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끝자락, 다들 한해를 돌아보네 싶어 나도 돌아본다. 매일매일 돌아보는데 한해의 끝이라고 뭐 다를 거 있겠냐마는,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마는 것 끄적끄적. 


책을 좋아하고 책읽기를 즐긴다고, 누가 물어보면 답하고 다녔었다. 내가 과연 그런가 싶은 생각이 들도록 그동안 책을 가까이 하지 못했다. 정말 책을 읽고 싶었다면, 프랑스어를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을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프랑스어책을 읽지 않았을까? 

돌이켜보면 프랑스어를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과 마음과 의지는, 유학 초기 어떻게든 어학을 해보려고 했던 5년여 정도에만 가졌던 듯하다. (총 기간은 5년이지만 거기서 이러구러 빼야 할 기간이 너무 많다.ㅠㅠ) 필요는 느끼지만 실행은 하지 않는(하기 싫은) 시간들이 이어졌다. 먹고 자고 키우고, 당장 코앞에 놓인 일들과 맞물려 매달 바닥을 치고 들어가는 통장의 보잘것 없음과 씨름하며, 한숨 돌리고 긴장하고 스트레스 받다가 다시 한숨 돌리는 한달 단위의 반복. 궁하면 통한다 비슷한 말을 들어본 것 같은데, 궁하니 정신만 피폐해지던 걸. 아 몸도 아프더라. 

나약한 거지. 그래, 그 말이 맞다. 나약함. 

걱정만 하면서 쪼그라든 생활을 하는 나약한 사람, 나는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성격을 바꾸긴 어렵다고, 그런 말을 들으면, 아니다, 바꿀 수 있다, 생각이 바뀌면 사람도 변한다, 바락바락 떼를 쓰곤 했다. 그래서, 나는? 

알라딘 한해정리를 보니, 작년 12월에 시작된 책사기는 1~3월을 쉬고 4월부터 12월까지 계속되었다. 예전에는 한국에서 책을 사면(주로 아이들 어릴 때 그림책, 동화책들) 그걸 선편으로 부쳐달라 해서 두세달 걸려 받았었고, 아이들이 크면서 차츰 책사는 일도 줄어들었다. 올해엔 코로나 때문인지 덕분인지 ems만 뜨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 해도 아마 기다릴 수 없어서 항공우편으로 받았을 것이다. 잠시 나아진 형편으로, 그리고 책이 짐이 된다는 생각을 던져버리면서, 분에 넘치게 책을 샀고 분에 넘치게 매번 항공으로 받았다. 작년까지는 시도해볼 엄두도 못냈던 일이다. 작년 겨울, 알라딘에 북플이 생긴 걸 알았고 여전히 많은 분들이 많은 책을 읽고 계셨던 덕분에 다양한 좋은 책을 사고 읽고. 그렇게 책들을 읽으면서 그동안 나는 책을 헛읽었구나 했다. 이런저런 생각이 제법 바뀌었다. 그래서 내가 변했나 하면, 지금 보니 여전히 그대로인 듯하다. 두 발바닥에 초강력 접착제를 바른 채 울퉁불퉁한 바닥에 딱 붙어서 어딘가 다른 곳으로 기어가려고 용을 쓰고 있는 것 같다. 한발짝만큼 움직인다고 해도 울퉁불퉁한 바닥은 그대로일 것만 같다. 나는 무언가 달라졌지만 바뀌지 않았다. 착각하고 있다가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몇년 전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도 착각 속에서 물었지, 나 많이 변하지 않았냐고. 친구 왈, 아니 하나도 안 변했는데. 

울고 싶다. 좀 울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20-12-31 0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31 14:2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