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는 없다.(정말?) 시시각각 변화하는 것이 인간이다. 자아성찰, 자아실현, 다 헛소리. 우리는 자본주의의 바람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보잘것 없는 존재들이다. 존재하고 있는 것은 맞는가. 내가 여기 이렇게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것은 환상이 아닌가. 거기 앉아 나를 보고 있는 너는 실재인가. 자존감, 자존심, 자기정체성 등을 정립하고 지키라고 하는 말들은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남으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어째서 인간의 뇌는 이렇게 진화했단 말인가. 하필이면. 오늘도 두서없이 시작하는 뻘글. 


"쓰시마 유코는 "내가 나에 대해 단언할수록 나는 거짓말이 되었다"고 했고, 엘렌 식수는 "내가 말하기 시작하면 나는 내가 말하는 것이면서도 일부는 나에게서 빠져나간다"고 했다. 비슷한 문장 중 주디스 버틀러의 것을 제일 좋아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나' 안에는 내가 아닌 무언가가 이미 들어와 있다"라는 그의 글을 반복해 읽으면 이미 '나' 안에 들어와 있는 무언가로 공포영화를 여러 편 찍을 수 있다. 어쨌든 나는 거짓말이고, 어쩌다 남은 것들이고, 이미 들어와 있는 것의 이웃이므로 나는 나에 대해 말할 수 없음으로 말하기 시작한다."

김지승 <짐승일기> 12




주말에 프랑스 남부에 있었다. 볼일이 있었고 내 볼일은 아니지만 겸사겸사 갔고 바다가 가까웠지만 바다에는 가지 않았다. 그깟 바다, 안 봐도 상관없다, 이런 마음. 풍경 그게 다 무슨 소용, 이런 마음. 유난히 고속도로 위의 시간이 길게 느껴졌고 그래서 피곤했다. 결혼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라고 핑계를 대고) 이탈리아 여행을 온 동생이 급 벙개를 외쳤다. 남부에 있다고? 그럼 놀러 와! 못 올 이유 없지? 그럼 고고! 귀가 종잇장보다 얇은 나는 혹하고 말았다. 장장 500킬로미터 이상을 달려야 동생이 있는 곳에 갈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700킬로미터 가까이 되었다. 거리가 문제야?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차를 오래 타는 일은 이젠 정말 피곤하고 힘들지만, 고만고만한 생활에서 이런 경우는 흔히 일어나지 않으니까. 동생을 보고 싶어서? 놉. 동생의 남편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럼 나는 왜 혹했던 걸까? 습관에서 벗어나기. 그걸 해보고 싶었다.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 나도 너도 대체로 그렇다.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무엇,을 해보고 싶었다. 난 그런 성격 아니야, 계획을 해야 안심이 돼,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그게 습관이라는 거 알지도 모르지. 하루를 달려 드넓은 호수만 보고 다시 하루를 달리더라도, 얻은 것 없이 잃는 게 많아도,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럴 만하지 않냐고 나를 설득시켰다. 동생이라는 좋은 핑계가 거기 있었다. 2주 뒤에 만날 예정이라는 사실은 제쳐두고.


결론을 말하자면, 지금 나는 집에 있다. 그 즉흥성을 따랐다면 가르다 호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겠지. 습관은 충동을 이기지 못했다. 내가 끝까지 우겼다면 아마 옆지기는 따라나섰을 것이다. 그래서 후회하냐고? 아니. 나는 어차피 못 갈 것을 알고 있었다. 가고 싶지만 안 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나는 나를 너무 잘 안다? 혹은 내 습관의 패턴은 빤하다?) 충동은 자주 쉽게 포기로 이어진다. 포기가 잘 안 될 때 괴로워진다. 나는 뭘까? 나는 인간일까? '(나는 인간인데) 너는 뭐냐?'라는 물음 때문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나온다고 정희진샘이 말했다는데(쟝쟝님 글에서 읽음), 그 말을 보고 나니 이젠 스스로 나는 뭐, 누구, 이런 질문 안 하고 싶어졌는데. 몇 마디 말로 표현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다는 아니니까. 표현할 수 있는 성질조차 변화무쌍하니까.


풍경 까짓 거, 라고 생각은 했으나 피곤한 몸을 이끌고 점심을 먹으러 간 한 마을은 눈이 부시도록 예뻤고 까짓,은 느무좋아,로 바뀌었다. 이탈리아를 포기하는 대신 예정에 없던 식사를 하느라 두어 시간을 지체했다. 내 결정이었다. 선택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결정이나 선택이나 결국 내가 하는 것처럼 보이겠으나, 이 또한 내 습관성 행동이겠다. 아쉬움의 표현. '선택하지 않는' 선택.(에바 일루즈 읽는 척 하는 중) 그 와중, 때로는 까짓 풍경이 마음을 달래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이렇게 스쳐지나가지만 넉넉한 시간을 갖고 여행으로 오고 싶다는 바람이 생긴다. 이 또한 실현이 어려운 소망일 테지. 넉넉한 시간이란 곧 돈을 의미하니까. 사람들은 나중에, 언젠가는, 바라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품는다. 그것을 붙잡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체 없는 희망은 늘, 천천히, 늦게 오고 어쩌면 흔히, 올 생각도 하지 않음을, 우리는 애써 지우려고 하지는 않나? 나는 이제야 조금씩 '충동적인' 인간이 되고 싶다.


타인이 없으면 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끊임없는 타인 보기, 타인들의 조각 모습, 이것이 미치는 영향, 거기에서 만들어지는 나라는 모습. 책 목차의 소제목이 눈길을 붙든다. "내가 나의 타인이다." 어쩐지 사람들이 그렇게 MBTI 에 열광(?)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우리는 아니,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엉망으로 쪼개진 파편으로 살아가는데 우리는 아니, 나는 정주하지 못하고 일관되지 않으며 규칙에 반하는데 우리는 아니, 나는 할 때마다 달라지는 이야기인데 우리는 아니, 나는 잘 잊히기 위한 고군분투의 기록일 뿐인데 우리는 아니, 나는 매일 마지막 낮잠에서 깨고 마는데 우리는 아니, 나는 등 뒤로 줄 서 있는 슬픔들이 있는데 우리는 아니, 나는 이름 없이 단 하나 남은 부족민인데 우리는 아니, 나는 용서하지 않을 거고 용서받지 않을 텐데 우리는 아니, 나는 즉흥적이고 정직하게 울고 싶은데 우리는 아니, "

김지승 <짐승일기>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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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10-05 0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현하신 그 내면의 느낌 어떤건지 알아요. 물론 저는 이미 떠났고 동생과 만나서 어쩌고저쩌고 했다는 글까지 올렸겠죠. 🥲🥲🥲 코딱지 만한 충동에도 흔들거리는 저보다 님의 성격이 더 부러워요. ㅎㅎㅎ

난티나무 2022-10-05 14:29   좋아요 0 | URL
하핫 라로님^^ 이미 떠났고 ㅋㅋㅋㅋㅋㅋㅋㅋ
별것 아닌 일인데 그냥 하지 않음, 포기가 일상의 습관이 된 건 아닌가, 생각하는 계기였어요.^^;;;

2022-10-05 09: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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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5 14: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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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5 09: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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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5 14: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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