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 일루즈 읽기. 사랑에 관한 연구 중 가장 마지막이라는 책을 먼저 읽지만 그래도 괜찮겠지. 어렵지만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지. 이해할 수 없다 하더라도 생각은 해볼 수 있겠지. 프롤로그 「'선택'에서 '선택하지 않음'으로」 읽고 간단히 밑줄 정리하기.



(1. 프롤로그 11~32)

"... 자유는 우리가 '지켜야 하면서 동시에 그 배경을 캐물어야' 하는 사회적 화두다."

"우리가 비판적인 학자로 경제활동의 영역에서 자유가 가져다주는 파괴적 결과를 분석해야 한다면, 개인의 감정과 성적 영역에서도 자유의 파괴적인 효과를 묻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신보수주의의 시장과 정치적 자유 찬양은 물론이고 진보 진영의 성적 자유 예찬도 우리는 그것이 진정한 자유인지 시험대에 올려놓고 살펴야 한다."

"감정의 문화사회학은 실제로 자유를 행동 영역의 재구성으로 본다. 행동 영역은 도덕 감각, 교육과 관계의 개념화, 법적 체계의 바탕, 젠더에 대한 시각과 그 실제, 더 넓게는 현대인의 자아에 대한 기본적 정의를 빚어내는 가장 강력하고 널리 퍼진 문화적 프레임이다. 문화사회학이 보는 자유는 법전이 높이 추켜세우는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이상이 아니다. 오히려 자유는 현대인의 자기 이해와 타인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체계화하는 뿌리 깊은 문화적 프레임이다. 개인과 제도가 부단히 가꾸는 가치인 자유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문화적 실천으로 지켜진다. 이런 실천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은 개인에게 당신이 성적 주체라고 속삭이는 설득이다."

"카를 마르크스가 오래전에 주목했듯, 자유는 불평등을 야기할 위험이 있다. 캐서린 매키넌은 이런 맥락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짚어냈다. "자유를 평등보다 우선시하며, 자유를 정의보다 우선시하는 태도는 오로지 권력자의 권력만 계속 키울 뿐이다." 자유를 평등보다 우선시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불평등이 자유의 가능성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 사이의 이성애 관계는 양성 간의 불평등을 야기하고 자연스럽게 만들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유가 그런 불평등을 조장하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는 점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성애 관계에서 자유가 불평등을 극복한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거의 모든 이성애 관계는 '실패'하는 관계...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자유와 평등은 이성애 관계에서 함께 갈 수 없는 가치인 것일까.)

"성적 자유 문제는 동성애 관계보다는 이성애 관계에서 더욱 심각한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사정을 이렇게 만드는 원인은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현재 형태의 이성애 관계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젠더의 차이에 기반해 있다. 무엇보다도 이런 차이는 불평등을 조장한다. 이성애는 이런 불평등을 감정 체계로 체계화했다. 감정 체계란 관계가 성공적인지 아닌지 하는 책임을 사람들의 심리, 특히 여성의 심리에 떠넘기는 것을 뜻한다. 자유는 감정의 불평등이 드러나지 않게 가리며, 또 불평등을 문제 삼지 못하게 만든다. 특히 여성은 감정의 불평등으로 생겨나는 상징적 폭력과 상처를 감당하려고 자신의 심리와 씨름을 한다."

('감정의 불평등으로 생겨나는 상징적 폭력과 상처' → 이성애 관계에서 남자들이 아마도 가장 취약하고 모르는 부분. 이 구절을 읽는 많은 여성들이 직관적으로 감정의 불평등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느껴버리는 반면 대부분의 남성들은 감정의 불평등이란 게 무엇인지조차 감잡지 못할 것이다. 설명할 수 없었던 느낌을 언어화하는 일을 한 학자들.)

(1. 프롤로그 32~50)

"... 글자 그대로 사랑의 부재unloving는 시장이 부각시킨 새로운 주체성의 특징이다. 이 주체성이 하는 선택은 긍정적, 이를테면 뭔가 원하고 욕망한다는 의미에서 긍정적인 동시에 반복적으로 관계를 회피하거나 거부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다."

"심리학 기술과 각종 상업 기술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진다. 인간의 '욕망', 더 나아가 인간관계를 순전히 개인의 선택 문제로 만들어버린 것이 그 공통점이다. 선택, 즉 성적 선택 또는 소비의 선택 혹은 감정의 선택은 자유를 표방하는 공동체에서 개인이 자아가 가진 의지를 발휘했다고 믿게 만드는 주요한 모티브다. 근대의 자아 또는 오늘날의 자아 개념은 곧 선택의 주체임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개인은 자신이 주체적인 선택의 권리를 가졌다는 점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확인하려고 한다.

선택은 자유를 시장 및 감정 영역들과 묶어주는 연결 고리다. ... 다시 말해서 선택은 세계가 가진 특정 구조의 표현이다."

"합리적인 계산보다는 습관과 대세에 따르는 것이 인간이기는 하지만, 선택은 오히려 시장이 특정 행동을 제도화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 선택은 사회 구성원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든다. ...... 요컨대 선택은 현대인이 써나가는 문화 스토리의 중심 기둥이다."

