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동생의 결혼식에 동원되었다.
어제 야구장에 같이 간 친구의 동생이 오늘 결혼했다. 직장도 서울이고 대학도 서울에서 나와 부산엔 지인이 별로 없었기에, 내 친구의 친구들이 동원됐다. 식장에 갔더니 내 친구들투성이.. 마치 내 친구가 결혼하는 것처럼 말이다.
다들 반가운 마음에 인사하고, 데리고 온 신랑들과도 인사하고, 우인 사진도 찍고(^^;;), 밥도 먹고.. 고맙게도 친구가 디올 립스틱을 선물로 준다. 와줘서 고맙다고.
어제 힘들었던터라 오늘 얼굴 퉁퉁 부어서 갔는데, 신부만 이쁘면 되니까 뭐.. 라고 위안했다. 결혼식 부페는 왠지 맛이 다 똑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밥을 먹고 얘기 좀 하다가 헤어졌다. 원피스 입고 얼굴은 부었지만 나름 샤방하게 나갔는데 집에 그냥 들어오려니 좀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커피숍 들러 커피 마시면서 책이나 볼까..싶어 지나다니면서 한번도 안 가본데를 가기로 했다.
하얀 문을 열고 들어서니 손님은 한 테이블만 채우고 있었고, 난 왠지 어색했다. 둘러보다 대충 앉아 메뉴판을 봤다. 직원이 오는 걸 보니 앉아서 주문하는가 보다. 메뉴판은 유럽과 커피, 과자 등을 찍은 사진들로 가득했고, 난 아메리카노를 먹으려다가 너무 더워 아이스 까페모카를 시켰다. 아메리카노와 아이스 까페모카는 너무나 다르지만 내 맘이다.
주문하고 읽던 책을 펼쳤다. 초반부라 아직 캐롤라인과 슈트루엔제의 이야기는 없었다. 크리스티안의 정신 문제와 계몽주의 이야기, 암울한 궁정 이야기들이 한가득 펼쳐지고 있다.
생각해보면 확실히 동양과 서양의 궁정은 다르다. 순수, 순결을 강조하는 것도 위선적이고. 하지만 동일한 것은 왕의 여자들과 왕비의 순결함이랄까. 왕은 설사 유부녀라해도 놀아났고, 왕비는 왕 이외의 남자에게 금단의 열매라는 것.
한참 크리스티안이 왜 정신병을 앓게 됐는지 읽고 있는데 아이스 까페모카가 왔다. 달고 시원했다. 문득 후회했다.
딱 한 모금. 달고 시원함은 딱 한 모금으로 충족되는 거였다.
천천히 책을 읽으며 한 잔을 마셨다. 그리고 리필을 주문했다. 일반 원두는 무료지만 일리 커피는 천 원을 내야했다. 난 일리 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다.
조금 있다 일리 커피가 왔다. 향을 맡았다. 고소했다. 맛을 봤다. 끝맛이 고소하고 쓴 맛이 없었다. 음.. 맛있다. 이제야 책을 읽으며 한 잔의 원두커피와 함께 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됐다. 커피는 자꾸 나를 불렀다. 나는 책보다 커피에 집중하게 됐다. 커피의 고소한 맛을 느끼고 책을 보고 다시 커피를 마시고.. 그러는 가운데 가면의 시대는 점점 무미건조한 듯 하지만 애절한 사랑 이야기로 흐르고 있었다. 그 가운데 가여운 크리스티안은 점점 입지가 좁아졌다.
커피 한 잔을 다 마시고 책을 덮었다. 책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이제 가야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아쉽게 입맛을 다시고 값을 치르고 나는 까페를 나왔다.
가면의 시대를 다 읽고 내일은 다른 책을 들고 와야겠다. 이번엔 바로 일리커피를 마실테다. 리필까지 마셔야지. 한동안 난 이 커피에 빠져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싫지 않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