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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약국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에세이 1
김희선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3월
평점 :
고즈넉한 밤의 약국에는 많은 방문객이 있다. 사람도 있고 동물도 있고 비록 꿈이지만 문어도 있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소란스럽기도 하고 진저리가 나기도 하지만 또 훈훈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그리고 사람 뿐만 아니라 이 지구에는 많은 존재들이 함께 살아간다. 그런 세상일을 작가는 섬세하고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담담하게 이야기 한다.
밤이 깊다.
아직 잠들지 못한 모든 이들이 행복하길. (p.279)
먼저 인터넷서점에 들어간다. -> 사야 할 책을 검색한다. -> 그러다가 온갖 링크를 타고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실제로는 유한하겠지만 알고 보면 무한한 책들의 미로를 헤맨다. → 그러면서 동시에, 손에 잡히는 대로 장바구니에 담는다. -> 담을 만큼 담은 후, 결제한다. -> 주문한 책들의 목록을 보며, 꼭 사려고 했던 가장 중요한 책은 정작 사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오히려 기뻐하며 다시 인터넷서점에 들어간다. -> 다시 사야 할 책을 검색한다. 또다시, 온갖 링크를 타고 돌아다닌다. -> 아까와 같은 공간이지만 완전히 달라진 책의 미로를 헤맨다. -> 그러면서 또 다시금 장바구니에 책을 담는다.→ 책값을 결제한다. 이번에도 또, 꼭 사려던 책이 빠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 다시 인터넷서점에 들어간다. -> 위의 과정을 되풀이한다.→ ∞ → 마침내 무한에 빠졌음을 깨닫는다. - P170
‘나‘는 ‘뇌‘가 아니라 ‘(뇌를 포함한) 몸 전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건 순전히 나의 강아지들 덕분이다. 다섯 살밖에 안 된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마토는 내게 생명의 불가역성, 그 빛나는 유일함을 일깨워줬다. 품에 안은 강아지가 마지막 숨을 내쉬며 서서히 식어갈 때, 난 세상에서 가장 큰 질문에 맞닥뜨렸다. ‘살아 있다는 건 뭘까?‘ 그리고 칸토와 매일 산책하면서 나는, 움직이고 걷고 뛰고 맛보고 냄새 맡고 느끼는 나 자신이 곧 ‘살아 있음‘이라는걸 알았다. 만약 슈퍼컴퓨터가 있어서 거기에 나의 뇌를 온전히 업로딩한다 해도, 그게 결코 ‘나‘일 수 없음을, 이렇게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업로딩된 내가 영원히 살며 세상의 모든 지혜와 우주의 비밀을 알게 된다 해도, 그 존재는 산책하며 나뭇잎의 냄새를 맡을 수 없고 따뜻하고 북실북실한 칸토의 털에 얼굴을 파묻지도 못한다. 뇌(혹은 의식, 누군가는 이것을 영혼이라고 표현하겠지만) 몸을 분리하여 생각한다는 것은 결국 현대의 새로운 종교이며, 죽으면 영혼만은 천국에 올라가 영원히 산다고 믿었던 오래전의 이원론과 다를 바 하나 없었다.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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