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한 아이를 재촉한다.

 "연체된 책 빨리 반납해."

"쟤도 연체됐어요. 왜 저한테만 그러세요."

아이들은 물귀신과 친구 사이인지라 꼭 핑계를 대기 마련이다.

 

어디 애들 뿐이랴. 위염이 잘 낫지 않아서 처방전을 새로 받아왔는데 이 새 처방전에는 신경안정제 계통의 약이 두 알이나 들어 있었다. 열흘치였지만 띄엄띄엄 복용하다보니 한 보름 째 먹고 있는 것 같다. 우선 잠이 쏟아진다. 물론 수업 중에야 졸지 않지만 혼자 도서실에 앉아 있거나 밤 9시만 넘으면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숙면을 취했건만 새벽에 일어나도 몸이 개운치 않다. 잠시 약에 의존해서 난 대체 무엇을 잊으려고 했을까. 별 고민없이 살고 있을 뿐인데. 아니 고민을 마음에 담지 않고 그냥 흘려보내고 있는데. 치열한 삶과는 거리도 멀고.

 

지난 주 금요일자 신문을 어제에 이어 오늘도 읽고 있다. 퇴근 후 신문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몽롱해지기 때문이다. 다 흘려보내도 이성복의 이 한구절은 남겨야겠다 싶어 옮긴다.

 

풀냄새라고 있지요? 풀을 베었을 때 나는 냄새. 사람들은 그것을 상쾌하고 신선하다고 여기지만, 실은 베인 풀이 옆의 풀에게 경고하는 게 풀냄새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옆의 풀이 도망칠 수 있겠어요? 아무짝에도 쓸모없지만 그럼에도 경고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그게 바로 문학이요, 시 아닐까 싶어요."

 

우리가 시를 쓰는 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생사앞에서, 우리와 다른 사람을 위해 스크럼을 짜는 게 아닐까 해요...실패할 수밖에 없는 싸움에, 실패 안 할 수밖에 없다는 듯이 '올인'하는 것.

 

에이, 나는 시도 안 쓰고, 잘 읽지도 않는데 머리는 텅 빈 채 몸은 시를 쓰고 있네.

 

 

 

17세 이후로 환갑이 지난 지금까지도 신경안정제로 삶을 겨우 버티고 있는 언니가 자꾸 생각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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