(레나타 살레츨의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읽어야 겠다고 생각한지 어언 2년... 아직도 보관함에 담긴 채 내 손에 닿지 않았는데 이 책에서 언급되는 작가의 이름을 접하니 새삼 후회가... 얼른 사서 읽을 걸. 그러나 이런저런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 '선택'이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 듯하다. 그래서 선택에 대한 이 부분이 낯설지 않게 느껴짐. 그 사이 작년에 살레츨 책 한 권 더 나왔네.@@)

"경제적 사고방식에 영향을 받아 우리는 주로 긍정적 선택, 곧 '의사 결정'에 관심을 가진다. 이로써 우리는 선택의 훨씬 더 중요한 측면, 곧 '부정적 선택'에 주목하지 못한다. 부정적 선택이란 자유와 자아실현이라는 명분으로 헌신과 관계를 거부하거나 회피하는 태도를 뜻한다."

(밑줄친 이 문장을 읽으면서는 너무도 당연(?)하게 남자들이 떠올랐다. '헌신과 관계를 거부하거나 회피하는 태도'. 특히 기혼남성들. '모든' 이 아니라 '대부분' 이다, 이것도 당연히. 에바 일루즈가 여기서 말하려는 바가 이것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ㅎㅎㅎ 어쩔 수 없다.)

"현대인이 구사하는 자유는 관계를 맺지 않거나 기존 관계를 깨뜨리는 것을 자신의 권리로 여기는 자유다. 나는 이런 자유가 생겨난 과정을 '선택하지 않음의 선택'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런 선택은 관계가 어떤 단계에 있든 개의치 않고 개인이 원하는 대로 관계를 끝내는 자유를 의미한다."

* 사회적 관계의 해체

* 불확실성, 불안정성

* 감정의 자유

* (도덕적) 자율성

* 자유의 제도적 구조

* 다른 형태의 성적, 감정적 주체성 (★)

* 선택 의지

* 상징적 상호작용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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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었다. 종이책 실물 없이 전자책으로 글을 읽는다는 건... 약간 유령(?)스럽다. 밑줄 그은 부분 다시 찾아볼 때도 앞뒤 맥락 없이 밑줄만 똭 보게 되니 한편으론 집중밑줄이라 효과적이면서도 한편으론 밑줄만 동동 뜬 느낌. 이 전자책의 물성과 손에 잡히는 물건임에도 손에 잡을 수 없는 책이라는 존재에 대한 내 태도, 물성 안에서 길을 잃어버리기 일쑤인 이 어지러움,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 [디지털 미디어와 페미니즘]과 연결되는 지점 아니겠는가. 하고 괜한 억지를 부린다. 전자책으로 읽는 페미니즘. 이 주제에 대해 고민도 좀더 해보도록 하자. 그리고 페미니즘 책은 종이책으로 읽어야 한다는 생각도 다시 한번.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종이책의 물성을 따라갈 수는 없을 것이다. 아날로그 인간으로 남게 되더라도 종이책은 포기 못해. 


짐작했겠지만 이건 제대로 리뷰를 쓸 수 없음에 대한 변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무수한 밑줄을 그었으나 그걸 다 옮겨오지도 못하고, 무수한 생각쪼가리들을 떠올렸으나 그걸 다 쓰지도 못한다. 요즘 나는 약간 감정침체기라고 할까, 감정북받침기라고 할까, 그런 중에 있는 것같다. 모호하게 쓰는 이유는 당근, 단정해버리면 그게 당연한 것이 되고 그러면 거기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9월 중순 무렵 이 책을 처음 열었을 때 1장을 읽으면서 좌절했다. 뭐가 이렇게 어려워. 음 사라 아메드는 또 나오는군. 역시 읽어야 하나 봐. (전자도서관에 희망도서신청을 해둔 <행복의 약속>은 언제 들어올지 들어오기나 할지 모르겠는데 다락방님은 이 책을 내년 도서로 선정하셨고 그래서 나는 책 들어오거나 말거나 음 종이책으로 사야 겠군 한다.) 1장도 2장도 어려워 보여서 일단 스킵하고 2부 3부부터 읽었다. 조금 유하게 쓰신 거 아님꽈 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디지털미디어세상과 거기에 엮인 여러 사회문제들을 짚어줘서 좋았다. 각 챕터마다 글을 써야 겠다 싶은 구절들이 있었으나 하루이틀 일주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억도 흐려지고... 전자책의 맹점이라고 부르짖는다. 다시 펼쳐보기 힘들다. 빠이빠이가 너무 쉬워.ㅠㅠ 


그렇게 3부 끝까지 다 읽고 다시 1부로 돌아갔다. 그런데 응? 처음 읽을 때보다 훨씬 더 잘 읽힌다. 심지어 그렇게 어렵지도 않아. 이거슨 무슨 일. 그렇게 행복에 대해 생각하고 불안에 대해 생각한다. 이 두 가지 소재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이 많을 것같다. 행복보다는 불안이 훨씬 더 그렇고 책을 읽어도 이쪽을 더 많이 읽어야 한다는 생각. 나는 행복보다 불안이 궁금하다. 내 불안이 어디서 오는지, 왜 항상 불안한지, 이건 정말 내 개인의 문제인지,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그런 것들. 지금은 좀 괜찮지만 한참 힘들 때는(그땐 힘든지도 몰랐) 밤마다 불안에 떨었다. 그 때의 이야기를 비공개글쓰기동지 두 명에게 보였더니 '심각한 상태'라고 했다. 적어놓으니 내가 보기에도 심각했다. 그 불안들은 왜, 어디에서 왔을까. 책을 읽으면서 내가 보고 들은 사건사고뉴스 이야기, 영화와 드라마, 기타등등 내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의 영향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것들을 가져와 내 불안을 이미지메이킹했는지도 모르겠다고. 그건 나만 갖는 불안이 아님을, 여성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정도의 불안을 갖고 있음을, 상황과 고통에 따라 그 불안의 강도는 세졌다 약해졌다 하겠지만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또 새삼 깨닫는 순간. 그러면서 내가 만들어낸 불안에 불안해하는 이 행위는 분명 사회정치적 이유 때문인데 그걸 제어하지 못하는 나는? 나는 뭐지? 왜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는 거지? 이런 해봐야 뻔한 질문이나 하고. 


