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씩 지구 위를 이사하는 법
앨리스 스타인바흐 지음, 김희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이 책은 확실히 나는 놈 축에 들어간다. 여행기가 갖추어야 할 모든 덕목을 두루 갖추었고 게다가 세련되면서도 메세지가 분명하다.  

여행 중에 한번쯤 꿈꾸었을 법한 일들을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것 자체가 놀랄 만하다. 그 비슷한 흉내마저 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기 때문이다.  

인도의 바라나시에서는 많은 외국인들이 인도 전통 악기를 배우려고 모여든다. 내가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에는 러시아인들이 많이 머물고 있었는데 밤이면 여기저기서 타블라라는 북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반쯤 부러운 생각에 마음 한끝이 슬퍼지곤 했지만 마음의 반은 자포자기 심정이 되곤 했다. 

여행 중에는 늘 이방인이었고 그건 그것대로 좋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그런 여행은 반쪽짜리 여행도 못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여행생활자'라는 모호한 말도 있지만 이 책에서 보여준 여행 방법은 다양하면서도 분명하여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이 책의 저자인 앨리스 스타인바흐가 배움의 장소로 택한 곳 중에는 내가 여행한 곳도 몇 군데 있다. 그러나 나는 '감히' 무엇인가를 배우겠다는 꿈조차 꾸지 못했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곳으로도 만족스러웠으니까. 비교해보면 참으로 초라한 여행이었다는 자괴감마저 든다.  

이국적인 정경에 빠져 침만 질질 흘렸던 스코틀랜드에서 이 저자는 양치기 길 들이기를 배우고, 우피치 미술관 관람 하나만으로도 행복에 겨웠던 피렌체에서 이 저자는 예술 강좌를 듣는다. 교토는 또 어떤가. 감히 비교한다는 자체가 무모하고 무의미할 뿐이다. 

Learning Travel. 왜 미처 그런 생각을 못해봤을까. 이 저자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이 책에서는 얻어들을 게 너무나 많다. 그 중 몇가지. 

p.272 ..달을 보는 것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일본의 전통이다. 다양한 그림과 시에서, 달을 바라보는 것은 영혼을 살찌우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런 생각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래서 나는 어느 날 가모 강둑에 앉아 달을 바라보기로 했다. 천년 전에 사가 천황이 그랬던 것처럼.(일본 교토엣 전통 춤과 다도 배우기) 

p.323.....그러고 나서 훌륭한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할 때 말해야만 하는 것을 우리에게 정리해주었다. " 기본적으로 스트립 댄서들이 옷을 벗는 순서와 똑같이 해야 해요. 벌거벗은 채 무대 위로 나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옷을 너무 빨리 다 벗어버려도 안 되고 너무 느리게 벗어도 안 돼요. 거기엔 리듬이 있어야죠."(체코 프라하에서 글쓰기 수업 듣기) 

p.363 ..나는 올바른 선택과 잘못된 선택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선 지 이미 오래였다. 삶이 비상 탈출구 하나 없는 직선 도로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으며, 삶이라는 길을 걷는 내내 우리에게는 언제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확신했다. 게다가 지난 10년 동안 내가 한 선택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 모른다는 생각을 점점 더 즐기는 쪽으로 변해왔던 것이다.(프랑스 아비뇽에서 프로방스식 정원에 탐닉하기) 

이 세련된 자신감은 감히 흉내조차 내지 못할 일처럼 보인다. 한 수 배우고 싶어, 이 저자와 나와의 거리를 따져본다. 

며칠 전 엔디 워홀전에 갔을 때였다. 딸아이가 묻는다. " 앤디 워홀이 언제 사람이야?" "음, 1928년생이니까 너희 할아버지와 같은 해에 태어나셨네. 근데 너무 비교된다." 옆에 있던 남편이 볼멘 소리로 한마디 한다. " 사는 방식과 시대 배경이 다른 데 그게 비교가 돼?"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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