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묻다
가선 지음 / 영언문화사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다연은 신병을 앓았다. 내노라하는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그녀에게 굿을 한다는 건 집안에서 느끼기에 죽음보다 더 치욕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병은 쉬쉬하는 사이 깊어만 갔고, 너덜너덜해진 심장은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그런 자신의 상태를 잘 알기에, 다연은 너무나 사랑하는 태인을 보냈다. 태인은 상관없었다. 오히려 함께 할 시간이 줄어든다는 데 아파했다.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면 죽음이라도 함께 하겠다 결심한 그였지만, 다연은 그것을 거부했다.

얽히고 설킨 인연들 사이로 수많은 상처와 아픔이 오갔다. 사랑하지만 만날 수 없는 이들과 엇갈린 사랑으로 증오의 업을 키우는 이와 사랑받지 못한 가슴을 부여잡고 평생을 살아가는 이가 한데 엮어져 급기야는 무서운 결말을 가져왔다. 태인의 죽음 앞에 이성을 잃은 다연은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겉으로는 싫다 내쳤지만, 사실 속으로 얼마나 애태웠던가. 그런 그를 잃는다는 것은 생의 의미를 잃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다연은 뛰어내렸고, 인연의 힘으로 시공을 넘어왔다. 다연이 현대로 넘어오자, 다연의 현생은 의식불명. 하나의 영혼이 계속해서 윤회하는가. 다연은 자신이 시공을 초월한 것이 무슨 뜻이 있을거라 짐작했고, 짐작대로 그녀의 역할은 얽힌 실을 푸는 거였다. 그리고 풀려버린 인연들은 이제 사랑만이 남고 모두 스러졌다.

그다지 긴박감이나 급박함 같은 건 없다. 그저 평이하게 읽을 수 있을 뿐. 얼음처럼 냉정한 루카스가 사랑을 느끼는 부분도, 차가운 성품의 태인이 사랑을 느끼는 부분도 평이하다. 감정의 격랑 따위는 없다. 그저 평이하게 평이하게 평이하게. 그리고 끝이 났다. 불멸의 연가를 보지 못했지만, 안 봐도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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