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철학적으로 어떻게 볼 것인가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78
이영호 지음 / 책세상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나열이 아니다. 역사가 역사로서 그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사관'이 필요하다. 즉,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과거의 어떤 사건을 골라내어 그 사건으로 인한 현재가 긍정적인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역사의 의무라는 이야기다. 단순히 과거의 사건들을 알기 위해 역사학이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근래 일본의 움직임은 마치 100년 전과 같다. 메이지 유신을 성공으로 이끈 유신지사들은 급속하게 극우지사들이 되어갔다. 천황폐하만세를 외치며 제국주의로 돌아선  그들은 급기야 대동아공영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야욕을 실현시키기 위해 침략전쟁을 일으켰다. 엄청난 희생자를 동반한 그 전쟁으로 인해 아직까지 상처를 달래지 못하고 피 흘리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100년만에 그들은 부활했다. 우리가 과거 일본의 움직임을 몰랐다면, 지금 그들에게 우왕좌왕하는 태도를 보여줄지도 모른다. 과거 조선의 위정자들이 그랬듯이. 그러나 우리는 과거를 안다. 현재를 위해 우리는 다시 그 과거를 들추어 낸다. 일본의 역사 왜곡에 왜 그렇게 반발하는가. 과거의 왜곡은 현재의 왜곡을 필연적으로 부른다. 우리는 현재와 더불어 미래를 위해 과거의 왜곡을 반대한다. 과거 없는 현재는 없다지만, 또한 현재 없는 과거 역시 없다. 이렇듯 과거와 현재는 서로 상호보완적으로 존재하며 그들을 이어주는 매개체는 역사학이다. 그렇기에 그들을 '어떤 식으로' 이어주는가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되며, 그 '어떤 식으로'를 우리는 '사관'이라고 부른다.

 '사관'은 과거의 사건을 해석하는 힘이다. 사관에 따라 하나의 사건이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식민사관과 그에 대비되는 민족사관이 아주 좋은 예가 된다. 그렇기에 올바른 사관을 정립하는 일은 역사를 이해하는 데 선행되는 중요한 작업이다. 이 책은 사관, 다시 말해 역사의식을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먼저 역사를 인식하기 위해 필요한 기초 개념들과 그 범주, 그리고 몇 가지 중요한 주제들을 설명하고 본격적으로 과거를 훑는다. 주로 포스트모너니스트들의 역사인식 - 역사의 진실은 불가지론적이며 허구에 가깝다 - 과 헤겔이나 야스퍼스 등 신학과 관련된 철학자들의 역사인식, 식민사관 등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페이지는 작지만, 인간의 역사를 모조리 포함시키고 있어 놀랍기 그지없다. 물론 철학사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만할 정도로 철학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결국 글쓴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다. 글쓴이가 공부할 때까지 판치고 있던 식민사관을 뿌리뽑아 진정한 민족의 역사를 찾자는 대전제 아래 마르크스의 역사인식을 대부분 수용하여 힘 있는 자들을 대변하던 역사에서 민중을 위한 역사로 바꾸자고 주장. 그러기 위해 선행되는 작업이 바로 이 책이라는 사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책에서 과학적 역사인식을 맹신에 가까울 정도로 옹호하는 것도, 유물론에 근거한 마르크스의 역사인식을 전격 수용한 것도 이해가 갈 만하다. 팽배해있던 식민사관에 맞서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처방이 필요했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여전히 힘 있는 자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고, 식민사관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은데다가 친일 청산이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제는 의식 있는 시민이라면 안다. 식민사관의 허구성과 청산되지 않은 과거의 잔재가 얼마나 끔찍한지를. 그리하여 지금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올바른 역사인식의 정립을 위해 다 같이 투쟁하고 있음을. 그리고 반드시 시민의 힘으로 이루어 낼 것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