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지> 는 서문부터 읽기가 힘들었다. 내용이 힘들었던 게 아니라 문장이 힘들었다.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혹 번역의 문제인가 싶을 정도로 파악이 어려웠다. 이런 느낌은 4장을 읽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로 줄어들지 않는다. 왤까. 집중이 안 되는 이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임신 중지'는 단순히 임신 중지 하나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과 연결되어있는 모든 것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따라서 나는 한 문장을 읽으며 수많은 생각을 한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장들을 모두 적으면 그 양이 어마어마할 것같다. 화가 나니 욕도 하고 원망도 저주도 한다. 이노므 썩어빠진 세상, 여자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오늘도 억압받으며 생존하고 있는 여자들이 한꺼번에 한덩어리가 되어 생각 속으로 들이닥쳐서 가슴이 터질 듯하다. 피임,이라는 단어 하나에 얼마나 많은 생각이 떠오르는지, 남자들은 모를 것이다. 오늘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몇 문장 읽지 않고 생각에 잠기느라 다음 문장을 건성으로 읽고 다시 되돌아가 읽고 그러느라 집중을 못 하는 거 아닌가 하고. (가끔 한글책을 읽는데도 한번에 이해가 안 되는 경험은 참 하고 싶지 않은데 이럴 때마다 내가 책을 제대로 읽는 거 맞나, 참 못 읽는구나, 의구심이 모락모락...) 


책 중반을 넘어서자 조바심이 솟구친다. 짬짬이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해두기는 했지만 글을 쓰기에는 턱도 없는 생각 쪼가리들이고, 그것들도 아직 어떤 식으로든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임신중지를 이야기할 때 항상 튀어나오는 질문 중 하나. 태아는 언제부터 생명인가? 여기에 대답하기란 참 곤란하고 어렵다는(예전부터도 그랬다)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 지금은, 이 질문 자체가 좀 황당하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문득 떠오르는 이미지들. 에일리언이 몸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여성, 시고니 위버의 얼굴. 아무 생각없이 프라이팬에 툭 깨뜨려 구워먹는 달걀.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이런 이미지들이 떠오르는지는 좀더 생각해봐야 겠다. 아니 어떤 연관이 있다고는 생각했는데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에 대해. 아무튼 어려운 질문임에는 틀림없는데 왜 우리는 이 질문이 어렵다고 생각하는지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지나친 인간중심주의, 새생명중심주의, 이런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얽히고설킨 생각들을 풀어내는 것도 힘든 일이라 책을 다 읽고 리뷰를 하나 쓰기도 어렵겠지만, 리뷰 하나로 그칠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니어서, 일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써보자 하고 들어온 것인데... 역시 산으로 가는군. 오늘은 일단 두서없는 생각 중 하나를 던져보자. 


피임, 임신중지, 출산... 이 모든 것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섹스다. 이성애중심사회에서 섹스란, 이성간의 삽입섹스이다. 재생산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서 가장 핵심이면서 가장 바뀌기 어려운 이데올로기이면서 없으면 못 산다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바로 삽.입.섹.스. 우리는 섹스를 바로 알아야 한다. 모든 문제는 우리가 섹스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는 사실에서 온다. 우리는 환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를 아주아주 단순화해서 바라본다고 치고 우리가 그동안 '믿어왔던' 삽입섹스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우친다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다. 좀은 유토피아적 발상일 수도 있는데, 삽입하지 않으면 임신은 없다. 아 물론 질외사정을 한대도 임신이 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일단 제쳐두고. 그러면 문장을 조금 바꾸자. 삽입하지 않으면 임신은 거의 없다. 삽입을 원하는 건 남성이지 여성이 아니다. 여성은 삽입 없이도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는 존재들이니까. (여성도 원한다고 하시면 그건 세뇌의 결과라고 말씀드리겠어요... 남자도 여자도 세뇌...) 여기서 또 질문이 나온다. "삽입섹스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러니까 삽입섹스를 원하는 남성들이 그것을 통해 얻으려고 하는 진짜로 원하는 그것은 무엇인가. 아니 잠깐, 그럼 남성은 삽입하지 않으면 오르가즘을 못 느끼나? 그럴 리가. 그러니 섹스를 위계, 권력의 문제라고 하는 거지 않아. 이건 단순히 몸과 몸이 어쩌구저쩌구 하는 사랑 어쩌구 행위 어쩌구인 것만은 아닌 것이다.) 


두서없다고 했지만 진짜 막 두서없는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으므로 이쯤에서 그만두자. (너무 두서없어서 위의 한 단락은 괄호 안에 넣었다.) 그러나 임신중지 이전에 피임이 있고 피임 이전에 섹스가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주체인 것처럼 내세워지는 건 여성이고 거기에 따르는 책임감, 죄책감, 수치심 등 온갖 감정고난을 겪는 것도 여성이다. 남성은 어디에 있는가? 모든 책임과 결과는 여성에게 부담시키고 피임에도 임신중지에도 출산에도 이어지는 육아에도 기타등등 어디에도 없는 남성은 누구인가?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 


(저는 잠시 밖에 나가서 찬바람을 좀 쐬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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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8-18 20: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오늘 1장까지 읽었는데 읽을수록 참 복잡한 문제구나 싶습니다. 엄마의 권리가 중요한가, 태아의 생명이 중요한가… 선택이 정치와도 연결되면서 더 문제화시키는 이유도 있는 것 같구요. 정작 남자들은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 깊은 고려를 하지 않으니… 그저 섹스만을 부르짖는게 다인지. 난티나무님 남은 분량도 힘내세요! 아자!!!

난티나무 2022-08-19 00:46   좋아요 1 | URL
그렇죠? ㅠㅠ 늠 복잡하고 어려워요… 읽을수록 복잡해지는 느낌이지만 끝까지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자!!!

바람돌이 2022-08-18 2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늘 읽기 시작했는데 서문 몇장 안 읽고도 분노가 막 솟구쳐서 미치겠어요. 좀 과하게 감정이입이 되고 있는듯요. ㅠㅠ

난티나무 2022-08-19 00:47   좋아요 1 | URL
서문을 그리 길게 쓴 이유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계속 딥빡의 연속입니다.

공쟝쟝 2022-08-19 0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요한 질문입니다. 삽입 섹스란 무엇인가. 아.

난티나무 2022-08-19 18:09   좋아요 1 | URL
자매품 : 사랑이란 무엇인가, 도 있습니다. ㅎㅎㅎ
에바 일루즈 읽고 계세요? 저도 조만간 읽어야 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어요.^^

다락방 2022-08-19 08: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어제 친구에게 한 말이 여기 그대로 들어있네요. 삽입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게 누구인가, 라는 물음에 당연히 남자잖아요. 여자는 말씀하신대로 삽입이 아니어도 쾌락을 느끼는 경우가 많고, 사실은 삽입보다 다른 식으로 쾌락을 느끼는 경우가 훨씬 더 많죠. 질을 통한 삽입이 정말로 지스팟을 건드려서 오르가슴을 느끼는 경우가 여자들에게 흔한 일은 아니니까요. 살면서 한 번도 오르가슴을 느껴보지 못한 여자들도 많고 한 번 느꼈다고 해서 계속 느끼리란 법도 없고요. 여자들은 클리토리스 만으로도 가기도 하잖아요? 그러니 여자들이 설사 삽입을 좋아해도 그러나 삽입이 꼭 필요한 건 아니다,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성적 쾌락을 위해서라면 삽입이 아니어도 되고, 삽입이 아니어도 된다면 역시 남자가 아니어도 된다는거죠. 난티나무 님이 ‘세뇌‘라고 말씀하신 건 아마도 이부분에서 올 것 같아요. 남자가 아니어도 된다는 걸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에브리바디 아니까 오히려 성적 환상을 여러군데서 불러일으키고 아름답게 묘사하려는게 아닐까 싶은거죠.

다만 남자는 반드시 삽입이어야만 한다, 그들에겐 그것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다못해 혼자 하는 경우에도 반드시 어딘가에 넣잖아요. 제가 싫어하는 영화에서처럼 복숭아에 넣기도 하고 애플파이에 넣기도 하고 손으로 해도 손으로 감싸쥐어서 삽입하게 만들죠. 저는 여자들에게는 세뇌가 작용했다고 보지만 남자들에게는 세뇌가 주입된게 아니라 남자들은 세뇌를 가하는 쪽이라고 생각해요. 필요해서요. 자기들은 삽입이 반드시 필요해서요. (여성괴물 에서 읽었던 걸 생각해보면, 남자들은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열등감을 분명히 가지고 있고, 그것은 삽입 섹스로 표출되기도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게 이야기를 시작하니까 자꾸 길어지는데요, 왜, 자신이 레즈비언 이라고 밝혔던 여성 군인에게 ‘남자 맛을 알려준다‘며 강간한 남자 군인이 있었잖아요. 저는 작고도 개인적으로는 그런 식의 세뇌가 작용하는 것 같아요. ‘니가 여자인데 남자를 안좋아해? 고추 맛을 몰라서 그래‘ 그거 그렇게 대단한게 아닌데 마치 대단한 것인것 마냥...

