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서점 한 켠에는 경제, 경영 서적 베스트셀러라는 이름으로 온갖 처세술을 다룬 서적과 성공을 위한 서적들이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제법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그 곳에는 내 나이 또래 되어보이는 이들이 서서 책들을 뒤적이고 있고, 나는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서본다. 낯익은 책들. 몇 년전에 보았던 책들이 다른 꺼풀에 싸여 재판되어 나온 것을 보며 한숨을 쉰다. 개중에는 읽을만한 책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사람들을 기만하는 듯 하기만 하다.

다시 서점의 다른 곳을 돌아본다. 역사, 철학 서적들이 빼곡이 들어찬 곳. 그 곳에는 왠지 교수일 듯한 냄새를 풍기는 아저씨 한 분만이 서 있다. 애처로운 마음에 곁에 가서 서 본다. 미동도 않고 책에만 빠져 있는 그 분에게선 어딘가 진중하지만 처량한 듯한 내음이 난다. 괜히 서러워진 마음에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어학 서적이 가득한 그 곳. 제법 많은 사람들이 그 곳에서 서성인다. 왠지 그곳엔 가고 싶지 않아 다시 눈을 돌린다. 소설 코너에도 제법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시들이 꽂혀 있는 자리에는 사람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서글픈 마음에 시집 한 권을 빼들어본다. 글귀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시를 잘 모르는 나는 여기가 어딘지 불편하다. 다시 고개를 들어 인문 사회 서적들로 시선을 보낸다.

지적 허영심인지도 모른다. 순수한 호기심을 가지기엔 너무나 현실적인 나이기에. 그런들 어떠랴. 책들이 나에게 손짓한다. 다가서는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며 읽어달란 간절한 호소를 한다. 애써 외면하고 싶지만, 내 몸은 이미 나의 의지를 거부하고 책을 뽑아든다. 알지 못할 내용들이 가득한 책을 보며 한심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사면, 난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 또 몇 권의 책을 사야하겠지. 씁쓸한 마음으로 책을 내려놓는다.

결국 내가 뽑아들어 계산한 책은 책세상문고 한 권. 비싼 책들은 이 곳 알라딘에서 살 것이다. 이제 5월이고, 점점 여유가 줄어든다. 만약 도서정가제가 시행된다면, 그나마 사보던 책들도 못 사게 되겠지. 어쩌면 헌책방만 돌아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름대로 새 책 욕심을 부리던 내게 새 책이 사치가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정치인들에게 반감이 생긴다. 원래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하늘이 우울하기만 하다. 한바탕 비라도 쏟아질 모양이다. 그래, 먼지를 씻어내듯, 우울도 씻어내자. 그리고 다시 희망이라는 화창한 햇살을 기대해보자. 나는 꺾이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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