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천주의자 캉디드
볼테르 지음, 최복현 옮김 / 아테네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18세기를 풍자한 철학소설. 어려울 듯 해도 사실 하나도 어렵지 않다. 철학이나 역사를 잘 모른다 해도 캉디드가 겪어가는 사건들만 읽어내도 재미가 솔솔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알고 소설에 투영된 역사적 사건들을 알아볼 수 있다면 재미는 한층 더해진다. 변혁과 혁명, 계몽의 시대라는 18세기에 만연했던 종교의 행패, 계급의 횡포, 거짓과 매춘 등을 순진무구한 캉디드의 시선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캉디드의 이상은 퀴네공드와의 사랑이다. 그리고 이 책의 전반에 깔려있는 사상은 팡글로스 선생의 낙천주의와 마르탱의 염세주의이며, 이 책의 끝은 낙천주의의 손도, 염세주의의 손도 들어주지 않고, 자신의 삶은 자신이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계몽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캉디드가 남작의 딸 퀴네공드와 입맞춤하다 들켜서 성에서 쫒겨난 뒤 다시 그녀와 재회하고 다시 그녀와 헤어지고 다시 그녀와 만나기까지 긴 여행을 하면서 많은 사건들이 벌어진다. 무엇보다도 가장 맘에 들었던 곳은 엘도라도였다. 이상향인 그곳은 도둑도 없고 거지도 없고 실업도 없다. 공동생활과 공동작업 등으로 모두가 행복하다. 그러나 캉디드는 그 곳을 지상낙원이라고 하면서도 이성의 낙원을 찾아 떠난다. 플라톤의 이데아와 같은 것, 퀴네공드의 사랑을 찾아 떠난다.

 

 캉디드는 자신의 스승인 팡글로스가 주장하는 대로 이 세상은 최선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지만, 정작 그가 세상을 경험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는 사실들은 모두 최악이었다. 마르탱은 옆에서 계속 그 사실을 알려준다. 이야기에 전면적으로 등장하여 흐름을 만들지는 않지만 마르탱은 그의 염세주의를 책의 후반부 면면에 드러내고 있다. 캉디드는 책의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낙천주의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지만, 결국 못생겨진 퀴네공드와 교황의 딸이었지만 한 쪽 엉덩이가 잘려나가는 등 불행을 겪은 노파, 캉디드의 시종 카캉보, 염세주의자 마르탱, 낙천주의자 팡글로스, 팡글로스의 애인이었던 파케트, 타락한 신부와 공동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여기서 여성의 지위는 동일하다. 나오는 여성들 - 퀴네공드, 노파, 파케트 - 모두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남성에 의해 짓밟힌 인생을 살아왔다. 18세기, 계몽주의가 퍼져가고 있던 이 시대에도 여성의 지위란 하찮은 것이었다. 단순히 가정을 돌보고, 아이의 엄마로써, 한 남자의 아내로써,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는 존재. 이 책의 후반부에도 공동생활을 할 때 밭을 갈고 장사를 하는 것은 남성이고 여자들은 모두 세탁일이나 부엌일 등을 맡아서 한다. 당연한 듯이.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18세기의 어두운 일면을 다 보고 난 느낌일 것이다. 밝고 희망찬 미래보다는 어두운 현실을 풍자한 볼테르의 소설 캉디드는 읽어볼 만한 책이었고, 추천할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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