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에 실린 글이다.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658978.html

 

'1954년 시코쿠 에히메현에서 태어난 나카무라는 어린 시절부터 만화영화 <철완아톰>의 오차노미즈 박사(코주부 박사)를 동경하는 과학에 관심 많은 소년이었다. 그를 기억하는 고등학교 동급생 니시다 데쓰는 “나는 내 방식으로 공부할 거야”라며 공식을 쓰지 않고 수학·물리의 어려운 문제를 풀던 그를 기억한다고 회상했다. 대학 시절 스승이었던 다다 오사무 도쿠시마대학 명예교수도 그에게 “책을 읽지 마라. 책을 읽으면 고정관념에 빠질 수 있으니 스스로 생각하라”며 그를 격려했다.'

 

 

 

책을 읽지 마라....하루종일 입에서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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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bina 2014-10-10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nama님처럼 다양한 책을 읽으면 고정관념에 빠질 염려는 없지 않을 까요?
고정관념에 빠진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현대인들이 기를쓰고 기존의 지식을
학습하는 것은 참 아이러니지요.
책을 읽지 않고 내방식으로 문제해결을 한 노벨 물리학수상자, 일정 부분 천재성에
대한 보상같아 보이네요. 물론 열정과 노력의 결과이겠지만...
...갑자기 고등학교때 공포의 물리시간이 생각나서 무서웠던 물리 선생님이 지금
옆에 서계시는것 같아요 . ㅋㅋ

nama 2014-10-12 15:50   좋아요 0 | URL
배우는 즐거움을 가르치지 못하는 교사는 종종 그 무능함을 학생 위에 군림하는 무서움이나 엄격함으로 대신하기도 합니다. 중고등 시절, 그런 몇 분의 선생님이 생각나네요. 특히 군 출신의 교련선생님. 교사도 뭣도 아닌 뒷골목 꼬마대장 같았던 분. 그런 분에게서는 교사로서의 고민같은 게 느껴지지 않았지요. 지겨웠던 고등학교 시절....
 

지난 토요일, 말 그대로 하루종일 근 8시간을 컴퓨터 작업하던 시험출제원안지를, 오늘 수정작업하는 중 3/5이 날아가버렸다. 순간 자신감 급추락을 동반한 두뇌의 백지화 현상이 창졸간에 일어났다. 잠시후, 다행스럽게도 외장하드에 백업해놓은 게 떠올랐다. 약간의 수정을 거쳐 일은 마무리했으나 그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지금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책 한 줄 못 읽은 것에 대한 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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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신문)

 

핀란드 전 대통령 타르야 할로넨의 기사는 읽으면 읽을수록 한숨이 깊어진다, 부러워서. 이 분이 대통령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는 '집에서 쓰는 다리미를 가져와 직접 옷을 다려'입고, 호텔 미용사를 보냈더니 "머리 손질은 내가 한다"며 거절했다는 '평범한 행동'이 그 어떤 행동보다도 비범하게 보인다. '2000년 50%를 조금 웃도는 지지율로 당선됐지만 퇴임할 때 지지도는 80%에 달했'으며 이런 인기는 그의 별명인 '무민 마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무민 마마란, 케이크를 공평하게 나눠주는 엄마라는 뜻이라고 한다. 남의 나라 얘기지만 부럽기 그지없다.

 

"모든 지도자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합니다. 용기가 있어야 하고 또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리더는 스스로 변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변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리더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다."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654197.html

 

 

수수한 헤어스타일의 위 사진을 보고있자니 권양숙여사의 옷자락사진이 떠오른다.

 

 

 

안자락이 너덜너덜해진 옷을 입는 영부인을 두었던 시절이 새삼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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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이후 나이의 힘 8
소노 아야코 지음, 오경순 옮김 / 리수 / 200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소노 아야코의 책. 이 분의 책을 전에 두 권 읽었었는데 기억에 남는 건 거의 없지만 문장 하나하나가 편하게 다가오는 건 역시 똑같다. 나이가 들면 대부분 수다쟁이가 되기 마련인데 이 분처럼 이렇게 멋진 말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대로 늙는다는 게 뭔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p.17  사람이란 지금까지 자신이 만났던 사람의 수만큼 현명해지게 된다.

 

p.28  내 관점으로는 부모든 자식이든 경찰서에 들락거리는 일 등을 하지 않으면 그런대로 괜찮은 부모와 자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가장 딱한 경우는 가족 중에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있어, 어떠한 위로로도 풀리지 않는 외로움을 품고 사는 사람들을 볼 때이다.

 

p.31  중년은 용서의 시기이다....예전에는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흉기라고까지 생각했던 운명을, 오히려 자신을 키워준 비료였다고 인식할 수 있는 강인함을 갖게 되는 것이 중년 이후인 것이다.

 

p.59  극장 안에서나 밖에서나 드라마를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중년인 것이다.

 

p.111  내 경험상 체험이 아니라 지식으로만 터득한 것은 나의 피와 살이 될 정도의 정열로 발전된 것은 거의 없었다. 축적된 지식이 나의 체험에 힘입어 하나의 사상이 된 적은 있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들은 것, 교육받은 것 중에는 순수하게 그 자체가 나의 신조가 된 것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사람이란 자신이 체험한 것밖에는 알 수 없다는 사고에서 나는 지금까지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p.124  젊었을 때는 정의라는 것을 중요한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나도 정의를 대단히 좋아하나 나이가 들면서 정의라는 명분상의 정열을 앞세우기보다는 마음에 들지 않는 타인에게도 친절을 베푸는 것 등이 훨씬 어려운 자세이며 위대한 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p,128~137  자식이란 참 묘하게도 좋게든 나쁘게든 인생을 진하게 만든다. 기쁨도 증오심도 배가시킨다. 이것이 자식이라는 존재가 주는 선물이다....자식은 어디까지나 친근한 타인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 그것은 형무소를 출소한 날 아무것도 묻지 않고 조용히 맞이하며, 목욕을 하게 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해놓는 아주 특별한 타인이다. 부모 이외의 어느 누구도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내가 자식을 친근한 타인으로 생각하려 하는 것은,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재간이 없는 슬픔이 여기저기 얼마든지 널려 있기 때문이다.

