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미안의 네딸들 14 - 완결
신일숙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1995년 6월
평점 :
절판


첫번째의 운명은 왕관과 명예와 아픔, 두번째의 운명은 고귀함과 슬픔과 사랑, 세번째의 운명은 인내와 총명과 진실, 네번째의 운명은 방랑과 파멸과 기적속에서 그 의미를 찾으리라-

아르미안의 네 딸들의 운명은 저 말로 집약된다. 네번째 딸인 레 샤르휘나의 아버지인 음유시인 플레니스가 노래하는 그들의 운명은 너무나 정확하다. 갈데아 지방의 한 소국으로 설정된 아르미안은 작가의 철저한 고증을 통해 있음직한 나라가 되었다. 실제로 세번째 딸인 아스파샤의 경우, 그리스의 전설적인 정치가인 페리클레스가 말년에 사랑한 유녀의 이름과 동일하며, 실제로 이 만화에서도 그렇게 그려진다. 또한 페르시아의 황제였던 크세르크세스의 황후 중 한 명이었던 아르미안의 두번째 딸인 스와르다 와스디 역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불새를 시조로 가지는 신비의 나라 아르미안. 불새는 자신이 뿌린 씨앗을 스스로 거두러 다시 올지니, 레 샤르휘나는 불새가 되어 아르미안을 거두어간다. 그렇다면 첫번째 딸인 레 마누아의 운명은 남긴 것이 없는걸까. 자신의 연인, 자식, 동생까지 이용해가며 아르미안을 부강하게 만들고자 했으나 막내이자 배다른 여동생인 샤르휘나 대에서 모든 것이 허물어진다면... 아픔과 절제의 삶을 산 그녀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토록 애타게 노력했던가. 레 마누아의 옆에 케네스만 있었다면, 샤르휘나의 옆에는 미카엘, 글라우커스, 에일레스 등 뛰어난 능력과 헌신을 바치는 인물들이 있다. 레 마누아의 사랑은 일장춘몽이었으나, 샤르휘나의 사랑은 영원이었다. 스와르다는 비록 마누아의 운명의 상대인 리할을 사랑하여 아픔을 겪었지만, 크세르크세스가 엄청난 사랑을 쏟아부었었다. 아스파샤는 어린 시절 페리클레스와 사랑을 나누다 몇 십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말년에 그들의 사랑을 이룬다. 그들의 사랑은 작가의 말처럼 운명으로 만나 사랑했지만 운명보다 더 사랑했다. 마누아는 리할을 사랑했고, 케네스는 마누아를 사랑한다. 그러나 리할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녀의 곁을 떠났고, 케네스는 그녀가 그를 가장 필요로 하는 때에 그녀의 곁을 떠난다.

레 마누아란 캐릭터는 말 그대로 연민의 대상이다. 절대권력과 명예, 자존심을 지키며 꿋꿋이 살아가지만, 인간적인 삶은 봉인당한다. 죽을 때에야 비로소 아들을 만나 봉인은 해제되지만, 결국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아픔... 이 만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이자 연민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그러나 결코 그 연민을 있는 그대로 쏟아부을 수 없는 캐릭터..레 마누아.

나는 그녀가 가장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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