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
임준수 지음, 류기성 사진 / 김영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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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언제 읽었던가? 출간되자마자 책을 구입해서 읽었던 것 같은데 지금 내 수중에는 없다. 

그동안 일회성 입장을 거부하던 도도한 수목원이 천리포 수목원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일반인에게 개방을 했다. 덕분에 오늘 가 보았다. 정말 벼르고 벼르던 일이었다. 

그간 다녀온 수목원이라야 이 정도이다. 산림청 연수 받을 때 연수차 들른 광릉 국립수목원, 아침 고요 수목원, 외도의 식물원, 그리고 경기 화성에 위치한 물향기 수목원. 아참 하나 더 있다. 외도를 가꾼 분의 딸 내외가 운영하는 피나클랜드도 갔었다.

광릉 수목원에서 연수를 받을 때는 한겨울인 1월이었다. 나뭇잎을 봐도, 꽃잎을 봐도 무슨 나무인지 무슨 풀인지 제대로 구분도 못하는 문외한이 한겨울 나목을 보고 설명을 들은들 얼마나 이해하겠는가. 처음 접하는 나무의 세계에 그저 어리벙벙할 따름이었다. 

내 직업의 세계와는 전혀 관계 없는 이 분야에 대한 내 관심이라야 별 것이 없다. 어쩌다 책 한 권 읽고 한 번 가봐야지 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관싱이나마 불러 일으킨 책이 바로 이 책<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이었다. 

이 책을 통해서 이방인이자 귀화 한국인인 '민병갈'을 알게 되었고, 그의 열정에 감탄과 존경심이 우러났다. 오늘 이 수목원의 연못가에 있는, 민병갈을 기리는 석조 개구리를 보면서, 죽어서 개구리로 태어나고 싶다던 그의 바람 앞에서 잠시 숙연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꽃과 나무의 세계를 접하면서부터 나는 내 직업과 내가 그동안 해온 이런저런 공부들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가지 못한 길이 아니었다. 아니 이런 길이 있다는 것조차 일찍 깨우치지 못한 내 어리석음에 한숨이 저절로 났다. 

이런 한탄을 불러 일으키는데 한 역할을 한 게 바로 이 책이었다. 바로 민병갈의 삶이었다. 또 다른 세계에 대한 눈을 뜨게 해주었다.

천리포 수목원은 외도의 현란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나는 이곳이 더 마음에 든다. 외도 역시 한 개인이 일으킨 절대 미감의 식물원이며 감탄을 금할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내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곳은 이 천리포 수목원인 것 같다. 카메라 보다 다이어리가 더 어울리는 곳이다. 

그런데 이 책, 안녕하신가 모르겠다. 이 책을 중국 따리의 한 한국인 게스트하우스로 보냈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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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는 베르사체를 입고 도시에서는 아르마니를 입는다 - 패션 컨설턴트가 30년 동안 들여다본 이탈리아의 속살
장명숙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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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과는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살아가는 내가 이 책을 읽게 될 줄이야. 

이탈리아를 가볼까나 구상중이어서 이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이미 93년과 96년에 이탈리아의 유명한 몇 도시를 다녀오긴 했지만, 그당시 여행이란게 그렇듯 지나고 보니 수박 겉핥기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 중 한겨울에 갔었던 밀라노는 여타의 도시보다도 볼거리가 없었고 스산한 겨울 추위만 뼈저리게 실감하고 왔던 기억이 난다. 호텔에서는 뜨거운 물 한 잔 얻어 마시기가 얼마나 힘들던지 눈물이 날 정도였었다. 몸은 천근만근이었고 여행 자체가 고행이었다. 한 달간의 여행을 끝내고 와서야 임신 사실을 확인했으니, 입덧을 치르며 하던 이탈이라 여행이었다. 

이 책을 읽자니 그 고생스런 이탈리아 여행이 새록새록 생각이 났다. 그리고 부러웠다. 다른 세계를 살짝 들여다보는 여행이 아닌 그곳에서의 삶이 몹시 부러웠다. 그 어려움과 고달픔이야 한낱 여행에 비할 바가 아니겠지만 한 세계를 샅샅이 경험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두고두고 부러운 일이다. 저자를 이탈리아로 이끈 칸초네 한 곡, 그 운명같은 만남이 왜 내겐 없었을까,하는 쓰잘데 없는 아쉬움 한 자락이 남는다. 내가 성장한 미군 부대 옆동네는 온통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들로 그득했다. 미국 문화는 지향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지양해야할 기피 대상이었다. 

이 책은 참 적절한 내용에, 그에 어울리는 적절한 글에, 또 적절하게 읽을 만하다. 이런 종류의 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과시나 자랑 같은 것도 없다. 내용은 빈약하고 포장만 요란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건 기우였다.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저자의 품위가 느껴졌다. 

(232)...더구나 패션은 예술이 아니다. 인간이 신체 위에 걸치는 기술일 뿐이다. 멋있고 아름다울수록 빛을 발하는 기술이다. 

패션 컨설턴트라는 저자의 중후만 멋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요란한 예술 아니 요술처럼 보이는 패션에 대한 이 짤막한 정의에, 저자에 대한 신뢰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 첵은 (제목에서 느껴지는) 단순히 패션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이탈리아 전반에 관한 책이라고 해야겠다. 여행으로서는 절대로 파악할 수 없는, 그 세계에서 살아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살아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행의 한계를 분명하게 지적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삶의 속속들이를 여행을 통해서는 절대로 알 수 없음을 자각하게 해준다.  

