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욕적인 삶 치열한 ‘역사 혼’으로
‘거세형’을 당하면서까지 백이와 같은 외로운 이의 기록을
후세에 전하고자 했던 사마천 그는 고금을 관통하는 불변의 ‘천도‘를 제시해
인간의 존재의 가벼움을 초극해 보려는 투철한 역사정신의 소유자였다
오철우 기자
▲ <사기> 열전의 맨 앞에 나오는 ‘백이열전’은 역사에 대한 사마천의 문제의식을 가장 선명히 보여준다. 백이와 숙제는 분명 의인이었건만 하늘은 무심하게도 그들을 굶어죽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천도’란 과연 있는 것인가? 그림은 남송시대 이당이 그린 <채미도>(). 수양산 속의 백이·숙제와 그 곁에 고사리를 캐어담는 바구니가 보인다.
[관련기사]
고전 다시읽기/ 사마천 <사기>

인간의 모든 것은 사라진다. 우리 삶은 단 한 번뿐이다. 우리는 한 번의 리허설도 없이 세상이라는 무대에 섰다가는 퇴장해야만 하는 존재다. 밀란 쿤데라가 썼듯이,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인생이란 하나의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그 인생은 아무런 무게도 없고 처음부터 죽은 것이나 다름없어서, 인간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게 살아보려고 해도 그 잔혹과 아름다움이란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역사는 사라진 것에 대한 기록이다. 사라진다는 것은 무이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역사란 무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다. 스스로가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아는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존재다. 그 자신의 삶이 의미 있다는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그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의미 있었음을 입증해야 했고, 이런 필요가 역사라는 서사를 만들어냈다.

인간이 존재의 가벼움으로 이 세상을 허무하게 날아가 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영원불변한 가치를 지닌 무거운 짐이 필요하다. 동양에서 역사의 아버지 사마천(기원전 145~86년?)은 인간을 ‘천도()’라는 무거운 짐을 진 존재라고 규정함으로써 인간 존재의 가벼움을 어떻게 견디며 살아야 하는지를 <사기>의 저술을 통해 제시하고자 했다. <사기>는 중국 최초의 문명단계로 여겨지는 황제시대에서 전한() 무제기(기원전 1세기 초)까지 사마천 자신이 알 수 있었던 범위 내에서 중국 및 이민족의 역사를 기술한 총 130권의 방대한 책이다. 본기(), 표(), 서(), 세가() 그리고 열전()의 5 부분으로 구성된 <사기>는 중국의 역대 왕조사 편찬에 채용되는 정사()의 모범이자 동아시아 역사서의 기본을 이뤘다.

<사기>는 진시황의 분서갱유로 거의 백지상태에 있었던 중국 고대사를 복원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을 뿐만 아니라, 제자백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필독서다. 하지만 <사기>가 중국 역사책 가운데 가장 널리 그리고 가장 감명 깊게 읽혔던 이유는 그 안에는 인간 운명의 문제를 치열하게 탐구한 사마천의 실존적 고뇌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의 역사를 통한 인간운명 탐구의 결정적 계기는 ‘이릉의 화’로 불리는 비극적 사건이다. 그에게 ‘이릉의 화’라는 시련이 없었다면, 아마 <사기>라는 동아시아 최초의 역사서는 탄생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이릉은 무제의 명을 받고 북방의 흉노원정에 갔다가 중과부적으로 투항했다. 이에 무제는 크게 분노했고 조정의 대신들은 무제의 비위를 맞추려고 이릉의 처단을 주장했다. 이 때 사마천만이 홀로 이릉을 변호하여 무제의 노여움을 사서 사형을 당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 당시 사형은 두 가지 방법으로 감형될 수 있었다. 하나는 50만전을 헌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궁형을 자청하는 것이다. 그만한 재력이 없었던 사마천은 궁형을 택했다. 왜 그가 사대부로서는 죽음보다도 더 치욕적인 궁형을 선택했을까? 그 명분은 <사기>의 완성이다. 태사령이라는 가업을 계승해서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시대적 소명을 완수하라는 아버지의 유언이 그를 죽음에서 되돌아오게 했다. “아버님께서는 늘 말씀하셨다. ‘주공이 죽은 500년 뒤에 공자가 나왔다. 공자가 죽은 지 이제 500년이 되었으니, 누군가 그 뒤를 이어 세상을 밝히기 위하여 <주역>을 바로 잡고 <춘추>의 정신을 계승하여 <시경>, <서경>, 예와 악의 정신을 찾는 사람이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이것은 나를 염두에 두고 하신 말일까? 그렇다면 내 어찌 그 일을 마다할 수 있겠는가?”

사마천의 위대함은 무엇보다도 개인의 비극을 역사의 문제로 승화시켰다는 점에 있다. <사기>의 백미는 전체 130권 가운데 반 이상을 차지하는 <열전>이다. <열전>의 맨 앞에 나오는 ‘백이열전’은 역사에 대한 사마천의 문제의식을 가장 선명히 보여준다. 주의 무왕이 은을 전복하고 천하를 평정하자 백이와 숙제는 수양산에 도주하여 고사리로 연명하다 굶어죽었다. 백이와 숙제는 분명 의인이었다. 하지만 하늘은 무심하게도 그들을 죽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천도란 과연 있는 것인가?

