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늦게 잠이 깨어 침대 안에서 뒹굴거리며 아침일기를 적다가. 생각이 생각을 타고 흘러버리는 바람에 떠오르는 옛 기억의 단편들. 그만 울어버렸다. 한번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왜 쉽게 멈추지 않는 걸까. 기억에서 벗어나는 혹은 기억을 이겨버리는 뭐 그런 일은 앞으로도 어려울까. 눈물도 쉼표를 찍기는 한다. 그러다 또 흐른다. 그렇게 아침부터 울고 났더니 눈이 퀭, 빡빡, 뻐근, 또 무슨 표현이 있을까. 머리도 띵 하고. 울음은 피곤하다. 몸 뿐 아니라 정신도. 울고 나면 쉬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 오전에는 책을 거른다. 사강도 읽어야 하고 육식도 읽어야 하고 오늘 반납인 빌린 책들도 봐야 하지만, 일단. 

칙피를 오븐에 구우면 맛있다고 해서 어제 불려놓은 걸 구웠다. 실패다. 검색하면 오븐에 구워 맛난 간식으로 먹어요는 많은데 실패한 후기는 없나? 잘못하면 안그래도 약한 이 다 나갈 것 같다. 갈아서 스프나 끓여야 겠다. 여담이지만 칙피는 병아리콩이다. 칙, 병아리. 튀어나온 부분이 병아리 주둥이를 닮았다나. 며칠 전 식탁에 콩 무더기가 놓여있었는데 이름 이야기 하다가 병아리 머리를 닮아서 이름이 병아리콩이래, 옆지기가 말했다. 순간 그 많은 콩들이 다 병아리 머리(만으)로 보이는 기현상이 일어나 몸을 떨었다. 으, 병아리콩이라고 안 하고 싶다. 하... 이름 왜 이런 거예요. 새로 지을 수는 없나요. 이런 생각. 

오븐 켠 김에 이어서 빵을 굽는다. 가끔 굽는다. 빵은 먹고 싶은데 시판 식빵은 한쪽만 먹어도 느끼해서 손을 못 댈 때, 커피에 무척 곁들이고 싶을 때, 아침으로 먹을 게 없다 싶을 때, 동네에 빵집이 없는 게 원통할 때, 기타등등 기타등등. 오븐 켠 김에 빵을 구우려면 후딱후딱빵이 제격이다. 발효는 기본 2시간은 걸리니. 미리미리 준비하는 거 왤케 못하지. 밀가루 말고 쌀가루 메밀가루 콩가루 있는 가루 대충 넣고 소금 조금 넣고 두유에 레몬즙 뿌려두었다가 몽글몽글해지면 넣고 오늘은 메밀효모랄까 이스트랄까 아 효모와 이스트의 차이는 뭐지 같은 건가 다른 건가, 아무튼 좀 넣고 대충 버무려 틀에 담고 오븐에 넣는다. 구워질 때까지 구우면 끝. 섞어서 바로 구울 수 있어 자주 이렇게 한다. 결과물은 사진과 같다. 






딱딱하고 갈라진 흙바닥을 보는 것 같기도 하지만 저래보여도 겉바속촉이다. 느즈막이 커피 비슷한 검은물 한 잔과 빵을 먹고 나니 12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 아직도 눈이 피곤하다. 울어서 그런 건지 몸이 피곤한 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새벽에 두 번이나 깨서 그런가. 잠귀가 얇고 숙면을 하기 어려운 그 이야기를 쓰고 있었는데.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울어버렸는데. 몇시간이 지나고서도 새벽에 깨서 피곤한가 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코끝은 아려오다니. 오늘은 글렀다. 밥이나 하자. 어제 저녁에는 쌀이랑 잡곡이랑 다 씻어서 담가놓았다. 사실 어제도 잊어버려서 저녁에 담궈논 쌀이 없었... 그래서 국수 해먹고 나서 담가놓은 것이 바로 그것. 하하. 역시 난 미리미리에 약해. 


써놓고 보니 일기인데 이걸 이렇게 써서 올릴 일인가 싶어 또 고민해 본다. 나 혼자 몰래 쓰는 일기도 결국 읽히는 대상(나)이 있다고 하니, 세상의 모든 글은 누군가가 읽기를 바라고 쓰는 글이다,라는 말도 맞는 것 같고. 슬픔이라는 하나의 단어 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오늘 오전의 감정들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으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게 맞을까 봐 슬프고 슬펐다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고. 의미가 있다면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이나 되려나 싶고. 의미는 또 뭔가 싶기도 하고. 다 무슨 소용이야 결국 이런 마음. 허전하고 덧없다. 생각은 왜 하노. ㅠㅠ 


그러므로 오늘은 빵을 구웠답니다. 책은 못(안) 읽었어요. 하하하. 그렇지만 오후가 있으니까요. 그 오후에는 어쩌면 쪽잠을 잘 지도 모르겠지만요. 어제 알라딘을 헤매다가 멋져보이는 책을 발견했어요. 정말 멋진지 보려면 사야 겠지요? 책 사러 갑니다~~~!!  (책 이야기로 마무리했으니, 앞이야 어찌 됐든,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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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1-01-14 2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우 멋진 글입니다 난티나무님 덩달아 눈가가 촉촉해졌어요. 빵 진짜 맛있어 보여요. 그리고 저는 한동안 책을 읽지 못할 거 같아요. 그냥 그런 느낌이 듭니다. 느낌만 들지 실은 읽을지도....... 일기 좋아요. 오후에는 울지 말아요. 책 구입 화이팅!!!

