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소식
- 낙랑에는 적이 쳐들어 오면 저절로 우는 자명고라는 레이더가 있었다. 낙랑와 최리의 딸은 북국 대무신왕의 아들 호동을 사랑하여 북을 찢었고, 호동은 낙랑을 쳐들어왔다('삼국사기' 14권)
아버지, 저 여기 살아 있어요.
그날 제 품에 숨긴 칼로 낙랑의 북을 찢을 때
제가 찢은 것은
적이 오면 저절로 운다는 자명고가 아니었어요.
제 운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손으로 아버지의 나라를 찢었습니다.
지금도 그 순간이 선명합니다.
두려움과 죄의식으로 후들거리며
맹목 속에 온몸을 던진
저는 그 때 미친 바람이었어요
호동은 달처럼 수려한 사내
하지만 북을 찢고 제가 따른 건 호동이 아니었습니다.
제 사랑은 전쟁의 아찔한 절벽에 핀 꽃, 세상에
파멸밖에 보여줄 수 없는 사랑이 있다니요
검은 보자기 홀로 뒤집어쓰고
손에 보자기 홀로 뒤집어쓰고
손에 쥔 칼 높이 들어 북을 찢을 때
하늘의 별들 우르르 떨던
그 캄캄한 절망만이
온전한 제 것이었습니다.
문정희 '양귀비 꽃 머리에 꽂고'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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