어제 저녁에는 밥 먹고 작은넘이랑 한참 이야기하다가 행복,이 나와서 둘이서 행복이란 건 없다,고 부르짖었다. 아 웃겨. 작은넘이랑은 대화코드가 대체로 잘 통해서 맞장구를 얼씨구절씨구 치면서 이야기하곤 한다. 옆에서 큭큭거리면서 듣던 남편이 너네 둘이서 팟캐나 유튜브 하라고 했다. 팟캐는 돈 못 버는데. 유튜브도 얼굴 안 나오고 목소리만 나오면 돈 못 버는데. 누가 보겠어. 그거 찍어서 돈 벌려는 생각이면 안 하는 게 맞지. 아니 요즘 애들 진짜 성교육 하는 데도 없는데 너랑 나랑 둘이서 섹스 이야기하고 그러면 응? 안 볼까? 응 안 봐 엄마. 끝. 


또 산으로 가는 이야기. 책을 읽고 그 책을 요리조리 뜯어서 리뷰를 근사하게 쓰는 날이... 뭐 언젠간 오겠지. 어려운 책 한 문장 한 문장 뜯어읽고 그걸 해석하는 날도 언젠간 오겠지. 계속 읽고 뻘소리나마 계속 쓰자. 뻘소리는 나의 길. 


(그런데, 행복이나 불안에 대한 책을 많이 읽는다고, 괜찮아질까...?)



1년 구독 신청한 잡지가 방금 왔다. 잡지 구독은 또다른 나의 허영인지도 모르겠다.ㅎㅎ 무슨 열정(?)으로 이걸 골랐는지. (가끔 거래은행에서 잡지 정기구독하면 선물 줄게, 함. 가끔 선물에 넘어감.) 

페미니즘 잡지 <CAUSETTE>이다. 하. ㅋㅋㅋ 




남편이 갖다주면서 "엄마들이여 일어나라!" 라고 표지의 기사 제목을 읊는다. "에코페미니즘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도 읊길래 맞다고, 여자들이 세상을 구할 거라고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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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9 20: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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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9 20: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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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9 20: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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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9 21: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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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9 21: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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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9 21: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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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9 21: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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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9 23: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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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9 23: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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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9 23: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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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30 05: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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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30 17: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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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30 21: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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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09-30 08: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 넘 좋은데요?^^
저는 1부가 처음에 넘 어려워 잠깐 쉬었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읽었는데 저도 응? 했었어요. 조금 흐름이 보이면서 감동이 사알살~ 생길락 말락 했었거든요.
그래서 시간에 쫓겨 완독 목표로 막 벼락치기로 뒷부분 읽었었는데, 1 편의 글은 다시 한 번 더 읽을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또 좋아지겠죠?^^
아드님과의 대화, 넘 보기 좋아요!
받아쓰기 좀 해 놓으시지?ㅋㅋㅋ

얄라알라 2022-09-30 15:39   좋아요 1 | URL
글쵸?좌르르 쫘르르 의식의 흐름
넘 재밌습니다.
저는 앞부터 순서대로 읽다가, 몇 줄에 한 번씩 튀어 나오는 외국 학자들 이름과 현란한 용어들에, 백기 들고, 제가 읽고 싶은 챕터만 발췌독 중인데,

e-book의 물성 다름을 안타까워하시면서도 읽으셨으니 축하드립니다

난티나무 2022-09-30 17:44   좋아요 2 | URL
책읽는나무님^^ 저는 처음 1부 읽을 때 와 이 책 장난 아니구나 좋겠구나 했거든요. 그런데 뒷부분이 좀 힘이 약했다 느꼈어요. ㅎㅎㅎ 1부가 압권이었다는 데 다른 분들도 모두 동의하시는 듯하고요.^^
받아쓰기 ㅎㅎ 아 그거 넘 어려워요. 몰래 녹음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어렵 ㅋㅋㅋㅋㅋ

난티나무 2022-09-30 17:45   좋아요 2 | URL
얄라알라님 ^^
저도 첨에 백기! 그런데 나중에 찬찬히 읽으니 좋더라고요. 아 전자책….@@ 참 모순적 존재인 것입니다. ㅎㅎㅎ

2022-09-30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30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2-09-30 14: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느라 고생 하셨습니다. 저는 1부 1장 읽을 때 한 문장을 여러번 읽은 경우가 정말 많았어요. 내용도 참 좋았고요. 어려웠지만 이 책의 압권은 1부가 아니었나 합니다. 그리고 완독을 축하합니다!

그나저나 저 잡지.. 예쁘네요? 페미니즘 잡지라니!!

