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잘한 일(잘했다고 생각되는 일) 두 가지이다.

1. 인도여행 

2. 해피토마토 요리를 개발한 것 

2년 전 감자 한 박스를 얻었다. 평소에 요리다운 요리와는 전혀 거리가 먼 자취생같은 살림살이를 꾸려나가다보니 몇 알도 아닌 감자 한 박스는 내게는 정말 언감생심, 안절부절, 대략난감이었다. 미역국에도 넣어보고, 간장조림도 해보고, 채 썰어 볶아먹기도하고(이건 몸에 안좋다고 해서 이내 그만두었다) 삶아 먹기도 해보았지만 그래도 감자가 남아돌아서 썩어나갈 지경이었다. 때마침 토마토까지 박스로 들여놨더니 15 여년 전에 들여놓은 금성 냉장고가 미어터질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둘 다 해치울 작정으로 토마토감자조림을 해보았다. 고추장 감자 조림에 그저 토마토 몇 알, 설탕 대신 매실 엑기스를 넣었을 뿐인데 맛이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식구들이 이것만 먹었다.감자를 한 상자 더 샀는데 금방 다 먹었다. 한 상자 더 들여놓고 먹었더니 겨울이 왔다. 

작년. 고추장감자조림은 이제 약발이 약해졌다. 요리라는 건, 인기에 연연하는 연예인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물리기 시작하면 찬란했던 한 순간은 그저 과거의 추억으로 남을 뿐이다. 수명 다한 감자는 사지 않으면 그만인데 토마토는 감자와는 다르다. 안먹을 수가 없어 구입은 하는데 먹는 방법이 별로였다. 그전에는 토마토를 썰어서 설탕만 뿌려도 맛있게 먹었는데 알고보니 설탕은 단거(danger ㅋㅋ)란다. 백해무익이라는 사실을 책에서 읽고나니 이것도 옳은 방법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때 떠오른 것이 영국 여행 때 먹어본 토마토 구이였다. 영국식 민박인 b&b에서는 아침식사로 꼭 작은 토마토 구이가 딸려나왔었다. 처음엔 이걸 보고 속으로 비웃었었다. 아니 토마토도 구워먹네...이걸 먹으라고라...그런데 의외로 맛있었던 기억이 났다. 

처음엔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휘휘 돌려가며 구웠는데 물과 기름이 불과 만나더니 성질이 고약해지는것이었다. 사방으로 튀더니 팔뚝, 손잔등마저 따끔거렸다. 그래도 맛은 괜찮았다. 얼마간 계속 그렇게 먹다가 가스레인지에 붙어있는 생선 그릴이 어느날 눈에 들어왔다. 구입한지 8년 동안 딱 한번 사용했던 생선그릴은 그간 쓸 수도 버릴 수도 없는 계륵같은 것이었다. 토마토를 통놈으로 넣을 수가 없어 횡으로 반을 잘라 넣어보니 겨우 들어갔다. 구이판에 호일을 깔아보니 좀 더 쓸만했다. 그렇게 구운 토마토는 한결 요리하기 편하고(뭐 요리라고 할 것도 없겠지만) 맛도 괜찮았다.  

그럭저럭 먹을 만했지만 피자치즈를 뿌려보면 어떨까 싶었다. 맛이 놀라웠다. 이 맛은 생각만으로는 혹은 귀로만 들어서는 절대 모를 맛이다. 직접 먹어봐야 알 수 있는 맛이다. 처음 두세번은 잘 모른다. 꾸준히 먹다보면 "먹는 것이 이렇게 행복감을 줄 수도 있구나"를 몸으로 깨닫게된다. 평소 먹는 것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나도 이 구운 토마토 앞에서는 늘 침을 질질 흘린다, 매번. 이렇게 토마토 구이를 아침 식사때마다 후식으로 해먹은지 만 1년이 되어간다. 그래서 냉장고에 토마토가 바닥을 드러내면 내 일상은 침체 모드로 바뀐다. 

이름하여 "해피토마토" 

더욱 맛있게 먹는 방법은, 1)익혀서 바로 먹을 것, 2)토마토를 먼저 먹고 치즈는 나중에 먹을 것, 그래야 토마토와 치즈맛을 제각기 즐길 수 있다. 

