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이웃 동네에 새로 들어선 아파트 단지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꽃들이 활짝 피어나고 있다. 꽃나무라고해야 얼마 전 한차례 꽃을 피운 목련 몇 그루와 벗나무 몇 그루, 서서히 기지개를 펴고 있는 넝쿨장미, 그리고 영산홍이 전부인 단촐한 화단이다. 며칠 전엔 영산홍이 일제히 꽃망울을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치 출발선에 선 육상 선수들처럼 서로 질세라 바짝 긴장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출근길의 내 발걸음은 보폭이 크고 속도가 빠르다. 5층에 위치한 사무실을 단숨에 가는 것, 즉 5층에 이르는 계단을 한번도 쉬지 않고 단번에 오르기가 올해의 내 작은 목표인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걸어서 15분 정도가 걸리는 출근길을 빠른 걸음으로 걷다보면 그 모아진 동력으로 내쳐 5층까지 밀고 가는 게 내 목표에 이르는 전략이라면 전략이다. 

빠르게 걸어가며 옆으로 스쳐지나가는 듯한 여러 무리의 영산홍을 눈에 담는 다는 것은....아름답다는 느낌 이전에 눈의 피곤함이라는 물리적인 반응이 먼저 일어난다. 사방연속 무늬나 체크무늬에 잠시 눈길만 주어도 금세 난시로 변해 버리는 내 눈 탓이다. 해를 향한 꽃망울들의 종대 횡대 일정한 반복성에 금세 눈이 피곤해지곤 한다. 눈이 아른거리고 어지럽기까지 하다. 아마도 민감함 보다는 노안의 원인이 더 큰 것 같지만.... 

올 봄은 이 꽃무리들이 몹시 어지럽게만 느껴진다. 열흘 전,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교실 컴퓨터의 본체에 있는 중요부품(cpu등)을 도난당했다. 여러 선생의 설득 끝에 가져다 놓기는 했으나 본 물건이 아닌 중고품으로 기만만 당하는 꼴이었다. 다시 치밀한 필적 감정과 정공법으로 녀석을 잡아내기까지는 며칠이 더 걸렸다. 결국 범인은 학급 안에 있었다. 한 남학생의 소행이었다. 시치미 떼는 이 녀석을 잡아 내기 까지는 말 그대로 한 편의 추리극이라고나 할까. 하여튼 우여곡절 끝에 완전범죄는 없다는 교훈을 상기 시키는 데 까지는 성공했으나 문제는 이 때부터다.  

이 녀석을 어떻게 지도해야하나. 아직도 이 숙제를 끌어안고 끙끙 거리고 있는 중이다. 오늘 써 낸 녀석의 반성문에는 이런 내용의 글이 적혀있었다. 

"......아침에 학교에 들어서면서 꽃 한송이를 보았습니다. 이 꽃도 꽃을 피우기 위해서 고통과 고난을 이겨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녀석이 반성문을 쓰는 동안 집에 가지 않고 끝까지 기다려주는 두 명의 친구 녀석들 때문에 다잡았던 내 마음도 잠시 흔들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녀석과의 동조 여부를 캐는 것도 놓칠 수 없는 일이다보니 그저 어지러울 뿐이다. 

 

누나와 단 둘이 살고 있는 녀석(지난번 글<길을 걷다가 1>에서 언급했던 녀석)의 친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떤 얘기 끝에 이런 말을 했다. 

" 제가 (제 자식을)돌보기에는 제 처지가 여의치 않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요...애아빠와 함께 살고 있는 그분한테 선생님이 전화 한 번 해주시지 않으실래요? 그분도 우리 아이를 맡고 싶어하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전화번호는 우리 아이가 알고 있어요." 

뭐시라고? 남의 집 가정사까지 교통 정리를 해달라고? 선생을 믿고 의지하는 것에 감사해야되나, 제 자식 감당 못해 남한테 떠 맡기는 처사를 분통 터트리며 이해해주어야하나. 그저 어지러울 뿐이다. 

올 봄은 꽃은 꽃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어지러울 따름이다. 내일은 혈압 측정하러 병원에라도 가봐야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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