얄라알라 2022-09-30 15:40   좋아요 0 | URL
하지만 프랑스어라서 그런가, 글자가 가려져서 그런가 잡지 이름을 모르겠어요 ㅎ
까막눈이 달래 까막이 아닌가봐요

난티나무 2022-09-30 17:4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
저도 공감합니다. 1부가 압권!!! ㅎㅎㅎ
페미니즘 공부하는 자로 페미니즘 잡지 하나쯤은 구독해야 하지 않겠습니꽈? ㅋㅋㅋ 🤣

난티나무 2022-09-30 17:54   좋아요 1 | URL
얄라알라님! 아니 제가 본문에 똭 써놨는데 ㅋㅋㅋㅋㅋㅋ 코젯, 코제트, 입니다. 이름으로는 레미제라블의 코제트로 유명하죠? 사사로운 수다,라는 속어로의 뜻도 있대요.^^

얄라알라 2022-09-30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젯은 안보이고 섹*만.보였던건가여? 저?.ㅋ

난티나무 2022-10-04 17:31   좋아요 0 | URL
아니 섹*은 저 왜 안 보이죠? ㅋㅋㅋ

- 2022-10-04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이나 불안에 대한 책을 읽는다고 괜찮아질까?
?
?
누가 나한테 답 좀...
일단은 난티님 빨랑 해보세요 ㅋㅋㅋ

난티나무 2022-10-04 17:37   좋아요 1 | URL
에바 일루즈가 말했어요. 현대사회의 인간은 불확실성 불안정성을 살고 있다고, 기본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제대로 읽고 있는지 몰겠지만) 이 말이 왜 위로가 되는 걸까요??? ㅎㅎㅎ
그러나! 여성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불안은 정말 ㅠㅠ 책 읽어도 괜찮아질 것같지 않은 느낌적 느낌… 사라지지 않는다면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 친하게 친구하고 싶지는 않는데 말이에요… 쩝
일단! 읽어봅시다! ㅋㅋㅋ
 
자린고비
노인경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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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나는 가난과 한식구처럼 살고 있다.

나는 남들보다 잘하는 걸 일찍 찾아야만 했다. 

다행히 나는 그림에 재능이 있었다." 


정말 다행이라고, 작가가 그림에 재능이 있고 그걸 일찍 알아차린 게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남들보다 잘하는 게 없는 혹은 잘하는 걸 찾지 못하고 어영부영 가난과 한몸처럼 살아야 했던 사람은, 무엇으로 돈을 벌어 먹고 살아야 하(했)는가 싶어져서 갑자기 내가 불쌍해지는 이런 생각의 흐름, 좋지 않다. "내 이름은 자린고비다."라는 첫문장에 이어지는 위 문단을 보면서 이 책을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겠다는 느낌이 든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자린고비란 무엇인가. 이 제목은 의도한 것인가? 원래 자린고비는 재물이 있음에도 지독하게 아끼는 사람을 일컫는 말인데 그림책 속 고비는 있는데 아끼는 게 아니라 없어서 못하고 못먹는 거... 안 해봐서 뭐가 좋은지 모르는 거... 그런데 자린고비라... 반어법? 물론 근검절약하는 사람을 가리켜 자린고비라고 하기는 하지만 부정적 의미가 강한 건 사실이다. (제목 마음에 안 든다는 이야기 하고 있는 중.) 


가난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가난이란 무엇인가. 모든 사람에게 가난의 기준이 같을 수 없는 법. 얼마나 돈이 없어야 가난한가. 어디까지 가난해봤나. 상징적/사회적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정녕 '돈'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는가. 하긴, 이 말이 모순인 게 이미 나는 '돈이 없어야 가난'하다고 말해버렸...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는 것이 부유한 것이라고, 가난의 반대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 어제 취향에 대해 썼었는데 그것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알 수 없어서 못하고 못해서 모르는 것. 경험하려면 돈이 필요한 세상. 경험하지 못해서 없는 취향을 발견하고 계발하려면 돈이 필요한 세상. 그럼 그까짓 취향이란 거, 무시해도 되는 것 아닐까. 그러나 아마 계급이 없는 사회가 되어야 가능하겠지. ㅠㅠ 


"나는 성실히 일하고 내 의견을 내지 않는다. 

그리고 마감일을 정확히 지킨다." 


돈이 없는 사람들일수록 그렇다. 말을 잘 들어야 한다. 규칙을 어기지 않아야 한다. 큰소리를 내지 않아야 한다. 온몸으로 습득하는 생존전략. 투명인간처럼, 입이 없는 사람처럼. 사회가 요구하는 '닥치고 일하라'에 끼워맞춰지는 약자의 생존. 


"김밥을 시키면 단무지, 김치, 국물을 준다. 

모두 공짜지만 더 달라고 말하진 않는다. 

왠지 다음번 나의 김밥에 재료를 덜 넣을 것 같아서다." 


모두 공짜?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공으로 받는 걸 그렇게 꺼려하는 화자가 단무지, 김치, 국물을 공짜라고 말하는 건 좀. 엄연히 음식 가격에 포함되어 있고 그걸 지불한 것인데. 그러나 소비자 중에서도 약자인 입장을 표현한 마지막 문장에는 공감을 할 수밖에 없다. 불이익. 당할까 봐 지레 움츠려드는 생활자세. 너무 익숙한 패턴. 


화자에게 밥을 사주고 싶어하고 먹을것을 건네는 편집자. 십년을 알고 지낸 사이라 신뢰가 쌓였으니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은 들지만 동시에 꼭 먹을것을 사서 건네는 것으로 선의를 표현해야 할까 싶은 못된 마음이 스물스물 기어오른다. 왜지. 돈이 아니면 아무것도 구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반항, 이런 거창한 이유 아닌데. 화자가 거기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어떨지도 짐작이 간다. 물론 매우 고맙지. 그러나 돌아서서 생각하면 비참하거나 자괴감이 따라올 수 있다. 돈이 없어서 자괴감을 갖는다는 건 참 슬픈 일이기도 하고 황당한 일이기도 한데 우리가 이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선의와 친절이 당사자에게는 선의와 친절로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우리는 쉽게 잊곤 하니까. 너무 쉽게 돈으로 선의를 표현하려고 하곤 하니까. 