요리할 때의 포인트. 온도조절이 관건이다. 치즈를 약간 노릇하게 익혀야 제 맛이 나는데 전자레인지로는 약간 맛이 덜 난다. 내가 사용하는 가스레인지의 생선그릴을 예로 들면, 토마토를 넣은 후 얼마쯤되면 유리뚜껑에 김이 서리는데 그것이 다 증발되어서 유리뚜껑이 건조가 되면 처음의 중불에서 제일 낮은 불로 줄여 3분 정도 가열한 후 불을 끄고 2분정도 두었다가 꺼내면된다. 이 방법은 가열기구에 따라 다른 것이므로 각자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개발해야한다. 

하루를 해피토마토가 주는 작은 행복감으로 시작하는 것....내 친구들에게 해줄 수 있는 작은 기쁨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출근길. 이웃 동네에 새로 들어선 아파트 단지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꽃들이 활짝 피어나고 있다. 꽃나무라고해야 얼마 전 한차례 꽃을 피운 목련 몇 그루와 벗나무 몇 그루, 서서히 기지개를 펴고 있는 넝쿨장미, 그리고 영산홍이 전부인 단촐한 화단이다. 며칠 전엔 영산홍이 일제히 꽃망울을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치 출발선에 선 육상 선수들처럼 서로 질세라 바짝 긴장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출근길의 내 발걸음은 보폭이 크고 속도가 빠르다. 5층에 위치한 사무실을 단숨에 가는 것, 즉 5층에 이르는 계단을 한번도 쉬지 않고 단번에 오르기가 올해의 내 작은 목표인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걸어서 15분 정도가 걸리는 출근길을 빠른 걸음으로 걷다보면 그 모아진 동력으로 내쳐 5층까지 밀고 가는 게 내 목표에 이르는 전략이라면 전략이다. 

빠르게 걸어가며 옆으로 스쳐지나가는 듯한 여러 무리의 영산홍을 눈에 담는 다는 것은....아름답다는 느낌 이전에 눈의 피곤함이라는 물리적인 반응이 먼저 일어난다. 사방연속 무늬나 체크무늬에 잠시 눈길만 주어도 금세 난시로 변해 버리는 내 눈 탓이다. 해를 향한 꽃망울들의 종대 횡대 일정한 반복성에 금세 눈이 피곤해지곤 한다. 눈이 아른거리고 어지럽기까지 하다. 아마도 민감함 보다는 노안의 원인이 더 큰 것 같지만.... 

올 봄은 이 꽃무리들이 몹시 어지럽게만 느껴진다. 열흘 전,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교실 컴퓨터의 본체에 있는 중요부품(cpu등)을 도난당했다. 여러 선생의 설득 끝에 가져다 놓기는 했으나 본 물건이 아닌 중고품으로 기만만 당하는 꼴이었다. 다시 치밀한 필적 감정과 정공법으로 녀석을 잡아내기까지는 며칠이 더 걸렸다. 결국 범인은 학급 안에 있었다. 한 남학생의 소행이었다. 시치미 떼는 이 녀석을 잡아 내기 까지는 말 그대로 한 편의 추리극이라고나 할까. 하여튼 우여곡절 끝에 완전범죄는 없다는 교훈을 상기 시키는 데 까지는 성공했으나 문제는 이 때부터다.  

이 녀석을 어떻게 지도해야하나. 아직도 이 숙제를 끌어안고 끙끙 거리고 있는 중이다. 오늘 써 낸 녀석의 반성문에는 이런 내용의 글이 적혀있었다. 

"......아침에 학교에 들어서면서 꽃 한송이를 보았습니다. 이 꽃도 꽃을 피우기 위해서 고통과 고난을 이겨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녀석이 반성문을 쓰는 동안 집에 가지 않고 끝까지 기다려주는 두 명의 친구 녀석들 때문에 다잡았던 내 마음도 잠시 흔들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녀석과의 동조 여부를 캐는 것도 놓칠 수 없는 일이다보니 그저 어지러울 뿐이다. 

 

누나와 단 둘이 살고 있는 녀석(지난번 글<길을 걷다가 1>에서 언급했던 녀석)의 친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떤 얘기 끝에 이런 말을 했다. 

" 제가 (제 자식을)돌보기에는 제 처지가 여의치 않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요...애아빠와 함께 살고 있는 그분한테 선생님이 전화 한 번 해주시지 않으실래요? 그분도 우리 아이를 맡고 싶어하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전화번호는 우리 아이가 알고 있어요." 

