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노부후사 > 공산당 선언 2강
<공산당 선언> 2강.
* 칼 마르크스의 사상 개요
칼 마르크스는 상당히 다양한 분야에서 언급되는 사람이다. 경제학에서도, 사회학에서도, 정치학에서도 다루어 지곤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마르크스와 그의 사상에 접근할 수 있을까? 헤겔은 <<역사철학 강의>>에서 "하인의 눈에는 영웅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세상 사람들이 위대한 영웅으로 떠받드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의 일상 생활을 들여다보는 하인에게는 그 사람의 영웅적 면모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고해서 시시콜콜한 뒷이야기까지 알아야 어떤 사람에 대해 안다고 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생애와 그 사람이 남겨 놓은 작품을 연결지어 전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특히 마르크스처럼 사회의 변혁을 바랐던 사람같은 경우에는 사상사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가 자신이 살았던 시대를 변혁하고자 했다면, 그만큼 자신의 시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파악하려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르크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마주했던 시대적 상황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최소한 '18세기는 낭민주의의 시대였다'라고 하는 어설픈 지침이라도 가지고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애를 얘기할 때, 우리가 쉽게 쓸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자신의 인생을 10년 단위로 끊어서 말하는 것이다. 물론 다른 방법도 가능하다. 나는 내 생애를 심란했던 시기와 심란하지 않은 시기로 나눈다. 15세에 담배를 피우면서 인생이 심란해지기 시작했다. 일진도 아닌 찌질이가 담배를 피우려니 어머니께 걸릴까봐 걱정이 되었고 자연히 어울리는 친구들도 바뀌면서 인생이 피곤해졌다. 그래서 나는 내 인생을 심란함을 기준으로 해서 나눈다. 기준을 정하는 건 자기 맘이다. 오늘날에는 마르크스의 생애를 나눌때 청년 마르크스와 노년 마르크스로 나누곤 한다. 알튀세르같은 철학자는 양자 사이에 엄청난 '인식론적 단절' 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뚜렷한 사상적 줄기가 마르크스의 청년기에서 노년기까지를 관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스가 마치 어느 날 신의 계시라도 받았다는 듯이 그의 생애를 청년/노년 하는 식의 이분법적으로 나누기 보다는, 그의 일생에는 커다란 기둥이 있었고 거기서 파생된 곁가지들이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생산적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시대는 어떠하였고 그 시대에 마르크스는 어떻게 대응하였는가를 살펴보도록 하자. 인간은 누구든지 과거로부터 축적된 자신을 가지고 있다. 사상가들이나 철학자들의 특징은 self-reflection(자기반성)에 엄격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항시 스스로를 제3자의 입장에 위치시키고 자신의 과거를 바라보곤 한다. 이런 점에서 김용옥같이 자기도취에 빠져있는 사람은 철학자로서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마르크스는 객관적 상황에 대해 깊이 생각한 것도 많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면도 강하다. 자기 반성, 자기를 객관화해서 보는 짓은 사람만이 한다. 마르크스는 특히 자기 반성에 심할 정도로 많았다는 것을 기억해 두자.
* 칼 마르크스 주제 서평( http://armarius.net/ex_libris/archives/000245.html ) - "" 표시는 이 서평의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더러 마르크스가 부르주아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하여 그를 경멸하는 경우가 있다. 그는 부르주아 취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근대 이후 19세기에 이르는 교양의 현식 중의 하나였다. 다시 말해서 그는 '진정한 근대인'이었던 까닭에 거기까지는 갔던 것이며, 거기서 더 나아갔을 따름이다"
마르크스하면 흔히 '좌파 혁명가'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그 전에 그가 철저한 '근대인'이었다는 것을 기억해 두어야 한다. 근대의 핵심 키워드는 '계몽(Aufklaerung - Enlightenment)'과 '주관성-주체성(Subjectivity)이다. 먼저 계몽은 문자 그대로 '빛을 비추다Aufklaerung', '명쾌하게 하다Enlightenment'라는 뜻이다. 이것들의 대립항은 기독교적 신(神)이다. 단테의 <<신곡>>을 생각해보자. <<신곡>>은 천국편, 연옥편, 지옥편의 세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적인 내용은 단테가 로마 최고의 시인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아 지옥과 연옥을 구경하다가 베아트리체의 인도를 받아 천국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신곡>>이 아무리 1300년대의 작품이라곤 하나 '신'이 중심적 위치에 놓여 있다. 