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의 여인이 되고 싶을 때 - 수산나
돈도 좋고 권력도 좋지만 명예를 잃는다면 그 모든 것이 아무 것도 아닐 것입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존경을 받으며 살고 싶어합니다. 그런 추구가 때로는 불의한 이들에 의해 위기에 처하기도 합니다. 수산나는 엄청난 위기에서도 자신의 덕과 순결을 지키고 진정한 명예심을 보여준 여성이었습니다.
수산나는 히브리어로 백합이라는 뜻입니다. 널리 알려져 있듯 백합은 순결의 상징이지요. 성서 제2경전(외경)에 등장하는 수산나는 그 이름이 시사하듯 매우 순결하고 정숙한 여인이었습니다. 용모가 빼어나게 아름다울 뿐 아니라 신을 두려워하는 경건한 여인이었다고 합니다. 남편 요아힘은 매우 부유한데다 바빌론에 사는 유대인 가운데 가장 존경을 받는 인물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집에 드나들었습니다. 이렇게 수시로 손님이 출입하는 크고 훌륭한 그의 집에는 역시 아름답고 훌륭한 정원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멋진 정원이 가증스런 음모의 현장이 될 줄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아무도 알지 못했지요.
부모로부터 모세의 율법에 따른 엄격한 교육을 받은 수산나는 정오가 되어 손님들이 모두 집밖으로 나가면 비로소 정원에 산책을 나가곤 했습니다. 사건이 있던 날도 수산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텅 빈 정원에서 두 명의 하녀와 함께 산책을 했습니다. 그 날 따라 날이 매우 무더웠던 까닭에 수산나는 목욕을 하기로 마음먹고 정원 연못에 몸을 담갔습니다. 두 명의 하녀에게는 올리브 오일과 연고를 가져오라고 시키고 나갈 때 정원 문을 잠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지요. 하지만 정원 안에는 두 명의 노인이 숨어 있었습니다. 재판관인 이들은 그 동안 수산나의 아름다움에 빠져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취해 보고자 하는 욕망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알몸의 수산나 앞에 갑자기 나타난 두 노인은 그녀에게 몸을 허락할 것을 요구하고 그렇지 않으면 외간 남자와 간통하는 현장을 목격했다고 거짓 신고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그 혐의가 인정된다면 죽음을 맞아야 하지만 명예와 순결을 더 중시한 수산나는 비명을 질러 사람들이 현장으로 달려나오게 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수산나는 노인들이 자신을 겁탈하는 것을 가까스로 막을 수 있었지요. 하지만 상황에 대한 설명에는 오히려 노인들이 훨씬 유리한 환경이 돼버렸습니다. 다음날 열린 재판에서 사람들은 수산나의 주장보다는 재판관이자 공동체의 존경받는 원로인 두 노인의 주장에 더 귀를 기울였습니다. 마침내 수산나에게 사형 평결이 내려졌지요. 가족들의 통곡 속에 수산나가 형장에 끌려가려는 순간 이를 제지하고 나선 사람이 소년 다니엘이었습니다.
다니엘은 두 노인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공박하고는 두 노인에 대한 분리 심문을 허락해달라고 법정에 요구했습니다. 분리 심문에서 다니엘이 두 노인에게 던진 핵심적인 질문은 “수산나의 간통 현장을 어디에서 목격했는가?”였습니다. 한 노인은 “아카시아나무 아래서”라고 대답했고, 다른 한 노인은 “떡갈나무 아래서”라고 대답했습니다. 서로 다른 답변이 나온 것을 들은 유대인들은 두 노인이 수산나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웠음을 알아채고 크게 분노했습니다. 두 노인은 현장에서 처형됐지요. 순결하고 정의로운 여인 수산나는 이렇게 해서 악의 덫으로부터 빠져 나와 자신과 가족의 명예를 지키게 됩니다.
이탈리아 여성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1593-1652)가 17살에 그린 <수산나>는 목욕하는 순간의 수산나에게 두 노인이 갑자기 들이닥쳐 위협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두 노인의 표정이나 제스처는 매우 역겹고 혐오스럽습니다. 겁에 질린 수산나는 두 노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지만 우리가 알 듯 지금 그녀의 상황은 매우 어렵습니다. 노인들의 위협으로 자신의 정조를 잃거나 목숨을 잃는 두 가지의 불행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하지요. 무섭고 혼란스러운 가운데서도 명예를 지키기 위해 결국 목숨을 포기하는 쪽을 택한 수산나. 여인의 이런 결단이 같은 여성인 화가에게도 큰 아픔과 공감으로 다가온 것 같습니다. 수산나의 고통스런 심리적 상태가 마치 화가 자신의 그것인 양 무척 생생하게 표현돼 있습니다.
의미심장한 일은, 이 그림을 그린 2년 뒤 아르테미시아가 강간 혐의로 한 남자를 법정에 고소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남자의 이름은 타시였고, 그는 그녀 아버지의 일을 돕기 위해 아버지 문하에 들어와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고소를 당한 뒤 남자는 뻔뻔스럽게도 자신은 강간은커녕 상호 합의 하에서라도 관계를 가진 적이 없으며, 그녀가 성적으로 매우 방종하고 문란한 까닭에 그녀가 처녀성을 잃었어도 이는 자신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과연 그녀가 언제 처녀성을 잃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산파가 그녀의 속을 들여다보기까지 했습니다. 온갖 비방과 중상이 아르테미시아에게 쏟아지는 가운데 7개월이나 계속된 심리. 하지만 그 끝에서 마침내 타시는 유죄가 인정돼 감옥에 갑니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자신의 존엄과 명예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겨운 일인가를 생생히 보여준 그림 속의 수산나와 화가 아르테미시아. 비록 예전과 같지는 않다고 하지만, 아직도 차별의 그림자와 여성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이들은 오늘도 자신의 존엄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모든 여성들의 영원한 영웅이자 빛이라 하겠습니다.
이주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