뭐시라고? 남의 집 가정사까지 교통 정리를 해달라고? 선생을 믿고 의지하는 것에 감사해야되나, 제 자식 감당 못해 남한테 떠 맡기는 처사를 분통 터트리며 이해해주어야하나. 그저 어지러울 뿐이다. 

올 봄은 꽃은 꽃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어지러울 따름이다. 내일은 혈압 측정하러 병원에라도 가봐야되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퇴근길. 오전부터 내리는 비가 추적추적 계속 내리고 있다. 혼자였다면 그냥 집으로 곧장 가련만 옆에는 늘 걸어 다니는 민선생이 있다. 1/3 정도만 같은 길을 걷다가 나머지는 각자 방향이 남북으로 갈리는 반쪽짜리 길동무이다.  

까짓거. 우산도 있겠다, 바람막이 옷도 입었겠다, 비 맞으며 걸어보는 것도 오랜만이네, 하며 호기있게 생태공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왠걸. 비바람이 만만치가 않다. 우산살이 거칠게 휘어지며 바람에 저항한다. 여기서 방향을 틀면 곧장 집으로 갈 수 있는데, 마음이 약간 흔들린다. 그러나 길동무 덕에 다시 걷기에 충실해진다. 이 못말리는, 그러나 좀 미련한 착실성! 

얼마 후 낚시터로 향하는 언덕 길. 저 앞에 하얀개 한 마리가 서 있다. 평소 개를 몹시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민선생은 벌써부터 안색이 불편해 보인다. 걸죽한 입담으로 사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그녀도 개에게는 한없이 약한 존재다. 혼자 보기 아까운 얼굴이다. 

개가 우리 옆으로 오더니 우리 얼굴을 바라보며 종종 거리며 따라 붙는다. 우리를 향한 적의는 없어 보인다. 여느 집에서 기르는 개처럼 우리를 향해 짖어대지도 않는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 가까이에서 그리 빠르지않게 왔다갔다하며 무언가 요구하고 있는 듯하다. 왜 그러니, 개야. 우리 좀 그냥 가게 해주라, 제발.  

그리 위협적이지 않아서 그냥 가던 길 계속 가는데 어디선가 깨갱거리는 강아지 소리가 들린다. 자세히 보니 폭이 60~70여 센티미터되는 수로에 어린 강아지 한 마리가 빠져서 발이 물에 잠긴 채 오도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 그랬었구나. 새끼 구해달라고 어미개가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었던 거구나.  

새끼를 도로 위에 올려 놓는다. 자, 됐다. 엄마랑 함께 가거라. 그런데 새끼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고 어미개는 계속 우리를 따라온다. 왜, 따라와? 새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란 말이야. 20여 미터를 멈칫 멈칫 따라오던 어미개는 계속 끙끙대는 새끼 때문에 우리 뒤를 따라오기를 그만둔다. 그러나 새끼에게 곧장 달려 가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어쩔줄 몰라한다. 저 어미개도 어디가 아픈가. 아니면 가문이 있는 개인가. 행동이 신중하고 매우 점잖다. 

더 이상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어미개야. 개들은 물을 몹시 싫어하는 데 비마저 맞고 떨고 있으니, 어쩐다니. 새끼가 아무래도 다친 모양인데....무정한 인간들 같으니라구.... 

 

오늘은 작정하고 한 학부모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아빠의 이혼과 각자의 재혼으로 누나와 함께 단둘이 살고 있는 녀석의 엄마에게 그동안 벼르고 있던 말을 했다. 학교에서의 아이의 모습을 제대로 본다면 아마도 억장이 무너지실거라고. 의기소침, 거짓말, 무력감, 학습의욕 바닥. 쾡한 눈망울. 특히 그 무력감을 어머니도 보셔야한다고 했다. 공부에서 손을 놓은 모습입니다, 어머니. 아직은 절대적으로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입니다. 혼자 밥 해 먹을 수 있다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지 않습니까. 전화기 저 너머로 엄마되는 사람의 억장이 무너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책임을 지시란 말입니다, 까지는 말하지 못했다. 

다시 퇴근길. 60여만 평이 넘는 생태공원에는 사람이라고는 나 혼자다. 허기사 이런 날 누가 비 맞으며 운동하러 나오나. 시베리아를 걸어서 횡단하는 사람을 인터뷰한 텔레비전 장면이 떠올랐다. 가장 무서운 게 무엇입니까. 야생 동물보다도 사람과 맞닥뜨리는 게 더 두렵습니다. 장비와 비상 식량을 탈취해가면 제 횡단 여행을 불가능하게 할 수도 있거든요. 