이 당시까지 서양인에게 신을 빼놓고 뭔가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명륜당의 한 노인에게 '이제부터 제사지내지 마세요'라고 말하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싸대기 맞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렇게 볼때, 신 중심의 시대에서 벗어나 계몽과 주관성을 강조했다는 것은 엄청난 단절(chasm)임을 알 수 있다. 더이상 신에게 의존하지 않고 인간 이성의 힘으로만 세계를 파악하겠다는, 칸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성년의 상태에서 벗어남"을 뜻한다. 미성년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더이상 신의 피조물로서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가 세계의 중심에 서서 자신의 의지, 이성에 따라 세계를 개조하고 경영하겠다고 단호하게 선언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니체가 신을 죽였다고는 하나 보다 철저하게 신을 죽인 이는 칸트임을 알 수 있다. 칸트야 말로 서양근대철학에 있어서 가장 혁명적인 작업을 한 것이다. 마르크스를 얘기할 때, 그가 이러한 사상적 위치에 놓여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서양근대에 등장한 이들 계몽주의자들은 인간의 이성에 의해 파악된 지식들을 바탕으로 이른바 근대의 교양을 쌓아올렸다. 이들이 부르주아로 불리는 근대의 시민이며 이들이야 말로 고전적 의미에서의 우파이다. 마르크스의 책을 보면 셰익스피어가 자유롭게 인용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까지가 근대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항목들의 기본인 것이다. 한국과 같이 몽골기병이나 주억거리는 자들은 우파가 아니다. 좌파라면 여기에서 먹고 사는 문제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마르크스의 생몰연대(1818-1883)을 보면 그가 19세기를 온전히 살아낸 사람임을 알 수 있다. 19세기는 17세기부터 시작된 계몽의 시대가 무르익어 근대적 교양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기이다. 19세기에 대학을 다니면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면 그의 교양수준이 어느정도인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만큼 우파적 교양을 기본으로 쌓아 놓은 상태에서 자신의 주장을 제시하였기 때문에 그의 사상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단순히 마르크스의 <<자본>>이 어렵다고 불평할 일이 아니다.
"마르크스의 근본적인 학적인 태도는 이성주의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주관에 머물러 있는 형이상학적인 것이 아니라 사실로써 끊임없이 검증되고 역사를 통해서 심판받는 이성이다. '역사적 이성주의'라 해도 되겠다. 이는 사실 헤겔에서 충분히 성립된 것이다. 마르크스는 여기에 계급적 위치와는 무관한 보편적 이해관계란 있을 수 없다는 당파성을 덧붙여, 그것을 중심으로 삼는다. '물질적 노동'을 역사의 중심에 놓게 되면 '정신의 역사철학'에게는 필수적이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통찰과 그것들의 통합이 요구된다. 다시 말해서 그의 사상의 근원적인 핵심 요소를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파악'이라 한다면 그것과 필연적 연관에 있는 일종의 하위 범주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 범주들로는 대략 다음을 거론할 수 있다: 사회계급 간의 투쟁의 역사;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이론을 비롯한 정치적 프로그램; 노동가치론, 착취와 잉여가치에 관한 이론, 경제 위기론. 마르크스의 생애를 이해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핵심이론의 형성과정과 그 내용을,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정치적 활동을 이해하는 것을 축으로 삼아야 한다"
마르크스의 핵심 키워드는 '계몽'과 '교양'이고 그것들을 밑바탕에 깐 상태에서 마르크스의 '이성', '역사', '노동'이란 개념이 싹틔었음을 염두에 두자. 이성이란 '인간이 자기자신의 상태를 자각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것은 마르크스가 계몽주의로부터 물려 받은 유산이다.
사태를 파악하고자 할 때, 대체로 시간축을 중심으로, 그러니까 역사적인 관점에서 살피곤 한다. 이런 생각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역사적 의식을 강조한 선구적 인물은 몽테스키외지만 역사철학적 의식에까지 이르지는 않았고 헤겔에 이르러서야 역사철학이 학적 정초를 마련할 수 있었다. 데카르트는 심지어 역사적 탐구 방식이 과연 진리에 이르는 길인가를 의심했다. 진리는 부동하는 법인데, 역사는 항상 변화하고 있기에 어떤 대상을 변화하는 것으로서 파악하는 태도가 진리를 낳을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역사적 관점에서 사태를 파악하는 것은 곧 '근대의 경험'인 셈이다. 근대인들은 자신들의 세계가 혁명적 변화를 겪으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역사를 통해서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마르크스는 역사적 관점에서 사태의 기원과 전개를 꼼꼼히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다.
이 둘을 가지고 역사적 이성주의의 방법이라 말할 수 있겠다. 사실 이 방법은 헤겔에 의해 정립되었다.
고정 불변의 것을 추구하는 이성이 정태적(static)이라면 역사적 방법은 동태적(dynamic)이라 말할 수 있겠다. 마르크스는 이성, 역사적 방법론 이 두가지를 가지고 인류의 역사를 바라 보았다. 이때 역사의 주인은 이성을 가진 인간이다. 중세만 해도 역사의 주인은 신이었음을 기억하라.
