의 임원들, 학자들, 관료들에게 반 민주주의적이고 반 도덕적인 주장들을 했지만 오히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호응해준 덕분에 오히려 충격을 받은 저자들이 점점 강도높은 비판을 한 덕분에 직면하게 된 반발이었습니다. 전 세계의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진국 시민들이 햄버거를 먹은뒤 나온 똥을 맥도널드의 최신 기술을 이용해 재활용해서 다시 햄버거를 만들어 후진국 사람들에게 먹인다는 주장을 하고 나서야 저자들은 겨우 예상했던 반응을 볼 수 있었습니다. "KO the WTO"

GATT.org의 활약은 매우 뛰어나서, 전세계 언론과 사람들이 이 '예스맨 프로젝트'의 풍자를 알게 되었습니다. WTO의 공식적인 반응은 오히려 GATT.org의 지명도를 높여줬습니다. 싸구려 양복을 입은 평범한 시민이 세계기구 WTO의 대표로 위장해 세계 유수의 기업가들과 학자들을 속이는 과정은 한편의 코미디지만, 이것을 단순한 코미디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사람들의 열띤 반응이었습니다. 유권자의 투표권을 기업에 파는 것, 노예제를 하는 것, 기계로 노동자를 통제한다는 반민주적, 반윤리적, 반도덕적 주장들은 자본주의와 경제학의 이름하에 설득력있는 주장이 되었고, 사람들은 그 가능성을 결코 부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강연이 끝나자마자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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