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 앞 샘물 결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 수많은 단꿈을 꾸었네.
보리수 껍질에다 사랑의 말 새겨 넣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그곳을 찾았네.
나는 오늘 이 깊은 밤에도 그곳을 지나지 않을 수 없었네.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나는 두 눈을 꼭 감아버렸네.
나뭇가지들이 살랑거리면서 꼭 나를 부르는 것 같았네: "친구여, 내게로 오라, 여기서 안식을 찾아라!" 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얼굴을 세차게 때렸네, 모자가 바람에 날려도, 나는 돌아다보지 않았네.
이제 그곳에서 멀어진지 벌써 한참이 되었네, 그래도 여전히 속삭이는 소리 들리네: "친구여, 여기서 안식을 찾으라!"
<겨울 나그네>(민음사, 2001년 1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