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행이 무산되었다. 


이유를 곰곰 생각해 본다.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돈과 공포. 


비행기가 제대로 뜨지 않는 상황에서 표값은 지나치게 비싸다. 4인 기준 예전보다 2백만원 가까이 추가지출을 해야 했다. 조금 더 일찍 샀다면 나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차피 오십보백보다.


귀국 전 3일 이내에 코로나 음성 결과 확인서를 영문으로 발급받아야 하고 입국과 동시에 선별진료소에 들러 또 검사를 해야 하고 14일 자가격리를 (어쩌면 인당 140만원을 내고) 해야 하고 다시 돌아올 때에도 음성확인서를 들고 비행기를 타야 하며 검사비가 인당 10만원을 웃돈다는 것도 인정하면서 결정한 한국행이었다. 


4인 가족이니 왔다갔다에만도 어마어마한 돈이 드는 건 맞다. 그만한 지출을 감수할 만큼의 명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공포 앞에서 명분은 무릎을 꿇게 되었다. 한쪽은 어쨌든 환영하고 한쪽은 어쨌든 지금은 안 된다고 거부한다. 미친 것 아니냐는 말을 건너건너 들었다. 미친 건 이 세상이 아닌가? 


코로나가 독감과 다른 것이 있다면 계절을 덜 탄다는 것? 사람들은 독감에 걸린 사람에게 가까이 가지는 않을지언정 혐오하지는 않는다. 누가 독감에 걸렸다고 해서 그 사람이 어디를 갔고 누구를 만났고를 따지지는 않는다. 어서 낫기를 바래준다. 지금 이 상황은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다. 물론 독감과는 다르다. 확실히 다르다. 


온 세상이 공포를 조장한다. 충분히 검증기간을 거치지 않은 백신이 전세계에서 접종되고 있다. 독감 백신을 맞은 겨울마다 내내 몸이 좋지 않았던 경험을 한 나는 백신이 무섭다. 이 또한 조장된 공포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의심은 정당한 것이 아닌가? 어째서 이런 식인가? 왜 반대의견은 표면에 떠오르지 않는가? 천편일률적인 대응만이 보여지고 들려온다.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꽁꽁 묶는다. 모든 뇌를 점령당한 것 같다. 몹시 불안하다. 백신은 선택이라고 말하면서 백신 여권 말이 나온다. 방법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선택을 필수로 바꾸는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공포 조장은 사람들을 얽어매기 딱 좋은 방편이다. 


오늘 비행기표를 취소한다. 한번 다녀오면서 코로나 검사만 4번 이상을 해야 하는 귀찮음과 번거로움과 힘듦을 겪지 않아도 된다. 그냥 다시 계속 집에 머무르면서 책을 읽으며 지내도 된다. 가족을 만나면서 쟤가 혹시 코로나 바이러스를 묻혀오지 않았을까 의심을 받지 않아도 된다. 차라리 잘 되었다. 그러나 내년이 된다고 뭐가 얼마나 달라질까 싶다. 그 때가 되면 백신을 맞지 않는 사람을 혐오하겠지. 


이상하고 이상하고 이상한 세상이다. 








▼▼▽▽▼▼▲▲▼▼▽▽▼▼



























































































한국에 갈 거라고 소포로 받지 않고 동생 집에 모아둔 책들, 부치라고 해야 겠다. 책 올리다 보니 샀다고 글 안 쓴 책도 있고나. 다 무슨 소용이야. 어차피 계속 살 건데. 여기 있는 게 다인 것도 아닌데. 아아 이렇게 의미없다고 느껴지면 망한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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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3-31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한국행이 취소되었군요. 어쩌면 뵐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요. 아쉽네요.. ㅠㅠ

난티나무 2021-03-31 22:36   좋아요 0 | URL
제주에서 번개 하고 싶었단 말이지요.ㅋㅋㅋㅋㅋ
날씨는 어쩌자고 이렇게 좋단 말입니까. 슬퍼슬퍼.....ㅠㅠ

수이 2021-03-31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날 수 없어서 아쉬운 마음. 아 한국 들어오시면 하고싶은 것도 이야기 나누고싶은 것도 많았는데 곧 만날 수 있으리라 봐요. 올해 만나지 못하니 내년에는 볼 수 있겠지 하지만 이래저래 걸림돌들이 많네요. 아쉽지만 만남이 조금 더 뒤로 미루어졌다고 생각하고 우리 계속 같이 읽고 쓰고 그러도록 해요. 멀리 계시지만 든든하게 언니를 받쳐주는 이들이 여기 많으니까 힘내요 난티나무 언니.

