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뤼동<죄를 쫓는 정의와 신성한 복수> 1808, 캔버스에 유채, 244x294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아이에게 양심과 공의에 대해 가르쳐줄 때

히브리 속담에 “한 가지 거짓말도 거짓말이고 두 가지 거짓말도 거짓말이나 세 가지 거짓말은 정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치가들이 얼마나 거짓말을 잘하는 존재들인가 하는 점을 일깨워주는 속담인데요, 우리 정치판도 예외는 아니라는 점에서 씁쓸한 뒷맛을 남깁니다.


그런데 정치가 잘못 돌아가면 흔히 정치인만을 탓하지만 사실 그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정치가 부패한 것은 부패한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선출했기 때문이요, 부패한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선출한 것은 국민이 부패한 까닭이다”라는 영국 속담이 이를 잘 말해주지요. 사실 우리 사회는 아직 부패하고 비합리적인 구석이 많습니다. 식민지 경험과 동족 상잔 등 불행했던 근대의 경험에 압축 성장 과정에서 발생한 갖가지 부작용이 더해져 원칙과 상식이 통하지 않거나 심지어 양심을 저버리고 공의를 외면하는 사태까지 심심찮게 발생하지요.


이런 사회에서 자녀를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인간, 정의 관념과 이타적인 희생정신이 충만한 인간으로 키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편법과 탈법이 판을 치고, 극단적인 경쟁심과 이기심이 옹호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자칫 양심이나 정의 관념 같은 것은 고리타분하고 무기력한 가치로 내침을 당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삶이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지요. 우리의 많은 선조들이 그런 삶을 살았고 또 돌아보면 지금도 우리 주위의 적지 않은 이웃들이 그렇게 살아갑니다.


프랑스 화가 피에르 폴 프뤼동은 인간 사회가 어떻게 변하든, 사람들의 가치관이 어떻게 바뀌든 정의는 지켜져야 하며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믿음을 지녔던 화가입니다. <죄를 쫓는 정의와 신성한 복수>는 그의 그런 믿음을 인상적으로 표현한 걸작입니다.


달이 구름에 걸터앉은 깊은 밤, 한 남자가 다른 남자를 쓰러뜨리고 옷과 귀중품을 빼앗아 달아나고 있습니다. 그의 손에 칼이 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쓰러진 남자는 지금 치명상을 입고 생사가 경각에 달린 것 같습니다. 작은 이득을 위해 다른 인간의 생명조차 아무렇지 않게 해치는 범죄자는 희생자의 그런 처지에 전혀 동정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음험한 어둠의 지배를 받고 있고 죄 없는 희생자는 밝은 빛에 처연히 몸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공중에는 이 살인자의 행위를 목격하고 그를 잡으려는 두 명의 여인이 떠 있습니다. 왼쪽의, 횃불을 들고 있는 여인이 정의입니다. 그녀가 든 횃불은 진실의 횃불이지요. 죄를 지은 사람이 아무리 어둠 속에 죄를 숨기려 해도 그녀가 끝내 드러내 놓고 말 것입니다. 정의의 손이 벌써 범죄자의 머리 위에 올라와 있습니다. 그 옆의 여인은 신성한 복수입니다. 오른손에 든 것이 검, 왼손에 든 것이 저울입니다. 신성한 복수는 죄인의 죄를 저울에 매달아 그 정도를 따져 거기에 맞게 칼을 들어 심판할 것입니다. 결코 봐주거나 속아넘어가지 않고 양심을 판 대가를 철저히 캐물을 것입니다.


이런 그림을 보고 혹자는 정의와 양심에 대한 신념은 가상하지만 과연 현실이 얼마나 이런 신념과 가깝겠는가 하고 따져 물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의와 양심의 가치는 그것이 현실에서 얼마나 잘 수용되느냐로 따져지는 것은 아니지요. 모든 아름답고 숭고한 믿음처럼 그것은 무엇보다 믿음의 대상입니다. 정의와 양심은 믿음으로 지키는 것이지 그것의 현실적인 가치나 이득을 보고 지킬 것인가 말 것인가 따질 일은 아니지요. 성경은 “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재물은 아무 유익이 없어도 정직은 생명을 구한다”(잠언 10장 2절)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생명은 육체의 생명뿐 아니라 삶다운 삶을 사는 것, 곧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까지 포함하는 것이겠지요. 다른 많은 인류의 경전들도 한목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의 아이들에게 정의와 양심에 대한 믿음을 가르치는 일은 삶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가르치는 일이 되겠지요. 삶을 가치 있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주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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