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장도
한수영 지음 / 현대문화센터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연록흔을 먼저 읽고 봐서 그런지, 가륜과 비교가 되었다. 물론 은장도의 남주도 가륜이긴 하지만.. 은장도에 등장하는 남주는 정체가 여러개인 베일 속의 거물이다. 영국 몬드라곤 공작 가문의 작위 계승자인 데클란이면서 일본 야쿠자 사회에서 알아주는 '깡패' 류이고, 홍콩 검은 손의 대표적 인물인 쿠앙션, 혹은 하가륜. 그런 그가 친구의 상처에 대한 복수로 감행한 블랙잭에서 한국 재벌 기업의 총수 서태영에게 이겨 그 딸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에게 보내진 딸은 도박장에서 보았던 탐욕으로 번들거리는 눈을 가진 미림이 아니라, 5번의 윤회를 통해 늘 그의 아릿따운 정인이었던 사현이었다.

사현. 그녀는 전설 속의 바리데기 공주보다 더 불쌍한 바리데기다. 친부인 서태영으로부터 버림받고, 나중에는 서태영이 지극히 아끼는 미림 대신 쿠앙션에게 보내지는 비련의 인물이다. 그러나 어떤 사건도 그녀의 정직하고 솔직한 성품을 부수지는 못했다. 누구보다 용기있고, 깨끗한 영혼을 지닌 그녀는 무수한 세월을 지나 다시 가륜 앞에 서면서 지긋지긋하면서도 한맺힌 인연의 사슬을 풀 수 있는 기회를 만나게 된다.

오래 전, 그들의 인연이 처음 시작되던 때, 사현은 가륜의 정혼자였으며, 미림의 언니였다. 그러나 가륜을 사랑한 미림은 그녀의 어긋난 애정에 집착과 원망을 더하여 언니인 사현을 죽여 버린다. 가륜이 자신을 선택할 때까지 똑같은 얼굴을 가지고 태어나 그와 사현 사이를 갈라놓겠다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가륜은 미림의 맹세에 차갑게 응수했다. 언제 어디서 다시 태어나도, 설사 사현과 미림이 똑같은 외모를 갖고 있더라도 사현을 찾아내어 그녀만을 사랑하겠다고. 그 후 5번의 생애 동안 늘 가륜의 사랑이었던 사현을 죽이지만, 단 한번도 그의 사랑을 받아보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 질긴 인연이 끝을 보려는 양, 이 생애 사현과 미림은 쌍둥이로 태어난다. 똑같은 얼굴을 가지고 말이다.

운명은, 사랑은 언제나 그랬듯 가륜과 사현을 선택했다. 상황이 아무리 미림에게 유리해도, 언제나 가륜과 사현은 그들이 지닌 순수하고 깨끗한 영혼을 사랑했다. 전생이 어떻든, 그들은 언제나 서로에게 새로운 사랑이었으며, 또한 한결같은 사랑이었다.

한국과 홍콩, 일본, 영국까지 넘나드는 공간의 이동과 이생과 전생을 한데 엮어놓은 시간의 이동까지 이 작은 책 한 권에는 거대한 배경이 깔려져 있다. 그리고 어둠의 제왕과 타국의 한 평범한 여교사가 사랑을 나누는 신분의 차이까지 그리면서도 억지스럽다거나 어색하지 않다. 작가의 역량이 뛰어남을 알 수 있다. 단숨에 읽히는,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연록흔도 그러했고, 이 책 은장도도 그러하다. 

게다가 여주가 너무 마음에 든다. 완벽한 남주도 나의 이상형이지만, 여주 역시 나의 이상형이다. 후후.. 오랫만에 마음에 드는 여주를 만나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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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2-06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오래전에 읽어 기억이 잘 안나지만 미림을 무지 미워했었어요..^^;; 아아~ 요 책이 나올 시기쯤의 국내로설들은 다 재밌었는데 말이죠..

꼬마요정 2005-02-09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제야 국내로설들을 보기 시작했답니다. 참 재미있는걸요~~ 항상 이렇게 찾아와 댓글 남겨주시는 날개님 감사해요~~
근데, 요즘 국내로설들은 예전 것에 비해 좀 식상해졌나봐요?? 싫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