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픽션 나이트
반고훈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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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공포란 감정은 무엇일까. 무엇이 우리를 무섭고 두렵게 하는 것일까.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치솟는 금리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묻지 마 폭행 같은 것들이 있겠지. 그런 현실적인 문제들을 벗어나서 좀 더 비현실적인 눈으로 본다면 실체가 없는 존재들이 우리를 두렵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체가 없는 존재들은 말 그대로 실체가 없어서 무섭다. 내가 알지 못하니까. 인간은 잘 모르고 잘 알지 못하고 자신과 다르면 타자화해서 배척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 실체가 없는 존재- 귀신은 이전에는 인간이었다. 인간이 죽어 귀신이 된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니 귀신의 행동은 살이있을 적 행동이랑 별 다를 게 없을 것이고, 오랜 시간 귀신으로 있었다면 명상이나 수행 같은 것을 했다면 성질 좀 바뀌어서 부드럽고 다정한 귀신으로 성장했을테고, 분노와 원한과 억울함에 사로잡혀 있다면 소위 말하는 악귀가 되어 있겠지. 아, 죽어서도 노력해야 하다니, 뭔가 서글프다. 우스개소리로 하는 말이 다 맞다니까. 멕시코 인들은 죽으면 영화 '코코'에 나오는 사후세계로 가고, 우리는 죽으면 영화 '신과 함께'의 사후세계로 간다고. 


내 마음 속에 미움과 시기와 질투가 자라면 내 마음이 지옥이 된다. 그런 마음은 나를 너무 힘들게 할 뿐이니 그런 마음이 없으면 좋겠지만, 그게 쉽지는 않겠지. 혹은 노력이 결실을 맺지 못해서 점점 고립되고 힘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술에 의존하기도 하고, 우울증에 걸려 힘들어 하기도 한다. 자포자기하여 삶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고 분노를 약자에게 표출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의 한 단편인 <과거로부터의 해방>이 안타깝지만 좋았다. 알콜 의존증인 '나'는 인생이 망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 기억 그대로 엄마의 뱃속으로 돌아갔다. 인생 2회차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로또를 사지도 않았고, 친구를 아주 많이 사귀지도 않았다. 인생을 크게 바꾸기보다는 내 인생에서 소중했던 것들을 좀 더 소중하게 여기는 길을 택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더 가슴이 아팠고, 작지만 따뜻하고 소중한 것들로 채워진 삶이 아름답게 보였다. 인생은 좋은 것들로만 채워질 수 없지만, 좋은 것들을 추억하고 소중하게 간직할 수는 있으니까. 


그래서 첫 번째 이야기인 <당신과 가까운 곳에>와 마지막 이야기 <귀신은 있다>가 더 안타까웠다. 소중한 걸 알아보고 소중하게 대해야 하는데, 사람은 너무나 가깝기 때문에 늘 같이 있을 거라고 착각한다. 집을 나설 때, 친한 이와 만나고 헤어질 때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설사 다투고 난 뒤라도 화해할 기회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움은 후회를 낳고 후회는 미련을 남기니, 사랑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는 좀 더 사랑을 담아야 할 것 같다.


<벽 너머의 소리>는 마치 평범한 영웅의 이야기를 보는 듯 했다. 평범함과 영웅이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사실 모두가 처음부터 용감하고 영웅이었던 것은 아니니까. 두렵지만 목소리를 내고, 그 용기를 본 누군가가 다시 용기를 내고, 그렇게 용기는 퍼져 나가게 된다면 이 사회는 약자를 위해 힘을 쓰는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 같다. 굳이 초능력이 없어도 용기는 낼 수 있으니까. 진아가 그랬던 것처럼. 드라마 <힘쎈 여자 도봉순>이 생각나는 이야기이다.


<시체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흥미진진한 스릴러이다. 사실 우연이 불러 온 결과라고 한다면 그렇겠지만, 또 그럴싸하지 않은가. 익명성이 가져 온 허세는 두 사람의 운명을 바꿨다. 학교에서도 버려진 건물 화장실, 그 곳은 드나드는 사람이 거의 없는 곳이었고, 두 사람은 싸인펜으로 벽에 글을 써 가며 대화를 나눈다.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어', '죽이면 되지', '죽였는데 시체를 어떻게 하지?', '토막내서 묻어' 이런 허세 가득한 대화 말이다.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상대의 말에 일주는 비웃으며 이러면 내가 쫄 줄 알고? 나도 스릴러나 추리물을 많이 봤다는 식으로 허세를 부린 것이다. 화장실 벽을 빼곡하게 채운 무시무시한 살인 방법이나 시체 처리의 방법들은 곧 일주를 두렵게 만들었고, 사건은 이상하게 흘러간다. 때때로 인생은 별 것 아닌 일로 시작해서 걷잡을 수 없는 비극으로 뒤덮이기도 한다. 


<검은 짐승들>은 옛날 사람들의 탐욕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늙지도 아프지도 죽지도 않는 상태가 좋은가 보다. 치러야 할 대가가 어마어마한데 말이다. 그렇게 누군가를 희생시켜 얻은 청춘은 아름다운가. 


<제3의 종>은 환경 오염으로 변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변이하는 것을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서는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서로 다른 종들끼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고민하게 하기도 한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는 결국 우리에게로 돌아올 것이고, 이미 다른 생명체들은 아주 많이 희생당했고 희생될 것이다. 


삶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인간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뜻대로 하고 싶어하고, 흘러가는 시간을 잡고 싶어하고, 후회하며 돌이키고 싶어한다. 뜻대로 안 된다면 뜻을 바꾸기도 하고 흘러가는 시간을 가만히 쳐다보기도 하고 후회할 일들 사이 사이 좋았던 일들을 추억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지나간 시간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니.   

딱히 미래를 바꾸거나 하고 싶진 않았다.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해 살아왔던 인생이었기에 가능하면 내가 기억하는 모습대로 살아보고 싶었다. 설거지하면서 부르던 엄마의 노랫소리나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아빠의 방귀소리, 따뜻한 할머니 냄새와 상냥했던 담임 선생님의 얼굴,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유치한 농담들 모두 그대로 간직하고 싶었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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