끙끙대는 새끼에게도 선뜻 달려 가지 못하고, 혹시나 도움을 받지 않을까 인간에게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저 어미개의 머뭇거림이 긴 여운을 남긴다. 전화기 너머의 한 어머니의 숨죽인 흐느낌이 또 긴 여운을 남긴다. 

비바람 쯤이야 바람막이 쟈켓과 우산으로 가리면 된다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지난 6월부터 한 3개월 해금을 배웠다. 어렸을 때는, 내 세대가 어디 그 흔해빠진 피아노 한 번 배워볼 세대였던가. 내 친구 중에 어려서 피아노 배운 친구는 하나도 없는 것으로 보아 내가 피아노를 배우지 못한 것은 우리 세대의 평균치라는 것, 그래서 창피하지도 부끄럽지도 않다는 것. 그런데도 그게 은근히 나를 열등감에 젖게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게 작용했을 터이다. 내가 해금을 배우게 된 게. 또 하나의 이유는, 이건 분명한 이유인데, 여행 다닐 때 해금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다. 인도의 우다이푸르의 어느 게스트하우스. 밤이면 여행자들이 끼리끼리 모여 옥상에서 작은 연주회를 갖는데 나는 그 "끼리끼리"에 낄 수 없다는 단절감 내지는 절망감에 왜 그렇게 쓸쓸하고 허망한지 나는 그 순간 악기를 꼭 배우리라 마음 먹게 되었는데 그 이후 내가 생각해낸 악기가 해금이었다. 우선 부피가 작으니 배낭 옆에 끼고 다니기에도 좋고 우리 악기니까 다른 나라 여행자의 시선도 끌 수 있을테고 줄도 두 줄이니 내가 열심히만 연습하면 섭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여러모로 좋은 점만 열심히 끌어댔다. 그래서 결국은 배워봤는데....결과는 ...이미 예상하고 시작은 했지만...참혹하다. 음악성 제로, 악착같은 끈질김 제로.

그러다 김훈의 <바다의 기별>을 읽다가 해금 이야기가 나오길래 다시 해금을 켜 볼 생각을 하는 중이다.

p.60. 해금은 놀라운 악기다. 해금의 음색은 그 악기를 연주하는 인간의 몸의 질감을 느끼게 한다. 모든 국악기는 양악기에 비해 훨씬 더 진하게 연주자의 몸을 느끼게 하지만, 그중에서도 해금이 풍기는 육체의 질감은 가장 깊고 진하다. 해금의 음색이 매우 비논리적으로 들리는 까닭은 이 육체의 질감 때문일 것이다.

p.111. 내 몽상 속에서, 오치균의 화폭에서는 해금의 음색과 선율이 들려온다....모든 현악기 중에서 해금은 인간의 육체에 가장 가깝고, 육체의 떨림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는 느낌을 준다...해금 연주자는 손아귀로 줄을 쥘 때 소리의 진동을 몸 안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몸의 리듬으로 소리를 통제한다. 그래서 해금에서는 몸의 소리, 몸의 리듬에 가까운 소리가 나온다...해금의 소리는 논리적이지 않고 아정하지 않지만, 바닥을 긁어내는 소리로 아름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순다. 손가락으로 주물러서 칠하는 오치균의 색은 시간과 뒤섞이고 시간 위에 올라타서 화폭 위를 흘러가는 것이다.몸이 그 색들을 이끌고 간다.....

이 부분을 읽어나가다가 나는 엉뚱하게도 음식을 손으로 먹던 인도에서의 경험이 떠올랐다. 밥을 손으로 떠 넘길 때에도 분명 어떤 떨림이 있었으니...

p.133. 더 나이를 먹고 내가 나의 언어를 확실히 장악할 수 있는 어느 날 나는 이 <난중일기>와 이순신이 처한 절망에 대해서 무언가를 말할 수 있게 되겠구나, 말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것들을 느꼈죠.