난티나무 2021-01-15 00:12   좋아요 0 | URL
내가 수연님의 댓글 좋아요를 누르는 것은 덩달아 눈가가 촉촉해졌다고 말해줘서일까 빵 맛있어 보인다고 말해줘서일까 한동안 책을 읽지 못할 것 같아 아 이건 아니고 일기 좋다고 해줘서일까 울지 말라고 말해줘서일까 구입화이팅이라고 말해줘서일까 잠시잠깐 생각하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좋아서였다,고 말해봅니다.

syo 2021-01-14 2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알라딘 일기꾼 syo입니다.

저희 일기파(회장syo, 회원: syo외 0명)에 가입하실 의사가 있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방문하였습니다. 망설이지 마셔요. 일기 써서 올리는 건 죄가 아닙니다! 그게 죄였다면 저는 무기징역.....


난티나무 2021-01-15 00:21   좋아요 0 | URL
syo님의 글은 때론 시이면서 때론 소설이면서 때론 철학서이면서 때론 또다른 무엇이다..라고 할까요.
일기파 회장님의 방문과 격려 감사히 받습니다.^^

다락방 2021-01-15 14:11   좋아요 0 | URL
일기 써서 올리는 게 죄였다면 저 역시 유죄.... (아 멋있어..)

다락방 2021-01-15 14: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우리 계속 일기 써서 올립시다. 지금쯤은 기운 나셨기를 바랍니다!
왜, 애니매이션 [인사이드 아웃] 보면 기쁨이가 출몰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슬픔이가 존재해야 했잖아요. 기운 없음은 나중의 기운 나는 시간을 가져오는 것 같아요. 그러니 인생에 필요한 시간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난티나무 2021-01-17 01:09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이 댓글에 답글 달았다고 생각했네요. @@
다락방님 고맙습니다. 그 시간들도 또한 나를 구성하는 거니까요. 옳은 말씀.
밖에 또 눈이 오네요. 올겨울은 이런가 봅니다. 눈과 추위와 여전한 상황.
그리고 일요일, 진정한 휴식과 위안의 날 보내시기를요.
 

2021년 첫날, 

눈부신 우리 동네 풍경을 새해카드 대신으로. 

예~~~전에 몇 장 보셨을 수도.^^ 

오래전 사진이지만 풍경은 변함없이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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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1-01-01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좋습니다.
나이테 드러난 저 문짝 사진이 오늘은 유난히 더 눈에 들어오네요.

난티나무 2021-01-01 17:59   좋아요 0 | URL
낡은 문짝은 왜그리 시선을 잡아당기는지 모르겠어요.ㅎㅎ hnine님 감기 조심하세요~!!^^

2021-01-01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1 1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2 1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2 1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12월 끝자락, 다들 한해를 돌아보네 싶어 나도 돌아본다. 매일매일 돌아보는데 한해의 끝이라고 뭐 다를 거 있겠냐마는,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마는 것 끄적끄적. 


책을 좋아하고 책읽기를 즐긴다고, 누가 물어보면 답하고 다녔었다. 내가 과연 그런가 싶은 생각이 들도록 그동안 책을 가까이 하지 못했다. 정말 책을 읽고 싶었다면, 프랑스어를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을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프랑스어책을 읽지 않았을까? 

돌이켜보면 프랑스어를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과 마음과 의지는, 유학 초기 어떻게든 어학을 해보려고 했던 5년여 정도에만 가졌던 듯하다. (총 기간은 5년이지만 거기서 이러구러 빼야 할 기간이 너무 많다.ㅠㅠ) 필요는 느끼지만 실행은 하지 않는(하기 싫은) 시간들이 이어졌다. 먹고 자고 키우고, 당장 코앞에 놓인 일들과 맞물려 매달 바닥을 치고 들어가는 통장의 보잘것 없음과 씨름하며, 한숨 돌리고 긴장하고 스트레스 받다가 다시 한숨 돌리는 한달 단위의 반복. 궁하면 통한다 비슷한 말을 들어본 것 같은데, 궁하니 정신만 피폐해지던 걸. 아 몸도 아프더라. 

나약한 거지. 그래, 그 말이 맞다. 나약함. 

