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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9743[오마이뉴스 53] 한글날 아침에 본 신문 문장
최종규  

한글날 아침에 본 신문 문장
[우리 말 살려쓰기 53] 잘 쓴 기사를 골랐는데도


<가>

한글날 아침이라고 세상이 달라져서, 사람들마다 말과 글을 더 잘 쓰거나 잘 살피지 않습니다. 다만 한글날이 토요일이고, 토요일이면 신문마다 책을 이야기하는 자리를 크게 마련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한글날에 걸맞는 책을 여러 신문에서 여러모로 다뤘는데, 대체로 비슷한 책을 소개했습니다. 여러 신문을 보다가 가장 쉽고 알뜰하게 잘 쓴 기사라는 생각이 드는 <경향신문> 기사를 보면서, '잘 썼다고 하는 기사에서도 여러 가지 어렵고 알맞지 못한 말'이 많음을 들어서 보이겠습니다.


<나> 한글날 신문 기사 가운데 하나를 살피며


<1>부터 <8>까지 문장을 나누어서 신문기사에서 잘못 쓰거나 알맞지 못하게 쓴 말을 다듬겠습니다. 항목을 <1>부터 <8>로 나눈 뒤, 잘못 쓴 말에 번호를 매겨서 모두 서른네 가지 낱말과 말투를 다듬었습니다. 항목으로 나눈 글은 신문에 실린 글 그대로입니다. 띄어쓰기도 신문에 나온 그대로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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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멸종되고 있는 것은 비단 동·식물만이 아니다. 날마다 사용하는 우리말글에서 우리 토박이말이 사라지고 있다.

=> 기사 첫 문장부터 달갑지 않은 말을 씁니다. '멸종'이란 말을 썼지만 '사라지다'라고 써도 될 말입니다. "멸종 동식물"이란 "사라진 동식물"입니다. 더구나 글 끝에는 "우리 토박이말이 사라지고 있다"라고 했어요. 뒤에서는 '사라지다'란 말을 잘 쓰면서 앞에서는 왜 못 쓸까요?

'비단'이란 말을 썼는데요, 옷감 '비단'일까요? 아니에요. 여기에 쓴 '비단'은 우리 말이 아닙니다. 우리 말은 '오직'이나 '다만'이에요. '사용하는'이라고도 했는데, 우리 말은 '쓰다'입니다. 기자들 가운데 '쓰다'라는 말을 제대로 쓰는 분이 참 드뭅니다. 기사 길이를 생각해서 짧은 말을 즐겨 쓴다는 기자들이 '쓰다'라는 훨씬 짧고 손쉬운 말을 두고 왜 '사용하다'라는 말에만 매달리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사 첫 줄을 손보면, "사라지고 있는 것은 다만 동, 식물만이 아니다. 날마다 쓰는 우리 말글에서 우리 토박이말이 사라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 멸종(滅種)되다 => 사라지다, 없어지다
(2) 비단(非但) => 다만, 오직
(3) 사용(使用)하다 => 쓰다


<2> 이미 ‘외계어’의 수준까지 이른 통신언어의 봇물 속에서, 한자와 외래어의 무분별한 범람 속에서 우리 토박이말들도 머잖아 멸종위기에 처할지 모른다. 한글날을 맞아 우리말글에 대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 문장을 읽으면 뜻은 헤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장 투는 우리 말투가 아니에요. 일본 말투를 고스란히 낱말만 한글로 바꾸어 놓은 듯합니다. "이미 외계어 수준까지 이른 통신언어가 봇물처럼 터지고, 한자와 외래어서 분별없이 넘치는 가운데 우리 토박이말들도 머잖아 사라질 위기에 놓을지 모른다"고 써야 우리 말투가 됩니다. '봇물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범람 속'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봇물이 터지듯 많고, 넘치듯 많을 뿐이거든요.

글 끝에서는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했어요. 그렇다면 '범람'이란 말도 '봇물'이란 말과 어우러서 '넘치다'라고 해야 훨씬 알맞습니다. '무분별'은 앞에 '무(無)-'를 붙이는 말인데, 우리 말로 하자면 '-없다'를 뒤에 붙여서 써야 합니다. '무책임하다'가 아니라 '책임없다'고 '무가치하다'가 아니라 '가치없다'입니다. 우리 말은 뒤에 '-없다'를 붙입니다. '놓이다'란 말이 있는데 굳이 '처하다' 같은 말을 쓸 까닭이 없습니다.

(4) 무분별(無分別)한 => 분별없는
(5) 범람(汎濫)하다 => 넘치다
(6) 처(處)하다 => 놓이다


<3>‘안 써서…’는 사라져 가는 우리말과 그 결과 너무나 빈곤해진 우리의 언어능력과 언어생활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은 책이다. 한자와 외래어를 받아들이면서 그 의미가 중복될 때마다 미련없이 토박이말을 버려온 것이 우리의 현실.

