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후 나이의 힘 8
소노 아야코 지음, 오경순 옮김 / 리수 / 200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소노 아야코의 책. 이 분의 책을 전에 두 권 읽었었는데 기억에 남는 건 거의 없지만 문장 하나하나가 편하게 다가오는 건 역시 똑같다. 나이가 들면 대부분 수다쟁이가 되기 마련인데 이 분처럼 이렇게 멋진 말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대로 늙는다는 게 뭔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p.17  사람이란 지금까지 자신이 만났던 사람의 수만큼 현명해지게 된다.

 

p.28  내 관점으로는 부모든 자식이든 경찰서에 들락거리는 일 등을 하지 않으면 그런대로 괜찮은 부모와 자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가장 딱한 경우는 가족 중에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있어, 어떠한 위로로도 풀리지 않는 외로움을 품고 사는 사람들을 볼 때이다.

 

p.31  중년은 용서의 시기이다....예전에는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흉기라고까지 생각했던 운명을, 오히려 자신을 키워준 비료였다고 인식할 수 있는 강인함을 갖게 되는 것이 중년 이후인 것이다.

 

p.59  극장 안에서나 밖에서나 드라마를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중년인 것이다.

 

p.111  내 경험상 체험이 아니라 지식으로만 터득한 것은 나의 피와 살이 될 정도의 정열로 발전된 것은 거의 없었다. 축적된 지식이 나의 체험에 힘입어 하나의 사상이 된 적은 있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들은 것, 교육받은 것 중에는 순수하게 그 자체가 나의 신조가 된 것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사람이란 자신이 체험한 것밖에는 알 수 없다는 사고에서 나는 지금까지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p.124  젊었을 때는 정의라는 것을 중요한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나도 정의를 대단히 좋아하나 나이가 들면서 정의라는 명분상의 정열을 앞세우기보다는 마음에 들지 않는 타인에게도 친절을 베푸는 것 등이 훨씬 어려운 자세이며 위대한 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p,128~137  자식이란 참 묘하게도 좋게든 나쁘게든 인생을 진하게 만든다. 기쁨도 증오심도 배가시킨다. 이것이 자식이라는 존재가 주는 선물이다....자식은 어디까지나 친근한 타인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 그것은 형무소를 출소한 날 아무것도 묻지 않고 조용히 맞이하며, 목욕을 하게 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해놓는 아주 특별한 타인이다. 부모 이외의 어느 누구도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내가 자식을 친근한 타인으로 생각하려 하는 것은,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재간이 없는 슬픔이 여기저기 얼마든지 널려 있기 때문이다.

 

p.246  정의란 타인에게 갚아야 할 빚(신세)을 자각하는 것이다.

 

p.247  너무 빨리 완성되면 죽을 때까지 따분하고 무료해지고 만다. 나는 중년 이후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러한 운명의 깊은 배려를 깨달을 수 있었다.

 

p.241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

 

길게 자란 파마 머리의 안쪽 뿌리 끝에

염색 안 된 희 머리카락이 무참하게 뻗어 나와 있어.

 

아 저 사람은 여자임을 포기했나보다.

그래서 다 시들은 나뭇잎 모양의

재색 폴리에스테르 블라우스를 입고,

거기에 짤뚝한 바지를 입고,

게다가 닳아빠진 구두를 신고,

안짱다리를 하고 있구나.

 

그때 마침 어린아이를 품에 안은 젊은 여인네가

그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등 돌리고 밖을 보며 서 있는데,

재빨리 일어나 젊은 여인에게 자리를 내준다.

 

여자임을 포기했어도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

 

 

구절구절이 속속들이 마음으로 다가온다는 건 나도 나이가 들고 있다는 증거. 제대로 늙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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