"배 그림을 건네자 편집자가 물었다.

"또 그리고 싶은 거 있어요?"

"모르겠어요. 이유 없이 그림을 그려 본 적이 없어서요." " 


그림을 그리는데 이유 없이 그림을 그려 본 적이 없는 사람. 돈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사람. 생존과 여유 사이의 괴리. 잠시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들. 경계하고 주눅들고. 


"다음 미팅이 끝나고 나는 편집자에게 물었다. 

"따뜻한 고기는 어떤 맛일까요?" " 


세상에, 다른 것에, 호기심이 생기는 화자. 다만, 그 호기심이 탐욕으로 번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동시에. 그럴 리 없겠지만. 미디어가 보여주는 탐욕을 특히 여성들의 탐욕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 극소수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 그래서 호기심을 표현하는 저 문장에 걱정 반이 실린다. 지나친 기우다. 화자가 편집자에게 마음을 여는 이 순간. 그냥 그 순간. 


김밥의 세계를 넘어 떡볶이의 세게로 나아간 화자. 거기에는 편집자라는 사람이 있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누군가는 그렇게 한걸음을 떼기가 힘들 수도 있다. 어떤 가치이든 돈으로 환산되는 세상에서 편집자는 화자의 소중한 친구이다. 서로 인정하기 어려울지는 몰라도, 친구. 이 그림책은 가난을 말하고 있지 않다. 친구를 말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진심으로 다가오고 말을 걸고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노래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이다. 화자를 경험의 세계로 이끌어준 편집자 친구가 계속 화자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둘이 계속 친구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옆에 접어두고. 화자가 자신의 그림에 좀더 가치를 부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화자가 가난한 것보다 친구가 없는 게 나는 더 슬프다. 그래서인지 점점 컬러로 바뀌어가는 따뜻한 그림들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아도 풍경을 보아도 외롭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는다. 


좀 삐딱하게 보면, 결국 '돈'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화자는 돈의 힘을 깨달았다. 조금 더 주면 좀더 나은 것을 취할 수 있음을, 거기에 또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이것은 자본주의&신자유주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생각해볼 문제다. 관계와 돈의 힘. 편집자가 계속 화자의 친구로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한켠에 마뜩찮은 불만과 불안이 끼어있는 이유이고, 이 그림책이 마냥 좋다고 말할 수만은 없는 이유이다. 돈이 만들어내고 유지하고 또 파괴하는 관계에 대하여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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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2-09-28 07: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림은 차분하고 좋은데 이런 내용인지 몰랐어요. 많이 갑갑한 느낌이 들어요.

난티나무 2022-09-29 05:44   좋아요 1 | URL
음 읽기에 따라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을 것같아요. 두 사람의 관계, 특히 편집자가 화자를 대하는 자세나 태도가 아주 신중하고 배려하는 게 느껴져서 좋은 인상을 받을 수도 있고 화자의 태도에서 긍정적이거나 또 다른 면을 발견할 수도 있고요. 가난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거기에서 빚어지는 감정과 관계의 모습들을 차분하게 그려내는 점도 인상적이고요.
저는 항상 좀 삐딱한 편이라 ㅎㅎㅎ 제가 좀 치우쳐서 보는 경향이 있을 수도 있어요.^^;;

바람돌이 2022-09-28 14: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0살부터 평생 돈을 벌어와서 퇴직후 돈을 버는 어떤 삶도 살고싶지 않은게 제 소망이거든요
돈에 대해서는 참 양가적인 생각이 안들 수가 없네요. 그게 너무 없으면 진짜 자존감이 안 살아지잖아요. 어느정도까지가 나의 자존감을 뭉개지 않는, 그래서 친구를 대할 때도 뭔가 내가 궁색한 느낌없이 만날 수 있을까 그런것도 생각해보게 하네요.
제 친구 중에 예전에는 많이 친햇는데 어느샌가 잘 안만나게 되는 친구가 있어요. 그게 만나서 얘기를 하면 항상 어느샌가 넌 직장 다니니까 돈 많아서 좋겠다. 나는 돈때문에 걱정도 많고 힘들다 결국 이렇게 얘기가 가는.... 그렇다고 그 친구가 엄청 가난하냐 하면 그건 아니거든요.
난티나무님의 이 글을 읽으니 그 친구도 생각나고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네요.

