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길을 걸으며    - 詩人: 이정하


해질무렵,
오늘도 나는 현관문을 나섰습니다.
그대를 위해
내가 할수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대에 대한 그리움으로 인해
내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았습니다.

아니,
또 어찌보면 아무것도 없기도 합니다.
아픈 우리 사랑도 길가의 코스모스처럼,
한송이의 꽃을 피워올릴 수만 있다면
내 온 힘을 다 바쳐 곱게 가꿔 나가겠지만,
그것이 또 내 가장 절실한 소망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이렇듯 무작정 거리에 나서
그대에게 이르는
수천 수만 갈래의 길을
더듬어보는 도리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여름,
무던히 내리쬐던 햇볕도 마다 않고
온몸으로 받아내던 잎새의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 한송이의 꽃이 피어났다는것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내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저 꽃잎들도 언젠가 떨어지겠지만,
언젠가 떨어지고 말리라는것을
제 자신이 먼저 알고 있겠지만,
그때까지 아낌없이 제 한 몸을
불태우는것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수없다
생각한 내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떨어진 꽃잎 거름이 되어
내년에 더더욱 활짝
필것까지 생각하면,아무것도 해줄수 없다
생각했던 내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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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보지 못하는지요...흐린 구름 속에 숨겨진 강렬한 태양을.
우리는 왜 잊고 사는지요...한겨울 혹독한 추위 때문에 잎이 떨구어진 바로 그 자리에서 이른 봄날, 제일 먼저 푸르디푸른 새싹이 돋아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왜 믿지 못하였는지요...
우리를 넘어뜨렸던 숱한 고통들이실상은 내 인생에 숨겨진 수많은 보석들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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