저는 그래서 레즈비언 이라고 정체화 하는 여성들과 그것을 글로 풀어내는 사람들, 그리고 여성에겐 질 오르가슴이 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사실 저는 희박하지만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의 쾌감에 그다지 남성이 필요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의 글이 점점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걸 남자들은 너무나 너무나 싫어하겠지요. 자기들의 삽입 횟수와 기회가 줄어들테니까요. (너네도 삽입 필요하다니까?!) 삽입섹스에 대한 제 취향이 어떤가와는 별개로 사회가 전체적으로 삽입에 좀 과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고는 생각해요.

난티나무 2022-08-19 18:40   좋아요 2 | URL
프랑스 소설 <프랑스적인 삶>에서 읽은 부분 기억납니다. 그 남자는 어머니가 냉장고에 다음날 먹으려고 마늘 박아 재워둔 소고기덩어리를 꺼냅니다... 다음날 남자는 계속 손에서 나는 마늘 냄새를 맡고... 그집 식구들은 그 고기를 구워서 나눠 먹었지요 아마...@@

다락방님이 말씀하신 복숭아 애플파이 손 등등 그리고 소고기덩어리, 이런 재현이 저는 남자들을 세뇌시킨다고 생각해요. 좀 유하게 말하자면 사회화죠. 남자의 섹스에는 반드시 성기를 넣을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남자들 역시 섹스에 대해 전혀 배울 기회가 없고 정말로 섹스가 무엇인지 고민해본 적도 없는 게, 재현되는 이미지들이 온통 삽입섹스잖아요. 그것밖에 알지 못해요. 그런 의미에서 남자들도 세뇌당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방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도록 만든다는 점에서요. 그리고 여기서 역시 사랑, 이 따라나오는데 사랑=섹스, 이 공식도 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흔히들 생각하는, 사랑하면 섹스하는 거다, 이런 거요. 에 또 여자의 몸은 전체가 성감대라는데 왜 남자의 몸은 그렇지 않을까요? 정말 성기 말고는 쾌락을 느낄 수 있는 신체부위가 없는 걸까요? 삽입만이 유일한 해결책(?)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아... 이 이야기는 어딘가 좀더 조용한 곳에서 더 자세히....ㅎㅎㅎㅎㅎㅎㅎㅎ 여기서는 더 말하기가 거시기하네요.ㅋㅋ 다만 이것은 제 머릿속 생각이라는 점만....ㅎㅎㅎ

남자들이 세뇌를 가하는 쪽이라는 말씀도 맞습니다. 일단 삽입섹스가 정상규범이라고 사회화가 되어버린 상태에서 그것이 가지는 의미를 남자들이 아는 거죠. 예를 들어 말씀하신 것처럼 성기가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안다는 것. 아무것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알려고 하지 않고 알아도 변하려 하지 않겠지만) 그 ‘정상규범‘만을 반복하면서 대대손손 같은 짓을 반복해오는 것도 세뇌 아닐까요. 남자들이 여자들만을 세뇌시키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 스스로도 그렇게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세뇌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제가 요즘 세뇌라는 단어에 꽂혔나 봅니다.ㅎㅎㅎ

질 오르가즘의 신화, 저도 이게 널리 알려지고 이야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껏 ‘세뇌당한 채‘ ^^;; 살아온 걸 생각하면 너무 억울하고요. 관련 책도 나중에 함께 읽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락방 2022-08-20 10:22   좋아요 2 | URL
저는 삽입만이 남성들에게 유일하기 때문에 세뇌한다고 생각하는 쪽인데요, 그러니까 성기 말고는 쾌락을 느낄 수 있는 신체부위가 없다는 쪽입니다. 왜냐하면,

데이트폭력의 시작인 가스라이팅도 열등감이나 죄책감, 불안함에서 시작되잖아요. 이 여자가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 라는 마음은 상대를 후려치기 시작하죠. 너같은 여자를 사랑하는 건 나 밖에 없어 라든가 하는 식으로 말예요. 만약 남자가 자기 스스로 이 여자에게 맞는상대이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면 상대를 세뇌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겠죠. 그건 여성혐오가 일어나는 방식도 마찬가지 잖아요.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없는 남성들은 ‘이 아이가 내 친자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그건 사회적으로 여자들에게 혼전 순결을 강요했죠. 여자는 내가 낳은 아이가 내 친자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없잖아요. 대부분의 친자확인은 남성들이 하죠.

저는 삽입섹스의 세뇌도 바로 이런 지점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해요. 삽입해야만 내 자식 출산이 가능하고 삽입해야만 쾌락을 느끼는데, 그런데 여자들이 삽입 아닌 다른 것들을 하거나 삽입을 거부할까봐 열등감과 불안함이 삽입섹스를 강조하는 문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난티나무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남성들도 미디어의 재현들로 삽입을 계속해 보게 되지만, 그것은 삽입을 멈추지 말라는 세뇌 쪽이라면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것은 ‘너네들은 다른거 생각하지마 삽입이 최고야!‘ 로 다르게 작동한다고 보여지고요. 그러니까 저는 난티나무 님이 하신 말씀에 대부분 같은 생각이고 동의하지만, 그들이 삽입밖에 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로 생각하고 있는거죠. 만약 남성들이 삽입이 아닌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다른 식으로도 성적 쾌감을 가져갈 수 있었다면, 그래서 굳이 삽입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여성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면, 삽입에 대한 세뇌는 아예 시작도 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상대적 열등함을 감추기 위한 것이 세뇌와 폭력의 시작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여기에 대해서도 계속 책을 읽고 생각을 더 해보긴 해야 할 것 같아요.

난티나무 2022-08-20 18:32   좋아요 2 | URL
다른 식으로 성적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면 세뇌가 시작되지 않았을 거라 하셨는데 그렇더라도 세뇌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락방님이 말씀하신 원인들, 그것들 때문에요. 그렇기 때문에, 그 원인들 때문에, 충분히 다른 방식이 있을 수 있는데 가장 큰 쾌감을 느끼는 성기 하나에 그걸 몰아버렸고 거기에 집중하게 만들었다고 저는 생각한 거죠.(퇴...퇴화?) 성기와 삽입섹스로 만들어지고 대표되는 남성성과 남성권력을 위해 필요했던 존재가 여자라는 생각... 어찌 보면 같은 말처럼 들리기도 하네요... 지금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있지만 또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죠.^^ 원인에 대해서는 저도 완전 같은 생각이고요. 다만 남성의 ‘몸‘에 대한 생각만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이것도 완전히 다르지는 않은데...

제가 다른 방식이 있다고 믿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는데요... 이상했어요. 여자는 이런데 남자는 오직 성기밖에 없다고? 페니스를 자극하는 것과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는 것은 사실 다를 것 없잖아요. 둘 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반응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 의지란 또 어디까지 의지라고 할 수 있는지도 궁금하긴 합니다만...) 그런데 남자는 참을 수 없어지고 여자는 참을 수 있다 혹은 욕망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세뇌라 생각하는 거죠. 어떤 예능에서 한 남자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카메라가 있는 방에서 사랑하(한다고 믿)는 여자와 침대에 누웠는데 옆에서 여자가 가볍게 터치하고 말하고 하니까 나도 남자라고, 이러면 못 참는다고, 이런 식으로 말하더라고요. 마치 발기한 페니스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것처럼. 그게 웃기다는 거예요. 못 참는 게 어디 있나요? 사랑하는 사이의 섹스에서라도 그건 가능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어쨌거나 성기를 자극하지 않았는데도 흥분(?)할 수 있다면 같은 방식으로 쾌락에도 이를 수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요.(심지어, 그런데 꼭 쾌락의 끝까지 도달해야 하나? 이런 의문도 들어요...@@) 여자의 오르가즘처럼 남자의 오르가즘도 더 연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르는 게 너무 많네요.@@ (남자에 대해 남자들이 연구하지 않는 것도 남자들의 특권이자 권력인 거죠. 연구하면 불리하니까! 이걸 왜 다 여자들이 해야 되냐고!!!) 아 왜 여자들이 다 해야 되냐고, 를 쓰다 보니... 그래서 섹스에 대한 교육도 일찍부터 새롭게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명이라도 남자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남자가 있어야, 숫자가 늘어나야 남자들이 바뀔 확률이 높아질 테니까요. 남자들은 남자도 여자도 새롭게 공부해야 해요. (라고 쓰고 보니 여자들도 공부해야 하고... 아이 참. 공부하자 공부!)