=> "사라져 가는 우리말과 그 결과 너무나 빈곤해진"이란 문장이 이상합니다. 이 말투는 서양 말투입니다. 우리 말투대로 다듬어서 "사라져 가는 우리 말과 사라지면서 너무나 홀쭉해진"처럼 쓰면 좋습니다. '빈곤'은 '가난하다'를 한자로 담아낸 말인데요, '가난해진'으로 써도 좋지만, 말느낌이나 글흐름으로 보아 '홀쭉해진' 같은 말을 써도 괜찮습니다.

'언어능력'은 '말 능력'으로 써도 좋고, '언어생활'은 그냥 '삶'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말하고 글쓰는 삶을 '언어생활'이라고 담아낼 텐데, 어떤 분들은 '말글살이'로도 다듬어서 씁니다. '말글살이'를 써도 좋겠습니다. '뜻'이란 좋은 우리 말이 있으니 제발 '의미' 같은 말 좀 쓰지 맙시다. '거듭하다', '겹치다'란 말이 있는데 '중복되다'란 말을 쓸 까닭도 없고요. 우리는 이처럼 좋은 우리 말이 있어도 잘 안 씁니다. 이 기사를 쓰신 분도 좋고 쉬운 우리 말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우리 말을 이야기하는 책을 소개합니다. 우리 스스로 두동진(모순된) 모습을 보여주는 보기라고 하겠습니다.

(7) 빈곤(貧困)해진 => 가난해진, 홀쭉해진
(8) 언어능력(言語能力)과 언어생활(言語生活) => 말 능력과 말글살이(삶)
(9) 의미(意味) => 뜻
(10) 중복(重複)될 => 겹칠, 거듭할


<4> 책은 ‘왜 꼭 우리말인가’ ‘늘 쓰는 말인데도 정확한 뜻을 모른다’ ‘사라질까봐 걱정되는 우리말’ 등 일반인들이 크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부분들을 10개의 장으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말 잘 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에 제대로 잘 하는 사람이 없는” 현실을 개탄하며 “1학년처럼 국어공부를 하자. 영어사전 찾듯이 국어사전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 '10개의 장'이란 말은 우리 말이 아닙니다. '한 잔의 커피', '열 명의 사람'이라고 쓰는 말처럼 잘못된 말이에요. '개탄'이란 말은 순화대상 낱말로 '탄식'으로 고쳐서 써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좀 달라요. '개탄'이나 '탄식'이나 무엇이 다른가요? 두 말은 모두 "한숨을 쉬다"를 뜻합니다. 말 그대로 '한숨 쉬다'로 쓰거나 '딱하게 여기다' 같은 말을 쓰면 됩니다. '강조하다'란 "힘주어 말한다"인데, 기자 분들은 늘 '강조'란 말만 힘주어서 쓰고 있습니다.

(11) 10개의 장 => 열 가지 항목
(12) 개탄(慨歎)하다 => 한숨을 쉬다, 딱하게 여기다, 안타까이 여기다
(13) 강조(强調)하다 => 힘주어 말하다


<5> ‘이제 우리말을 제대로 써봐야겠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라면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을 집어들면 되겠다. 이 책은 일종의 우리말 사전이다. 뜻찾기 위주의 사전이 아니라 우리말을 일상속에 살리기 위한 저자의 바람이 역력하다.

=> "이 책은 일종의 우리말 사전이다"라고 하는 문장에서 '일종의'란 말은 군말입니다. "이 책은 우리말 사전이다"라 하거나 "이 책은 우리말 사전이라 할 수 있다"라고 하거나 "이 책은 어떻게 보면 우리말 사전이다"처럼 써야 제대로 된 우리 말입니다. '저자' 또한 '지은이'란 말을 한자로 담아낸 말일 뿐이에요. 이런 것쯤은 국어사전을 잠깐만 펼쳐도 알 수 있습니다. '역력하다' 또한 우리가 쓸 말이 아닙니다. 이런 말을 기자 분들께서 너무나 자주 함부로 쓰기 때문에 우리 말이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삶'이란 말이 있으니 '일상'이든 '생활'이든, 이런 말은 안 쓰는 편이 좋겠습니다.

(14) 일종(一種)의 => 어떤, (아예 쓰지 말 것)
(15) 저자(著者) => 지은이
(16) 역력(歷歷)하다 => 뚜렷하다, 환하다
(17) 일상(日常) => 삶


<6> 우리 옛말 가운데서 일상적으로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말 600여개를 선정하여 그 뜻과 어원을 자세하게 풀었고 나머지 여줄가리 올림말(부수적인 표제어) 1,100여개는 간단하게 설명했다.

=> '일상적'이란 말을 참 흔하게 씁니다만, 말 그대로 '흔하게'라 다듬을 수도 있고 '살아가며', '보통으로'라고 다듬어도 좋습니다. '활용'이란 '잘 쓰다'예요. 그러면 손쉽게 '잘 쓰다', '살려 쓰다'라고 쓰면 됩니다. '자세히'를 써야만 낱낱 이야기를 꼼꼼하게 밝힐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고르다-뽑다-가리다-추리다-가려뽑다-간추리다'처럼 좋은 우리 말이 많으니 '선정' 같은 말은 쓰레기통에 버리면 좋겠습니다. '간단하다'라는 말을 써도 좋으나 '손쉽다'란 우리 말을 쓰면 더 나아요.