현실세계에서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모순을 사마천은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구명하고 고금의 변화를 관통하는 원리”를 탐구하는 역사 서술을 통해 해명하고자 했다. 사마천은 현실에서 나타난 불합리함과 부조리를 역사로 기록함으로써 현실보다 더 깊은 차원의 천도가 역설적으로 구현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백이와 같은 의로운 사람의 삶의 기록을 후세에 전함으로써 현실의 불합리함을 역사로써 보상하고자 했다. 인간 삶은 일회적이며 순간적인 존재의 가벼움이지만, 천도는 영원불변한 무거움이다.

현실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고뇌하는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은 하늘이 부여한 무거운 짐이다. 사마천은 천도라는 무거움으로 우리 삶의 가벼움을 보상하고자 했고, 그 탐구의 기록이 역사다. 하지만 역사가 과연 천도가 실현되는 방향으로 나아갈까? 독일의 역사가 라인하르트 코젤렉의 말대로, “역사 그 자체는 비이성적이고, 역사가의 분석만이 이성적일 뿐”은 아닐까? 사마천의 역사관을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하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 <황산벌>에 나오는 계백장군 아내의 말처럼, “호랑이는 가죽 땜심에 죽고, 사람은 이름 땜심에 죽는 것”은 아닐까?

‘중화주의’ 어두운 그림자도

모든 것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탈근대 삶의 조건 속에서 천도에 의거해서 역사를 설명하거나 역사의 진보를 믿는다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인간은 존재의 가벼움을 극복할 수 있는가? 천도를 원리로 하는 사마천의 역사신학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더 이상 유효한 역사관일 수 없다. 하지만 인간 존재의 가벼움과 천도의 무거움 사이의 모순에 대한 통찰을 통해 고금을 관통하는 원리를 제시하고자 했던 사마천의 불굴의 역사정신은 오늘에도 결코 그 의미를 소진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인간이 역사를 통해 존재의 가벼움을 초극하려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사마천처럼 역사를 통해 역사의 모순을 지양하고자 노력하는 한, 더욱더 절실히 요청된다고 말할 수 있다.

사마천이 시공간을 초월해서 모든 역사가의 모범이 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학문의 발전은 기본적으로 ‘아버지 죽이기’를 통해 이뤄진다. 서양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가 <역사>를 통해 주변의 야만인들과 구분되는 그리스인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세웠던 것처럼, 사마천은 <사기>를 통해 중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설정하고 그 주변지역을 오랑캐로 규정하는 역사의 플롯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얼마 전 우리말로 번역 출간된 <오랑캐의 탄생>(이재정 옮김, 황금가지 펴냄)의 저자 니콜라 디코스모는 중국을 탄생시킨 것은 진시황제가 아니라 역사가 사마천이라고 주장한다.

▲ 김기봉/ 경기대 교수 · 사학
실제로 중국사에서 중국이라는 국호를 가진 나라는 한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진시황의 통일제국 진 이후 중국은 계속 있었던 것으로 생각해왔다. 원이나 청나라 같은 오랑캐가 중국을 차지했어도 여전히 중국이 존재해 있는 것으로 중국사를 서술하는 정사의 전통이 <사기>를 통해 마련됐다. 중국이 문명의 빛이라면, 그 밝음을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해 필요한 어두운 그림자로서 오랑캐의 역사가 발견됐다. 오랑캐의 역사는 중국사에 포함됨으로써만 의미를 가지며, 그 타자들을 중화문명으로 길들이는 것이 천도를 실천하는 ‘명백한 운명’으로 보는 중화주의 역사관이 <사기>에 의해 정립됐다. 따라서 오늘의 역사가는 사마천의 인간 운명을 탐구하는 불굴의 역사정신은 계승해야 하지만, 역시 아버지가 남긴 중화주의라는 긴 그림자는 지워나가는 작업을 해야 한다.

서평자 추천 도서

사기 본기, 세가(상·하), 열전(상·중·하), 표서

정범진 외 옮김

까치글방 펴냄(1995), 각권 9000원

(직역이라 재미는 없을 수 있지만, 원문에 가까운 번역)

사기열전(상·하)

김원중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2002), 각권 1만8000원

(현대어로 원문을 살려 번역, 상세한 해제 곁들임)

사기(1·2·3)

김진연 옮김

서해문고 펴냄(2002), 각권 8700원

(인물·사건의 단순 나열 피해 <열전> <세가>를 읽기 쉽게 번역)

50자 서평

◇ 이인호(47·<사기-중국을 읽는 첫번째 코드> 저자) “역사의 모습으로 그 이전의 모든 학술을 집대성한 백과전서이자 정의를 찬송한 인류의 영원한 고전.”

◇ 손병목(35·국어논술 ‘일교시닷컴’ 이사) “인간에 대한 지독한 애정과 집요한 추적의 결과물인 <사기>. "역사는 생동하는 인간의 기록"이라는 괴테의 말은 바로 사마천의 <사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 꼬마요정(인터넷서점 알라딘 마이리뷰에서) “2인자는 1인자가 뜻을 이루고 나면 성가시고 불안한 존재가 되게 마련이다.…그러나 어쩌겠는가. 권력이란 더 큰 권력을 요구하여 남의 작은 권력마저 탐내게 하는 것을.”

▽ 다음주 이후 고전 <에티카> <구운몽> <성>(카프카)의 50자 서평에 참여해주세요. 전자우편 cheolwoo@hani.co.kr

기사등록 : 2005-07-28 오후 06:38:28기사수정 : 2005-07-28 오후 06: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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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05-08-04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주일 가량 지나서야 이렇게 배시시 올려보는 나... 아잇~ 창피해.. 마태님이 문자로 알려주셔서 알았다. 역시 마태님은 알라딘 대주주이신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