근데 이런 이야기 나누게 되니 참 좋아요.^^


다락방 2022-08-19 07: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그리고 삽입 섹스와는 별개로 저는 이 책이 참 안읽히거든요? 문장이 탁탁 막혀요. 무슨 뜻인가 파악하기 위해 재차 읽어야 하는 경우가 너무 자주 발생해서 속도가 안나요. 오늘은 문득, 원서를 사서 막히는 문장마다 찾아볼까,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난티나무 2022-08-19 18:43   좋아요 2 | URL
저는 다른 분들 그런 말씀 없으시기에 저만 집중 못해서 잘 안 읽히는 줄 알았어요.^^;;;;
비슷하게 느끼셨다니 살짝 안도를...ㅎㅎㅎ
끝까지 그런 문체입니다. 그런데 이게 과연 번역 탓인지 원문장들이 그런 건지 저도 감이 안 잡히더라고요. 만약 원서와 비교해보신다면 아마 책 전체를 비교해야 하지 않을까도 생각하였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8-20 10:24   좋아요 1 | URL
저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좀 더 읽었는데요 말씀하신 것처럼 원서를 산다면 책 전체를 원서와 나란히 놓고 읽어야 할 것 같아요. 저 매 문장마다 두번 이상씩 읽어요 ㅠㅠ

난티나무 2022-08-20 18:36   좋아요 1 | URL
저는 그래서 의미만 파악되면 그냥 넘어간 부분들 많아요. 가끔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지 않는 문장들도 있었는데... 앞뒤 문맥상으로만 파악하고 넘어갔어요.^^;;; 안 그러면 진도 나갈 수가 없음...@@

건수하 2022-08-30 06: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임신했을 때 에일리언 영화를 떠올렸답니다. (남편과 친구들이 경악을) 반가워서 댓글 달려고 하다가 다락방님과의 댓글을 읽게 되었네요 ㅎㅎ 유익한 대화였습니다!

저도 남성이 꼭 성기삽입이 아니어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설마 그것밖에 없을까) 난티나무님께는 아이디어가 있는거 같아 궁금하네요. 뭘까요? 제게 떠오르는 건 채찍 이런것뿐 (죄송합니다)

난티나무 2022-08-30 04:34   좋아요 1 | URL
에일리언은 참... 유익한 거 같아요.(응? ㅎㅎ) 전번에 <여성괴물> 읽을 때도 나왔잖아요. 매우 인상깊었고 임신중지를 생각할 때도 저는 에일리언과 숙주인간이 떠오르더라고요. 한끗 차이 아닌가요?^^;;;

채찍!!!! 아악~~~~~ @@ ㅋㅋㅋㅋㅋㅋㅋㅋ

2022-08-30 04: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30 0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30 1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에 얼마 못 읽고 반납한 책을 다시 대출했다. 책은 그걸 읽을 때의 나의 상태가 어떠한지에 따라 똑같은 내용이 달리 느껴지는 법이므로 내심 기대를 했다. 정희진의 글은 거의가 매우 좋지만 때론 아주아주 가끔 와닿지 않을 때도 있거든. 지난번에 그랬다.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느꼈던 것같다. 대출한 책 첫 페이지를 다시 읽는데 응? 분명 그때도 공감하며 읽었을 텐데 기억도 나지 않을 뿐더러 왤케 좋지? 뭐지? 막 좋아가지고 뭐든지 쓰려고~ 



"편파적이지 않은 가치는 의미가 없다." 사실 이 말은 동어 반복이다. 편파성 자체가 가치이고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편협한 책 읽기'는 편협하지 않다. 모든 책이 편협할 뿐 아니라 편협(Partiality)을 기점으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 전자책 5% 지점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머리말 중 


책을 읽거나 드라마/영화/티브이프로그램 등을 보고 난 후 쓰는 글이 편협하지는 않은가 늘 생각한다. 텍스트와 이미지들이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 그걸 바라보는 내 눈이 완벽하기를 바라는 것이 우습지만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더군다나 완벽이란 있을 수 없는 것. 그럼에도 내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생각하는 건 아닌가, 의심을 한다. 페미니즘 안경을 장착하고서 모든 것을 해석하려고 드는 건 아닌지(솔직히 이러면 왜 안되는지 모르겠다), 내가 보지 못한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닌지. 얼마 전에 영화 한 편을 봤는데 호평 일색의 평들을 보고 의아했다. 내가 이상한가? 좋은 주제라는 건 알겠지만 그에 비해 입댈 것이 너무 많은데? 심지어 정희진의 책(<혼자서 본 영화>)에도 그 영화에 대해 내가 생각한 요소들은 나와있지 않았다. 이것이 지나친 생각인가? 어디가 얼마나 지나친가? 하지만 나는 그런 부분들이 거슬리는데? 아직도 그 영화 후기를 쓰지 못했다. 위의 구절을 읽고 그래서 반가웠다.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해. 네 생각이 틀린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다른 거라고, 의견은 원래 편협한 거라고, 너만 그런 거 아니니까 말하라고. 당연한 말인데도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알맞은 시점에 딱 맞는 글을 다시 본 셈이다. 편협할 수밖에 없으니 그냥 편협한 채로 써야 겠다. 일단은, 그 영화 후기부터? 




"'사회적 약자'는 평생을 자신을 사랑하는 문제와 투쟁해야 하는 이들이다. 성별, 인종, 계급, 나이는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 사회적 해석이다. 몸의 영역에는 쉽거나 작은 실천이 없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을 알고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매일 밤 야식을 두고 사투한다. 타인의 시선을 상대하는 용기, 나이 듦을 인정하는 것, 아픈 상태도 인생의 소중한 부분이라는 인식, 남의 몸에 대해 되도록 적게 말하기부터 시작하자." 

- 전자책 20% 지점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1장 중에서 


어제 메일함에서 '못생겨도 괜찮아'라는 문구를 새긴 배지 이미지를 보았다. 이 말 자체가 외모에 대한 말하기이고 이미 잘생김/못생김의 사회적 기준이 들어있는 말이다. 뚱뚱해도 괜찮아, 키 작아도 괜찮아, 다 마찬가지다. 블로그에 짧게 이 내용을 쓰면서 그럼 어떻게 말해야 할까 생각했다. 답은 한 가지. "남의 몸에 대해 되도록 적게 말하기." 이 사회가 워낙 외모를 중시하고 강요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벗어나기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사람을 만날 때 가장 먼저 외모를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티브이를 보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와 잘생겼다, 라는 말이 나온다. 그럴 때마다 외모에 대해 말하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잘생겼다 이쁘다,는 말 뒤에는 나는 그렇지 못하다,가 숨어있을 테고 내 말과 행동이 그 열등감에 좌지우지된다. 왜 그래야 하는가? 몸에 대한 이 챕터에서 되도록 적게 말해야 한다는 구절을 만나니 (이 역시 나도 하던 말이고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도) 속이 시원했다. 정신과 몸이 나눠진 게 아니라 하나라는, 몸이 곧 자아라는 도입부의 말도 역시 좋았고. 자꾸 봐야 익숙해진다. <몸의 말들>도 읽어야 할 리스트에 있었는데 얼른 읽고 싶어졌다. (이런 책이 너무 많다는 게...ㅠㅠ) 그리고, 배지를 본 글을 찾아 메일을 보내야 겠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을 알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크. 이걸 이젠 너무 확실히 알아버려서 내 인생 좀 어려워졌 ㅎㅎㅎ (그렇다고 이전에 쉬웠다는 말은 아님, 몰라서 괴로웠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가 너무 낯설어지는 경험들을 하면서 그 속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그러고 있었던 나,들을 끄집어내서 찬찬히 살피는 일은 참 힘들다. 너 다 알잖아, 알고 있었잖아, 그런데 이제와서? 응 근데 그걸 언어로 풀어내니 참, 내가 과거에 어땠는지도 보이고 뭘 지나치게 하고 있는지 뭘 안하고 있는지도 보이고 그러더라고. 모른척 살아오기도 했고. 나는 나를 좀더 배워야 한다. 그러는 중이고 그러기 위해 만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알고 나를 알고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책친구들이 새삼새삼 새록새록 소중해졌다. 이렇게 막 마음이 부풀어오르도록 말이다.

