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틱한 불가사의, 카주라호의 사원들


  
주라호의 새벽은 구름 한점없는 하늘 저편을 뜨겁게 달구며 떠오르는 붉은 태양과 함께 열리고 있었다. 멀지 않은 숲으로부터 스며 나오는 원숭이의 기지개 소리와 이따금 씩 들리는 새소리를 제외하면 너무나도 조용한 시골 마을의 아침 풍경을 연상시킨다. 거의 말라 버린 호숫가에는 인근 마을에서 걸어 온 일단의 식구들이 선잠을 깨고는 촛불을 켜고 신에게 경건히 기도를 드리고 있었고, 도로 변의 약간 후미진 곳에서는 웅크리고 앉아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신성한 배설의식(?)을 거행하는 이곳 사람들의 의심 어린 시선이 여행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붉은 빛을 머금은 아침 햇살이 비칠 때가 사원의 조각들을 관찰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라 아침식사도 거른 채 서쪽 사원군(群)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서쪽은 12개의 사원이 밀집되어있는데, 그중 한 곳은 현지인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사원이고 나머지는 박물관처럼 보존되어 관람객만을 유료로 입장시키고 있었다.

이곳의 사원들은 대부분 황갈색이나 분홍빛을 띤 사암으로 지어져 있다. 사암은 카주라호에서 20여 km 떨어진 켄강 부근에서 캐 온 것이라고 한다. 찬델라 왕조의 전성기에는 80여개의 사원들이 있었지만, 후에 무굴 제국의 아우랑제브에 의해 대부분 파괴되고 현재는 동서남군을 통틀어 20여개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카주라호 사원은 1986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사암은 대리석처럼 정교한 조각이 가능하므로 원하는 형태의 모습으로 사원을 짓는데 용이했을 것이다. 사원들은 하나같이 시바나 비슈누 등 힌두신들을 숭배하기 위해 지어졌으며, 당시 이곳의 장인들 조각솜씨를 모두 동원하여 지어진 듯 거대하면서도 섬세하고 장중하면서도 여성스러운 멋이 곳곳에 깃들어져 있었다. 사원의 외벽은 하나같이 시바와 비슈누신, 요정들과 아름다운 여인들 그리고 동물들의 모습이 섬세하게 조각되어있어 사원이라기 보다 하나의 거대한 조각작품을 연상시켰다.
12개의 사원 중 특히 시선을 끄는 곳은 락슈마나 사원과 칸다리야 마야데브 사원으로서, 이 건축물들의 외벽에는 900여개가 넘는 조각이 있다고 하는데 그중 압권은 미투나상으로서, 여인들의 풍만한 곡선미는 물론 남녀의 곡예사와 같은 성행위 모습이 너무나도 자세하고 적나라하게 그리고 정교하게 조각되어있어 처음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충격을 금치 못하게 하고 있다.
풍만하고 둥근 가슴은 마치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것만 같은 토마토를 연상케 한다. 입술만 갖다 대도 발 등까지 그냥 흘러내릴 것만 같은 어깨와 허리, 그리고 다리의 유연하면서도 매끈한 곡선미, 그리고 용수철처럼 탄력감이 넘치는 엉덩이부분은 농염하다 못해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마치 르네상스 시대 이태리의 조각가 도나텔로의 조각을 연상케 한다. 얇은 옷을 막 벗을 자세로 서있는 요정의 시선은 망설임과 흥분으로 가늘게 떨고 있고, 줄무늬가 있는 속옷을 걸친 육감적인 여인의 조각은 수줍은 듯 요염하게 돌아서 있다. 곡예사와 같은 성행위의 자세들 또한 너무나도 사실적이고 강렬하게 묘사되어 있어, 보면 볼수록 호기심이 점점 증폭될 뿐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두 사원에 있는 조각들의 차이점이다. 락슈마나 사원은 925년에서 950년 사이에 건축되었고 칸다리야 마하데브 사원은 이보다 100년 쯤 뒤에 지어진 것인데, 두 사원의 조각에서 뚜렷한 세대차이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락슈마나 사원의 에로틱한 조각들 중 여인들의 모습은 매우 과장되고 풍만하게 조각되어 있는데 반해 마하데브 사원의 조각들은 매우 날씬하고 보다 세련된 모습과 자세를 묘사하고 있었다. 카주라호의 사원에는 모두 80여가지의 남녀교합상이 조각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4세기 경 밧샤야에 의해 쓰여진 인도의 성교지침서인 카마수트라에 묘사된 성행위의 자세를 조각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으나, 실은 보다 심오한 힌두이즘의 종교적 철학에 기인한다는 점과, 당시 북인도에서 강하게 영향력을 지니고 있던 불교에 대항하여 힌두교도들을 사원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사원에 감각적인 조각들을 해 놓았다는 나이든 이곳 주민들이 이야기가 오히려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사암의 또다른 특징은 물기를 쉽게 흡수한다는 점인데, 다시말하면 비가 억수처럼 내려도 부딪히는 대신 물기를 흡수함으로서 마찰을 피하게 되는 것이다. 천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비바람에 시달려 왔는데도 원래의 모습이 비교적 원형대로 유지될 수 있었다는 점은 사암의 커다란 장점이었다.
아무튼 천년 전에 이 신성한 사원에 이토록 에로틱하고 관능적인 조각들이 무슨 이유로 조각되었던 것일까.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종교적 분위기는 어떠하였을까. 이토록 파격적인 발상은 누구로부터 나온 것이며, 하필이면 이곳에 사원들을 조성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토록 정교한 조각기술을 지닌 장인들은 어디서 나타나게 되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한꺼번에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카주라호의 사원과 조각은 인도 예술만의 독창성과 신성을 지니고 있다. 유연하고 풍만한 젊은 육체를 매끈하고 부드러운 사암과 대리석에 정확히 재현해놓은 것은 전형적인 인도의 조형예술이 지니고 있는 가장 중요한 장점이기도 하다. 동적이면서 영감이 넘치는 인도의 조형예술에는 또한 아름다운 육체의 재현이라는 힌두교 신앙이 반영되어 있다. 성행위의 묘사는 '둘이 곧 하나'인 감각적인 행복과 함께 정신적인 행복의 최고형태를 상징하고 있다. 진정한 힌두교도 들에게 있어 세속(世俗)은 신성한 것이며, 소멸(消滅)역시 불멸의 구원에 이르는 열쇠가 된다. 요컨대 '사랑이 곧 신'이다. 그리고 항상 추구하기는 하지만, 상상이 불가능한 신과 인간의 결합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은 오직 '꿈도 꾸지 않는 깊은 수면'이나, 성교를 나누며 서로 절
정에 도달했을 때의 모든 '소멸'의 순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 그것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만족스러우며, 가장 완벽하고, 가장 해탈에 가까운 것이다. 이와같이 힌두교에서 세속적인 인간의 쾌락을 묘사한 예술은 힌두교 사원의 정신성을 능가한다.

