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 중에는 보통 책을 읽지 않는다. 한두 권의 책을 배낭에 넣긴 하지만 돌아다니느라 책을 읽을 틈이 없다. 그러나 별달리 볼 것이 많지 않은 치앙마이에선 책 읽기가 가능했다. 시간도 넉넉했다. 책 읽을 공간도 훌륭했다.

 

 

님만해민의 마야 쇼핑몰에 자리잡은 이 카페는 24시간 개방이다. 공간도 넉넉하고 분위기도 좋고 쾌적하고, 그리고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완벽한 공간이다. 이곳에서 한나절을 보내며 두 권을 읽었는데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치앙마이에서 한 달 정도 살게된다면 매일 하고 싶은 일이 세 가지 있는데,

1. 1kg에 1,200원 정도하는 망고스틴 먹기

2. 태국마사지 받기(1시간에 약 7,000원 가량)

3. 카페 놀이하기

 

이 카페로 매일 출근해도 좋을 것 같다. 생각만해도 행복해진다.

 

 

 

 

 

 

 

 

 

 

 

 

 

 

80년대에는 김지영이라는 이름이 흔했나? 내 중학교 동창 중에는 명희라는 이름이 흔했었다. 권명희, 이명희, 김명희, 한명희, 남명희. 120명도 채 안되는 학생 중에 명희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들이 다섯 명이나 있었다. 그러고보니 내가 알고 있는 김지영도 여럿 있다. 동료도 있고 학생도 있다.

 

82년생이나 그 보다 20여 년 이상이나 먼저 태어난 우리 세대나 여자들 세상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보니 단숨에 읽게 되는 소설이다. 이 멋진 공간에서 이 소설을 읽는 건 기쁨이자 슬픔이다. 책 자체를 읽는 건 기쁨이지만, 잊고 있던 사실을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게 해주는 소설 속의 여러 통계치를 보는 건 가슴 아픈 슬픔이다. 아직도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구나...하는.

 

 

 

 

 

 

 

 

 

 

 

 

 

 

 

제목이 마음에 든다. 한여름에 시원하게 냉방된 실내에서 읽기에는 제격인 소설이다. 내용은 차치하고. 그런데 내용도 좋다. 아니 내용보다도 문장 하나 하나가 감칠맛이 난다. 글을 얼마쯤 쓰면 이런 관록이 느껴지는 문장을 구사하게 될까. 내내 감탄하며 읽었다.

 

이 소설집에서 딱 한 문장을 고른다면? 물론 옮기고 싶은 문장은 많다. 허나 딱 한 문장이라면?

 

어머니가 카메라를 응시하며 사십오 도가량 몸을 틀었다. 풍경을 배경으로 가져본 적 없는 세대의 어색한 경직성이었다.

 

<풍경의 쓸모>라는 소설에 나오는 구절이다. 제대로 된 삶이 아닌 누군가의 풍경밖에 안 되는 무지렁이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한 문장에 요약되어 있다. 문제는, '풍경을 배경으로 가져본 적 없는 세대'는 비단 어머니 세대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역시 일개 풍경에 불과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다는 것. 누군가의 풍경이 된 삶의 쓸모란 무엇일까? 쓸모가 있다는 얘기일까, 없다는 얘기일까? 좋은 소설이다.

 

 

 

 

카페 유리창에 붙어 있는 글. 문제는 행동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abina 2017-08-13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글귀는, 알고 있으나 무심히 지나치게 되는 일상에, 성찰의 기회를 가져다
줍니다. 나마님 덕분에 나를 돌아 보네요.
남편이 자주가는 주유소 휴게실 벽에 걸려 있던 액자의 글귀를 보고 그 주유소가
달리 보였던 기억이 납니다.
˝하려고 하는자는 방법을 찾고, 하지 않으려는 자는 핑계를 찾는다.˝

nama 2017-08-13 15:08   좋아요 0 | URL
좋은 문장입니다. 핑계를 찾을 때마다 자기 자신에게 좀 더 솔직해야겠지요. 핑계는 게으름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동영상 먼저.

