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퇴근길 모습. 가을 이맘때는 가끔 뱀도 지나다니는 길이다. 어쩌다 다니는 길이라 긴장을 풀 수 없다.

 

 

 

화면이 거칠다. 예전 고등학교 시절, 동네사진관에서 빌린 카메라로 사진을 찍곤 했을 때, 아마도 올림푸스였나, 그 사진기로 찍은 사진이 이렇게 거칠었었다. 순전히 기술 부족이었다. 분명 내 눈은 선명하게, 제대로 반듯하게 보고 찍은 것 같은데 찍고나면 20% 쯤 내 의도를 떠난 사진. 인간관계도 그럴까? 분명 내가 저 사람의 마음을 얻은 것 같은데 돌아보면 그게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2G폰의 이런 거칠고 엉킨 맛이 때로 그리울 때가 있다. 너무나 투명하고 산뜻하고 선명한 건 부담스럽고 이질감이 느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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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쓸 때마다 떠오르는 글이 있다. 바로 조침문이다. 애지중지하던 바늘 하나 부러졌다고 애통해 하는 심정을 되새겨보게 되는 것이다. 며칠 전엔 세탁기를 애도했는데 오늘은 자동차를 애도하게 되었다.

 

 

 

 

2000년도에 구입한 현대 산타모, 우리 가족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자동차이다.

 

얼마 전부터 신호 대기 때 시동이 꺼지고 하더니 이젠 엔진에서 마지막 안간힘을 토해내며 온 아파트가 울릴 정도로, 병든 코끼리 숨소리(?) 같은 큰 소리를 내며 마지못해 움직인다. 안쓰러울 정도이다. 이게 사람처럼 입이 달렸으면 하소연이라도 하련만, 제발 좀 쉬게 해달라고.

 

필름 카메라로 찍은 저 사진 속의 딸아이가 좀 있으면 수능을 치르게 된다. 재수생이다. 저 야리야리하고 가냘프던 딸의 모습을 이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될 정도로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 짧지 않은 세월을 말 그대로 동고동락하던 저 승용차를 하루 이틀 정도만 타면 이젠 안녕이다. 오늘 아침 마지막으로 가스를 충전하는데, 남편이 딱 1만 원어치만 넣자고 한다. 폐차장까지 끌고 갈 정도만 넣자는 것이다. 나는 "그래도 마지막인데 한번 배불리 먹여주지..."하고. 결국 남편 말대로 딱 1만 원어치만 넣는데 왠지 마음이 짠하다.

 

얼마 전에 53만원 주고 여기저기 손도 보고 뒷바퀴 타이어도 새 것으로 교체했는데, 좀 냉정하게 따져보면 새 타이어가 아깝긴하다. 자동차에도 사후장기기증이라는 게 있다면 타이어라도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주고 싶다.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업데이트가 필요한 아이나비 네비게이션도 있다. 이젠 구형이라서 뭐 쓸모가 있나싶지만. 멋지게 집까지 만들어주었는데(남편 솜씨)

 

 

 

대형 마트 주차장 같은 데서 아무리 자동차가 많아도 우리 가족은 저 승용차를 금방 알아보며 반가워 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많은 무리 중에 있어도 가족끼리는 서로 잘 알아보듯이 우리는 저 낡고, 색깔이 누렇게 변색되고, 네 모서리가 하나도 성한 곳이 없는 자동차를 식구인양 잘 알아보곤 했다. 아니 그냥 식구였다.

 

 

식구 하나를 떠나보내며, 덩리쥔의 <Goodbye My Love>로 이별가를 대신하고 싶다. 이 유치한 감정이라니...운전면허도 없는 나는 한번도 운전대를 잡아본 적이 없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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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세부터 헬로라이프 스토리콜렉터 29
무라카미 류 지음, 윤성원 옮김 / 북로드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인생 이모작이라 부르는 퇴직 전후의 삶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이모작`, 준비 안 된 사람에게는 해당사항 없는 말인데, 학창 시절에는 진학과 취업을 위해, 취업 후에는 결혼을 위해, 결혼 후에는 이모작을 위해 늘 준비해야 하는 인생이 고달프다. 준비하는 인생, 헬로 투모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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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한 아이를 재촉한다.

 "연체된 책 빨리 반납해."

"쟤도 연체됐어요. 왜 저한테만 그러세요."

아이들은 물귀신과 친구 사이인지라 꼭 핑계를 대기 마련이다.

