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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기업이 지배하는 과두지배국가
- 촘스키 강연을 듣고 -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 장상환

 내가 현재 교환교수로 나와 있는 매사추세츠대학에서 지난 2월 24일(화요일)에 MIT 언어학과 노엄 촘스키 교수 초청 강연이 있었다. 촘스키 교수는 현재 75세인데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3시부터 5시까지는 PERI(Political Economy Research Institute)의 고든 홀에서 제한된 청중 약 100명을 대상으로 "워싱턴 컨센서스와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촘스키는 미국은 소수의 엘리트가 공적 기구를 지배하고 있는 과두지배국가라고 비판했다. 대학의 역할은 관리인을 양성하는 것으로 전락했고, 기업의 역할은 선전(propaganda)을 통해 국민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대통령 후보를 포함한 주요 공직 후보 또한 기업과 매스 미디어에 의해 용의주도하게 훈련되고 만들어진다(designed)고 말했다.

 그는 17세기 영국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지주계급인 기사와 신흥자산가층인 신사들이 노동자의 정치적 요구를 반대하고 농민과 서민을 직접 지배했는데 현재의 미국도 이와 유사하다고 했다. 이들은 사유재산권을 옹호하는데 이것은 헌법 정신과 민주주의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산업적 봉건주의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산업 민주주의에 모두 위배되며, 이러한 회사 대기업에 의한 전체주의는 민주주의와 맞지 않는다고 했다.

 촘스키는 과거에는 급진적인 언론들이 다수 존재했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이제 거대 언론은 기업을 위한 선전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업과 매스 미디어는 민중들이 민주주의가 잘 되고 있는 것처럼 믿도록 하면서 실은 사람들의 행동양식과 신념을 지배하고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홍보와 고객관리(public relations)를 통해 사람들을 철저하게 관리하여, 직장에서는 기술을 배우도록 하도록 유도하고, 직장 바깥에서는 소비에만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촘스키는 기업과 매스 미디어가 보통 사람들로 하여금 노동조합과 정부를 증오하도록 유도한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사실은 학교 교육과 보건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조직인데도 미국 사람들은 이러한 유도에 말려들어 정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 부유한 사람들의 이익을 지키는 데에는 강력한 정부,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는 약한 정부가 되도록 조장한다는 것이다.

 촘스키는 케인즈의 말을 인용해 자유시장은 민주주의를 파괴한다고 비판했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경제의 침체와 밀접한 연관이 있고, 민주주의와 대립되며 정부를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가장 비합리적인 예로서 촘스키는 미국의 사회보장의 기축 가운데 하나인 보건의료제도를 들었다. 기업들은 보편적 의료보장은 비효율적이라고 선전하고 이에 따라 국민의 18%만 의료보호 개선을 위한 증세를 지지한다고 했다. 그런데 실은 사보험 중심의 의료보건제도를 관리하는 비용으로만 3천억달러나 들어간다는 것이다. 노인의료보장을 위한 비용이 6천 억달러인 것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많은 비용이 쓸데없는데 들어간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약값은 미국이 캐나다 등에 비해서 다섯 배가 비싸니 얼마나 불합리한 제도이냐는 것이다. 이렇게 약값을 높게 하기 위해 제약회사들은 늘씬한 모델을 동 원하여 성분약(generic drug, 특허가 끝난 약을 같은 성분으로 제조한 약, 카피약 이라고도 함)은 오리지널 약에 비해 약효가 떨어진다고 선전해대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광고비용이 전체 매출액의 30%로 연구개발비는 5%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여 엄청나다고 한다.

 촘스키는 회사들은 국제적으로는 자유무역과 무역관련 지적 재산권(Trade Related Intellectual Properties, TRIPs)을 적극 옹호하여 기업 이익 극대화를 추구한다고 비판 했다. 그런데 이러한 협상을 추진하는 국제기구들의 경비의 40%가 초국적 대기업에서 나오니 결과는 보나마나라는 것이다. 그는 그린스펀이 최근 말한 소수의 부유한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나머지 다수는 불안정해지고 좀 놀라게 되어야 경제가 건강하게 돌아간다고 한 발언을 비난했다.

 촘스키는 신자유주의의 폐해에 대해서 세계은행의 일부 전문가의 분석도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임금 인하와 고용 불안정을 초래한다는데 동의한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미국에서는 지난 25년간 하위 40%의 소득은 7%나 줄어들었는데 상위 0.1%의 소득은 6배가 늘어났다는 통계를 인용하면서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의 결과라고 했 다.

