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환상 3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88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송기정 옮김 / 민음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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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에서 뤼시앵은 빈털터리가 되었고, 3권에서야 비로소 앙굴렘으로 돌아온다. 뤼시앵은 파리에서 다비드의 서명을 위조하여 3천 프랑의 어음을 발행했는데, 이는 다비드를 커다란 위험에 빠트린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돈' 보다는 '어음'을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종이돈 즉 지폐는 불신의 대상이었고, 주로 경제활동은 어음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어음이란 기간이 도래하여 돈이 되든, 누군가 할인해서 돈으로 바꿔주든 해야 되기에, 처음 뤼시앵이 자신의 소설 '샤를 9세의 궁수'를 팔아 손에 쥐게 된 5천 프랑의 어음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뤼시앵은 이 어음을 현금화 하기 위해 어음할인업자를 찾아다니지만 결국 카뮈조를 찾아가게 된다. 상인인 카뮈조는 그 어음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고, 상사와 관련된 어음으로 바꾸어 돈을 지급한다. 이 어음은 결국 뤼시앵을 감옥으로 보내려 했고, 코랄리는 이를 무마하기 위해 다시 카뮈조의 정부가 된 듯한 분위기를 보인다.


뤼시앵은 이와는 별개로 돈이 부족해지자 다비드의 서명을 위조하여 각각 1, 2, 3개월 만기의 1천 프랑짜리 어음을 3장 발행한다. 다비드에게는 그저 편지 한 장 보냈을 뿐. 그리고 이 어음은 다비드를 감옥으로 보냈다. 이 고단한 발명가는 아버지에게 눈탱이 맞고, 처남에게 호구 잡힌 채 이상 세계를 그리고 있었다. 그는 종이 제조법 발명에 몰두해 있었는데, 그가 생각한 방향은 맞았으나 그에겐 조력자도 돈도 없었다. 그리하여 그 제조법을 노리던 쿠앵테 형제는 이 어음을 미끼로 종이 제조법의 이익을 가로채고자 한다. 그 와중에 한때 같은 학교에서 동문수학했던 소송대리인 프티 클로의 야심까지 얹어져 다비드는 한층 더 위험에 처하게 된다.


발자크는 이 소송을 아주 자세하고 설명하는데, 이 부분을 읽다보면 찰스 디킨스의 <황폐한 집>이 떠오른다. 영국과 프랑스는 나라는 다르지만 소송에 휘말리면 본 소송에 걸린 금액보다 소송 비용이 더 나와 영국의 <황폐한 집>에서의 잔다이스 상속 소송은 끝나버렸다. 이곳 프랑스인 <잃어버린 환상>에서 역시 원래 채무액인 3천 프랑은 소송 비용 등이 더해져 5천 프랑이 넘게 되고, 약간의 재산이나마 지키기 위해 아내인 에브와 재산분리 소송을 한 덕에 그 비용이 더해지고, 아버지 세샤르 역시 소송에 참가하여 총 부채가 1만 프랑이 넘어버린다.


예나 지금이나 법에 무심한 발명가가 교활한 상인과 법률인을 만나면 특허도 잃고 재산도 잃게 되는 건 진리인가 보다. 쿠앵테 형제는 다비드에게 어음 상환을 요청하고, 프티 클로는 기한 연장을 위해 모든 서류에 이의를 제기한다. 하지만 이는 곧 소송 비용을 계속 발생시켜 다비드를 파산시키고자 하는 음모였다. 그 결과가 1만 프랑이 넘는 부채인 것이다. 발자크는 자신이 채무자가 되어 파산하게 된 과정을 이야기 곳곳에 풀어놓았다. 뤼시앵의 파산과 다비드의 소송은 모두 발자크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들이다. 발자크는 자신이 인수한 문예지를 청산하면서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고, <골짜기의 백합> 저작권 때문에 긴 소송전에 휘말렸다. 거기다 발자크의 작품을 단행본으로 출간하던 베르데 출판사가 파산하여 채무자의 고통은 더 가중되었다. 뤼시앵과 다비드가 맞닥뜨린 고통은 다름아닌 발자크의 고통인 셈이었다.


현실에도 어음은 종종 문제를 일으킨다. 의료기기 업자들은 병원에 의료기기를 납품하고 어음을 받는데, 기간이 1년 짜리도 많아서 현금화 하려면 할인을 크게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안 그런 병원도 많겠지만, 내가 아는 어느 의료기기 상인은 병원이 하도 돈을 안 줘서 결국 파산했다. 그게 벌써 5년도 더 지난 일이긴 하지만. 요즘은 상황이 더 나아졌을까나.


소송대리인 프티 클로는 마지막엔 다비드에게 나쁜 일들 중에 그나마 좋은 일을 해줬다. 유명한 충고도 해줬더랬다.


 "자! 나쁜 타협이 좋은 소송보다 낫다네......"(307쪽)


다비드는 뤼시앵과는 달리 잃어버린 것에, 가지지 못한 것에 큰 미련을 두지 않았다. 그는 평온함을 사랑했고, 가족과 함께 하기를 원했다. 그리하여 그는 가족과 함께 미래를 꿈 꿀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나는 <안나 카레니나>의 레빈이 떠올랐다. 키티와 함께 신념대로 사는 레빈과 다비드는 닮았다 느꼈다. 이 고뇌하는 발명가는 현명한 아내인 에브와 함께 평온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제발 그러기를!!


뤼시앵은 환상을 잃어버렸고, 다비드는 삶을 되찾았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것 같은 뤼시앵은 에브와 다비드에게 돈을 남기고 떠났다. 이제 이야기는 <사교계의 영광과 비참>으로 넘어간다. 나는 그 전에 <고리오 영감>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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