인류역사는 여러 요소들이 엮어진 덩어리이다. 그렇다면 이 역사를 무엇을 중심에 놓고 바라볼 것인가. 마르크스가 봤을 때, 인류역사의 기반에 놓여 있는 것은 '인간의 행동human activity'이었다. 청년 마르크스를 흔히 '휴머니스트'라고 하는데 여기서 휴머니즘은 르네상스적 의미에서의 휴머니즘이 아니다. 역사를 신을 배제한 인간 활동의 기록이자 탐구라고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human activity야 말로 인류역사를 만든 핵심적인 요소이며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의 휴머니즘인 것이다. 마르크스에 있어 human activity의 내용은 바로 노동Arbeit이다. human activity에는 정신적인 것도 있고 물질적인 것도 있으나 마르크스는 물질적인 활동이 인류역사를 추동하는 핵심적 요소로 보았다. 이와같은 마르크스의 생각을 '역사적 유물론historical materialism'이라 한다. 거칠게 예를 들자면 "강유원은 누구냐?"라고 물었을때, "강유원은 월수입이 얼마다", 강유원은 얼마 정도의 돈을 가지고 있다" 따위로 강유원을 정의한다면 이것이 바로 '역사적 유물론'인 것이다. 마르크스는 물질적 양식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전개되었다는가를 고찰하는 것이 역사를 이해하는 핵심이라 생각했다. 단, 역사적 유물론이라고 말하니 이성이 빠져 있는 것 같으나 이성은 기본으로 전제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마르크스에 관하여 말할 때 자주 제시되는 것 중의 하나는 엥겔스가 <<공상적 사회주의와 과학적 사회주의>>에서 피력한 견해에 근거한, 사상 연원, 즉 독일관념론, 영국의 정치경제학, 프랑스의 사회주의이다. 독일관념론이라 하지만, 이는 엄밀하게는 헤겔의 역사철학이다. 이것은 마르크스에게 역사와 그것의 전개원리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영국의 정치경제학은 역사를 인간노동의 물질적 실천과정으로 볼 경우에 세부적인 탐구 영역을 이룬다. 프랑스의 사회주의는 노동의 착취에 대항하는 혁명운동의 중요성을 알려주었다. 후자 두가지의 공통점은 '노동'이며, 이를 전자와 이어붙이면 '사회와 역사에서의 인간 노동의 중요성'이라는 테제로 수렴된다. 따라서 세가지 사상연원까지 고려할 때 마르크스의 사상은 '인간 노동이 중심인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파악'으로 집약할 수 있겠다. 이때 '유물론'은 형이상학의 한 태도로서의 유물론이 아니라는 것에 유념해야 한다"
독일 관념론 (이성) - 헤겔의 역사철학을 말함. 역사철학이란 역사를 통해 진리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한 것임.
영국의 정치경제학 (역사) - 어떻게 해서 그 사회의 물질적 생산방식이 이루어지는 지를 따진 것임. 즉 노동에 해당하는 물질적 활동의 매카니즘을 다룬 것임.
프랑스 사회주의 (노동) - 노동의 착취에 대항하는 혁명운동의 중요성을 알려줌.
이렇게 해서 마르크스의 사상을 '이성', '역사', '노동'으로 집약할 수 있겠다. 이것을 '역사적 유물론'이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마르크스가 이성을 중요시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강유원이 "돈 버는 방식에 대해서 살펴보자"라고 해서 강유원이 돈독이 올랐다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 역사적 유물론의 장점
민족이라는 것은 과연 객관적 실체인가. 구체적으로 자신이 한(韓)민족임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사회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공장에 함께 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노동자들 사이의 유대가 생길 수 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사회를 분석할 수 있다.
베네딕트 앤더슨, <<상상의 공동체imaginated comunity>>, 나남. 참조.
1. 민족은 상상에 의해 객관적 실체인 양 발명된 것이다.
2. 민족은 제한된 구성원을 가진다. -> 배타적 인종주의로 빠지기 쉽다.
3. 수평적 동료의식을 갖게 된다. -> 전체주의로 빠지게 된다.
먹고 사는 방식이 다른 이건희와 내가 과연 같은 민족일지를 생각해 볼 일이다. 물론 '민족'으로도 어느정도 사회를 분석할 수는 있겠지만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만큼 설득력이 있지는 않다.