 

지금 책 20% 정도 읽고 이렇게 횡설수설 떠들고 있는데, 책을 한 권 샀다고 말하기 위해서였다는 걸 잠깐 잊었다. 책 샀다. 장안의 화제작,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제목 갑자기 생각 안나서 급 검색하고 옴.ㅠㅠ 어쩔. 그나저나 제목도 느무 좋다~) 이 책을 사고 읽기 위해서 저는 3권을 읽으며 준비하고 있답니다. 기특하지 않습니까? 물론 시리즈로 확 질러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까지는 아니고 창문 정도는 되었으나 저의 '위치'를 인식하는 바람에 딱 한 권, 신간 한 권만 일단 샀습니다. 구간은 중고로...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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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8-11 06: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불편한걸 말할 수 있어야 하죠! 이런저런 말이 많이 나오는 작품의 역할은 더 커진다고 생각해요. 한국사회처럼 보수적인 곳에서는 그런 발언자체를 ‘부정적인 것‘으로 낙인찍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어쩌면 그래서 정작 시민사회의 토론문화는 부족하고 어쩌면 같은 이유로 사상가들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도 합니다. 노벨상이 안나오는 이유도 같은 맥락일수 있다고요. 다른 의견에 관대해지고 포용하는게 필요하다고. 저부터도 잘 못하고 있지만 덕분에 또 생각해봅니다.^^*

난티나무 2022-08-11 18:04   좋아요 1 | URL
토론문화부족에 동감합니다. 부정적인 낙인, 그걸 저는 다른 사람들뿐 아니라 저 자신에게도 들이대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스로를 의심하는 습관도 좀 버려야 할 텐데 말입니다. 미미님 말씀처럼 관대와 포용의 자세를 기르기 위해, 열심히 읽고 열심히 쓰고~~!!!! ㅎㅎㅎ

거리의화가 2022-08-11 09: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나와 너가 다르다는 것을 잘 인정하지 않고 용인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심합니다. 각자의 의견을 낼 수 있는 건데 꼭 그 의견이 눈치보며 다수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외모에 대한 지적은 참 공감하지만 저조차도 매번 화면 속에 등장하는 잘 생기고 이쁜 스타의 얼굴을 보며 저 자신을 비하하거나 자신감이 떨어지는 경우를 봅니다. 또 상대를 그렇게 보는 건 아닌지 흠칫하네요~ 제가 쓴 글에도 그런 구석이 없는지 살펴보려는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어렵습니다^^;
저 책 저도 샀는데 1~3권 아직 읽지도 못해서...ㅎㅎㅎ 5권부터 먼저 읽고 거꾸로 읽을까도 싶네요.

난티나무 2022-08-11 18:13   좋아요 1 | URL
맞아요 거리의화가님, 내 의견 말할 수 있는 사회! 그리고 외모 말하지 않기, 어려운 일이에요. 저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의식하려고 노력하면 조금씩 나아지리라 생각해요.^^;; 지금은 말을 뱉고 주워담는 형국이라면 나중에는 말을 뱉지 않을 수 있으리라는, 그리고 더 나중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거꾸로 읽기도 좋네요! 저는 마구잡이로 읽기!ㅋㅋㅋㅋㅋ
 
[eBook] 마음에 없는 소리
김지연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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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읽고 있는 순간보다 읽은 후 오래도록 잔상이 어른거리는 소설이 있다. 별것 아닌 소재인 듯 보이는데 곱씹을수록 그 안의 감정들이 피어오르는 소설이 있다. 그렇지, 그래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불현듯 그 감정이 내것임을, 내가 가졌고 느꼈던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소설이 있다. 김지연의 단편집 <마음에 없는 소리>가 그랬다.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 

사랑과 쓸모없음. 사랑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쓸모없는 감정들. 욕망과 현실. 직시와 회피. 사랑과 배려. 이런 것들이 계속 떠오르는 단편이다. 

* 따로 쓴 감상 → https://blog.aladin.co.kr/nantee/13749711




「굴 드라이브」 

암컷 굴이 알을 수천만 개 낳는다고, 몰랐다. 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필리핀 여성 미셸이다. 


""서울에는 언제 갑니까?"

"내일 저녁요."

"나도 데려가세요."

"네?"

나는 깜짝 놀라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 말이 완전히 진심인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농담이에요. 앞에 보세요."

미셸은 농담이라며 웃어넘겼다. 농담이라는 말은 참 간편하다. 모든 말들을 금방 가볍게 만들어버린다."


미셸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혼자 생각한다. 제목이 굴 드라이브,이니 나는 내맘대로, 굴 드라이브의 분위기를 만들어낸 미셸에게 더 마음 써서 읽었다. 어릴 때 나를 싫어했던 친구가 용서해줄 수 있냐고 묻는 말에 아니,라고 대답하는 화자도 마음에 들었다. "씨발...... 하여튼 맘에 안 들어. 이러니까 싫어했겠지......" 라고 말하는 친구도 좋았다. 소설을 끝맺는 문장들도 좋았다. 화자가 고향에 내려가면 꼭 미셸과도 친구했으면 좋겠다. 




「결로」

중고 직거래는 신경쓸 일이 많다. 중고 거래를 떠올리니 당근마켓이 해외로 진출했다는 기사가 생각난다. 이 단편은 중고거래 자체에 방점을 두지 않는다. 거래를 기다리며 길에서 만난 여자들 이야기다. 치매, 노화, 여성, 그들의 세월, 그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돌봄노동이 딸에게 부여되고 있다는 점이, 현실이 그러하지만 그래도 찜찜하다. 이젠 소설에서도 늙은 어머니를 돌보는 남성을 보고 싶다. 세심하게 신경쓰고 잘 돌보는 남성의 모습이 일상인 세상. 소설에서 "그건 재활용해야 돼!"하고 외치는 여인의 마음을 내가 너무 잘 알아서 살짝 신경질이 났다. 이런 모습을 남성에게서도 보고 싶다. '나'는 사이가 좋지 않은 동생을 죽었다고 설명하는데 와, 놀람과 동시에 감동했다. 이걸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 물건을 판 사람은 기다리기로 한 그 사람이 누군지 몰랐을 테지만 나는 또 내맘대로 그가 화자의 동생이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그러면서 역시 그 사람이 누군지 몰랐을 화자가 그 물건을 사서 정말 다행이라고 혼자 들떠했다. 




「작정기」

이 단편에는 실제 죽음이 나온다. 예상하지 못한 죽음이고 그래서 이전의 상황에 그 죽음을 대입해보는 일이 화자에게는 어쩌면 애도의 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원진'이 여행을 가지 못하게 된 이유가 할아버지의 장례식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또다른 복선일지도 모르겠고. 우연과 시간이 겹쳐지고 현실과 환상이 겹쳐지고 '나'와 원진이 겹쳐지고. 의도치 않았지만 같이 오지 못한 친구를 죽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일도. 


"나는 굳이 바로잡지 않았다. 바로잡았어야 했을까? 그것은 어떤 빌미가 되었을까. 누군가 원진을 이미 죽은 사람으로 간주해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이 원진의 죽음을 재촉하는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게 미신적이고 원진에게도 옳지 못하다. 그런데도 그런 자책감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물리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이 세계가 물질로 가득차 있고 설명 가능한 공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으로 내 죄를 만회하려고 한다. 그런 건 물리로 설명할 수 없으니까 가능하지 않다. 사실 그건 죄도 아니지 않나. 내가 원진을 죽인 것도 아니고 죽음을 사주한 것도 아니고 단지 말을 옮기는 과정에서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었던 것뿐이다. 내 죄라고 할 만할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자책하는 것은 원진이 이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날 야키토리 가게에서 유코와 남자가 원진을 죽은 사람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가벼운 해방감을 느꼈다는 것을 나 자신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 나약한 말들」

내가 생각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은 나를 생각해주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으로 나를 봐주는 사람은 없다. 이 단편에도 역시 죽음이 있고 관계의 일상이 있다. 추억이 있고 애도가 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이 단편을 읽을 때 집중력이 흐려졌었나 보다. 가장 불분명하게 기억이 남아 있다. 다시 읽어봐야 겠다.


"난 너를 알아, 내가 왜 몰라? 나는 너를 아주 잘 알아,라고 말해주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혜수는 자신을 잘 모른다고 말했고 정은은 마치 이 세상에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사람처럼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날 밤 정은은 아주 괴로웠기 때문에 자고 일어나면 자신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완전히 미쳐버린 채로 잠에서 깰 것이라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오늘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모를 거라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모를 거였다. 그래서 잠들 수가 없었다. 졸음이 밀려왔는데 잠들면 안 될 것 같았다. 잠들기 싫어서 엉엉 울었다. 우는 건 체력 소모가 많은 일이었고 결국 울다 지쳐 잠들었다. 창밖의 파르스름한 빛이 조금씩 방안까지 스미고 야단스러운 새소리에 서서히 정신이 돌아왔을 때에야 정은은 여전히 자기 자신인 채로 잠에서 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도감 속에서 정은은 또 울었다. 그렇게 한동안은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우는 것이었다. 그래도 어느 날에는 완전히 미쳐버리겠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결국엔 미쳐버릴 거야.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런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정은은 미칭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이 학습한 규칙을 따르며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일 뿐이었다. 




