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8년 서울 시청 근처의 모백화점에서 18만 원인가 주고 구입한 타자기이다. 거의 백수 주제에 부모님께 돈을 타내서 당당하게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난다. 글을 써보겠다고 폼 잡던 나의 뻔뻔함이 창피할 따름이다. 3학년 학사 편입으로 문창과에도 들어갔겠다 뭔가 될 줄 알았겠지. 당시 문창과 분위기가 그랬다. 자취하는 친구들의 자취방은 벽 하나쯤은 온통 책으로 가득했고 학교 과제물이나 습작품은 보통 저런 타자기로 써냈다. 저 타자기를 열심히 두드렸더라면, 파지로 휴지통을 가득 채우고 또 채웠더라면.....타자기가 없어 글을 못 쓰나, 만년필이 없어 글을 못 쓰나, 컴퓨터가 없어 글을 못 쓰나. 손목터널증후군, 너가 고맙구나. 핑계거리로는 완벽하잖아.
문창과에 대해서 문단의 어른이란 분이 한마디 하신 모양이다. 나는 문창과를 딱 한 학기만 다니고 나왔다. 졸업장이 필요했던 것도 아니었고, 별로 새롭게 배울 것도 없었기 때문인데 이것 하나만은 배우고 나왔다. '글이란 누구한테 배우는 게 아니고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험난한 과정이다.'라는 것이다. 어린이가 글을 깨치듯 스스로 글 쓰는 것을 깨쳐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 한 문장을 얻기 위해 대학을 다시 들어갔던 셈인데, 지나고보니 그 시절이 참 행복했었다. 문창과에서는 글 쓰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 잘 쓴 글과 못 쓴 글 등 여러 글을 읽고 분석은 하지만 그게 글 쓰기와 밀접하게 연결되지는 않는다. 글을 몇 편 쓴다고 해서 어떤 정형화된 틀에 맞추는 것도 아니다. 그저 고민하고 고민할 따름이다. 그리고 학교 수업은 그냥 수업일 뿐 수업을 통해서 뭘 배우는 것도 별로 없다. 스폰지처럼 그대로 빨아들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진짜 수업은 학교가 아닌 주로 술집에서 이루어진다. 선후배와의 폭 넓은 인간적인 교류가 수업이고 어쩌면 그게 문창과의 존재이유라고도 할 수 있다. 인생의 고뇌를 통해 글 쓰기를 늘 고민해보는 시기, 자유로우면서도 고통스러운 삶의 한 시기를 보낼 수 있는 시기, 기성의 가치에 도전하고 과감하게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는 시기, 모색에 모색을 거듭해보는 시기를 보내는 게 문창과 시절이다. 인생에서 이렇게 헐거우면서도 꽉 찬 시기를 보낼 수 있는 건 아마 우리나라 대학에서 문창과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싶다. 그런데 궁금하다. 지금도 그런 분위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