* 마르크스의 삶
"[3] 1844-1845: "결정적인 시기"
저작: 유대인 문제(1843-4), 경제학-철학 초고(1844), 헤겔법철학비판 서론(1844), 신성가족(1844-5),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1845)"
벌린은 1844년에서 1845년에 이르는 시기를 마르크스의 삶에 있어서 '결정적 시기'라 불렀다. 이 시기는 마르크스가 철학적 지식을 밑바탕에 놓고 본격적으로 정치경제학을 공부한 시기이다. 이때 역사적 유물론의 틀이 완성되었다. 인간이 사회 조직 속에서 물질적 생산활동 즉 노동을 하는데 어떤 과정을 통해 자기가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멀어지고 노동의 산물을 자기가 갖지 못하는 가에 대한 철학, 정치 경제학적 분석이 이 시기의 저작 <<경제학 철학 초고>>에 담겨있다. 여기까지가 마르크스의 학습시기라 한다면 이후 마르크스는 혁명 운동으로의 시기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6] 1849-1852: 혁명에 대한 반성
저작: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1850),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1852)"
마르크스는 1848년에 <<공산당 선언>>을 씀으로써 혁명가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뚜렷이 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 이르면 <<프랑스 혁명사 3부작>>에서처럼 혁명가로서의 자신에 대한 자기성찰을 하게 된다. 그는 이 책에서 프랑스에서 일어난 혁명에 대해 분석적으로 기술하였다.
1852년에 마르크스는 자신의 사상 중 핵심적인 것, 바로 자본주의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연구를 위한 기간에 들어가게 된다. 이 연구는 <<자본>>에 의해 집대성된다.
마르크스 사상의 전개과정을 거칠게 나눈다면
1) 철학(특히 역사, 인간본성, 노동)에 대한 연구시기.
2) 파리시대 - <<경제학 철학 초고>>에서 철학과 정치경제학을 접합.
3) 1852년 정치경제학의 시대 - <<자본>>으로 집대성.
마르크스가 혁명가라 하여 공부를 소홀히 했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당시의 혁명가 중에서 마르크스만큼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없다. 평생동안 2 만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마르크스를 이해하려면 마르크스가 공부했었던 궤적을 거슬러 올라가며 공부할 필요가 있다. 먼저 마르크스가 생각한 역사적 방법은 무엇인지를 공부할 것을 권한다. 헤겔의 <<역사철학강의>>에 있어 인간의 정신 부분에 마르크스가 말한 노동을 집어 넣으면 마르크스의 역사관을 대충이나마 알 수 있다. 그리고 노동으로 대표되는 마르크스의 인간관을 공부해둘 필요가 있다. 물론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라면 그의 인간관을 살펴 볼 필요는 없다. 그 당시의 인간이란 신의 피조물이라는 관념이 뿌리박혀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근대 이후의 철학자에 대해 공부할 때에는 반드시 그들의 인간관을 따져보아야 한다. 로크, 루소, 칸트, 마르크스가 보는 인간관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을 공부해야 한다. 하루에 두 시간 씩 한 10년 정도 공부하면 문리(文理)가 트일 것이다. 이 세 가지 요소가 마르크스에 있어 핵심적인 부분이다.
<<공산당 선언>>의 핵심 키워드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란 무엇인가.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경제체제'이다. '이윤'이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이다. 모든 것이 이윤을 중추로 하여 돌아간다. 어떻게 해야 짧은 시간 안에 높은 이윤을 올릴 것인가가 자본가들의 최대 관심사이다. 이윤을 많이 남기려면 그만큼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상품을 많이 팔아야 될 터이고, 그렇기 때문에 신재품을 개발하는 속도를 가속화시킴으로써 소비자의 구매욕구를 자극해야 한다. 움베르토 에코의 <<포스트모더니즘인가, 새로운 중세인가>>(새물결)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다른 한편 최대소비 사회는 완벽한 소비재가 아니라 쉽게 망가져버리는 도구를 양산해 낸다.(좋은 칼을 원하는 사람은 아프리카에 가서 사는 것이 가장 좋다. 미국에서 산 칼은 몇번 사용하지 않아 망가지기 쉽상이다.)"
부르주아 계급은 4000년 동안 지속된 자연경제 체제를 고작 200년 만에 상품경제 체제로 전환시켰다. 사실 <<공산당 선언>>은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찬가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의 말이다. "역사적으로 부르주아 계급만큼 강력한 혁명력을 지닌 계급은 없었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양도가 불가능했던 토지와 인간의 노동 그리고 화폐를 양도 가능한 상품으로 재탄생시켰다. 단순히 물건을 교환하는 수단이던 화폐까지도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리오 휴버먼이 지은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를 보면 "이윤만 된다면 자본가들은 휴대용 핵무기도 만들 것"이라 지적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상품화시키는 힘, 이것이 자본주의의 진정한 혁명성이다.
다음 시간에는 에릭 홉스봄의 서론을 다루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