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락자백 - 사람은 왜 짓지도 않은 죄를 자백하는가
우치다 히로후미 외 엮음, 이즈미 다케오미 외 글, 김인회 외 옮김, 이즈미 다케오미 외 / 뿌리와이파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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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에게 불리한 일은 하지 않는다는 가정은 합리적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물건을 훔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도둑으로 몰린다면, 자신이 훔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훔쳤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말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거엔 이러한 자백을 물리적인 고문으로 이끌어 냈습니다. 뜨거운 쇠로 몸을 지지고, 물을 마시게 하고, 날개 꺾기, 통닭 구이, 요도 볼펜심 고문 등이 없던 죄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거짓 자백을 받아내는 길이 불법적인 물리적인 고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합법적이라고 인정받는 심문 과정에서도 충분히 거짓 자백은 만들어집니다.

저자는 유죄라고 확정되어 수년에서 수십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다가 뒤늦게 무죄임이 밝혀진 사건들, 이른바 원죄(寃罪)사건을 이야기합니다. 아시카가 사건, 도야마히미 사건, 우쓰노미야 사건, 우와지마 사건에서 공통점은 피의자가 자백을 했다는 점이며,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가 무죄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음에도 자백만으로 유죄 판결을 내린 점입니다. 10명에게 물어보면 과반수 이상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사실들, 범죄 현장의 발자국과 피의자의 신발 사이즈의 차이, 장갑을 끼지 않았음에도 현장에서 전혀 발견되지 않은 지문, 성의있게 수사하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진실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법 권력은 그들에게 유죄를 내렸습니다.

검찰이 오랜 세월 동안 확실한 사건만을 기소한 결과 높은 유죄율을 기록하게 되어 검찰에 대한 신뢰로 이어졌지만, 동시에 검찰이 법정에 보낸 피의자는 유죄가 확실하다는 편견을 심어주기도 했습니다. 재판관은 문자에 의한 기록인 조서를 바탕으로 재판하는데, 조서 또한 피의자가 혼자말을 하는 듯한 독백체로 작성되기 때문에 취조관이 어떠한 질문을 했는지, 그 질문에 피의자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취조 장면을 녹음 또는 영상녹화하지 않기 때문에, 취조 과정에서 어떤 상황으로 자백이 이루어졌는지 재판관이 판단할 수 없습니다. 죄의 판단에 있어서 현장의 취조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경찰과 검찰, 판사 간의 높은 신뢰가 생기기도 하지만, 사법관료주의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무죄추정의 원칙,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을 무시한 수사는 일단 자백서만 만들어지면, 그것이 어떻게 작성되었건 간에 유죄 판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될 가능성을 만들어냅니다.

일본의 수사에서 '취조'는 여러 외국의 수사에 비해 뚜렷한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취조관이 '전인격을 서로 부딪쳐야만 비로소 피의자가 진실을 모두 털어놓는다'는 신념을 기초로 피의자와 대치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향해 '모든 것을 털어놓고 내 품에 뛰어들라'며 양팔을 벌리는 것에 가까운 감각일까요? 이 유사 부자관계는 어떻게도 형언하기 어려운 기묘함이 있습니다. 이 '아버지'는 '아들'이 나쁜 짓을 했다고 호되게 꾸짖고 있습니다. '아들'이 아무리 결백을 호소해도 거기에는 일절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 p.73


거짓 자백을 받아내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일상생활로부터의 격리, 타자에 의한 지배와 자기통제감의 상실, 증거 없는 확신에 의한 장기간의 정신적 굴욕, 사건과 관계없는 수사와 인격부정, 전혀 들어주지 않는 변명,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전망 상실, 부인의 불이익을 강조, 취조관과의 자백적 관계 등의 조건이 갖춰지면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죄도 인정하게 됩니다. 미시건 대학교의 연구는 뇌에 스트레스를 주고 수면을 부족하게 하면 거짓 자백을 하기 좋은 조건이 된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서울시 간첩 조작사건, 일본의 엔자이 사건 등 허위 자백이 밝혀진 사건들의 수사과정에선 거짓 자백의 조건들이 공통적으로 나타납니다.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최장 6개월 동안 구금 상태로 지냅니다. 외부인(가족, 변호사, 인권기구, 유엔기구 등)도 통화, 면회, 접견을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외부와 차단해놓고 강도 높은 수사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고문,협박,모욕,반말,잠 안 재우기 등이 예사로 행해집니다. 이렇게 해서 간첩이 양산되고 있습니다. -《간첩의 탄생》pp.221~222


거짓 자백은 어린아이 등 약자에게서 더 잘 나타날 수 있지만, 강한 정신력을 가진 성인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강한 훈련을 받은 경찰관조차도 물리적 고문이 아닌 심리적 협박과 회유에 넘어가 없는 죄를 인정합니다. 거짓 자백의 사례는 세계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미국에서 진범이 아니라고 밝혀져 면죄를 받은 303명 중 27%가 거짓으로 범죄를 자백했다는 결과가 나와 있습니다. 35%가 유죄판결을 선고받았고, 80%가 징역 10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자신이 하지 않은 죄를 인정해 사형을 당한 사람도 9명이 있었습니다.

저자는 일본의 형사사법에 존재하는 원죄 발생의 구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지속된 역사라고 말합니다. 전후 혼란기의 치안 유지라는 단기적인 필요성에서 부여되었던 검사의 독점 기소권은 강력한 권력을 지니면서 동시에 다른 견제를 전혀 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체제를 만들었고, 그 폐해가 원죄 사건들로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높은 유죄율, 검사가 기소권을 독점하는 사법시스템 등은 일본과 우리나라 비슷합니다. 일본에서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라고 수없이 외친 무고한 시민들이 발생한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할 수 있고, 이 순간에도 발생하고 있을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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