별 것 있는 여행을 위해서 읽었건만 결과적으로 별 것 없는 여행의 한계를 분명하게 깨닫게 해준다. 이래저래 아프다. 저자의 다양한 삶이 부러워 아프고 맛만 보고 그칠 내 여행의 얄팍함에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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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쌈 차차茶 - 인도여행, 90일간의 차밭살이 이야기
김영자 지음 / 이비락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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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의 글 보다 찻잎 따는 진짜 경험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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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범우문고 2
법정스님 지음 / 범우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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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붉은색 책은 요즈음에 나오는 책이고 사진 속 책은 1982년 2월 10일 3판으로 발행된 책이다. 값 700원. 범우사.


고향집에 갔더니 예전에 읽던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있었다. 감회가 새롭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책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책장을 넘기게 되어 있고 문장도 세로로 되어있다.

내가 과연 이 책을 읽었었나 싶다. 책에 써넣은 유일한 메모를 보니 대학 3학년 말에 구입했다고 적혀있다. 책을 너무 깨끗하게 보았다. 메모가 없는 옛 책은 뭔가 아쉬움을 남긴다. 이 책을 읽으며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이제는 안경 없이는 읽기도 힘든 책이지만... 돌아가신 아버지를 뵙는 기분이다.

딸내미 왈, "엄마와 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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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난 월요일 아침(5월3일) 다른 식구들이 모두 먼저 나가고 나도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려고 하는데 열쇠 꾸러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동차 키 하나 없는 소박한 열쇠 꾸러미였다. 다른 열쇠는 둘째치고 당장 집을 나설 수가 없었다. 출근 시간은 시시각각 임박해오는데 문을 잠그고 나갈 수가 없었다. 등에서 식은 땀이 흐르고 가슴이 조여오면서 정신마저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끝내는 출근 시간을 넘기고야 말았다. 이미 출근한 남편이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나를 집에서 꺼내주기까지 약 한 시간이 걸렸다.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말 그대로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열쇠가 없어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와 역시 열쇠가 없어 집에서 나올 수 없는 경우(꼭 집 밖으로 나가야 하는 다급한 상황에서) 중 어떤 것이 더 힘들까? 집에 들어갈 수 없을 때는 열쇠공을 부르면 되겠지만, 나올 수 없을 때는 도움을 청할 데가 없다. 집을 그대로 방치하거나, 아니면 누군가 집을 대신 봐주지 않는 한 집에서 나갈 방법은 없다. 문만 열면 밖인데 밖으로 도저히 나갈 수가 없다. 악몽 같은 경험이었다. 

지난 월요일(5월10일). 며칠 전 집을 나갔던 한 녀석이 자살을 기도하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싸이월드에 글을 남겼다며 녀석의 친구가 담임인 내게로 달려온 것이다. 녀석의 친한 친구들을 불러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다급한 김에 직접 찾아보기로 했다. 한 친구녀석을 데리고 택시를 타고 녀석 찾기에 돌입했다. 자주 들락거린다는 피시방을 집중 공략하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의 화장실까지 살펴보고 다니자니 입은 바싹 타오르고 가슴이 계속 조여왔다. 이 일을 어쩌나.... 

내가 녀석의 친구와 함께 있다는 걸 눈치 챈 녀석은 끝내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나타나지 않았다. 그냥 돌아왔다. 얼마 후 학년 부장 교사와 총무를 맡은 교사가 나서서 찾아보았으나 역시 허탕을 쳤다. 학생 부장, 교감,교장 한테 보고가 되고 여러 대책 끝에 또 한 번 학년 부장과 총무 교사가 나섰다. 오후였다. 운전 면허조차 없는 내 초라함과 무능이 그대로 부각되었다. 

결국 녀석을 잡아왔다. 녀석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복잡하고 착잡했다....곧이어 부모가 왔고, 간단한 진술서를 쓰게한 후, 녀석을 부모와 함께 집으로 돌려보냈다.... 눈물이 났다.

이틀을 쉬고 어제부터 등교하기 시작한 녀석은 아직도 내 얼굴을 바라보지 않는다. 나 뿐 아니라 학교 자체로부터 마음을 돌려버린 듯하다. 녀석은 싸이월드에 미리 써놓은 유서에서 "낙이 없다"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도 녀석에겐 낙이 없어 보인다. 공부, 외모, 집안 형편...뭐 하나 신통한 구석이 없다. 존재감이 없는 녀석은 '보이지 않는 인간'처럼 그저 하루 하루를 별 의미없이 흘려보낼 뿐이다.  

훈계조 일색인 상담은 나도 하기 싫어서 못한다. 선생 앞에서 주눅들기 일쑤인 녀석을 상담 혹은 대화랍시고 앞에 앉혀놓고 이런저런 말을 하고 싶지도 않다. 녀석은 내게는 자폐아와 다를 바 없다. 마음을 꽉 닫은 상태에서 내가 녀석에게 늘어놓는 말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래서 그냥 눈치를 보며 기다릴 수 밖에.

열쇠를 잃어버려 집 안에 잠시 갇혔었던 열흘 전 일이 녀석과 자꾸 겹쳐진다. 녀석에겐 세상에 나올 열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에겐 '되는 게 하나도 없는' '포기'하고 싶은 세상이다. 녀석이 절감하는 절망감을 교사인 나는 도저히 알아내지 못한다. 절망감에 자살을 생각하는 녀석 앞에서 나는 무능하고 무력하다. 

성과급으로 선생을 농락하는 세상에서 나는 기꺼이 C급 선생임을 인정한다. 아이들 마음 하나 열지 못하는 나는 C급도 황송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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