나도, "내가 나의 언어를 확실히 장악할 수 있는 어느 날"을 간절히 꿈꾸었다는 것을 떠올리게 하는 이 구절을 읽고 나는 몸을 또 한 번 부르르 떨었다. 해금의 떨림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비겁하다. 몇년 전만해도  현장학습(그 좋은 소풍이란 말을 두고 애써 이런 말을 쓰는 게 탐탁치않지만)은 학년별로 단체로 움직였다. 유명한 놀이공원이나 그 지역에 있는 명소를 정해 버스를 대절해서 가거나 가까운 곳은 개별적으로 가서 단체 입장을 하곤했다. 그때는 그게 불만이었다."애들이 짐짝이야? 어떻게 똑같이 움직이냐고?" 그러던것이 어느 해 부턴가 반별로 계획을 세워 담임 지도하에 현장학습을 실시하게 되었다. 처음엔 무지 반가웠다. 마치 엄격한 부모 슬하에서 드디어 독립을 쟁취한 것처럼 어깨에 힘이 갔다. 그런데 이렇게 개별 소풍을 몇 년 하다보니 다시 과거가 그리워지는거다. 밥 하기 싫을 때 누가 대신 밥상 차려주면 고맙고 반가운 것처럼 누가 대신 계획 세워주고 아이들 통솔해 준다면 무지 고마울 것 같다.

나는 비겁하다. 올 가을에도 어김없이 반별로 소풍을 가야한다. 그런데 나는 아이들 의견을 전혀 물어보지 않았고 소풍 계획에 반영도 안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도 없었다. 인천대공원으로 결정했다. 그것도 학교에서부터 걸어간다고 했더니 이건 지들 가르치는 담임선생한테 던질 수 있는 눈빛이 아니었다. 나를 잡아먹을 것 같은 식인종의 눈빛을 닮았다고나할까. 그래도 나는 그 눈빛 정도는 묵살할 만큼은 배짱이있다.

나는 비겁하다. 우리 반 아이들의 불만 소리가 왜 없겠는가. 다른 반 아이들이 우리 반 녀석들이 하는 말을 내게 전해준다. "그 ***(내 이름)말야. 쬐끄만 게 걷는 것만 좋아해. 으으으..."미치겠단다, 녀석들이. 흠. 니들이 선생을 이겨?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이들을 설득시킬 자신이 없다. 온갖 미사여구를 아무리 늘어 놓아도 밋밋한 대공원이 놀이공원이나 영화관 만큼의 매력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지레 겁먹고 아이들한테 설득 한마디 못했다.

그러나 나는 비겁하지 않다. 학교에서 대공원까지는 오로지 걷는 일에만 집중해서 걸어도 1시간 30분 거리다. 아이들 통솔해서 40명이 넘는 인원이 움직이면 최소 2시간 거리다. 중간에는 매점 하나 없다. 나무 그늘이라고 할 만한 것도 거의 없다. 횡단보도를 한 번만 건너면 작은 동네가 나오고 얼마 후 낚시터가 나오는 산 밑으로 해서 논밭을 지나고 얼마간의 비포장 도로와 아스팔트 길을 지나서 썩은 냄새가 나는 개천을 따라가면 나오는 대공원. 사실 볼 만한 것은 별로 없다. 그러나 이 황량하게만 보이는 포구의 갯벌에도 철새가 꽤 날아온다는 것, 자연의 법칙에 따라 썰물과 밀물의 흐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 개천가의 작은 땅뙈기를 일구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 억새와 갈대가 지천에 깔린 길을 걸으며 그 둘을 구별해 볼 수 있다는 것, 너희들이 그냥 잡초라고 관심을 두지 않는 길가의 풀들도 다 제각기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 혹 길을 걷다가 오줌이라도 마려우면 친구들간에 작은 에피소드가 꽃 피울수 도 있다는 것을 나는 너희들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내 몫이 아니다. 너희들이 걸으면서 느껴야 할 것들이기에 나는 너희들에게 그런 기회를 주고 싶은 거다.

나는 비겁하지 않다. 나도 놀이공원의 놀이기구를 너무 너무 좋아한단다. 거의 안 타본 것이 없을 걸. 영화. 영화라면 나도 사족을 못쓰지. 내가 해외여행가서도 즐기는 게 영화 감상인데말야. 이것만은 자신있게 말하는데, 나는 여행 고수란다. 너희들보다는 훨씬 여행 고수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소풍은 걸어가야 되는 거야. 너희들한테 말로 먹혀들지 않으니 그냥 밀고 나갈 뿐이라는 걸, 너희들은 언젠가 내 맘을 알아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