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로 디 코지모<라피타이족과 켄타우로스의 싸움> 1486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

 

문명과 야만의 싸움을 상징하는 켄타우로마키아

그리스 사람들은 자신들을 문명인, 이웃 나라 사람들을 야만인이라고 보았습니다.
이웃 나라 사람들이 꼭 지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뒤떨어져서 그렇게 보았던 것은 아닙니다.
다른 나라에는 다 전제적인 왕이 있어 설령 귀족이라 하더라도 왕의 지배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결국 그 삶이 노예와 다름없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개인의 자유가 없는 만큼 모두 야만인이라고 보았던 거지요.
반면 그리스 사람들은 귀족 출신이든 평민 출신이든 시민이면 다 똑같은 자유와 권리를 누렸습니다.
이런 자유인들이 모여 평등한 시민사회를 형성했기에 그리스인들은 자신들만이 진정으로 문명화된 사람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과 이웃 나라 사람들과 싸움이 벌어지면 이를 인간 대 괴물, 혹은 인간 대 별종의 대결로 표현하곤 했습니다.
자신들만이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 있다고 표현하고 싶었던 거지요.
그리스 사람들을 상징하는 라피타이족이 상반신은 사람이고 하반신은 말인 켄타우로스들과 싸우는 장면을 묘사한 ‘켄타우로마키아(‘켄타우로스와의 싸움’이라는 뜻)’ 주제도 그런 믿음을 담은 주제입니다.
이 주제는 고대에도 많이 표현됐지만, 근세에 들어와서도 적잖이 그려졌습니다.
피에로 디 코지모가 그린 <라피타이족과 켄타우로스의 싸움>은 그 대표적인 걸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람들이 엉켜 싸우는 모습이 아수라장을 방불케 합니다.

이 싸움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라피타이족의 지도자인 페이리토스가 자신의 결혼식 날 라피타이 사람들뿐 아니라 이웃한 켄타우로스들을 같이 초대했습니다.
켄타우로스들은 원래 성질이 포악하고 욕심이 많았는데, 술이 들어가자 그만 그 본성이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에우리토스라는 켄타우로스가 갑자기 신부 히포다메이아에게 달려들어 머리채를 낚아채고 달아나려 한 것이지요.
이 행동에 자극을 받은 다른 켄타우로스들도 손님으로 온 여인들을 하나씩 훔쳐 도망치려 했습니다.
잔치 자리는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변했고 라피타이 사람들과 켄타우로스들 간에는 유혈이 낭자한 싸움이 전개됐습니다.
그 인상이 생생히 잡힌 피에로 디 코지모의 그림에서 머리채가 잡히고 푸른 옷이 찢겨 맨몸이 드러난 화면 오른쪽의 여인이 신부 히포다메이아입니다.
품위고 체면이고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군요.
화가는 그림 한가운데 죽어 가는 사내 켄타우로스를 껴안고 슬퍼하는 여자 켄타우로스를 통해 이 싸움의 잔인함을 인상적으로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런 싸움 주제를 자주 형상화함으로써 그리스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명이 지닌 위대성을 노골적으로 찬양했습니다.
이후의 서양문명 역시 그리스 문명을 이은 문명으로서 이 주제에 서양 문명 전체의 위대성을 의도적으로 담아내곤 했지요.
물론 서양문명이 위대한 문명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문명을 무조건 야만시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사실 모든 문명은 그 나름의 장점과 단점을 다 지니고 있지요.

세상의 모든 문제가 저런 싸움이 아니라 대화로 해결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주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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