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불평등 - 왜 재난은 가난한 이들에게만 가혹할까
존 C. 머터 지음, 장상미 옮김 / 동녘 / 201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경주가 흔들렸다. 자연재해라곤 태풍만을 걱정하고, 걱정해도 충분했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경주지진은 진도 5.8 이상의 충격을 남겼다. 정부는 건축물의 내진설계 기준을 2017년부터 현행 3층 이상의 건축물에서 2층 이상의 건축물까지 확대하는 등 건축물의 구조 안전 강화를 위해 다방면의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현재 존재하는 상당수의 건물이 지진에 취약한 것은 변함이 없다. 올해 발생한 경주지진은 부상자와 재산피해를 가져왔지만, 다행히 사망자까지 발생하진 않았다. 경주지진은 자연재해에 그쳤지만, 미래에 찾아올 다른 자연재해는 언제든 재난이 될 수 있다.

지진학자인 저자 존 C. 머터는 자연재해가 어떻게 재난이 되는지를 말한다. 자연재해는 자연적으로 언제든 일어나는 일이지만, 재난은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다. 모든 자연재해가 재난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연재해가 위력이 적어서, 혹은 운이 좋아서, 사회가 대비를 잘해서 재난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재해를 재난으로 만드는 것은 자연이 아니다. 재난을 만드는 것은 인간이고, 사회이다. 존 C. 머터는 자연과학의 관점에선 재난을 이해할 수 없고, 사회과학의 관점에선 재해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경계에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동시에 바라본다.

두 나라에 거대한 지진이 찾아왔다. 칠레에서 발생한 지진은 진도 8.8로 기록되었다. 아이티 공화국에서 발생한 지진은 진도 7.0로 기록되었다. 칠레에서 발생한 지진은 아이티의 지진보다 1,000배 강한 지진이었다. 자연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칠레에서 발생한 지진이 더 심각한 자연재해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재앙은 아이티 공화국에 내렸다. 1,000배 약한 지진을 겪은 아이티 공화국에서 1,000배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아이티와 칠레의 차이는 부실한 건물들, 무력한 정부, 심각한 빈부격차였다. 아이티 공화국 안에서도 부자들이 사는 지역과 가난한 자들이 사는 지역의 피해는 너무나 차이가 났다. 아이티 공화국의 지진은 재난이었고, 분명히 사회적인 재난이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을 덮쳤다. 미국 남동부를 강타한 초대형 허리케인은 유독 뉴올리언스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뉴올리언스는 미국 내에서 흑인차별이 심한 지역 중 하나이고, 빈부격차 역시 심한 지역 중 하나이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미국인에게, 더 자세히 말하면 흑인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가난한 흑인들이 사는 지역과 부유한 백인이 사는 지역의 차이는 칼로 자른 것 같았다. 정부는 대응하지 못했고, 언론은 편견을 심화시켰다. 관동 대지진에서 조선인들이 학살당한 것처럼, 언론은 뉴올리언스에서의 무정부적 파괴의 책임을 흑인에게만 전가시켰다. 카트리나 이후 가난한 흑인들 대부분은 원래 살던 지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마크 모리얼은 뉴올리언스 되살리기의 초안이 "토지 약탈을 두고 벌인 대대적인 붉은 선 긋기"였다고 말했다. 일부 지역은 재건에서 아예 제외됐다. 재건을 하지 않는 지역은 물으나 마나 "골칫덩이 인간들"이 살던 주거지였다. 오직 지배층의 사업을 위한 기본 계획이었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이 계획을 "공화당식 인종 청소"라고 불렀다. - p.242


존 C. 머터는 건전한 사회에서 자연재해는 창조적 파괴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사회는 자연재해를 극복할 더 나은 설비와 제도를 만들어내고, 시민들은 재해를 딛고 더 풍요로운 사회를 만든다. 그러나 사회 구조와 격차, 기존에 있던 부조리, 불평등이 심한 사회는 재난을 가져온다. 사회의 불평등이 클 수록 재난의 규모는 커진다. 불평등이 재난을 만든다. 그리고 재난은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킨다. 재난이 발생한 곳에서 가진 자는 재난을 이용해 더욱 돈을 번다. 복구 비용이란 명목 하에 집행되는 예산들은 직접 피해를 받은 가난한 자들이 아닌, 멀리 피신해 있던 부자들에게 돌아간다. 아이티에 지원된 국제기금 중 90%가 넘는 금액이 미국 기업에 돌아갔다. 뉴올리언스의 재건사업을 맡은 기업들은 부시와 연관이 있었다.

자연재해는 자연이 처음 타격을 가하는 무시무시한 몇 분 또는 몇 시간 동안에만 자연적이다. 재해 이전과 이후의 상황과 결과는 순전히 사회적이다. 만약 우리나라에 더 큰 지진이 온다면 우리 사회는 얼만큼의 피해를 받을 것인지 알 수 없다. 그것이 재해로 그칠지, 재난이 될지는 바로 지금 대한민국 사회가 말해주고 있다. 대한민국은 자연재해를 대비해 피해를 최소한으로 막으면서 이후 창조적 파괴의 단계로 이끌 수 있을수도 있다. 또한 대한민국은 가난한 자, 신체적으로 약한 사람들이 엄청나게 희생되고 난 뒤에도 사회적 불평등이 개선되지 못한 채 계속 재난이 발생할 수도 있다. 자연재해는 그 사회가 가지고 있던 그림자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자연재해는 재해 이전의, 그리고 이후의 대한민국이 헤븐조선인지, 헬조선인지 말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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