「마음에 없는 소리」


"우리가 불행을 극복하는 방식은 태연해지는 것이었다. 낫는다는 것을 믿고 그 미래가 이미 도래한 것처럼 굴기. 그렇게 하면 반복되는 불행들을 점점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었다." 


청년 아닌 청년. 중년 아닌 중년. 이맘때쯤이면 이 정도는 하고 이 정도는 갖고 살고 있어야지, 너는 입때꼇 뭐했니, 남들 다 그렇게 살 때 너만 왜 그러고 있니, 제대로 살아,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야? 이런 말들이 뒤통수에서 들리는 듯하다. 내내 들어왔던 말들,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귀로 듣는 것만 같은 소리들, 눈빛들, 태도들. 이십대 아니고 삼십대 아니라도, 아마 죽기 전까지 그런 말을 들을 것이다. 오지랖은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 소설 속 경상도 사투리가 친근해서 음성 지원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울기 시작할 때」

죽음이다. 이번 죽음은 조금 다르다. 죽음이 글자 속에, 사람들 속에, 스며들어 있다. 사람 그 자체다. 마침 이 단편을 읽기 전에 죽으면 마음은 어떻게 될까,에 대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터라 아래와 같은 구절이 더욱 눈에 들어왔다. 


""죽는다는 건 어쩌면 그냥 마음이 산산이 흩어지는 건지도 모르지. 

다른 누군가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다. 

처음에 기능을 다하는 건 몸뿐이지만 그렇게 되면 마음이 머물 곳이 없어지니까 마음은 산산이 흩어질 수밖에 없지. 그러면 너라고 할만한 것은 완전히 사라지고 마는 거야. 너는 여러 마음들의 집합체 같은 거라서." 



소설 초입부에 등장한 인물 '삼'을 맞닥뜨렸을 때엔, s*o님 글에 자주 등장하는 동명인물이 떠올라 웃었다. "...어쩔 수 없이 몇 번 삼이라고 불러주었고 나중에는 그게 너무 익숙해져서 진짜 이름을 까먹어버렸다"는 문장에서도 웃었다. 그렇지만 그 다음부터는 웃을 수가 없다. 


"삼은 큰돈을 꾸고 갚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 가족 중 누구 하나가 불치병을 앓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 살아남으려면 돈이 많아야 한다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불행을 극복하려면 돈이 많을수록 유리하다고 말했다. 가난은 일종의 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소할 수 있는 이 질병을 불치병으로 키우는 것이 국가라고 말했다. 나는 그걸 누가 몰라, 하고 대꾸했다. 하지만 삼은 국가가 문제라고 말하면서도 뉴스를 보지 않았고 선거철이 되어도 투표하지 않았으며 자기가 힘을 보태 사회의 어떤 부분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저 열심히 회사에 다니며 채무자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하고 집으로 찾아가 추심명령을 전달했다. 삼은 그때마다 자신이 채무자들을 비난하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왜 아직도 가난한 거야, 하고. 그러는 삼도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스스로 답을 내릴 수가 있었다. 이십사 시간 동안 일만 한다고 해도 그저 살아있느라 드는 비용을 충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삼의 결론은 그래서 아프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삼은 병의 발생이 의지와 관련된 것처럼 말했다." 


소설 속 화자의 이야기에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몰입하다가 화들짝, 다시 소설 도입부를 떠올리는 순간이 온다. '스포일러 포함'에 체크했지만 그래도 말하면 안 될 것같다. 나만 놀랐을 수도 있다. 




「사랑하는 일」 

"우리가 이렇게 서로 사랑하는데 굳이...... 섹스까지 해야 할까?"

이 문장을 만났을 때 이 단편이 좋아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지배하는 관념인 이성애 이데올로기, 삽입 섹스가 유일하고 정상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슬쩍 비틀어 꼰 방식이 유쾌했다. 때로 직설적이기도 하다. "몰라. 좆 달린 거 빼면 좆도 없는 것들이 여자 잘 만나고 다니는 거 보면 짜증나. 좆 너무 과대평가되어 있어." "그건 인정." 

어이없이 웃기기도 한다. "그니깐요. 언닌 진짜 좋겠어요. 한남이랑 결혼할 일은 없잖아요. 최고로 부러워. 저도 여자나 만날 수 있었으면 했다니까요." 

응원과 지지에 대한 입장 차이 같은 것도. "그러니까 나는 네가, 시스젠더 헤테로 남성인 네가, 자라는 내내 나와의 가정 내 이권 다툼에서 늘 교묘히 우위를 점하던 네가, 나와는 접점이 거의 없어 십 분 이상 대화를 이어나가는 게 무리인 네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생각이란 걸 하든 말든, 이해를 하든가 말든가, 응원이고 나발이고 아무 관심이 없었지만, 정말 어쩌라고 싶었지만," / "물론 그게 다 얘가 동성연애 시작하기 전의 일이지만요...... (그때 나는 옆 테니스코트의 언니를 짝사랑해서 혼자서도 맨날 벽 치기를 하러 갔었다.) 근데! 나는 그거 다 이해해줍니다! (예예, 감사합니다.) 이놈의 대한민국에서 나 같은 애비가 몇이나 되겠어요?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시기상조다 이 말이지요. (그놈의 나중에!)" 

그러니까 이 단편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랑, 뭘까. 


""근데 있지." 

"어."

"나도 사랑 같은 게 뭔지 잘 모르겠어." 

그 말을 듣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공원에서」 

마지막 단편은... 역시 여러 가지 사회문제들이 얽혀 있다. 앞의 단편들도 그랬다. 주된 흐름은 있지만 거기에 여러 문제들이 일정한 방향도 속도도 없이 중구난방으로 물려있다. 단어들을 늘어놓으니 상황이 단어 안에 규정되는 듯해 지웠다. 그렇게 늘어놓기엔 너무... 기분나쁘게 잘 짜여진 현실이다. 


"여자가 새로 결혼한다는 단어가 왜 없어? 재가도 있고. 찾아봐, 더 있을걸? 너 지금 너무 한 생각에만 빠져 있어. 그냥 결과를 정해놓고 그 결과로 갈 수 있는 길만 생각하는 꼴이라고. 다른 건 아무것도 보려고 하지를 않잖아." 

"악! 아악! 악!'

나는 기영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아무 뜻 없는 비명을 질렀다. 계속 질렀다. 기영의 말을 멈추고 내가 느끼는 감정을 제대로 설명하고 싶었다. 그런데 말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비명이 내가 느끼는 감정과 가장 흡사했다.

... 

나는 기영이 판정관이나 심문관처럼 굴지 말고 그냥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했다. 내 말에 귀를 기울여줬으면 했다. 팔짱을 끼고 어디 책잡을 데가 없나 따져보기 전에 일단 경청부터 해줬으면 했다. 실수 하나에 나를 의심하지 말고 우선은 믿어줬으면 했다." 


이 상황, 너무 익숙하고 잘 아는 상황.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이해하고 또 이해받으려는 것이다. 타인을 이해하는 최고의 방법은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랠프 니콜스 

"잘 듣는 것은 입을 다무는 것이 아니라 열정적으로 반응하고 관심을 갖는 것이다." - 앨리스 두어 밀러 


다른 책('아티스트웨이'인용구)에서 가져온 문장이지만, 이게 안 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소설 속 남자처럼. 이것뿐 아니라 다른 부분들도 모두 익숙하다. 익숙해서 부르르 하게 된다. 



***

단편들 모두가, 관계에서 미묘하게 흐르는 감정선을 잘 표현한다고 생각했다. 단편들을 하나로 꿰뚫는 굵직한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내 비밀의 감정 같은 것들이다. 말로 뱉지 않았지만 느껴버리고 말아서 금이 가고 멀어지고 다시 사랑하게 되는 그런 것들이다. 그것은 죽음이고 농담이고 그리움, 사랑, 두려움, 환멸 이기도 하다. 관계에 있어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는 자세는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고찰. 우리가 어떤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찰. 작가의 소설들은 그런 작업의 일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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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7-16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편 제목들도, 다 좋네요.