걱정만 하면서 쪼그라든 생활을 하는 나약한 사람, 나는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성격을 바꾸긴 어렵다고, 그런 말을 들으면, 아니다, 바꿀 수 있다, 생각이 바뀌면 사람도 변한다, 바락바락 떼를 쓰곤 했다. 그래서, 나는? 

알라딘 한해정리를 보니, 작년 12월에 시작된 책사기는 1~3월을 쉬고 4월부터 12월까지 계속되었다. 예전에는 한국에서 책을 사면(주로 아이들 어릴 때 그림책, 동화책들) 그걸 선편으로 부쳐달라 해서 두세달 걸려 받았었고, 아이들이 크면서 차츰 책사는 일도 줄어들었다. 올해엔 코로나 때문인지 덕분인지 ems만 뜨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 해도 아마 기다릴 수 없어서 항공우편으로 받았을 것이다. 잠시 나아진 형편으로, 그리고 책이 짐이 된다는 생각을 던져버리면서, 분에 넘치게 책을 샀고 분에 넘치게 매번 항공으로 받았다. 작년까지는 시도해볼 엄두도 못냈던 일이다. 작년 겨울, 알라딘에 북플이 생긴 걸 알았고 여전히 많은 분들이 많은 책을 읽고 계셨던 덕분에 다양한 좋은 책을 사고 읽고. 그렇게 책들을 읽으면서 그동안 나는 책을 헛읽었구나 했다. 이런저런 생각이 제법 바뀌었다. 그래서 내가 변했나 하면, 지금 보니 여전히 그대로인 듯하다. 두 발바닥에 초강력 접착제를 바른 채 울퉁불퉁한 바닥에 딱 붙어서 어딘가 다른 곳으로 기어가려고 용을 쓰고 있는 것 같다. 한발짝만큼 움직인다고 해도 울퉁불퉁한 바닥은 그대로일 것만 같다. 나는 무언가 달라졌지만 바뀌지 않았다. 착각하고 있다가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몇년 전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도 착각 속에서 물었지, 나 많이 변하지 않았냐고. 친구 왈, 아니 하나도 안 변했는데. 

울고 싶다. 좀 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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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31 0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31 14: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뼘책방,이라는 헌책방이 있다. (아니, 있었다.ㅠㅠ) 

이름만 안다. 어디서 보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한뼘의 책방에 헌책을 판다고 하니 가보고 싶었었다. 책도 출판한다고 해서 검색해 보고 리스트가 괜찮은 느낌이라 [서점, 시작했습니다]를 중고로 샀더랬다. 그 책이 집에 한 달 후 도착하고 아직 책을 펼치기도 전인데 책방을 어제 날짜로 닫았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했다.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헌책들이 있는지 하나도 모르지만, 문을 닫는다니 슬프다. 작은 동네책방 문을 닫는다는 소식은 늘 그렇다. 헌책방이라 더더욱. 


한국에 가면 들러야지 하고 지도에 콕 찍어놓은 동네책방 수가 리스트를 넘어 흘러넘칠 지경이다. (실제 전국의 동네책방 수는 적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일일이 다 찾아다니기에는 많다는 말이다.) 지도에 그 동네책방들을 찍으면서 없어지지 말아라, 중얼거리곤 했다. 한번에 다 못 다닐 테니 오래오래 그 자리에 있어 2년 후에도 5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찾아갈 수 있게. 

그 중 하나였던 한뼘책방. 이름도 정다웠던. 나는 아무런 상관도 없고 그저 그 이름을 들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아쉬운 마음에 한뼘책방에서 출판한 책들을 검색창에서 뒤적여 본다. 알라딘에서 아마 처음 받은 것 같은 이달의 페이퍼 적립금으로 무슨 책을 살까 했었는데, 한뼘책방의 책을 사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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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왜 이러지.
책 읽는데 눈물이 나.
어제도 시 읽고 울었는데
오늘은 에세이 읽으면서 울어.
잠은 새벽에 깼지만
침대에서 나오기 싫어
인터넷 여기저기 들쑤시고
영양가 없는 실용서 한 권 휘리릭 읽고
그리고 내일 반납해야 하는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을 읽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아 흡 숨을 들이마시고서
그제야 느릿느릿 옷을 갈아입고
책 들고 부엌으로 와 사과 두 알 깎아놓고
우적우적 씹다가 울어버렸어.
오늘은 왜지
오늘은 뭐지
별것 아닌 문장에 왜 줄줄 울지
난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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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12-07 1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금희 문장이면 눈물나도 인정이요 ㅋㅋ근데 전 산문집보다 소설이 눈물나요 김금희는. 경애의 마음 진짜 눈물 쥬르륵

난티나무 2020-12-07 18:37   좋아요 1 | URL
그런 것이었던 것이었군요!! 엉엉 계속 울면서 절반 읽었어요.
아직 소설 하나도 안 읽은 게 함정.. 집에는 [복자에게]와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래 생각해]가 있습니다... 어쨌거나 김금희 읽을 땐 휴지를 꼭 손에 쥐고 있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