난티나무 2022-09-29 05:49   좋아요 3 | URL
맞아요 바람돌이님. 양가적일 수밖에 없죠. 저도 친구 사이에서 그런 거 많이 느꼈는데, 바람돌이님과 반대의 말을 많이 들었네요. 넌 돈 없잖아 돈 안 벌잖아 그러니 내가 낼게....@@ 그게 반복되니 기분이 씁쓸하더라고요.ㅎㅎㅎ 저도 엄청 가난한 건 아니었는데, 밥이나 커피 살 돈 정도는 있었는데 말이죠.
어쩌면 우리가 돈이라는 것에 너무 큰 가치를 두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고요. 그래서 돈과 얽히면 관계가 그렇게 어려워지는 건지도... 이 책을 보면서 책 내용과는 상관없이 저도 많은 생각을 했어요.^^

mini74 2022-10-07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당선 축하드려요 ~ *^^*

난티나무 2022-10-07 22:46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제3부 ‘사이버 성폭력에 맞서 싸우기 : 불법 촬영물을 중심으로’ 중 스피노자 부분

스피노자는 「윤리학 3부 정리에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독특한 실재의 본질을 ‘코나투스conatus‘, 곧 자신의 존재 속에서 존속하려는 노력,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즉, 코나투스의 인간적인 표현은 ‘욕구‘ 내지 ‘욕망‘이다. 욕망은 자기 자신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노력으로서의 활동이다. 스피노자는 기쁨, 슬픔, 사랑 등의 정서가 이성과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정서가 없다면 인간은 어떤 행위도 할 수 없다고 본다. 그는 정서affectus, affect를 "신체의 행위 역량을 증대시키거나 감소시키고 촉진하거나 억제하는 신체의 변용affectio들이자 동시에 이러한 변용들의 관념들"로 정의하면서 인간의 모든 정서는 욕망conatus, 기쁨laetitia, 슬픔ristitia 이라는 세 가지 기본 정서에서 파생된다고 간주한다(3부 정리11의 주석). 정서는 사유 속성에 속하는 관념의 한 종류이지만 인지적 기능에 따라 정의되는 일반적 관념에 따라 신체와 정신의 역량의 증대 및 감소를 나타낸다(진태원, 2015).
특히 스피노자의 인간학은 인간들이 다른 사람의 욕망을 모방하는 정서모방 개념을 중시하는데, 이 개념에 따르면 사람들의 욕망과 정서(기쁨, 슬픔, 사랑, 미움, 희망, 두려움, 시기 등)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욕망과 정서를 모방한 결과다. 이는 인간들이 서로 분리되어 존재하는 원초적 개인들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실존하고 성립한다고 보는 스피노자의 관계론적 존재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에티엔 발리바르(Étienne Balibar, 2010/2012)의 표현에 의하면, 스피노자에게 인간들의 관계는 관개체성transindividuality의 성격을 지닌다. "개인의 ‘존재‘를 구성하는 것은 개인의 항상 이미 다른 개인들(이미 개인 자신의 일부를 이루고 있으며 개인 자신역시 다른 개인들이라는 존재의 일부를 이룬다)과 맺고 있는 관계의 총화인 것이다."(진태원, 2018: 330). 이러한 관개체적 존재론으로 인해, 인간들 각자는 정서모방의 네트워크에 들어감으로써 비로소 욕망을 비롯한 정서를 갖는 법을 배우게 된다.
스피노자는 어린 아이들의 경우를 들어 이것을 설명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경험으로부터, 아이들의 신체는 마치 계속 평형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웃거나 우는 것을 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웃거나 울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게 되면 그것을 곧바로 모두 따라하려고 하며, 마지막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다른 사람들이 즐거워할 만한 모든 것을 스스로 욕망한다."(윤리학 3부 정리 32의 주석). 스피노자는 더 나아가 정서모방이 반드시 어린 아이들의 경우에만 나타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민이라든가 공감, 민족주의적 정서 등은 모두 정서모방의 대표적 사례들이다. (90% 지점)

이러한 감정들도 정서모방 개념에 입각하여 설명할 수 있다. 스피노자는 분개indignatio를 타인에게 잘못 대해준 이에 대한 미움이라고 정의한다("윤리학 3부 "부록" 20항). 여기서 타인이란 나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분개 개념은 사회정치적 소요를 설명하기 위한 중요한 개념으로 설명된다. 스피노자의 『정치론』 4장 4절에 의하면 "국가civitas는 자신의 권리 아래 존재하기esse sui juris sit 위해서는 두려움과 공경의 원인들을 유지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국가로 존재하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통치권imperium을 보유한 이(또는 보유한 이들 중 하나)가 술에 취한 채로 또는 벌거벗은 채로 창녀들과 함께 거리를 활보하거나 광대짓을 하면서 또는 자기 자신이 만든 법을 공공연히 위반하거나 무시하면서 자신의 권위를 보

존한다는 것은, 동시에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기 신민들을 도륙하거나 약탈하고, 젊은 처자들을 성폭행하는 일 그리고 그와 유사한 행위들은 두려움을 분개로 바꾸게 되며, 결과적으로 사회상태를 적대상태로 바꾸게 된다."
물론 이 당시의 국가는 군주론』에 제시된 마키아벨리의 교훈을 염두에 둔 상황이므로 지금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와 차이가 있겠지만, 두려움이 분개로 전환되면 사회상태statum civilem에서 적대상태statum hostilitatis로 전환되는 원인이 된다(진태원, 2018). 이러한 분개의 감정은2018년 혜화동 불법 촬영 편파 수사 규탄 시위를 촉발시켰다고 할 수 있다. 홍대 남성 누드 모델 사진 유출 사건은 피해자가 사건을 인지하기도 전에, ‘정의로운‘ 목격자들에 의해 순식간에 공론화되었고, 학교는 신속하게 가해자를 색출하려고 노력했고 즉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여성 가해자는 ‘긴급‘ 체포되었고 포토라인에 세움으로써 불법 촬영의 ‘범죄성‘을 전시했다. 이는 여성들이 그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바라던 불법 촬영 범죄를 대하는 모범 답안이었다(김민정, 2018).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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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부르디외는 '사회적 아비투스' 개념을 차용하여 몸의 계급화를 설명한다. 그는 현대사회에서 가치의 담지체인 몸에 관심을 둔다. 몸은 취향을 계발함으로써 형성된다. 취향이란 "물질적 제약에 근거한 생활양식을 개인들이 자발적인 선택이나 선호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현상이다. 취향은 계급과 자원의 불평등으로 인해 부득이해진 선택을 불평 없이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부르디외는 "취향은 몸을 통해 드러나는 계급의 문화"라고 정의한다. 그에게 "취향은 생리적, 심리적으로 몸이 섭취하고 소화하며 흡수한 모든 것을 선택하고 조절함으로써 모든 형태의 통합을 관장하는 하나의 통합된 분류원칙"이다. 」 (190)