난티나무 2021-03-31 22:39   좋아요 0 | URL
호시탐탐 기회를 노립니다. 작년부터 계획이 자꾸 어그러져서 이제는 무덤덤한 경지에 올랐다고 말하고 싶지만 ㅎㅎㅎㅎㅎ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힝.
정신이 딴데 가있을 일이 많아서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시간이 많은 3월이었는데 4월에는 좀 나아지려나요. 고마워요!!!!
 

















18장 성산업의 노예제에 대한 국제적 조망 (조 바인드먼) 


"우리가 이런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들에게는 다른 노동자들이 추구하는 최상의 노동조건을 누릴 자격이 없는 것일까? 이 직업을 선택할 권한을 박탈하고, 다른 분야의 더 나쁜 일을 하라고 강요할 수 있는 걸까? 가령 인도 유리 공장에서는 항상 열기와 연기와 소음에 둘러싸인 채 끔찍한 화상을 입을 위험을 안고서 일해야 한다. 노동자들에게 지옥과도 같은 이곳에서 일을 계속하면 기대수명이 10~15년 줄어든다고 한다. 생계형 농업에 종사하면서 하루 종일 뼈 빠지게 일하는 건 어떤가? 농사일을 끝내면 산더미 같은 집안일을 해야 하고 수확을 한들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나가는 것조차 쉽지 않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화장실 청소를 하거나 생산 라인에서 쥐꼬리만 한 돈을 받고 지루한 노동을 견디느니 차라리 성매매로 나서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또 성매매는 아이들을 학교에서 집으로 데려온 뒤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일 수도 있다." (394) 


그렇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성매매 여성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성매매 여성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 없는, 수많은 경우들이 존재할 텐데, '차라리 성매매로 나서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말은 '쉽게 돈버는' 일이라는 기존의 관념을 오히려 지지하는 것으로 비칠 우려도 있다. 성매매, 성노동, 이름을 어찌 붙이든 아직도 잘 모르겠는 분야다. 노동으로 인정하게 되면 현실 세계는 물론 인터넷 세상에서도 여성 상품화와 혐오가 더 심해지지 않을까. 지금도 엉망인데. 





21장 여성의 경제적 평등을 위한 전략을 향하여 (크리스 틸리, 랜디 알벨다) 


"아이러니하게도, 성평등과 관련된 다른 권리 - 재생산 선택권, 동성애자 권리 - 를 옹호하기 위한 행동에는 수십 만 명의 여성과 남성이 모이지만, 여성의 권리에 대한 가장 강력한 공격이 분명한 복지 '개혁' 문제에는 많은 이들이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 (439) 


복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가난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이 세상은 뿌리부터 잘못된 게 맞는 것 같다. 




22장 공적 투옥과 사적 폭력 (앤절라 Y. 데이비스) 


"또한 17세기 영국에서 가부장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는 여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입마개branks - '쨍쨍거리는 여자의 재갈scold's bridle' - '수다쟁이 여자의 재갈gossip's bridle'이라고도 불렀다 - 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보면 공과 사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449) 


부르르르. 




 24장 출발 지점에 대한 평가 (실라 로보섬) 


" 부엌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그곳에서 하는 일이 정치경제가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492) 


정치경제 공평하게 나누어 합시다. 가사노동에 관한 책을 좀더 읽어야 겠다. 일상 생활에서 가사노동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어떻게 세분화되고 어떻게 다시 통합되는지 파악하고 그것을 식구들에게 인식시키는 데에서 시작될 것이다. 




26장 자본주의와 인간 해방 : 인종, 젠더, 민주주의 (엘런 메익시스 우드) 


"젠더는 가장 저렴하다고 (그릇되게) 여겨지는 방식으로 사회적 재생산을 조직하는 방편으로 기능한다. -(주)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국가에서 지원하는 육아가 자본에 비용 부담을 덜 줄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연구가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 자본의 관점에서 보면, 출산휴가나 어린이집은 이를테면 노인연금이나 실업보험과 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 모두 달갑지 않은 비용을 수반할 뿐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본은 어떤 비용에든 적대적이다. " (527) 


"자본주의는 여성에게 특수한 모든 억압이 사라지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 - 반면 자본주의는 그 정의상 계급 착취가 사라지면 살아남지 못한다." (527) 


국가 지원 육아정책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말. 달갑지 않은 비용. 모두가 소모품. 활용가치가 없으면 버려지는 사회. 