굴 드라이브, 뭔굴? 하다가 수천만개 알? 믿을까 말까?하면서 호기심 같이 생기네요^^

난티나무 2022-07-17 05:12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랬어요. ㅎㅎㅎ 수천만 개… 검색해보다가 말았어요.ㅋㅋㅋ
 















"만남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가끔, 고통은 고독이라는 생각을 한다. 완전한 고립. 한편으로 고통은 앎의 특별한 형태는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인간의 삶에는, 특히나 우리네 삶에는 고통 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전달할 수도 지켜낼 수도 없는 뭔가가 있다. 그건 이 세상이 그렇게 생겨먹었고, 또 우리가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66%)



... '고통이 앎의 특별한 형태'라 하더라도,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통해서 무언가를 알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 경험해보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을 알기 위해 그것을 경험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 그러나 이런 자기방어적인 생각과는 상관없이, 의지나 바람과는 상관없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들이 생겨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런 상황들 중에서 가장 잔혹한 것이 전쟁일 것이다. 아무리 상상해보려고 해도 상상이 되지 않는다. 상상하기 싫은 마음이 훨씬 더 크겠다. 그럴 리가 없어, 가 얼마나 현실감각을 마비시키는지. 

전쟁(제2차세계대전)에 참가했던 여성들의 증언으로 이루어진 이 책을 읽기는 그래서 아주 힘들었다. 나도 모르게 상상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인물의 감정에 이입하는 순간이 두려웠다. 자칫 그 거리를 잊으면 눈물이 나왔다. 장소가 러시아라는 사실에도 깜짝깜짝 놀랐다. 지금 러시아는... 생각의 기준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헷갈린다. 그래서 더 읽기가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리뷰는 쓰지 못할 것같고, 얕디얕은 감상으로 숙제처럼 페이퍼를 쓴다. 





"이후에도 나는 한 사람 안에 동시에 존재하는 이 두 진실과 적잖은 갈등을 겪어야 했다. 의식 저 밑으로 쫓아버린 사실 그대로의 진실과 시간의 흔적이 스며든 공통의 진실. 신문 냄새가 폴폴 나는 공통의 진실. 첫번째 진실은 두번째 진실의 맹렬한 공격 앞에 맥없이 무릎을 꿇었다. 예를 들어, 만약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 가족이나 지인, 이웃들(특히 남자들) 중 누군가, 제3의 인물이 동석하면 이야기하는 사람은 나와 단둘이 있을 떄보다 덜 진실해지고 덜 솔직해진다. 이미 대중을 의식한 대화가 돼버린다. 관객을 위한 대화, 당사자의 솔직한 감정과 생각을 얻어낼 길은 요원해진다. 강력한 자기방어에 부딪친다. 자기통제. 끊임없이 이야기가 다듬어진다. 일종의 패턴까지 생겨난다. 듣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차분하고 깔끔한 이야기가 된다는 것. 신중하게 해야 할 말만 골라 한다는 것. 참혹한 일이 위대한 일로, 인간 내면의 불가해하고 어두운 면이 순식간에 이해가 되고 설명 가능한 것으로 둔갑한다. 나는 기념비들만 가득한 과거의 사막에 뚝 떨어지곤 했다. 공훈들만 가득한 황야에. 도도하고, 결코 속을 내보이지 않는 것들만 잔뜩 모여 있는 곳에. 니나 야코블레브나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그녀는 나를 위한 하나의 전쟁을 들려주었다. "딸이라 생각하고 이야기할게. 어린애나 다름없는 우리가 겪어야 했던 그 모진 세월을 당신이 이해하기 쉽도록 말이야." 그리고 청중을 위한 또하나의 전쟁을 그녀는 준비해두었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똑같은 전쟁을. 신문에서 떠드는, 영웅들과 공훈이 주인공인 전쟁. 젊은이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훈육용의 전쟁. 평범하고 인간적인 것에 대한 이 불신에, 보통의 삶을 소위 이상이라는 것과 슬쩍 바꿔치기하려는 이 욕망에 나는 매번 충격을 받았다. 평범한 온기를 차디찬 광채와 맞바꾸려는 욕망에." 

33%


일상의 대화에서도 그러할진대, 온갖 인간의 면모를 바닥까지 보게 되는 전쟁에 대해서라면 오죽할까 싶다. 내가 아는 전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막연한 상상과 미디어가 보여주는 장면들에 국한되어 그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어떤 모습들이 깔려있는지, 알지 못했다. 군대와 병사들, 대포와 총과 칼, 참호와 병원, 총알들을 뚫고 '영웅적'인 행위를 하는 영화의 (남자)주인공들, 조연은 죽어나가고 주연만이 살아돌아오는 클리셰,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다는 듯이. 





"...... 나는 집사람의 전쟁 이야기를 꽤 많이 기억해요. 요즘 말로, 집사람 이야기를 '슬쩍했거든'. 손자들한테 들려주려고. 그래서 내 전쟁보다 집사람의 전쟁을 녀석들에게 더 많이 들려줬을 거요. 사실 녀석들에겐 그게 더 재미있을 거야. 

사울 겐리호비치가 계속 말을 잇는다. 

- 내겐 전쟁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 많은 반면, 집사람에겐 전쟁에 대한 감정이 더 많아요. 하지만 언제나 감정이 사실보다 더 분명하고 강력한 법이지. "

35%


전쟁 속에서도 성차는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럴 수밖에. 전쟁도 시간 속에 있고 사람들은 살아야 하니까. 삶의 연속이 아닐 수 없으니까. 구절들을 가져오지는 않았지만, 자주 숨이 막혔다. 생명을 위협받는 곳에서도 사회적 여성성을 강요받는 모습에. 너는 여자니까 남자들을 위로해야 해, 보살펴야 해, 부드러운 말과 친절한 웃음을 제공해야 해... 남자들 무리 속에 여자가 한 명 있으면 분위기가 얼마나 좋아지는지 모르지? 너희는 그런 존재인 거야. 남자들을 위한. '착한' 여자들은 대부분 마음에서 우러나 그렇게 한다. 부상병을 안아주고 키스해주고 토닥여주고 늘 살피고 가족이 없는 병사들에게 위로 편지를 쓰고... 그 모습이 감동적이긴 하지만 여자의 역할에 대한 슬프고 복잡한 감정까지 지울 수는 없다.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어. 좋은 사람이었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안 생기더라고. 하지만 몇 달 후에 그 사람 막사로 거처를 옮겼지. 달리 어떡해? 사방이 남자들인데, 그 남자들이 무서워 떨며 지내느니 한 남자랑 같이 사는 게 낫잖아. 오히려 전투에 나가는 건 무섭지 않았어. 전투가 끝나고, 특히 전선을 재정비하면서 쉴 때가 무서웠지. 총탄이 빗발치고 포탄이 불을 뿜을 땐 나를 '누이! 누이!'라고 부르다가도 전투만 끝나면 나를 어떻게 해보려고 다들 기회만 엿봤으니까....... 밤이면 막사에 틀어박혀 아예 나가질 않았어...... 다른 여자들도 이 이야기를 하던가? 아무 말도 안 했다고? 아마 말하기 창피했을 거야...... 그래서 입을 다물었을걸. 다들 자존심은 세가지고! 하지만 그런 일은 정말 있었어. 왜냐하면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으니까.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죽어야 한다니, 억울하잖아...... 그리고 남자들이 4년이나 여자 없이 지낸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고...... 우리 군엔 매음굴이 없었어. 그래서 알약 같은 것도 나눠주지 않았지. 다른 부대에는 여자들이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우리는 없었어. 4년 내내...... 지휘관들은 그래도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었지만 사병들은 아니었어. 군율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해선 다들 침묵하지...... 보통 그런 건 말하지 않는 법이니까...... 안 해......" 

72%


"만약 그 장교가 성폭행을 한 거였다면...... 글쎄...... 그런 일이야 당연히 있었지...... 사실 우리가 입 밖에 내질 않아서 그렇지, 그건 전쟁터의 법칙이나 마찬가지였어. 남자들은 몇 년씩 여자 없이 지내는데다 증오심까지 더해졌으니까. 소도시나 마을에 들어가면 처음 3일 동안은 약탈을 하는데...... 뭐, 당연히...... 그 짓도 헀지...... 당신도 모르진 않을 거야...... 하지만 3일이 지나서도 그 짓을 하다가 발각되면 재판에 부쳐질 수 있었어. 엄벌에 처해지기도 하고. 하지만 3일 동안은 마음대로 술도 마시고, 그리고......" 

91%


책 전체에 성희롱, 성푹행 같은 이야기는 드문 편이다. 내내 불안하게 '강간'이라는 두 글자를 떠올리며 읽었지만 위의 증언이 보여주듯 침묵을 택한 여자들이 많았다. 이젠 이야기할 수 있다고, 여성이 어떻게 지워졌는지 고발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아직도 입밖으로 내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저 증언들 사이사이에, 그들의 주름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이 숨어있을 수밖에 없을까, 가슴 아픈 또다른 이유 중 하나다. 우리는 이미 '전시강간'에 대해 알고 있으므로.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 뿌리깊이 박힌 여성혐오는 여성이라고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아래의 증언이 보여준다. 참전 여성들이 왜 입을 다물고 살아야 했는지를 보여준다. 



