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
훤 시조 신화
"설화에서 동물이나 식물이 모두 인격을 갖고 있어서 인간과 같이 대화를 하고 교제를 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많은 이야기라 분포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에도 상당히 많다. 견훤의 탄생신화는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다. 뱀은 사신(邪神)이다. 뱀은 사기(邪氣)와 기력(妓力)으로 한때 인간의 숭상을 받았다. 지렁이도 같은 유에 속한다. 견훤이 후백제를 건설하고 삼국통일의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런 신화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 신화는 역시 시조신화에 속한다. 견훤의 출생에 대해서 '삼국사기'는 견훤이 상주 가은현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그런데 '삼국유사'에는 견훤이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났다고 하며 다음과 같은 설화를 적고 있다. 견훤신화는 오랫동안 망국의 한을 되새기며 살아온 백제 유민들로 하여금 하나의 구심점이 될 만한 영웅의 출현을 기다렸을 것이고, 이런 민중의 마음을 헤아린 견훤으로서도 자기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신이적인 출생담으로 영웅화를 시도했다. 이러한 출생담은 선화공주와의 로맨스를 가진 서동설화를 비롯하여 몇 가지가 더 전해지고 있다." |
옛날 광주 북촌땅에 한 부자가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얼굴과 맵씨가 뛰어나게 아름다웠다. 그뿐 아니라 모든 행실이 바르고 단정했다.
그는 어느덧 성숙한 나이에 이르렀는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매일 밤 낯 모르는 사내가 자주빛 옷을 입고 부잣집 딸이 잠자는 방에 살며시 들어와서 자고 이튿날 새벽에 아무도 모르게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부잣집 딸은 자기도 모르게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 다시는 사내를 맞이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막상 자주빛 옷을 입은 사내를 보면 그의 빼어난 용모에 반하여 그를 맞이하곤 했다. 그런데 그 사내는 언제나 자기의 이름과 사는 곳을 말하려 하지 않았다. 부잣집 딸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일까? 이러다가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지.'
부잣집 딸은 이렇게 생각하자 부끄럽기도 하고 두려운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렇다고 누구하고 상의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부잣집 딸은 혼자 가슴을 태우다가 그런 일이 자주 있게 되면서 부모에게 마저 숨기고 있을 수는 없었다. 사실 그것은 너무나 엄청난 일이었다. 더구나 사내의 정체를 알 수 없으니 더욱 엄청난 일이었다.

부잣집 딸은 며칠 동안 고민하다가 마침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그의 아버지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소상하게 말했다.
"아버님, 저의 경솔한 점을 꾸짖어 주옵소서. 아버님께 아뢸 말씀은 밤마다 자주빛 옷을 입은 한 사나이가 제 방에 들어와 저와 교혼하고는 새벽에 몰래 나갑니다."
부잣집 딸은 어떠한 벌도 달게 받으리라고 생각하며 이렇게 말했다. 딸의 말을 들은 아버지는 놀랐다.
'도대체 어느 놈의 짓일까? 어쨌든 일은 크게 벌어졌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자주빛 옷을 입은 사내는 사람일까, 귀신일까.'
이렇게 생각한 그는 우선 사내의 정체부터 알아보자고 생각하다가 묘안을 생각했다.
"오늘밤에도 그 놈이 나타나거든 바늘에 실을 꿰어 두었다가 몰래 그 놈의 옷자락에 찔러 두어라."
딸의 아버지는 딸에게 이렇게 말하고는 몇 번이나 단단히 일렀다.
이윽고 밤이 되었다. 캄캄한 밤에 자주빛 옷을 입은 사내는 부잣집 딸이 있는 방으로 서슴지 않고 들어왔다. 부잣집 딸은 그의 아버지가 시킨대로 미리 준비해 두었던 실을 꿴 바늘을 사내의 옷자락에 몰래 꽂았다. 그러자 사내는 깜짝 놀라는 듯 하더니 문득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이튿날 아침, 날이 밝자 부잣집 딸의 아버지는 딸의 방에서 풀려나간 실을 따라 나섰다. 그 실은 뜰을 지나 북쪽 담장 밑에 이르러 보이지 않았다. 부잣집 딸의 아버지는 담장 아래를 샅샅이 뒤지었다. 그랬더니 그 실은 바로 담장 밑으로 들어가 있었다. 그는 얼른 두 손으로 파보았더니 커다란 지렁이 한 마리가 나오는데 바늘은 바로 그 지렁이의 허리에 꽂혀 있었다. 밤마다 부잣집 딸의 방에 찾아온 사내는 다름아닌 지렁이의 화신이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로부터 부잣집 딸은 잉태하여 마침내 사내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생김새나 행동이 보통 아이들과 달랐다. 거기다가 신기로운 일도 많았다. 아이가 젖먹이었을 때 그의 어머니가 밭에서 일하는 아버지에게 밥을 가져 가는 동안 젖먹이 아이를 수풀 아래에 두고 가면 어디서 왔는지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와서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이의 나이 열 다섯 살이 되자 그는 스스로 견훤이라고 불렀다.
아이는 점점 자라면서 몸집이 남달리 크고 건강했다. 그리고 그가 품은 뜻이 크고 기개가 있어서 보통 사람과는 달랐다. 그는 군인이 되어 서울에 들어왔다가 서남해로 가서 해안 수비의 임무를 맡고 있었다. 창을 베고 누워 적군을 기다릴 만큼 그의 기개는 항상 다른 사졸들을 앞질렀다. 이때에 이룬 공로로 그는 한때 비장에까지 올랐다.
신라 진성왕 재위 6년이었다. 몇몇 왕으로부터 총애받는 자들이 왕의 측근에서 국권을 농락하기 때문에 질서는 문란해졌다. 거기다가 마침 기근이 들어서 민심은 흩어지고 사방에서 도적이 일어났다.
이를 본 견훤은 많은 무리를 이끌고 서울 서남쪽의 고을들을 공략하고 다녔다. 이때 견훤이 가는 곳에는 어디서나 백성들이 호응해 와 드디어 그는 후백제를 세우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