27장 여성의 삶의 군사화 (신시아 인로) 


"여전히 남성 중심인 군대에서 제한된 수의 여성이 병사로 받아들여질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성매매 여성, 강간 피해자, 어머니, 부인, 간호사, 페미니스트 활동가 등으로서 여성들이 겪는 복잡한 군대 경험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여성의 군인 역할에만 호기심을 가지는 것은 다른 많은 여성들의 군사화를 정상적인 것으로 다루는 셈이다. 이런 순진한 가정에 빠져버린다면 나 자신의 호기심 역시 군사화되고 말 것이다. 


무관심은 일종의 정치적 행위다." (548) 


옳은 말씀. 날카로운 시각.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인용구 뒷부분도 다 가져오고 싶었지만 너무 길다. 군대, 군사주의에 관한 글을 더 읽고 싶다. 한국의 경우 저 여성 리스트에 군부대 공연 아이돌도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또 더 있겠지.ㅠㅠ 




31장 페미니스트 입장론을 다시 본다 (낸시 하트삭) 


"안잘두아는 두 현실 속에 살면서 접촉면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경험뿐만 아니라 표면적인 현상에서 심층적인 현실의 의미를 보는 '능력', 즉 "표면 아래에 있는 심층 구조"를 보는 능력을 언급한다. 이어 그녀는 "가장 많이 닦달받는 이들이 가장 강한 능력을 갖게 된다"고 주장한다. "여성, 온갖 인종의 동성애자, 유색인, 추방당한 자, 박해받는 자, 주변으로 밀려난 자, 외국인 등이 그들이다." 이런 능력은 두 세계 사이에 낀 사람들이 부지불식간에 획득한 생존 전술이지만 "우리 모두에게도 잠재해 있다." " (657) 





35장 환경정의의 확장 : 아시아계 미국인 페미니스트들의 기여 (줄리 시) 


"그렇지만 실상은 정반대로, 미국에서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최대 단일 집단은 군대다. 또한 부자들은 빈민들보다 더 많은 자원을 소비한다. 미국은 세계 인구의 5퍼센트를 차지하면서 세계 자원의 36퍼센트를 사용한다. 미국인 1명이 평균적으로 사용하는 에너지 양은 일본인 3명, 멕시코인 6명, 중국인 12명, 인도인 33명, 방글라데시인 147명, 에티오피아인 422명이 사용하는 양과 같다. 외국인 혐오론에 빠진 이 '환경론자들'은 부자 일반, 특히 미국인의 자연자원 낭비를 줄이는 대신 인구를 줄이기를 원한다 - 이민자들이 환경 악화의 주된 원인이 아닌데도(아니, 유의미한 요인조차 아닌데도) 유색인 이민자들을 줄이려고 한다." (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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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3-28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18장 막 다 읽고 좀 짜증이 나서 난티나무님 서재 다시 왔어요. 이 부분 여기에서 보았던 기억이 나서요. 난티나무 님이 덧붙이신 의견에 동의합니다. 아오 왜이렇게 짜증이 나죠?
전 또 읽으러 갑니다. 슝-

2021-03-28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건 지향 6개월째. 

오늘의 화두는 (확대)가족 내의 비건지향자,이다. 이때의 가족은 나만 빼고 모두 육식주의자. 

일요일 점심에 모처럼 고기를 먹겠다고 했다. 나는 내가 먹을 밥을 미리 준비해서 옆지기가 식사 준비(채소 손질)를 하고 있는 옆에 앉아 먼저 먹었다. 고기를 볶기 시작할 무렵, 식후 산책을 하고 오겠다고 집을 나섰다. 점심을 먹고 바로 산책을 나가는 것이 습관이 되기도 했고, 고기 볶는 냄새를 견딜 수 있을지 몰라서였기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옆지기는 식탁의 빈자리가 마음에 걸렸다고 말한다. 앞으로 고기를 먹을 때는 이렇게 한자리가 비게 되는 거냐고, 이런 모습으로 우리 식탁의 모습이 변해가는 거냐고. 밥 먹을 때는 꼭 모두가 식탁에 앉아 있어야 하는 거냐고 되물을 수밖에. 밥 먹는 속도가 느린 나는 저녁마다 혼자 남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한 시간 준비한 식사를 10분만에 먹어치우고는 먼저 자리를 뜨는 사람들은 누구였지? 어이는 어디 가고 맷돌만 있는 셈이구만. 