 

어디 애들 뿐이랴. 위염이 잘 낫지 않아서 처방전을 새로 받아왔는데 이 새 처방전에는 신경안정제 계통의 약이 두 알이나 들어 있었다. 열흘치였지만 띄엄띄엄 복용하다보니 한 보름 째 먹고 있는 것 같다. 우선 잠이 쏟아진다. 물론 수업 중에야 졸지 않지만 혼자 도서실에 앉아 있거나 밤 9시만 넘으면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숙면을 취했건만 새벽에 일어나도 몸이 개운치 않다. 잠시 약에 의존해서 난 대체 무엇을 잊으려고 했을까. 별 고민없이 살고 있을 뿐인데. 아니 고민을 마음에 담지 않고 그냥 흘려보내고 있는데. 치열한 삶과는 거리도 멀고.

 

지난 주 금요일자 신문을 어제에 이어 오늘도 읽고 있다. 퇴근 후 신문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몽롱해지기 때문이다. 다 흘려보내도 이성복의 이 한구절은 남겨야겠다 싶어 옮긴다.

 

풀냄새라고 있지요? 풀을 베었을 때 나는 냄새. 사람들은 그것을 상쾌하고 신선하다고 여기지만, 실은 베인 풀이 옆의 풀에게 경고하는 게 풀냄새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옆의 풀이 도망칠 수 있겠어요? 아무짝에도 쓸모없지만 그럼에도 경고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그게 바로 문학이요, 시 아닐까 싶어요."

 

우리가 시를 쓰는 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생사앞에서, 우리와 다른 사람을 위해 스크럼을 짜는 게 아닐까 해요...실패할 수밖에 없는 싸움에, 실패 안 할 수밖에 없다는 듯이 '올인'하는 것.

 

에이, 나는 시도 안 쓰고, 잘 읽지도 않는데 머리는 텅 빈 채 몸은 시를 쓰고 있네.

 

 

 

17세 이후로 환갑이 지난 지금까지도 신경안정제로 삶을 겨우 버티고 있는 언니가 자꾸 생각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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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서울 시청 근처의 모백화점에서 18만 원인가 주고 구입한 타자기이다. 거의 백수 주제에 부모님께 돈을 타내서 당당하게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난다. 글을 써보겠다고 폼 잡던 나의 뻔뻔함이 창피할 따름이다. 3학년 학사 편입으로 문창과에도 들어갔겠다 뭔가 될 줄 알았겠지. 당시 문창과 분위기가 그랬다. 자취하는 친구들의 자취방은 벽 하나쯤은 온통 책으로 가득했고 학교 과제물이나 습작품은 보통 저런 타자기로 써냈다. 저 타자기를 열심히 두드렸더라면, 파지로 휴지통을 가득 채우고 또 채웠더라면.....타자기가 없어 글을 못 쓰나, 만년필이 없어 글을 못 쓰나, 컴퓨터가 없어 글을 못 쓰나. 손목터널증후군, 너가 고맙구나. 핑계거리로는 완벽하잖아.

 

문창과에 대해서 문단의 어른이란 분이 한마디 하신 모양이다. 나는 문창과를 딱 한 학기만 다니고 나왔다. 졸업장이 필요했던 것도 아니었고, 별로 새롭게 배울 것도 없었기 때문인데 이것 하나만은 배우고 나왔다. '글이란 누구한테 배우는 게 아니고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험난한 과정이다.'라는 것이다. 어린이가 글을 깨치듯 스스로 글 쓰는 것을 깨쳐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 한 문장을 얻기 위해 대학을 다시 들어갔던 셈인데, 지나고보니 그 시절이 참 행복했었다. 문창과에서는 글 쓰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 잘 쓴 글과 못 쓴 글 등 여러 글을 읽고 분석은 하지만 그게 글 쓰기와 밀접하게 연결되지는 않는다. 글을 몇 편 쓴다고 해서 어떤 정형화된 틀에 맞추는 것도 아니다. 그저 고민하고 고민할 따름이다. 그리고 학교 수업은 그냥 수업일 뿐 수업을 통해서 뭘 배우는 것도 별로 없다. 스폰지처럼 그대로 빨아들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진짜 수업은 학교가 아닌 주로 술집에서 이루어진다. 선후배와의 폭 넓은 인간적인 교류가 수업이고 어쩌면 그게 문창과의 존재이유라고도 할 수 있다. 인생의 고뇌를 통해 글 쓰기를 늘 고민해보는 시기, 자유로우면서도 고통스러운 삶의 한 시기를 보낼 수 있는 시기, 기성의 가치에 도전하고 과감하게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는 시기, 모색에 모색을 거듭해보는 시기를 보내는 게 문창과 시절이다. 인생에서 이렇게 헐거우면서도 꽉 찬 시기를 보낼 수 있는 건 아마 우리나라 대학에서 문창과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싶다. 그런데 궁금하다. 지금도 그런 분위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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