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안토니오 알타리바, 킴 지음,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 길찾기 / 2013년 7월
평점 :
오늘 아침 한겨레신문에 실린 '스페인 예술만화, 한국선 청소년 유해물'이라는 기사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99579.html
마침 어제 밤 12시까지 눈이 빠져라하고 읽었던 책이라 급관심이 갔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도 한참이나 멍한 기분이 되어서 입이 무겁게 가라앉아버렸다. 말은 하고 싶은데 생각이 잘 정리가 되지 않았다.
기껏 입에서 튀어나오는 어휘는..."과연 명불허전의 책이다" 정도였다. 파란만장, 우여곡절,변화무쌍의 삶을 살았던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삶이 결국은 현실과 타협하게 되고 노년에 이르러서는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관료적인 양로원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는 내용인데, 그 주인공의 인생역정이 우리 부모 세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요양병원에 계신 엄마의 절망적인 한숨소리까지- "죽고 싶다. 농약 좀 사와라."- 떠올라서 무거운 마음이 계속 이어졌다.
누군가는 이런 민초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의 기록이다. 큰 줄기만을 본다면 성행위 장면 따위는 그냥 한 부분으로 묻혀 버리고말아 크게 부각되지도 않는다. 그것도 굴곡진 삶의 한 부분일 뿐이다. 오히려 그 부분만을 떼어내어 생각한다는 자체가 매우 우습고 졸렬하다. 이 책을 설마 '의식화' 서적으로 분류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하게 된다.
위의 기사에서 지은이 알타리바(책 주인공의 아들)의 말에 백배 공감이 간다. “다른 나라에서는 아무 문제 없이 출간됐다. 이 작품을 통해 전쟁, 난민수용소, 독재 체제의 참상을 이야기하려 했지만, ‘윤리’라는 잣대를 든 한국의 간행물윤리위원회는 ‘음란성’밖에 보지 못한 것 같아 슬프다”
'윤리'. 지겨운 어휘다.
마침 읽고 있는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의 몇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p204...시는 기억술이라는 말이 있다. 비단 시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은 왕성했던 생명과 순결했던 마음을, 좌절과 패배와 분노의 감정을, 마음이 고양된 순간에 품었던 희망을, 내내 기억하고 현재의 순간에 용솟음 쳐오르게 하는 아름다운 방법이다. 기억이 없으면 윤리도 없다고 예술은 말한다. 예술의 윤리는 규범을 만들고 권장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순결한 날의 희망과 좌절, 그리고 새롭게 얻어낸 희망을 세세연년 잊어버리지 않게 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