 

p.246  정의란 타인에게 갚아야 할 빚(신세)을 자각하는 것이다.

 

p.247  너무 빨리 완성되면 죽을 때까지 따분하고 무료해지고 만다. 나는 중년 이후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러한 운명의 깊은 배려를 깨달을 수 있었다.

 

p.241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

 

길게 자란 파마 머리의 안쪽 뿌리 끝에

염색 안 된 희 머리카락이 무참하게 뻗어 나와 있어.

 

아 저 사람은 여자임을 포기했나보다.

그래서 다 시들은 나뭇잎 모양의

재색 폴리에스테르 블라우스를 입고,

거기에 짤뚝한 바지를 입고,

게다가 닳아빠진 구두를 신고,

안짱다리를 하고 있구나.

 

그때 마침 어린아이를 품에 안은 젊은 여인네가

그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등 돌리고 밖을 보며 서 있는데,

재빨리 일어나 젊은 여인에게 자리를 내준다.

 

여자임을 포기했어도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

 

 

구절구절이 속속들이 마음으로 다가온다는 건 나도 나이가 들고 있다는 증거. 제대로 늙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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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밥상 위의 반찬이라곤 김치 두 어 가지가 전부인 날들이 많았다. 그럴 때 반찬 투정을 하면 엄마는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안 하시는데 니가 웬 투정이냐.'고 하시곤 했다. 멸치가 들어간 찌게가 밥상에 오른 날엔 키 작은 형제들이 허리를 펴고 찌게 속의 멸치 사냥에 혈안이 되곤 했다. 그러나 더 이상 소박할 수 없는 이 밥상에 제일 맏이인 언니는 끼지 못했다. 넉넉하게 사는 서울의 작은 아버지가 데려간 언니는 아침마다 작은 어머니가 떠주는 뜨거운 물로 세수를 하고 부잣집 딸처럼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언니가 다시 집으로 내려온 것은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을 앞두고 였다. 식구들이 묵묵히 먹고 있는 밥상에서 언니는 자꾸 이유없이 웃곤 했다. 아마도 서울까지 통학하는 게 힘들어서일꺼야, 라고 엄마인가 우리 형제들 중 누군가가 그랬다. 집안에 우울감이 팽배해오기 시작하던 몇 개월 동안 그래도 밥상에는 식구들 모두가 둘러 앉아  밥을 먹을 수 있었다.

 

2~3년 후 였나. 모처럼 온 식구들이 한 밥상에 앉을 수 있게 되었으나 언니의 병세는 훨씬 더 악화되어 있었다. 밥을 먹으며 아무도 즐거울 수 없었다. 그러나 언니와 함께 하는 이런 밥상도 얼마 이어지지 못했다.

 

몇 년마다 이따금씩 이런 우울한 밥상이 간헐적으로 이어졌으나 몇 년 후 부터는 아예 언니가 없는 식탁이 되어버렸다.

 

그 후 4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 밥상에 둘러앉는 식구들의 구성원에 변화가 생겼다. 아버지의 자리는 영원한 빈 자리가 되었고 며느리 하나, 사위 하나, 남자 아이 둘, 여자 아이 하나를 위한 자리를 새로 만들게 되었다. 또 한 명의 며느리를 위한 자리는 글쎄 채워지는 날이 올지 어떨지 모르겠다.

 

어제 병원을 옮겨 입원하고 있는 언니한테 갔다. 새언니가 준비해 간 죽을 언니가 맛있게 먹었다. 죽 속에 들어간 버섯을 이가 다 빠진 잇몸으로 부지런히 먹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흰머리가 듬성듬성 난 머리와 앙증맞고 귀여운 귀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 언니, 나보다 머리가 검네."

"큰 고모야 뭐 걱정거리가 있겠어요?"

 

병원의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 면회를 서둘러 마치고 간호실 옆 로비로 나왔더니 30여 명의 환자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 탁자를 길게 붙이고 의자를 정렬해 놓고 무엇인가를 기다리는지 환자들 대부분이 주변에 서 있었다. 각자 식판을 갖고 자리에 앉는지 앉아 있으면 식판을 갖다 주는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가벼운 설레임 같은 분위기는 느낄 수 있었다.

 

언니를 부축하며 2~3m 걸어가는데 어떤 환자가 다가와서 언니를 데려갔다. 구부러진 허리 때문에 언니는 예전보다 훨씬 작고 훨씬 연약해 보였다.

 

준비된 탁자 앞에는 언니의 자리가 따로 있어서 아무도 그 자리에 앉지 못하게 한다고, 자주 병원에 오는 새언니가 말해주었다. 간호사들이나 환자들이 언니를 귀여워 해준다고도 했다. 그러고보니 환자들이 언니를 기다리고 있는 듯도 했다. 순간 언니한테는 환자들이 식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밥 먹고 밥 먹을 때 찾는 사람들이 식구지, 이따금씩 찾아오는 동생인 나는 손님이나 다를 바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가 아픈 이후로, 언니 옆에 있는 저 환자들처럼 언니를 기다리고 언니의 자리를 찾아주고 언니를 환대한 적이 있었던가. 내 식탁에 언니를 불러본 적이 있었던가.

 

미안해,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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