고기 냄새를 견디지 못하는 내가 그걸 참고 앉아 있어야 하는 이유는 없지 않나? 내가 그걸 보고 앉아 있어야 하는 이유는 없지 않나? 이런 의문은 네 식구의 식사에서는 오히려 쉬운 문제가 된다. 나는 내 주장을 할 수 있다. 가족을 확대해 보자. 모이면 고기를 구워 먹는 게 당연한 양쪽 집 식구들, 저는 고기를 먹지 않아서요, 고기 냄새를 못 맡겠어요, 하고 빠질 수 있는가? 이 지점에 이르면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 같다. 더군다나 나는 외국에 사는 딸이고 며느리다. 자주 보는 것도 아니고 2~3년에 한번 보는 게 다인데, 매달 매주 보는 것도 아닌데, 그 정도는 니가 맞춰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 말은 동생이 한 말이다. 다같이 고깃집에 가자고 하면 어쩔 테냐, 못 간다고 빠질 수 있느냐, 가서 다른 거 먹으면 되지 않느냐. 이 논리는 다른 대화에서도 자주 적용된다. 얼마나 해봤다고, 멀리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지, 현실을 모르는 소리, 자주 하는 거 아니니 눈 딱 감고 그냥 해. 옆지기도 비슷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본가에서 고기 먹자 하면 어떻게 할 거냐 묻는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되묻는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고기 굽는 냄새를 참으며 그 자리에 있기는 싫다. 고깃집엘 갈 거면 나는 빠지겠다고 했다. 그게 맞는 거 같았다. 집에서 고기를 굽는다면 나는 외출을 하겠다. 과연 이것이 가능할 것인가? 친정 식구들이 모여 고기를 구워먹는다고 하면, 외출하겠습니다 할 수 있다. 욕은 좀 들어먹겠지만 그걸로 끝일 테고. 장소가 옆지기 본가로 바뀌면 이 장면은 어떻게 연출될 것인가? 과연 나는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외출하겠습니다 할 수 있을 것인가? 집에서의 모든 식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가족을 위해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면서, 왜 그 방향을 거꾸로 돌리지는 못하는지 궁금하다. 나의 위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 


확대가족 안에서 비건지향자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무지 궁금해서 검색도 조금 해보았지만 딱히 나오는 게 없다. 비건 까페에 가입해야 하려나? 도대체 어떻게들 살아가고 계신 건가요? 좋은 아이디어 있으시면 좀 던져주세요. 이런 고민 있는 비건 관련 책도 아시면 좀. 


*** 

여기까지 적어두고 <비건 세상 만들기>를 읽었다. 뒷부분 슬렁슬렁 넘겨보니... 

이론과 증거를 들이대도 꿈쩍하지 않을 사람들을 회유(?)하기 위해서는 일단 숙이고 들어가라,는 요지의 글들. 윤리를 내세우지 말 것, 주장하지 말 것, 설득하려 하지 말 것, 판단하지 말 것, 상대방을 이해할 것. 대나무 말고 풀이 되라는. 좋아요 좋아. 그렇게 한다고 치자. 같이 고깃집 간다. 그런데 정말 생고기 굽는 냄새는 못 맡겠단 말이다. 중간에 뛰쳐나오는 것보다 내가 안 가는 게 낫지 않나? 고기 먹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다. 못 먹고 못 맡는 사람이 있으니 중간 어디메쯤에서 타협하자는 거지. 양념한 건 좀 덜하니 그럼 불고기집이나 아니면 중국집, 이런 데로 갈 수도 있지 않은가? 아주 나중에 만약 내가 그마저도 정말 못 가겠다고 뻗대는 때가 오면, 그때는 어찌 할 텐가? 


오늘 읽은 두꺼운 빨간 책에 이런 문장이 나왔다. 

"목표는 의제에 남겨두고, 현존하는 제약 안에서 그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부엌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그곳에서 하는 일이 정치경제가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하나의 억압된 범주에서 다른 쪽으로 건너뛰는 식으로 체제를 공격하지는 못한다."" 