문득 20년도 더 된 기억이 떠오른다. 직장에 비치된 인스턴트 커피는 맥* 봉지커피, 무슨 말 끝엔가 중간관리자(?)였던 분이 대장(?)에게 "**(나)은 맥* 안 마십니다."라고 내 '취향'을 말했다. 나는 좀 뿌듯했던 것같다. 모두가 암말않고 타마시던 커피를 나는 안 마신다고 말하는 것은 내 입맛은 너희와 달라,를 확실히 해두는 동시에 획일적이지 않은 나만의 취향을 가졌다는 사실을 은연 중에 드러내고 싶은 심리였을까. 그래봐야 그건 기껏 인스턴트 봉지커피에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도긴개긴. 사람들은 그런 나를 두고 유난 떠네, 다른 척하기는, 하고 뒷담화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건 내가 듣고 싶어하던 말이었겠지. 나는 너희와 달라. 너희가 모르는 걸 나는 알고 느끼지. 헛웃음이 나네. 

그 직장의 대장 부인은 가끔 내 옷차림을 보고도 그랬었다. 내 딸 크면 **처럼 입히고 싶다,고. 그럼 나는 또 뿌듯해했다. 비싼 옷을 사입을 형편은 아니지만 저렴한 옷으로 내 개성을 드러내는 옷차림이라 생각했고 누군가가 내 개성을 알아봐준다는 사실이 좋았을 것이다. 그래 그랬지. 그런 말들이 개인의 취향을 유지시키고 더 골몰하도록 만든다는 사실을 그땐 몰랐지. 


커피도 옷차림도 다른 것들에도 그나마 내 '취향'이 있던 20대를 지나 외국에서의 생활, 출산과 육아에 이르는 기나긴 시간들은 내 모든 것을 집어삼켰고 나는 내 '취향'이 뭔지 잘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뭐든 확고하게 지켜지거나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부르디외의 말 "취향은 몸을 통해 드러나는 계급의 문화"라는 말이 맞다면, 그 '몸'을 통한다는 말이 지금은 '돈'을 통한다고 하는 것이 더 알맞을 것같지만, 어쨌거나 나는 안 그래도 '낮았던' 계급에서 더더 '낮은' 계급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도.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세상에는 아직 있다고, 그렇게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음을 애써 부정하려는 것인지도. 위를 '우러러' 보는 사람들의 성향/습관/몸에 익은 사회문화적 관습,처럼 나도 그저 위를 '우러러' 보고 있는 것인지도. 가끔 사람들을 만나면 느끼는 괴리감, 그게 계급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요즘 가끔 한다. 그래서 뭐? 그게 어쨌다고? 나는 나, 너는 너, 이런 말들 되뇌어도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뭔가가 있다고, 그걸 느껴버리는 내가 싫지만 이걸 안 느끼려면 산에 들어가 도를 닦아도 모자랄 일이라는 생각 또한 든다. 이건 또 자괴감과 연결되는 지점 아닌가 싶기도 하고. 계급이라는 건 어떤 상황을 어떤 경험으로 겪느냐의 문제, 흔히 사회에서 권장(강요)되는 방식으로 경험하느냐 아니냐의 문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 그 경험의 질과 양의 문제, 필연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물질적 제약' 즉 돈의 문제... 계급 없는 평등한 사회, 웃기지 마라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걸로 계급을 나누고 너의 세계와 나의 세계는 아예 다르다고 말하는 인간들이 글러먹은 거라고 말하고 싶... 나도 예전에는 글러먹었었고 지금도 뭐 크게 안 글러먹은 상태는 아니라 생각되지만 적어도 싸구려 신발을 신었다고 그 사람 자체를 무시하거나 모욕을 주는 인간은 아니라는 사실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하. 이거 어렵다. 왜냐하면 나도 싸구려 신발 싸구려 옷을 신고 입는 사람이니까. 그럼 나는 누군가에게 모욕당하기는 딱 좋은 조건이구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잘 사는' 사람들의 기준, 그러니까 비싼 옷/신발/장신구, 비싼 차, 비싼 집, 비싼 교육, 아 늘어놓다 보니 현타 오는데 사실 지금 이 사회에서 잘 사는 사람들이란 그런 사람들 아닌가 말이다. 기본적으로 가진 게 많아야... 잘 살 수 있는 사회. 가진 거 많은 사람들을 동경하는 관습도 깨어져야 한다. 이거 과연 깨질 수 있을까. 


부르디외는 한 글자도 읽은 것이 없지만 가끔 이렇게 인용되는 구절을 보면 한번씩 마음이 동하기는 한다. 책, 읽어볼까. 그러다 아니야, 그냥 이렇게 인용구만 읽는 것으로 만족하자, 싶다. 읽으려면 모조리 다 읽어야 할 것 같아, 읽어도 이해 못할 거. 취향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구절, 부르디외와 취향, 이렇게 기억하기로 한다. 이 구절이 주는 인상과 생각을 적으려고 시작한 글인데 결국 산으로 갔다. 그러니까 내 취향, 어디로 갔니. 돌아와. 