브라만 들에게는 카주라호가 하나의 정신적 시험무대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조각상을 보고 흥분하거나 주의가 산만해지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는 진실로 헌신적인 힌두 교도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카르마 요가란 이러한 자극적인 장면 앞에서 침착을 유지하는 방법을 수행자들에게 가르쳐주는 요가이다. 마하트마 간디도 만년의 나이에 카르마 요가를 행한 적이 있다. 이처럼 힌두교는 모든 극단을 포용하고 있다. 카주라호 사원의 에로틱하고 관능적이며, 성적인 호소력이 짙게 배인 젊은 남녀들이 현실감 넘치게 묘사되어있는 조각들이 유치한 포르노그라피가 아닌 순수예술로 느껴지는 것은 인도 예술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신성함에 있는 것이 아닐까.

카주라호의 사원들은 인도의 중세기인 950년부터 1050년 사이에 달의 신 찬드라의 자손이 세웠다는 찬델라 왕조의 초기 수도로 정착되면서 집중적으로 건축되었다. 대부분이 힌두 사원인데 반해 동쪽에 자이나 사원을 건립한 이유는 당시의 재무 장관 격을 맡았던 사람이 권력을 가진 자이나 교도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해석하는 주장이 많다. 그때나 지금이나 무소유와 아힘사를 궁극적인 목표로 살아가는 자이나 교도들이 금전과 재물 관리에 능했던가 보다. 이곳에는 파르스바나트, 산티나트, 아디나트 등 3개의 자이나교 사원이 있는데, 그 중 가장 볼 만한 곳은 파르스바나트 사원이다. 외관상으로는 서군의 힌두 사원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으나 조각의 많은 부분에서 차이점을 볼 수 있다. 특히 이곳의 몽골리안 얼굴의 여인상은 묘한 느낌을 갖게 한다. 사원의 전경을 촬영하기 위해 단 위로 올라서자 비쩍 마
른 개 두 마리가 자기네 보금자리를 빼앗기는 줄 알고 화를 낸다. 이곳에서 다시 남쪽으로 1 km 정도를 내려가면 마지막으로 조성된 두라데오 사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사원은 동 틀 무렵 특히 신비스럽게 보인다고 한다.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카주라호의 에로틱한 조각들이 집중적으로 조성된 시기를 미적 타락과 감각에 호소하는 매춘적 요소를 도덕적 타락으로 물들게 했던 시기라고 하지만 이곳의 조각들은 바로 그 에로틱한 주제를 예술로 승화시킨 뛰어난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어느덧 해는 기울고 사원들의 어깨가 노을에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카주라호 사원의 조각상들을 모두 감상하기엔 하루 해로는 너무 부족했다. 카주라호의 어둠은 절정의 환희 후에 다가오는 소멸감과 고요함처럼 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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