 

 

조그만 동네인 치앙라이의 랜드마크로 저녁 7시부터 9시 매시 정각에 10분간 빛과 소리를 주제로 한 공연을 볼 수 있다. 소리로는 두 곡이 나오는데 내 취향에 맞는 건 두 번째 노래다. 흘러간 향수와 이루지 못한 꿈을 떠올리게하는 약간 유치한 감정이 마음을 울린다. 귀로는 노래를 듣고 입으로는 심수봉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nine 2017-08-12 0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들어보니 심수봉의 노래를 흥얼거리셨다는 말씀이 이해가 되네요 ^^
황금시계탑에 조명까지 더해지니 정말 화려해보입니다.

nama 2017-08-12 08:30   좋아요 0 | URL
저 황금시계탑은 꼭 금은방에 있는 순금 장식 같아요. 지나간 화양연화를 떠올리게 하는 게 능청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그래요. 미련과 후회 같은 구질구질한 감상까지 일으켜요. 심수봉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지요.^^
 

치앙마이와 치앙라이에서 열이틀을 보냈으니 뭔가 시간의 흔적을 남겨볼까 끄적거린다. 어떻게 쓰겠다는 생각도 고민도 없다. 생각나는대로 그때 그때 때때로 사진 몇 장, 글 몇 줄 써보려고 한다. 자주 떠올려야 여행의 기억도 오래 갈 테니까.

 

 

 

치앙마이의 란나 포크라이프 박물관(Lanna Folklife Museum)에 있는 란나사람들의 전통 옷감 같은데, 저 문양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에셔가 혹 란나의 후손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란나란 이 지역의 옛날 주인이다. 

 

 

 

에셔의 그림을 가져와볼까나?

 

(출처:daum)

 

 

10월 15일까지 에셔 특별전이 열린다고 하니 잊지 말고 다녀와야겠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자태...우리나라 한복과 너무나도 비슷하다. 심지어 배래는 요즘 유행하는 직선형이다. 사람들이 어디에 살 건 생각하는 건 비슷한가보다.

 

 

 

우리로 치면 해금되겠다. 과연 동남아 국가 중에 위의 악기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가 있을까? 내가 전에 썼던 글을 베끼면 '중국에서는 얼후, 인도네사아에서는 레밥, 캄보디아에서는 트로우, 타이에서는 소우, 라오스에서는 소이라고 부른단다.' 나라마다 사람은 달라도 악기만은 같은 게 있으니 신기하면서도 다행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nine 2017-08-12 0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복과 정말 비슷하네요.
에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는 건 nama님 덕분에 알았어요.

nama 2017-08-12 08:24   좋아요 0 | URL
기회가 닿으면 함께 에셔 특별전에 가고 싶어지네요.^^

sablna 2017-08-13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나라 해금과 같은 악기가 중국에도 얼후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각기 다른 이름으로 동남아 각국에 있어 왔다니 참 신기하네요.
문득, 사람마저 가깝게 느껴집니다.

nama 2017-08-13 16:35   좋아요 0 | URL
라오스에서는 거리의 거지도 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더군요. 생활밀착형 악기라고나 할까요.
 

 

통영은 어딘가와 닮았다.

 

(미륵도 정상에서 바라본 통영시내)

 

미륵도 정상에 오르는 방법은 케이블카를 타고 9분 능선까지 간 후 계단을 따라 20여 분 올라가면 된다. 통영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이 풍광, 어딘가와 매우 닮았는데....빅토리아 피크에서 바라본 홍콩 구룡반도와 홍콩섬이 떠올랐다. 가운데 바다를 경계로 위쪽은 구룡반도, 아래쪽은 홍콩섬의 자태가 바로 이런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미륵도 정상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빅토리아 피크는 그간 서너 번쯤 올랐었다.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멀쩡한 우리집 두고 멋져 보이는 남의 집 침 흘리며 바라본 기분이 이럴까.

 

 

(장사도에서 바라본 남해안의 작은 섬들)

 

장사도, 통영에서 유람선을 타고 40여 분이면 도착하는 곳이다. 통영에 오기 전까지 장사도라는 섬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인터넷 검색조차 해보지 않고 통영에 갔으니... 어떻게 되겠거니...한겨울에 유람선이 뜰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여행객이 많아서 놀랐다. 흠, 어떻게들 알고 왔지? 유람선 21,000원+ 장사도 입장료 10,000원. 남편과 둘이 갔으니 순식간에 62,000원 거금이 들어갔다. 배에서 내리니 <별에서 온 그대> 촬영장소였노라는 입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별 관심 없음. 시큰둥했지만 마음 속은 이미 설레고 있었다. 캬, 예쁘다.