사람들이 묻는다. 무슨 책 좋아하세요? 가장 사랑하는 작가는? 심지어 무슨 색이 가장 좋냐는 물음에도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는 내가 있다. 파랑? 초록? 아니 노랑이던가. 방금 책에 대한 취향이라면 내가 좀 확실하지 생각했다가 책이나 작가 이름을 대지 못하는 내가 떠올라서 생각을 취소했다. 예전에는 소설 읽는 폭이 매우 좁았어도 당당(?)하게 심윤경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었고 장르 중 소설이 가장 좋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음 우물 안 개구리라서 그럴 수 있었나? 너무 골고루 안 읽어서 ㅎㅎㅎ 그러나 지금은 아닌가? 생각이 우물 안 개구리. 아무튼, 이렇게 내 취향을 모르겠는 상태가 된 건 20년 외국생활, 이게 크다. 근 15년간 새 옷 새 물건 책(!) 등을 사지 않았(못했)다. 사(하)지 않는 경험은 취향의 퇴화를 불러온다.(그럼 우리는 취향을 돈 주고 사는 건가... 취향이라는 단어에 그렇게 물질적인 것만 대입시키는 나 나쁘다... 그래서 사지, 뒤에 하지,를 넣는다.) 취향은 표현될 수 없게 사라졌지만 보는 눈(?)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내 경우 보는 눈과 나 사이의 거리가 멀어져서 보는 눈을 내 몸에 적용할 수 없게 되어버렸는데 이건 사실 나라는 몸을 너무 낮추어보기 때문이기도 한 것같다. '몸이 섭취하고 소화하며 흡수한 모든 것을 선택하고 조절함'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거지. 물질적인 건 물론이고 정신적인 것까지 같이 섭취, 소화, 흡수. 이게 안 되었던 세월들. 그래서 나는 20대에도 하지 않던 시행착오를 지금에서야 하고 있다. 


'취향은 계급과 자원의 불평등으로 인해 부득이해진 선택을 불평 없이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세상은 불공평하고 불평등하고 부정의하다. 뭘 좋아하냐고, 사람들에게 쉽게 물을 수 없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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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9-27 10: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취향에 대한 부르디외의 말이 인상적이네요. 나의 취향이라는것도 내가 쓸 수 있는 돈만큼위 테두리 안에서 결정되어 질수도 있겠구나 싶다가 그래도 책을 읽는건 또 다르지 않나싶고요. 책은 경제력과 상관없이 좋아하고 누릴수 있으니 갑자기 뭔가 자본주의적 생활방식에서 벗어난걸지도 모른다는 얼토당토않은 그런 생각도 합니다. 좋아하는 작가나 책을 말하려면 저도 한참 걸리는데 그게 내 취향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아닐까요? 아 작가는 이래서 좋고 저 작가는 저래서 좋고요.

난티나무 2022-09-27 17:12   좋아요 2 | URL
도서관을 마음껏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저는 책도 자본주의라고 생각해요.^^;; 독서는 일단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그리고 우리야 베셀 거르고 이런 책 저런 책 거르고 하지만 사회에서 잘 팔리고 잘 읽히는 책들은 자본주의의 표상들이니까요. 오늘 아침에도 잠깐 네,블 추천 문학/책 블로그 죽 내려보니 정말 가관이더라고요.ㅠㅠ
돈 없으면 책도 못 본다,가 다 들어맞지는 않겠지만 어느 정도는 맞는 것 같고요. 저도 책 살 돈 없어서 근 10년간 책 못 봤고 ㅎㅎ 어릴 때도 그랬어요. 아 어릴 때 생각하니 도서관이나 돈 말고도 책의 존재와 가치를 알려주는 어른이 주변에 없었다는 것도 크군요. 하다못해 도서관의 존재를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ㅎㅎㅎ
이 사회에서 정말 내 의지로(의지라는 게 존재한다면) 할 수 있는, 하고 있는 게 얼마나 될까 싶어져요.^^

전에도 바람돌이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신 듯한데, 꼽지 못하는 이유에 저는 제 감정도 한몫 하는 것같아요. 뭔가를 좋다고 느끼는 것,에 대한, 감탄하는 것에 대한, 그런 감정 표출을 안 하고 살아서 그렇기도 하고 좋은 것을 못보고 살아서?ㅋㅋㅋㅋㅋㅋ 좀 그런 것도 있고요. 분명히 취향은 있는데 그걸 표현하지 못(안)해서? 경험이 없었기도 하고요. 습관이 되어버린 것같아요.ㅎㅎㅎ

mini74 2022-10-07 2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취향도 눈치를 뵜던거 같아요. ㅠㅠ
그래서 난티나무님 에피소드 읽으며 와 멋있다 했던 ㅎㅎ
축하드려요 난티나무님 *^^*

난티나무 2022-10-07 22:46   좋아요 1 | URL
맞아요, mini74님. 취향도 눈치본다는 말씀, 특히 여자들에게는 더 그런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겠죠. 저도 그랬었고요. 지금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겠어요.^^;;; 몸에 배어버려서.ㅠㅠ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2-10-07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난티나무님~~~

난티나무 2022-10-08 04:25   좋아요 1 | URL
앗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