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4대 미인이라 하면 왕소군, 서시, 양귀비, 초선이를 일컫습니다. 이들은 모두 고사성어를 남길 만큼 아름답고 유명한 여인들인데 하, 은, 주나라의 멸망과 관련된 세 여인들 또한 경국지색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하나라의 마지막 왕인 걸왕 때, 말희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말희는 유시씨의 소국에서 보내진 공물이었습니다. 포악하긴 했지만 용기와 지략이 뛰어났던 걸왕은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으나 말희를 보자 이성을 잃고 그녀에게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말만을 듣게 된 걸왕은 말희의 뜻을 좇아 주지육림을 만들어 환락을 즐겼으며 그 비용을 대기 위해 백성들을 쥐어짜는 바람에 원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또한 충심으로 간언하던 신하들을 참수하여 그 주위에는 간신배들만이 우글거렸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은나라의 탕에게 사로잡혀 죽임을 당했습니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왕조였던 하나라는 이렇게 멸망하였습니다.
하나라에 말희가 있었다면 은나라에는 달기가 있었습니다. 중국 3대 기서 중 하나인 『봉신연의』에서는 달기를 은을 멸망시키기 위해 여와가 보낸 요괴라고 할 정도로 미색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달기는 유소씨의 딸로 주왕에게 보내졌는데 달기를 본 주왕은 그녀를 매우 총애하였습니다. 달기 역시 말희 못지않게 환락을 즐기는 여인으로 주지육림을 부활시키고(한층 업그레이드 된 주지육림) 마음에 들지 않는 자는 포락지형에 처하였으며 간언하는 신하들을 젓갈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인심을 잃은 은나라는 현명한 신하였던 강태공을 둔 주나라 무왕에게 멸망하였습니다.
봉건제도로 유명한 주나라에도 어김없이 아리따운 여인 포사가 있었습니다. 포사가 태어나기 전 한 선인은 그녀가 나라를 망칠 것이라고 예언하였는데 과연 그 예언대로 유왕에게 보내졌습니다. 결코 웃지 않았던 그녀를 웃게 하기 위해 유왕은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았는데, 어느 날 비단 찢는 소리를 들은 포사가 미소 짓자 그 뒤부터 창고에 있는 모든 비단을 그녀 앞에서 찢었다고 합니다. 그 소리를 너무 많이 들었는지 포사가 더 이상 웃지 않아 유왕이 고민하던 차에, 봉화꾼의 실수로 봉화가 올려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봉화를 본 제후들은 주나라 도성에 변이 생긴 줄 알고 군사를 이끌고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실수임을 알게 되자 모두 허탈한 심정으로 돌아서는데, 그 모습을 본 포사가 너무나 즐거워하며 웃었습니다. 그 후 유왕은 심심하면 봉화를 올렸고 달려오는 제후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포사가 너무 좋아서 정비까지 내쫓은 유왕은 결국 그 대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장인이었던 신후가 견융족과 합세하여 주나라를 치자 당황한 유왕은 봉화를 올렸으나 제후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역사가들은 하나같이 하, 은, 주 멸망의 책임을 아름다운 말희, 달기, 포사에게 돌리지만 사실은 치국에 힘쓰지 않고 주색에 빠져 백성들을 외면한 왕들에게 더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훗날 경국지색이라 불리는 이 여인들은 어쩌면 시대와 남성우월적인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일지도 모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치에 여자가 끼어들면 그녀들은 하나같이 경국지색이니, 팜므파탈이니 하는 오명을 쓰고 모든 잘못의 책임을 뒤집어씁니다. 하지만 역사에서 나라의 멸망과 같은 일의 원인은 그 나라가 지탱해 오며 축척되었던 많은 모순에 의한 결과이지 결코 한 명의 여자 때문은 아니지 않을까요?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걸왕이나 주왕, 유왕은 자기 자신도 다스리지 못하고 집안도 엉망이었으며 나라까지 망쳤지만, 그 잘못의 대부분을 여자 탓으로 돌립니다. 그렇다면 빼어난 미인들이 곁에 있으면 모든 나라가 망해야 하겠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치자(治者)는 여자나 남자나 할 것 없이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 일을 게을리 하여 나라를 잃었다면 수많은 원인들 중 하나였던 그녀들을 욕할 게 아니라 먼저 다스리는 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