하아. 모든 노력이라. 대나무가 되어 들이받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막상 뻔히 드러나는 내 위치에 서서 안 쪼그라들고 들이받을 자신은 없고. 안 그래도 미운털(?) 박힌 둘째 며늘 이제는 꼴값 한다는 소리까지 듣게 생겼다. 그 꼴값, 아드님이 같이 하면 좀 나을까요. 더 가슴 아프실까요. (그럼 또 나만 나쁜x?)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노력한다. 결론은 이거지 싶다. 그런데 정말 내가 노력해야만 하는 걸까, 정말 그런 걸까. 



















"'나는 옳은가?' 혹은 '이것은 나의 진리인가?'는 중요한 질문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은 효과적인가?'이다." (178) (- 방법론적인 면에서 글쓴이의 주장의 일부를 내 경우에 비추어 가져온 문장이므로, 전체 책의 내용이라 볼 수 없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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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생존의 이야기 : 계급, 인종, 가정폭력 (재니스 하켄)


"벨 훅스는 '매 맞는 여성'이라는 용어조차 여성들의 수많은 경험을 일차원적인 규정으로 환원한다고 주장한다. 억압된 공동체에서 경제적 폭력을 비롯해 일상적인 고통에 시달리는 여성들과 매 맞는 여성들을 분리하는 선을 긋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극단적인 폭행 사례를 중심으로 결집하는 가정폭력 반대 운동은 여성의 신체와 정신에 일상적으로 가해지는 비교적 극적이지 않은 폭행을 과소평가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 (p.217)  


"여성 폭력은 남성 폭력에 비해 훨씬 드문 데다 파괴적인 면이 덜하기야 하지만, 페미니즘 문헌에서 '핵심적인' 여성적 자아의 진정한 일부가 아니라 고색창연한 과거로 재현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폭력이 대개 방어적인 반면, 남성 폭력은 흔히 공격적이며 여성에 대한 지배를 확립하는 수단이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jhonson 1995). 이런 입장은 여성이 품는 분노의 뿌리 깊고도 다양한 원천을 간과해버린다. 실제로 가정에서 남성이 보이는 수동성이야말로 공공연한 폭력 행위보다도 더한 여성의 분노를 일으키는 원천이며 만성적인 문제이다." (p. 218)


인용구의 마지막 문장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이다. '수동성'! 

신체적 폭력에 비해 잘 드러나지 않고 증명할 길 없는 정신적 폭력에 대한 연구도 많아지면 좋겠다. '가정폭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글이었다. 




11장 모성과 섹슈얼리티의 이해에 관하여 : 페미니즘 - 유물론 접근법 (앤 퍼거슨) 


"우리는 애정적 유대를 육체보다는 감정적인 것으로, 성적 유대를 감정이나 사회보다는 육체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사실 이런 생각은 서구의 이원론적 사고 패턴 때문에 초래되는 왜곡이라고 주장하고자 한다. 성/애정 에너지를 애정적/정신적/특별히 물리적이지 않은 상호작용에서부터 물리적이지만 특별히 애정적이지 않은 성기 접촉까지 아우르는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이해하는 게 더 도움이 될 것이다." (p.260) 


이 인용구를 찍어 옆지기 톡으로 보내주었다. 무슨 말인지??? 라는 답이 돌아왔다. ㅠㅠ




"폴브레는 남성에 대해 여성이, 자식에 대해 부모가 착취당하는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 가정 경제 안에서 임금노동과 비임금노동을 비교하는 경제 모델을 개발하는 중이며, 델피는 남성이 지배하는 가정 경제는 이혼한 뒤에도 지속된다고 주장한다. 어머니들이 훨씬 더 많은 직간접적 양육 노동을 떠맡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들 대부분은 양육비를 충분히 지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어머니인 여성에 대한 남성의 착취는 이혼과 더불어 증가한다. 따라서 독신모 가정이 늘어나는 것은 단순히 남편-가부장제husband-patriarchy의 쇠퇴가 아니라 새로운 가부장적 성/애정 형태의 증가로 보아야 한다. 우리가 '독신모 가부장제single mother patriarchy'라고 부르는 이 형태는 가족 중심적인 가부장 형태에서 비개인적인 국가 가부장제 형태로 변화하는 것과 연결된다." (p.267) 


옳으신 말씀. 