"조국이 우리를 어떻게 맞아줬을 것 같아? 통곡하지 않고는 이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 40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뺨이 화끈거려. 남자들은 나 몰라라 입을 다물었고, 여자들은...... 여자들은 우리에게 소리소리 질렀어. '너희들이 거기서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알아! 젊은 몸뚱이로 살살 꼬리나 치고...... 우리 남편들한테 말이지. 이 더러운 전선의...... 군대의 암캐들아......' 우리는 정말 온갖 말로 모욕을 당했어...... 알다시피 러시아어 어휘가 좀 많아야지......" 




"남편에 대한 원망은 없어. 오래전에 용서했거든. 딸아이를 낳고 누워 있는데...... 남편이 우리 모녀를 보더니...... 잠깐 있다 가버렸어. '정상인 여자라면 과연 전쟁터에 나갈 수 있을까? 총 쏘기를 배우고? 그래서 당신이 정상아를 낳을 수 없는 거다'라고 나를 비난하며 가버렸지. 나는 남편을 위해서도 기도해...... 

어쩌면 남편 말이 맞는지도 모르잖아? 그런 생각이 들어...... 다 내 죄라고......" 

76% 



'착한' 여자들은 자신들을 받아들기를 거부하는 사회에서 결국 '내 탓'을 한다. 너무 익숙하다. 떠난 남편도 같이 전쟁터에서 동고동락한 사이였다. 




"마지막 심문 후에 나는 벌써 세번째, 총살대상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어. 그런데 세번째 심문자로 나선 파시스트가...... 자기 전공이 역사라고 밝히더니 우리가 왜 그런 사람들인지, 왜 우리에겐 이념이 그토록 중요한지 알고 싶다는 거야. 생명이 이념보다 소중하지 않느냐면서. 당연히 나는 동의하지 않았지. 그러자 소리를 지르며 나를 때리더라고. 그러고는 또 물었어. '뭐야? 뭐가 너희들을 이렇게 만든 거야? 대체 그게 뭐라고 죽음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 건데? 왜 공산주의자들은 공산주의가 전 세계에서 반드시 승리할 거라고 확신하지? 그는 러시아어를 아주 잘했어. 그래서 그에게 모든 걸 설명하기로 마음먹었지. 어차피 죽을 목숨, 헛일하는 셈 치고 우리가 얼마나 강한지 알려주고나 죽자 싶었거든. 그는 거의 네 시간 동안 질문해댔고, 나는 최대한 아는 대로 대답해줬어.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배운 마르크스-레닌주의까지 다 이야기했지. 그랬더니, 오, 그가 하는 행동이라니! 자기 머리를 움켜쥐고는 방안을 뛰다시피 서성이고, 한자리에 못박힌 듯 꼼짝도 않고 서 있고, 나를 쳐다보고 또 쳐다보고...... 하지만 처음으로 매질은 안 하더군." 

77%


"나는 지금 건강이 좋지 않아. 신경이 많이 쇠약해졌지. 사람들이 '전쟁터에서 무슨 상을 받아왔느냐'고 물을 때마다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나한테까지 신경을 쓸 새가 없었다'고 털어놓기가 창피해. 하지만 아마 신경을 못 써서가 아니라 나 같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못 줬을 거야. 그땐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다들 죽을힘을 다했지...... 한두 명도 아니고 그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일일이 다 상을 주나? 그리고 우리 모두는 최고의 상을 받았잖아? 5월 9일. 승리의 날!" 

94%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 나약한 정신소유자인 나도 저 심문자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어째서 저렇게 어린 나이에 전장으로 뛰어나갈 수가 있지? 무엇이 그렇게 만들지? 꼭 전쟁이 아니라도,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아니, 나에게 저런 이데올로기가 있기나 하나? 이런 뻔한 질문들. 얕다 얕아. 





"나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어...... 가족들도 모두 무사했지...... 엄마가 온 가족을 살리셨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살리고 여동생과 남동생을 살렸지. 그리고 나도 살아 돌아왔고...... 1년 후에 아빠도 돌아오셨어. 훈장을 여러 개 받아오셨더라고. 나도 훈장 하나와 메달 두 개를 받아왔지. 하지만 우리 가족의 결론은 그랬어. 우리집에서 진짜 영웅은 엄마라고. 엄마가 온 가족을 살렸으니까. 엄마가 우리 가족도 우리집도 구했어. 결국 엄마가 가장 가혹하고 끔찍한 전쟁을 치른 셈이지. 아빠는 단 한 번도 훈장을 달지 않으셨어. 훈장 약장도 달고 다니신 적이 없지. 아빠는 엄마 앞에서 훈장을 내놓고 자랑하지 않으셨어. 부끄럽다고 하셨지. 불편해하셨어. 엄마는 훈장도 메달도 없었으니까...... 

내 삶에서 우리 엄마만큼 내가 사랑하고 아꼈던 사람은 없어......" 

95% 


전쟁이 끝난 이후의 삶. '승리'했어도 모조리 파괴된 삶의 터전들, 사라진 사람들. 가족도 집도 직업도 학력도, 여자들에게 더 가혹한 현실. 생각만 하는데도 아득하다... 이 책을 읽는 것으로 전쟁의 이면을, 거기 어김없이 도사리고 있었던 성차별, 여성혐오, 사랑, 연대, 여성의 힘, 같은 것들을 새로이 엿보게 되었음에 일단 버거움을 잠재워본다. 분노를 충전한다. 





"이 일을 멈출 수가 없다. 매번 진실이 나를 견딜 수 없게 하므로." 

95%


"... 어떻게 이야기해야 해? 어떤 표정으로? 자, 이제 당신이 대답해봐. 대체 어떤 얼굴로 그 일을 회상해야 하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야. 눈물부터 쏟아져. 하지만 반드시, 꼭 이야기해야 해. 우리가 겪은 일이 헛되이 사라지면 안 되니까.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니까. 이 세상 어딘가에 우리의 비명소리가 남아 있어야 하니까. 우리의 그 피맺힌 통곡이......"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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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7-09 20: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익히 알고 있는 일들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다시 읽고 듣는 것은 또 다시 그것을 체험한다는 거 같아요. 제 3자로 읽는 것조차도 이런데 자신의 경험을 다시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일을 다시 겪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그런 생각도 드네요. 읽어나가기 쉽지 않겠지만 열심히 읽겠습니다. 먼저 읽으신 난티나무님 따라서요.

난티나무 2022-07-10 06:09   좋아요 1 | URL
맞아요,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기억을 되살려 말하는 건 엄청난 고통이겠죠. 전쟁 속에서도 이중삼중의 삶을 살아야 했던 여성들은 더 그랬겠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전쟁 이야기가 더 필요하고, 전쟁 후의 이야기도 역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레이스 2022-07-10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체르노빌...>과 함께 읽고 생각이 많았던 책!이예요. 리뷰 보니 다시 정리하고 싶단 생각이 드네요.
그때는 줄긋기와 태그, 발췌문 참조 정도만 했었어요

난티나무 2022-07-19 01:39   좋아요 0 | URL
엄훠나 제가 댓글을 못 보고 지나갔나 봐요.^^;;;
아아 체르노빌... 그것도 읽어봐야 겠어요. 모두 현재진행형인 일들이네요.....ㅠㅠ
 












김지연, <마음에 없는 소리> 



소설집 전체에 간략하게 감상을 남기려고 창을 열었는데, 처음엔 감흥이 적었던 첫 단편을 다시 훑는 사이 슬금슬금 또다른 감정들이 피어올라 글이 길어졌다.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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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조선소가 망한 뒤론 다 빠져나갔어요. 여긴 그전부터 어차피 나 같은 늙은이들뿐이긴 했지만 그래도 오며 가며 들르는 사람들이 있었거든. 근데 이제는 볼 것도 없고 살 것도 없어서 아무도 안 오지."

...

