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냐 > 해피엔딩을 상상하고 싶지 않다.

한가지 욕망이 너무 비대해져서, 다른 모든 욕망을 억눌렀단다. 그게 바로 배고픔이었단다. 그리고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욕망.

'베를린의 한 여인'이라는 제목은 전혀 눈길을 끌지 못했다. 전쟁 얘기? 뭐 그렇다치자. 그런데, 저자가 '익명의 여인'이다. 어찌보면, 베를린 여인 전체의 기록이다. 그리고 이라크 여인의 기록이다. 다를게 하나 없지 않은가.

우유 몇모금, 죽, 빵 한조각. 하루종일 이 정도면, 배부른 만찬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독한 배고픔이다. 적디적은 음식이 위를 자극만하는 탓이다. 배고픔에 대한 집중도는 엄청나다. 나중에는 몸을 팔아서라도 굶주림을 면하는 일에 모든 사람들이 죄의식을 갖지 않는다.

굶주림 앞에서 아귀가 되는 사람들에게, 폭격 등 다른 공포는 뒤로 밀린다.

부모가 폭경당하고, "장례식을 치른지 3일후 그 집 딸아이가 뜰에서 아직 쓸만한게 있나 파헤쳐보다가, 빗물 통 뒤에서 정말로 제 아빠의 팔 한쪽을 찾아냈다니까요."....이런 이야기는 별로 우습지도 않은 유머랍시고 사람들 입에서 쏟아진다. 바로 옆에서 음식을 다투던 아이가 폭탄 파편에 쓰러져도, 음식만 약탈하는데 성공했다면 성공.

전쟁에서 사람들의 본능은 야수와 닮아간다. 그리고, '여인의 생존본능'은 한차원 다른 얘기다.

책의 저자는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모스크바, 파리, 런던에서 생활했던 엘리트 여성이다. 출판사에서 일했던, 자유로운 지성인이다. 그녀는 말한다.

"선천적으로 우리 여자들은 합리적이고, 현실적이고, 기회주의적이다"라고.

전쟁에서 패한 베를린은 러시아군에게 그대로 상납된다. 침략과 약탈은 기본이고, 때와 장소, 나이를 가리지 않는 여인에 대한 집단강간도 전쟁은 그저 용납한다.

"몇번이나?"라는 말은 전쟁이 완전히 끝난뒤 여인네들의 일상적 질문이 되었다. 한번에 2명, 3명에게 혹은 그 이상에게 당하지 않으면 다행. 이 영민한 여성은 '차라리 늑대를 끌어들이자'고 결심한다. 기왕이면 계급장 높은 놈을 하나만 잘 붙들어도, 이놈 저놈에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다...이 여인의 '늑대'는 몇차례나 바뀌어야 했다. '늑대'가 가져오는 먹거리는 이 여인과 함께 지내던 주민들의 구명줄이었다. '늑대'가 사라지면, 새로운 '늑대'를 만들라는 압박도 심해졌다....가끔, '늑대'가 떠날때, 약간 슬프고, 허탈한 지경에 이른다.

여자들을 피해자들이라고, 희생양이라고 떠들 수 있을까.

꽁무니빼는 독일군을 보면서 여자는 기록한다.

"나는 요즘들어 점점 남자들에 대한 나의 감정이, 아니 모든 여자들의 감정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남자들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고, 너무나 가련하고, 무기력하게 보인다"

자신의 아내가 몸을 내주는 걸, 대부분의 남편들은 용인해야 했던 시절이다. 몸만 간신히 뉘일 다락방에 피신한 '처녀'들도 있었다. 물론, 그녀는 그런 은신처로 음식을 가져다줄 가족이 없었던 탓에, 그런 선택도 불가능했지만.