12장 가부장제와 교섭하기 (데니즈 칸디요티) 


"고전적 가부장제 아래서 여자아이들은 무척 어린 나이에 혼인을 통해 남편의 아버지가 이끄는 가족으로 넘겨진다. 그 집에서 여자는 모든 남자뿐만 (아니라,라는 단어가 본문에서 빠졌다) 나이 든 여자, 특히 시어머니에게 종속된다." (278) 


"... 어린 신부는 사실상 가진 것 하나 없이 남편의 집안으로 들어간다. 부계제에서 자기 자리를 확고히 하려면 아들을 낳는 수밖에 없다. 

부계제는 여성이 하는 노동과 낳는 자손을 모두 독차지하며, 여성의 노동과 생산에 대한 기여를 보이지 않게 만든다. 가부장적 확대가족에서 여성의 생애주기라는 것은 어린 신부일 때 겪었던 박탈과 곤경을 나이가 들어 며느리에게 통제와 권위를 행사하는 것으로 보상받는 식이다. 여성이 가족 안에서 누리는 권력의 순환적 성격과 시어머니의 권위를 물려받으리라는 기대 때문에 여성들 스스로 이런 형태의 가부장제를 철저히 내면화하게 된다." (279) 


어머니와 시어머니의 삶을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거부할 수밖에 없는 마음, 대면하고서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용기없음, 돌아서서 억울해하는 분노, 다 그러고 사니까, 다 그래야 하니까,를 들이받고 싶은 마음 들이 엉킨 채 나는 그냥 서 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채로. 




14장 여성 노동자와 자본주의 : 지배 이데올로기, 공통의 이해, 연대의 정치 (찬드라 탈파드 모한티) 


"여성을 가정주부로 정의하는 것은 또한 여성 노동의 이성애화heterosexualization를 암시한다 - 여성들은 언제나 남성과 혼인관계를 통해서만 정의되는 것이다. " (313) 


뜻을 검색해 본다. 신경쓰지 않고 살다가 단어의 뜻을 찾아보면 뜻밖으로 놀라게 되는 일이 잦다. 단어를 정의내리는 일에도 이미 사회적 관습과 차별이 존재한다.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을 읽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 가지가 뻗는다.)

프랑스어로 가정주부, 전업주부를 가리키는 말은 femme au foyer 이다. 직설적으로 풀이한다면 집의 여자, 가정의 여자, 쯤이 되겠다. 가정주부의 뜻은 '한 가정의 살림살이를 맡아 꾸려 가는 안주인'이라 되어있고, femme au foyer의 뜻은 '커플의 경우 집안일이라고 명명되는 모든 것(자녀교육을 포함한)의 대부분을 하는 여자'라고 위키백과에 나온다. 외국인으로 서류를 작성할 때 직업을 적는 란에서 가정주부에 체크하는 일, 직업을 쓰는 란에 가정주부라고 적는 일이, 그동안 당당하지 못했다. 쪼그라들었었다. 뭔가 직업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없어서 부끄러운 기분. 어딘가로 출근하지 않고 집에 있으면 왠지 안 되는 것 같은 기분. 이런저런 직업들이 늘어서있는 목록 맨 끝에 직업없음과 같은 위치를 아니 더 아래를 차지하는 가정주부 항목. 아예 체크할 칸이 없는 가정주부 항목. 이제는 당당해지기로 한다. 그래야 한다. 직업으로서의 '가정주부'라는 말을 다른 단어로 바꾸고 싶다. 어떤 표현이 좋을까? 




16장 환상의 현실화 : 마킬라 작업장에서 이루어지는 여성과 남성의 생산 (레슬리 샐징어) 


"따라서 여성 노동자들이 공장에 존재하기 때문에 전 지구적 생산이 가능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정반대로, 여성 노동자들은 전 지구적 생산의 최종 완성품이다. 젠더는 확실히 세계화의 중요한 측면이지만, 저비용 생산을 가능케 하는 것은 현실에 존재하는 여성들이 아니라 '여성성'이라는 수사다." (370) 