(18) 일상적(日常的)으로 => 살아가며, 흔하게, 보통으로
(19) 활용(活用)할 => 잘 쓰다, 살려 쓰다
(19) 선정(選定)하여 => 골라, 뽑아, 가려뽑다, 추리다
(20) 자세(仔細)하게 => 꼼꼼히, 낱낱이
(21) 간단(簡單)히 => 손쉽게
(22) 설명(說明)했다 => 풀이했다


<7> 특히 막상 사용하려 해도 어떻게 적용할지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각 올림말마다 저자가 직접 지어 실은 예문들이 반갑다. 퀴즈쇼에나 등장하는 생뚱맞은 우리말이 아닌, 살아있는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묘미를 한껏 느낄 수 있다.

=> 첫 문장은 "더구나 막상 쓰려 해도 어떻게 쓰면 좋을지 모르는"이라 하거나 "더욱이 막상 쓰려 해도 어떻게 해야 알맞을지 모르는"처럼 하면 좋습니다. '각 올림말마다'는 '각'과 '-마다'가 겹쳤습니다. 이런 쉬운 잘못까지 저지르면 안 됩니다. '묘미'란 "아름답고 묘하다"란 말로, "아름다움과 묘미"라고 쓴 만큼 "아름다움과 (참)맛"처럼 쓰면 더 좋겠어요.

(23) 특(特)히 => 더욱이, 더구나
(24) 적용(適用)하다 => 받아들이다, 맞추다, 알맞게 쓰다
(25) 각(各) 올림말마다 => 올림말마다
(26) 직접(直接) => 손수, 몸소, 바로
(27) 예문(例文) => 보기, 보기글
(28) 등장(登場)하는 => 나오는
(29) 묘미(妙味) => 재미, 맛, 참맛


<8> 글을 가르치는 사람들이라면 이오덕의 ‘삶을 가꾸는…’을 펼쳐볼 것을 권한다. 20년전 교사와 학부모를 위해 지은 글쓰기 지도서로 오랫동안 절판됐다가 재출간됐다. 우리나라 글쓰기 교육운동의 뿌리로 평가받는 선생의 글쓰기 정신과 지도방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고, 곳곳에 인용된 아이들의 천진한 글들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각각 8,800원, 1만4천9백원, 1만5천원.

=> "펼쳐볼 것을 권한다"는 "펼쳐보기를 바란다"로 쓰면 참 좋습니다. '추천하다'라는 말을 써도 좋겠고요. '재출간'이란 말은 찬찬히 생각해 봅시다. '재-'라는 말을 앞에 붙여서 '다시'를 뜻하는 말로 쓰는데요, 그냥 '다시'란 우리 말을 쓰는 편이 어울리지 않겠습니까? '천진'이란 말을 '천진난만'처럼 흔히 씁니다만, 이런 말이야말로 '꾸밈없는-티없는-해맑은-깨끗한'처럼 여러 가지 말 가운데 한 가지를 잘 살리고 뽑아서 쓰면 아주 좋습니다.

(30) 권(勸)한다 => 추천한다, 바란다
(31) 재출간(在出刊)됐다 => 다시 나왔다
(32) 인용(引用)된 => 따온, 든, 들어 보인
(33) 천진(天眞)한 => 꾸밈없는, 해맑은, 티없는, 깨끗한
(34) 각각(各各) => 저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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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름다운 우리 말을 이야기하는 기사라면


아름다운 우리 말을 이야기하거나, 아름다운 우리 말 이야기를 담은 책을 알리는 기사라면 어떻게 써야 좋을까요? 적어도 좀더 깨끗하고 알맞는 말을 골라서 써야 하지 않을까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한글날에 나오는 기사뿐 아니라, 여느 날에 쓰는 기사도 제대로 말과 글을 살펴서 써야겠고, 그건 참 마땅한 일인데요, 거기까지 하기 어렵다면, 그래도 한글날 기사만큼은, 나아가 한글날 알려주는 '우리 말 이야기책' 기사만큼은 잘 다듬고 손보아서 써 주셔야지 싶습니다.

올해는 이렇다 치고, 다가오는 2005년 한글날 아침에는 모쪼록 깨끗하고 알맞는 우리 말을 잘 살리고 살펴서 쓴 기사를 듬뿍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37.10.9.흙.ㅎㄲㅅㄱ)

***
한글날을 맞이해서, 한글과 우리 말을 이야기하는 책을 소개하는 기사 문장을 살펴보면서 느낀 아쉬움을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다른 기사도 좀더 알맞고 깨끗하게 다듬어서 써야겠지만, 다른 기사에서 그리 하기 힘들다 해도, 한글날 아침에 쓰는 '우리 말 이야기책 소개 기사'만큼은 더 애써 주어야 하지 않나 싶은 마음에 이런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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