"왜 나는 그토록 도덕적인 체하며, 왜 몸을 파는 직업이 내 체면을 아주 떨어뜨리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일까. 그것은 적어도 오래되고 존경할만한 직업활동인데...하지만 내가 일단 도덕적인 면을 완전히 배제한다면, 이러한 직업활동에 빠져들 수 있을까? 내가 그것을 좋아할 수 있을까. 아니야. 결코 그럴 수 없어. 그것은 내 기질에 맞지 않으며,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할 것이며, 내 긍지를 짓밟을 것이다. 그리고 육체적으로도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너무나도 기쁜 마음으로 그만둘 것이다. 내가 먹을 것을 다시 다른, 더 고상한, 내 긍지에 더 잘 어울리는 수단으로 벌어들일 수만 있다면 말이다."

여인의 정신은 건강하다. 스스로 밝혔듯, 여성들이 더 현실적인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절망'을 얘기하면서도 "내 마음속 불길이 꺼지지 않도록" 애쓴다. 가장 참혹한 시절을 넘기면서 그녀는 이렇게 기록한다.

"어찌보면, 사정은 나에게 유리하다. 나는 젊고 건강하다. 사지도 멀쩡하다. 마치 내가 뛰어나게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으며, 진흙탕을 헤쳐나갈 물갈퀴를 가지고 있으며, 내 힘줄이 유달리 유연하고 질긴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독일은 식민지가 되었다. 그러나 하늘의 태양은 변함이 없다. 내가 일생동안 가진 것이 얼마나 되었던가. 이것으로도 과분하다."

우연히, 이런 기록이 있음을 알게 되고, 책으로 내자고 5년동안 여인을 졸랐던 이는 "이 책에 증오가 나타나 있지 않다는 사실은 의아하다. 그러나 모든 감정들이 굳어버리는 곳에는 어떤 증오도 더 이상 타오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과연 이 올곧은 여인의 감정들이 모두 굳어버린거라 단정할 수 있을까.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그녀의 애인은 이 일기를 본뒤, 헤어지자고 했다지만.

나는  '익명의 여인'의 생명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강인한 그녀는 모든 고통을 딛고, 스스로 예언했듯, 역경을 헤쳐나갔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어쩌면, 해피엔딩을 바라는 헐리웃 감상주의에 물든 탓인지도 모르겠다. 전쟁은 처참하다. 사지 멀쩡하게 살아남은 것만으로는 위로가 되지 않는, 짐승같은 기억을 남긴다. 담담하게, 증오없이 기록했다는 평가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전쟁은 그 어떤 후일담으로도 미화되지 않는다. 이 처참하고 놀라운 일기를 통해 현명하고 용감했던 그녀에 대한 어떤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덧붙여.....

며칠전 이라크 소녀 투라의 일기가 출간됐다....이라크 부르조아의 딸인 그녀는 일기를 통해 영국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결국 미국에 유학가는데 성공했다...책을 살펴보던 나는 그 가벼움에도 불구, 전쟁의 체감 공포를 전할만 하다고 판단했지만, 리뷰를 맡겨보려했던 K는 단언했다. 이 책은 미국과 영국 언론의 구미에 딱 맞는 것인데, 참상만 전한다 해도.....한계가 있다고. K가 옳았다. 사담이 무너진 것에 대해 마치 정답같은 얘기를 늘어놓고, 그래도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투라는 '어린 소녀'다. '베를린의 한 여인'의 진정성을 그녀는 토해내지 못했다. 전쟁, 그 자체에 대한 무지막지한 모습을 그대로 전해야 한다는 내 욕심은 여전하지만. 전쟁기록은 때로 위험하게 이용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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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짱 2004-09-20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 덕분에 좋은 책을 알았습니다. 지금 꼭 읽고 싶은 그런 책입니다. 많이 고단할 때마다 님의 서재에 있는 많은 양식들로 허기진 심신을 달랩니다. 어디서 그리 좋은 글들을 모아오는지 정말 팅커벨에게라도 물어보고 싶군요.^^

꼬마요정 2004-09-20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여기저기서 주워온답니다..^^
님께 도움이 되었다하니 정말 기쁘네요~ 힘 내시구, 미모로움과 유머로 다시 알라딘 서재를 장악하셔야지요.. 전 털짱님을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