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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日月 - 하
이리리 지음 / 가하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내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과 조금 어긋나는 부분들이 있긴 했지만, 어쩌면 그건 사소한 부분이라 그냥 넘어가련다. 고려의 마지막 왕은 공민왕이 아니라 공양왕이라는 정도?
김지혜님의 공녀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유사한 시대에 한 명은 원나라로 끌려가고, 한 명은 명나라로 끌려갔으니, 옛날 힘 없는 나라의 기구한 여인네의 팔자로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채연은 귀족 가문의 딸로서 고고한 자존감을 갖고 있는 여인이다. 그렇기에 동생들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수 있었다. 오래도록 연모하던 정혼자를 잃고 그녀에게 남은 삶의 의지는 동생들 뿐. 그녀는 동생들을 위해 명나라로 공녀가 되어 떠나기로 결심한다.
아름다운 얼굴과 풍부하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깊이 간직하고 있는 지식과 정세를 읽을 줄 아는 정치적 감각은 그녀로 하여금 평범한 공녀의 생활을 어렵게 했다.
하필이면 황태손의 눈에 들 게 뭐람. 그녀보다 어리지만 다음 황위를 이을 후계자의 사랑을 받게 된 그녀는 이런 어이없는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한다. 아무 힘 없는 그녀로서는 황태손의 승은을 황공한 마음으로 입어야겠지만, 그녀의 마음엔 고려에서 죽어진 정혼자가 남아 있었다.
굳이 지조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애도해주지 않는, 가족도 남아 있지 않은 가여운 정혼자에 대한 의리 때문에 그녀는 다가오는 사랑을 거부하며 마음의 문을 닫는다.
정왕 주헌은 처음 봤을 때부터 그녀가 거슬렸다. 너무나도 깊은 상처를 안고 있는 그에게 살아도 된다고 위로해 준 최초의 사람인 그녀가. 하지만 소중한 이를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그 역시 마음의 문을 닫고 그녀로부터 멀어지고자 한다.
하지만 운명은 그와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위험에 처할 때마다 굳이 그녀를 구해주고, 그녀는 그가 누구인지 모른 채 부상당한 그를 살려준다. 그렇게 둘은 은원을 쌓아가며 돌이킬 수 없는 붉은 실에 매여버리게 되는데...
그저 행복해지고자 한 그 마음은 가엾게도 그들이 가진 능력 때문에, 혹은 주변 사람들의 욕심 때문에 눈물을 삼키며 묻어버려야 했다. 계속되는 오해와 어긋나버린 시간들이 너무나도 아프게 그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지만 그래도 굳건한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깊이 사랑했다.
그래.. 이제 더 이상은 고통받지 않기를. 부디 행복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