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일기     -詩人: 이정하


그대가 날 부르지 않았나요.
하루 종일 난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이런 날 내 마음은
어느 후미진 찻집의 의자를 닮지요.
비로소 그대를 떠나
나를 사랑할 수 있지요.

안녕 그대여,
난 지금 그대에게
이별을 고하려는 게 아닙니다.
모든 것의 처음으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하려는 것이지요.
당신을 만난 그날 비가 내렸고,
당신과 헤어진 날도
오늘처럼 비가 내렸으니

안녕, 그대여.
비만 오면,
소나기라도 뿌리는 이런 밤이면
그 축축한 냄새로
내 기억은 한 없이 흐려집니다.
그럴수록 난 당신이 그리웁고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안녕 그대여,
그대가 날 부르지 않았나요.
비가 오면 왠지 그대가 꼭
나를 불러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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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못다한 말들이 비가 되어 내린다. 결별 끝에는 언제나 침묵이 남는다. 유배당한 영혼으로 떠도는 세속의 거리에는 예술이 암장되고 신화가 은폐된다. 물안개 자욱한 윤회의 강변 어디쯤에서 아직도 그대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가. 나는 쓰라린 기억의 편린들을 간직한 채 그대로부터 더욱 멀리 떠나야 한다. 세속의 시간은 언제나 사랑의 반대방향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에.



 출처 : 어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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