 

 

 

섬 전체가 동백꽃 천지다.

 

 

꽃송이째 떨어지는 동백꽃은 언제 보아도 경외감이 든다. 마지막 가는 길이 추하지 않고 비겁하지 않고 치사하지 않다.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는 꽃이구나.

 

 

 

떨어진 동백꽃은 애잔하지만 나무의 새순은 싱그럽다.

 

 

 

분재원의 모과나무와 썩어가는 모과. 예전에는 예쁜 열매가 눈에 띄었는데 요즘은 이런 열매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내 모습 같아서겠지.

 

 

 

장사도를 둘러싼 작은 섬들에는 각기 이름이 있다.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하염없이 바라본다. 어디였더라, 닮은 곳이? 예전에 다녀왔던 오키나와가 떠올랐다. 아, 또 이 버릇. 왜 멋진 곳을 보면 다른 나라와 비교하게 되는지... 같잖은 허영심이 가소롭다. 세상의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고 여기저기 다녀보지만 마지막에 그리운 건 엄마가 만들어주시던 소박한 두부찌게였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심정이 이렇겠지.

 

 

 

 

통영 강구안에는 중앙시장이 있고 시장 옆에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지명을 빌어온 모텔이 있다. 모텔 창문에서 바라본 강구안 밤 풍경, 자세히 보면 사진을 찍고 있는 내 모습이 유령처럼 어른거린다. 이곳은 또 어디를 닮았더라. 흠, 이곳은 말레이시아 말라카 항구를 닮았다. 어수선한 소래포구와 달리 이곳은 깨끗하고 단정하다. 밤새 질리도록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절대로 질리지 않았다.

 

 

 

통영 유일의 국보(국보 305호) 세병관. '세병(洗兵)'이란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뜻이라 한다. '평소에는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으며 운치를 즐기는 세병관이지만 전시에는 洗의 물수를 떼어내 버리고 먼저 나아가 싸우겠다는 의지를 담은 先兵館이 된다'고 했다 한다. 이름도 멋지지만 건물 또한 매우 인상적이다. '1604년 제1대 수군통제사로 임명된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에 설치했던 본부가 통제영'이었는데 이 통제영 안에 세병관이 위치해 있다. 400여 년 된 건물이다.

 

한무리의 여행객들에게 설명을 해주던 해설사에 따르면, 통영 사람들은 다리가 굵은 아가씨들을 보면 '세병관 기둥 같은 다리'라고 한단다. 내 다리와도 비슷하군.

 

 

또 버릇이 나온다. 그렇다면 이곳은 어디와 닮았노? 아무리 머리를 궁글려보아도 딱히 떠오르는 곳이 없다. 그냥 세병관이다. 통영을 고향으로 둔 사람들이 자꾸만 부러워진다. 다른 것 다 제치고 세병관 하나만 있어도 통영 사람들은 행복하겠다 싶다. 이 너른 마루에 올라 저 튼튼한 기둥에 기대어도 웬만한 시름은 씻은듯이 사라지지 않을까. 가히 은하수를 끌어와 마음을 씻을 수 있는 곳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통영은 심리적으로 먼 곳이었다. '통영'이라는 지명 자체가 멀게만 느껴지는 곳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그리운 고향, 자랑스러운 고향이 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고향'이 그저 부러움의 대상이거나 질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통영이 그랬다. 내게도 고향이 있지만 내 고향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거나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거나 하다못해 그리운 감정조차 품어 본 적이 거의 없다. 삭막한 고향 부재의 쓸쓸함에 빠져 있는 내게 누군가의 자랑스러운 고향이 되는 통영이 심리적으로 멀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으리라. 그렇게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통영에 다녀왔다.

 

 

 

 

 

 

 

 

 

 

 

 

 

 

 

 

통영 관련 책으로는 2012년에 출간된 위의 책을 중고매장에서 구입했다. 여행 안내서는 최신판을 봐야한다는 통설도 싫었다. 아무려면 어떠나. 어차피 맛집 정보따위는 찾지도 않을 터이다. 그런데 이 책, 지은이가 통영 출신이다. 통영에 대한 애정이 페이지마다 가득하다. 심기가 불편해진다. 고향 혐오인 내 비뚤어진 심사에 질투심을 부채질하는구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