 그리고 과거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정직한 경제학자의 분석을 인용하여 자유무역은 경제 성장에 해롭고 보호무역이 오히려 경제성장에 기여한다고 했다. 기술 혁신도 정부의 구매 등에 힘입어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질의응답 시간에 나는 촘스키에게 "최근 랄프 네이더가 출마 의향을 밝혔는데 네이더는 자신이 부시를 잘 공격함으로서 부시의 낙선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에 민주당 지도자들은 네이더의 출마가 부시의 당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신의 견해는 무엇인가" 하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촘스키는 네이더가 이러한 기회를 이용하여 중요한 이슈를 제기하는 것은 의미가 있고 그런 면에서 그는 괜찮은 사람(nice guy)이지만 현재와 같은 정치적 상황과 선거제도 하에서는 출마보다는 민중들의 조직화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촘스키는 기본적으로 네이더가 진지하지 않은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았고, 결국 그의 출마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입장이었다.

 또 다른 질문자가 민주주의에 대해 인터넷이 기여할 수 있다고 보느냐고 질문했는데 이에 대해 촘스키는 컴퓨터가 자세한 진단을 바탕으로 좋은 논의와 좋은 제안을 가능하게 하는 면도 있지만 한계가 분명하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온라인은 중요한 정보의 생산을 하지는 못하고 정보의 유통에만 역할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오프라인에서의 정보 생산을 지배하고 있는 거대 매스 미디어에 대항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미국은 인터넷망이 잘 구축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초고속 인터넷망이 잘 갖춰져 있는 한국과는 다르다고 했다. 그리고 인터넷은 젊은 세대로 하여금 진지한 탐구보다는 흥미에만 빠지도록 해 어리석은 정신상태로 유도할 수 있다고 경계했다.

 저녁 7시부터는 "이라크를 넘어서"를 주제로 일반 청중을 대상으로 강연했다. 학부 학생들이 많이 참가하여 700명 넘게 들어가는 대형 강의실이었음에도 상당수 사람들은 입장하지 못했다.

 촘스키는 여기에서 "이라크를 넘어서"라는 주제를 넘어서 제3세계 민주주의에 대한 미국 대외정책의 파괴적 역할을 비판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대답해야 할 근본적인 질문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기준을 제3세계에도 적용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는 아담 스미스의 이론을 근거로 미국 대외정책을 비판했다.

 군사적으로 지배되는 나라에 시장 원리를 강요한 것이 제3세계를 창출했다는 것이다. 그는 부시정부가 2002년 9월에 선언한 국가안보전략을 "공개적인 세계 지배 선언"이라고 비판하고 키싱거 식 현실주의를 나찌즘과 같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은 실은 미국 외교정책에서 오래된 것인데 부시정부가 이를 공개적으로 선포한 것뿐이라고 했다.

 테러리스트를 숨기는 국가를 공격한다는 부시 정부가 내세운 원칙을 두고 그는 과거에 미국은 테러리스트들과 범죄자들의 공연한 피난처 역할을 했다고 비판했다. 그 하나의 실례로서 그는 하이티에서 학살을 자행한 엠마누엘 콘스탄트를 미국정부는 인도하지 않았다고 했다. 또 촘스키는 이집트정부가 인도를 요구한 시크 오마르 압둘 라만를 송환하지 않았던 예를 들었다.

 그런데 그 시크 라만은 나중에 세계무역센터 폭파의 주범으로 기소되었다는 것이다. 중동에 민주주의를 가져다준다는 부시 정부가 내세우는 비젼에 대해서 촘스키는 부시 정부의 진정한 동기는 자원 확보와 기업이익 추구일 뿐이라고 냉소했다. 대안이 무엇이냐는 청중의 질문에 대해서 촘스키는 민중의 조직화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했다.
 
 전체적으로 이번 강연에서 촘스키는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미국 정부가 소수 기업의 이익을 옹호하며 외국을 무리하게 침략하고 있다고 비판하고는 있지만 이러한 미국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미국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해서는 깊은 고민이 부족하지 않은가 생각되었다. 이것은 역시 미국 노동자, 민중들의 몫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 민중들의 의식은 기업이 주도하는 선전에 침식되어 대부분 개인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정부를 미워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촘스키는 이런 딜렘마 속에서 미국 시민들의 신화를 깨는데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미국 민중이든 제3세계 민중이든 "답답한 사람이 샘을 파야" 하는 것이다.

[광장] 2004. 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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