"겨우 오는 사람들이래봤자 쓰레기 투기를 하려는 놈들뿐이야. 저기 좀 봐. 여기다 다 버리고 간다니까. 소파, 냉장고, 자전거 같은 것도 다. 그것뿐이게? 개나 고양이도 버려. 하여튼 별의별 걸 다 버리고 가. 요 앞바다도 나 어릴 땐 저 바닥까지 투명했는데 더럽고 냄새나고 똥물 다 됐지."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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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지만, 쓰레기 버리고 다니지 말자. 자기가 머물렀던 공간에 쓰레기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집안이나 골목이나 대로이거나 시장이거나 회사이거나 여행지이거나, 세상 어느 곳에서든. 쓰레기를 남기면서 다니기 싫으면 물건 구매를 자제하자. 인간은 정말, 환경을 너무 오염시키고 있다. 이것은 나에게도 하는 말이다. 쓰레기 투척뿐만 아니라 함부로 '침범'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눈에 들어온다. 예의란, 배려란 무엇인가 계속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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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는 내 지인 중 나에 대해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와 진영의 관계를 아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왜 친한 사람들에게도 커밍아웃하지 않냐며, 요즘 세상에 숨기고 사는 게 더 촌스러운 거 아니냐고 말했을 때는 다시 보지 않으려고 했었다. 나는 상주에게 너는 편협한 인간이라고, 너의 세상은 좁고 너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사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네 주변에는 '진보' 성향의 사람들만 있어서 다 동성애에 '찬성'하는지 모르겠지만 교원 사회가 얼마나 보수적인 덴지 모르냐고. 조금만 이상한 소문이 돌아도 학부모들이 나를 자르라고 탄원을 해올 것이라고. 그러면 가르치는 일로밖에 벌어먹고 살 줄 모르는 나는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가 없게 될 거라고. 상주는 그 말들에 다 동의했지만 내게 사과를 하지는 않았다. 너 역시도 보고 싶은 것만 보며 좁게 살지 않냐고 되물었을 뿐이다. 그 말은 오랫동안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좁게 살아간다. 비밀 첩보원처럼. 들키지 않으려고. 그래서 계속 촌스럽게만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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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하면 너무 좁은 의미의 혹은 소설과는 다르게 지나치게 넓은 의미의 문장이 될 수도 있겠으나, 우리는 누구나 '커밍아웃'하지 못하는 일 한두 개쯤 가슴에 품고 사는 것같다. 슬프다. '커밍아웃'할 수 있지만 그 이후 휘몰아칠 사회적 폭풍을 감당해내기는 어렵다. 그것이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라면 더더욱. 그것이 '여성'과 관련된 문제라면 더더욱. 그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나는 좁게 살아간다. 비밀 첩보원처럼. 들키지 않으려고. 그래서 계속 촌스럽게만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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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치료받은 일을 말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걱정할까 봐 그랬다고만 했다. 진영은 화를 냈다.

"그래도 말했어야지."

"뭐하러 그래. 별일도 아닌데 괜히 걱정하고. 마음 졸이고."

진영은 다시 또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불을 붙이는 데 좀 애를 먹었다.

"마음 졸이게 했어야지."

"뭐하러."

"같이 졸이게 해줬어야지."

나는 더 할말도 없고 더 하고 싶지도 않아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 그만 가자."

진영은 내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

=======


진영의 마음을 이해한다. 얼굴을 빤히 올려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짐작이 간다. 생각하기에 따라, 별일 아닌 것은 없다. 모든 크고작은 일들이, 한 마디 말이, 몸짓이, 별일이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조차 사람마다 기준이 다른 일이 된다. 어떤 일 앞에서는 솔직하고 어떤 다른 일 앞에서는 솔직하지 못한 태도가, 정말 그 사람을 배려하는 일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

우리는 수영은 못하고 해변을 걷기만 하다가 돌아올지도 모른다. 아무리 여름이래도 밤의 바다는 추울 테고 일 년 사이 더 늙어 있을 우리에게 호기나 오기 같은 건, 충동적인 농담 같은 건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대신 우리는 함께 해변을 걷다가 쓸모없는 것들을 잔뜩 주울지도 모른다. 예쁜 소라 껍데기를 하나 주워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주워온 소라 껍데기를 서랍 속 상자에 잘 넣어두었다가 생각날 때마다 한번씩 꺼내 귀에 갖다대고 파도 소리를 듣고 또 서로에게 들려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

=======


"그런데 왜 다 벗고 수영을 하고 싶었어?"

묻지 않아도, 대답하지 않아도, 그 마음이 느껴진다. 내가 생각하는 이유가 아니더라도, '나'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 잘 몰라도, 어슴푸레하게 짚이는 지점들. 소설 속 인물들은 끝내 나체수영을 하지 못했다. 읽는 내내 그 일에 성공(?)하기를 바랬지만 성공했더라도 진영와 화자의 관계는 변함없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랬다면 혹여 '나'는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을까? 함께 한다는 건 그토록 어려운 일이다. 해변에서 주운 소라껍데기는 상자에 들어가는 순간 잊혀질 테고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꺼냈을 때는 어디서 누구와 가져왔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수 있다. 기억난다 하더라도 그때의 애틋한 마음은 증발했을 수 있다. 해변에서 무엇이든 '쓸모없는 것들'을 줍고 싶은 마음은 무엇인지, 어째서 많은 사람들이 '쓸모없는 것들'을 줍는지, 잠시 생각했다. 욕실 거울선반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조개껍데기 몇 개가 떠오른다. 어디서 주워왔더라. 이젠 알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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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7-09 06: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리에게는 말하고싶지 않은 것을 말하지않을 권리도 있다는걸 왜 사람들은 망각할까요? 커밍아웃만이 권리가 아니라 커밍아웃하지 않을 권리도 있닪아요. 아주 사소한거라 하더라도..... 단편들 중에서는 이렇게 자꾸 곱씹게 되는 글들이 있는거같아요. 뭔가 내 마음을 건들이는거겠죠. ㅎㅎ
여기는 툐요일 주말 아침입니다. 거긴 금요일 밤이네요. 푹 주무시고 즐거운 주말 맞으세요

난티나무 2022-07-09 06:35   좋아요 2 | URL
바람돌이님 말씀 맞는 말씀!!!! 말하지 않을 권리, 말할 수 있는 권리와 함께,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 늘 좋은 말씀 늠 감사해요~
어느새 주말이군요. 덥지만 마음은 시원한 주말 보내시길~!^^

공쟝쟝 2022-07-10 02:48   좋아요 1 | URL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미투… 이후를 조금 더 생각하게 되요. 누군가의 말함이 나의 말하지 않음을 들쑤시는 순간…. 들을…
저는 책을 많이 읽는 여자들, 많이 이해하는 여자들, 그러나 말하기 싫은 말할 수 없는 여자들이 글을 쓰길 바랍니다.
하고 싶은 말을 감추고 싶어하면서도 감춘 부분으로 하는 말을 쓸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고 그것은 불가해하더라도 여성이라면 감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쓰지 않으면 모릅니다. 그리고 잘 쓴다는 기준도 남성의 기준일지도 몰라요.
소설이든 산문이든 시이든… 말하지 않고 싶은 것들을 꼭 같은 방식으로 말할/말하지않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허용하는 만큼의 용기를 쓰는 난티님을 응원하겠습니다. 정확히 그 지점에서 감응하는 분들이 있다는 걸 더 믿어보시길 💕

난티나무 2022-07-10 06:32   좋아요 0 | URL
공쟝쟝님 말씀에도 동감!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거. 잘 하고 싶다!ㅋ
말하기 ‘치사‘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말해봤자 달라지는 것도 없고 알아듣는 것도 아닌, 자칫 잘못하면 찌질하다고 여겨지는 것들. 일상 속 문제들. 그러나 전혀 사소한 일이 아닌 것들이요. 말하지 않으면 계속 같은 상황 속에 살게 되니까. 적절한 방식으로 꼭 표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어떻게든 표현해 보고 싶어요.
이 소설집도 그렇게 ‘표현‘되었다고 생각해요. 관계 속의 미묘함과 어긋나는 모습들을 잘 포착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다른 방식으로 말하기! 저도 원합니다!ㅎㅎㅎ 계속 쓰자!!!!!

그레이스 2022-07-09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이 쓰다가 버린 것들과 조개껍데기, 둘다 원래의 쓸모를 다했지만 왜 다를까? 라는 생각이...!

난티나무 2022-07-09 15:35   좋아요 2 | URL
조개껍데기 같은 것은 ‘쓸모없는 것’이라는 생각도 인간 중심적 시각 같아요. 일단 자연의 일부이고…. 생명은 다했지만 해변에서 오랜 시간 물에 쓸리면서 바람에 쓸리면서 조금씩 먼지가 되어가는 것일 텐데, 그걸 그 자리에서 이동시키는 순간부터 그럴 수가 없어지니까요. 소설에서는 조개껍데기 말고도 마모된 유리조각, 라이터 같은, 사람들이 버린 물건 흔적들도 나와요. 소설적 장치이겠지만. 그레이스님 댓글에 생각이 많아지네요.^^ 저는 욕실의 조개껍데기를 보면서 다음부터는 주워오지 말아야지 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