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나무
- 송찬호
더 이상 키가 자라지 않자 그는 곧,
나무로 치면 자신이 못생긴
살구나무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산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전설의 숲은 이미
호랑이 귀를 잃은 지 오래기 때문에
그는 동네 어귀에 삼 년 동안
아무렇게나 세워져 있었다
그의 허리 아래로 붉은
페인트가 칠해졌다
그의 별명은 우체통이었다
그 자리에서 그가 깨달은 건
사랑의 편지는
독약으로 씌워진다는 것이었다
그는 때 전 구름모자를 쓰고 다녔다
아니, 그땐 혁명기였기 때문에
구름모자가 그의 머리에
씌워졌다고 해야 옳은 말이다
그는 <매미>라는 애칭의 유부녀와 사귀었다
그녀는 싸구려 밤무대의 가수였다
후에도 그의 키는 성장하지 않았다
그의 굽은 척추를 의사는
삶의 구조적인 문제일 거라고 했다
그가 생전에 눈으로 본 새로운 법과 제도로는
미미 인형에게 인격과
투표권이 부여된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지구사에서 감기가
멸절됐다는 의학 보고서를 그가 보았다면
이 세계가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수많은 행운이 포장된 채
그의 삶을 기웃거렸지만 그는 결코,
그 상자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유리창을 닦고
화단에 물을 주고
손님들의 신발을 가지런히 정돈하던
그는 한낱 이름 없는 시골 여관 주인으로만 기억될 것이다
그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가끔씩 그가 왜 빙긋이 웃는지는 더욱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수많은 희망이 난무하던 시대,
진정으로 불행을 만났던 행복했던 그 사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