노동 현장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도 적용이 되는 말 같다.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복잡한 사회와 세계가 어떻게 숨통을 조이고 있는지를 점점 더 많이 보여줘서 때로는 머리가 깨질 것 같다. 그냥 눈물이 쏟아지기도 한다. 공감 능력이 두 배 세 배 열 배 증폭되는 걸 느낀다. 그러나 늘... 그뿐이다. 나는 최소한의 행동을 하며 살 것이고 주변 사람들은 나를 계속 이해하지 못할 확률이 높으며 나는 나 자신을 계속 의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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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3-13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옆지기님에겐 기초적인 책부터 찍어보내 주셔야하지 않을까요? 이책은 아무래도 고난이도 인듯해요.😆

난티나무 2021-03-13 20:27   좋아요 1 | URL
하핫! 저 인용구가 어려운 말이 아니지 않겠습니꽈??? ㅎㅎㅎ 제가 늘 하는 말이기도 하고요.^^;; 안 와닿는가 봅니다. ㅠㅠ

2021-03-13 2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13 2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13 2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13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1-03-14 0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성이 가족 안에서 누리는 권력의 순환적 성격과 시어머니의 권위를 물려받으리라는 기대 때문에 여성들 스스로 이런 형태의 가부장제를 철저히 내면화하게 된다.˝ 이말이 콕 와닿네요. 그래서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농담처럼 얘기되어지는데 이말에 들어있는 억압구조의 순환을 끊어낼 필요가 절실하다는 생각을 또 잠시 하게 되요.

난티나무 2021-03-14 04:59   좋아요 0 | URL
언제쯤 끊어지게 될까요. ㅠㅠ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이 끊어내고 싶어한들 아래로는 그래도, 할 수 있는 일, 위로는 안 되는 일.... 정녕 위로는 안 되는 일일까요. 아마도 그렇겠죠..ㅠㅠ

라로 2021-03-14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계속 문자 보세 주세요!! 그 뭐야요 한결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이 돌에 구멍을 낸다고 하잖아요. 옆지기 님께 계속 저런 문장을 찍어 문자를 보내다 보면 어느새 구멍이 뚫리지 않을까용??^^;; 화이팅, 난티님!!!!

난티나무 2021-03-14 14:26   좋아요 0 | URL
라로님 댓글에 답글 안 달았지!!! 생각나서 들어왔더니 라로님이 또 댓글을 남겨주셨네요. 동시생각!!! ㅎㅎㅎㅎ
책도 읽히려고 무지 애쓰고 있습니다.^^;;; 문자도 계속!!!! 👌🏻
 













최진영, <해가 지는 곳으로> 


2017년 발표된 소설인데 바이러스 이야기가 나오니 지금의 여기가 겹쳐졌다.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건 인간의 광기라는, 그 말에 몸서리치며 동의. 

플래그를 붙인 부분을 옮기려고 하나씩 펼쳤다가 그만두기로 한다. 때로 책을 읽을 때 밑줄이 강박으로 작용할 때도 있는 법이다. 그어야 해, 옮겨야 해. 대충 붙여놓은 포스트잇을 제대로 자리잡도록 해두는 것으로 만족한다. 다음에 펼칠 때 다시 눈에 들어오도록. 

지금의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다. 나중 다시 읽을 나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절박한 상황에서는 모든 생각의 기준이 달라질 테니까. 

<눈먼 자들의 도시>도 생각나고 <시녀 이야기>도 생각나고 <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자들>의 몇 장면도 떠올랐다. 강간,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강간... 꼭꼭 씹어 읽으려고 침대 옆에 꽂아둔 최진영의 다른 소설 <이제야 언니에게>를 꺼내온다. 성폭행을 당한 고등학생의 이야기. 절반쯤 남겨둔 소설을 단숨에 읽었다. 아프다. 아픔과 슬픔과 절망 속에서 스스로 희망을 찾아나가는 흐름은 비슷하다. 글자들을 써내려갔을 작가의 시간이, 그 속도가, 느껴졌다. 나를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가족조차도 위로가 되지 않음을 보여줘서 좋았다.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연대의 필요를, 중요성을, 힘을! 손을 잡을 수 있는 사람들, 잡은 손을 놓지 않을 사람들. 도리와 미소에게 지나와 건지가 있어서 다행이었다.(해가 지는 곳으로)  제야에게 이모가 있어서 다행이었다.(이제야 언니에게) 아무도 없는 누군가들에게 누군가가 옆에서 손을 잡아주면 좋겠다. 덜 아프기 위해, 덜 절망하기 위해, 나도 잡을 수 있는 손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해 본다. 내가 떠올린 사람들이 내 손을 놓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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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2 1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12 1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