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첫 번째 시 - 아동 한시 선집 진경문고
안대회 편역 / 보림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선 시대 양반의 아이들은 교육을 받아서인지 시도 참 잘 짓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게는 열세 살 정도, 적게는 세 살짜리가 쓴 시가 이렇게 멋들어질 수가 있는지. 지금도 초등학교 아이들이 쓴 시를 보면 놀랄 만한 시들이 많은데,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의 시선이나 표현력이 참 부럽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 안대회 교수가 뽑은 최고의 동시는 조선 중기 문신인 이산해가 일곱 살 때 썼다는 제목도 참 귀여운 <세 톨 밤>이란 시이다. 


한 집안에서

아들 셋을 낳았는데

가운뎃놈은 양 볼이 납작하네.


바람이 불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떨어지니

누가 형이고 누가 아우일까.


마지막 줄 한자가 난형역난제(難兄亦難弟)인데, 안대회 교수는 이렇게 난형난제라는 사자성어로 마무리한 것도 절묘하고, 아이답게 보고 느낀 바를 그대로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라고 평했다. 조선 시대 아동이 지은 시 가운데 백미(白眉)라고.


나는 이 시도 좋지만 조선 중기 때 사람인 권겹이 쓴 시가 더 좋았다.


<송도에서 고려를 회상하며>


눈 속에 뜬 달은 

지난 왕조의 빛깔이요

쓸쓸한 종소리는 

망한 나라의 소리일세.


남쪽 성루에서

시름겨워 홀로 서니

부서진 성곽 위로

새벽 구름 피어오르네.


아니, 도대체, 이게 아홉 살 전후의 아이가 쓸 시인가 싶다. 도대체 어릴 때 무슨 교육을 받으면, 어떤 경험을 하면 아이가 망한 나라를 상상하고 돌아보며 이런 분위기에 이런 글을 지을 수 있을까?


한은이 여섯 살 때 썼던 시인 <종이연> 마지막 연처럼 '액운들아! 종이연의 뒤를 쫓아 몽땅 날아가거라!' 라는 구절만 보더라도, 여섯 살이 액운이라는 단어를 써서 다 날아가라고 하는 것을 보면 다들 어릴 때부터 무슨 노인네가 들어앉은 것 같기도 하다.


박엽이 여덟 살 때 지은 시인 <눈>을 보면 사물을 보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일이 이들에게는 숨 쉬는 것만큼 쉬운 일인가 싶기도 했다. 박엽은 등불을 소재로 한 시구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등불이 방 안으로 들어오자 밤은 밖으로 나가네."라고. 표현이 너무 절묘하지 않은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서예가인 김구가 여덟 살 때 지은 시인 <오작교> 중 한 구절을 보다 보면 아이의 정신세계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창공은 넋이 만나는 세상

다리 따위는 필요 없겠지.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3-02-21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엽의 시어들 <눈>의 시어들 역시 시인은 세상을 보는 눈이 일반인들과 다른것 같습니다
요정님 프로필 사진 멋지쉼😍

꼬마요정 2023-02-24 10:32   좋아요 1 | URL
나이도 어린 데 저런 말들은 어떻게 나오는 걸까요? 오히려 아이라서 그런건지 싶기도 하구요. 부럽더라구요 ㅎㅎ 프로필 사진 좋아요^^ 고맙습니다!!!

희선 2023-02-22 23: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조선시대 공부는 거의 한시부터가 아닌가 싶네요 어릴 때부터 그런 걸 배우면 한시도 나름 쓰겠습니다 그래도 그때 어린이와 지금 어린이는 아주 다르기도 하네요 어쩌면 그때 사람과 지금 사람이 수명이 달라설지도... 그때 사람이 더 어른스럽죠 아이도 어른도... 철없는 사람이라고 없지 않았겠지만...

고려를 생각하는 시 어디선가 본 듯한데 그 시 아홉살 전후 아이가 쓴 거라니, 정말 대단하네요 지금도 어린이는 놀라운 말을 하겠지요


희선

꼬마요정 2023-02-24 10:37   좋아요 2 | URL
어릴 때부터 시경이니 이런 거 읽고 배우면 쓸 수도 있겠네요. 철없는 어른들은 역사책에 나오고 이런 멋진 시들은 개인적인 편지나 선집들에 나오나 봅니다^^

고려를 생각하는 시는 유명하다고 해요. 그런 시를 저렇게 어린 아이가 썼다니 그 재능이 참 부럽습니다. 말씀처럼 지금도 어린이는 놀랍기도 해요^^